건강위험 장면과 표현의 자유
건강위험 장면과 표현의 자유
  • 유현재 (hyunjaeyu@gmail.com)
  • 승인 2017.11.23 12: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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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재의 Now 헬스컴] 흡연, 과도한 음주, 폭력 등 빈번…현실적 보완책 필요

[더피알=유현재] 상사의 야멸찬 질타에 옥상에서 줄담배를 피우는 40대 가장의 모습, 소주냉장고까지 장만해 지인들과 집에서 술파티를 즐기는 장면, 집단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극단적 생각을 하고마는 10대 청소년...

TV나 인터넷을 통해 흔히 접하게 되는 건강위험행동들(Health Risk Behaviors)이다. 육체 및 정신건강 등에 부정적 영향을 초래할 수 있는 다양한 행동을 일컫는 것으로 흡연, 과도한 음주, 폭력, 무분별한 성적 일탈 등이 대표적이다.

sbs 예능 '미운우리새끼'에 출연 중인 가수 김건모의 모습. 방송 화면 캡처

앞서 열거한 일련의 행동들은 엄연히 우리 삶에 녹아있는 일부다. 생활 속 경험이 미디어 콘텐츠의 소재가 되기 때문에 각종 건강위험행동이 미디어를 통해 자주 노출되는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일례로 자살 장면이 빈번하게 보이는 것도 십 수년째 세계 1위를 기록 중인 우리나라 자살률과 무관치 않다.

미디어 속 위험행동과 관련된 장면 혹은 콘텐츠들은 헬스커뮤니케이션 영역에서도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킨다. 한 번은 다음과 같은 논의를 하는 세미나에 참가한 적이 있다.

위험행동으로 묘사되는 장면들이 취약계층인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제한돼야 한다는 시각과, 취약계층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가능성엔 동의하지만 콘텐츠 제작자들이 가진 숭고한 ‘표현의 자유’와 맞바꿀 정도는 아니라는 생각에 관한 논의였다. 양측의 주장은 팽팽했다. 필자는 각종 건강위험행동 장면의 부정적 영향력이 상당해 제한 장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상대에게 강제적 신체 접촉을 시도하는 드라마 속 한 장면.

가령 흡연은 이제 그 해악성에 있어 사회적 합의가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형성돼 있다. 영화를 제외한 거의 모든 미디어 속에서 흡연 장면은 자연스레 금지되는 환경이 조성돼 있다. 실내 공간은 물론, 지하철역과 같은 공공시설에서 ‘흡연금지’를 써 붙이는 현 상황에서 어떤 미디어 기획자‧제작자가 흡연 장면을 대놓고 활용할 수 있겠는가. 심의에 의한 대가와 윤리적 대가를 모두 감당해야 함을 알면서 말이다. 과도한 폭력, 무분별한 성적 표현 역시 판단의 기준이 비교적 명확한 편이다.

하지만 술은 이야기가 다르다. 상당히 다른 기준들이 공존한다. 음주에 대한 우리들의 전반적 시각부터가 앞서 예로 든 흡연이나 폭력과는 확연히 차이가 있다. 아예 안 된다기보다는 폭음 및 폭음에 의한 사건사고 발생을 문제화하는 게 일반적이다. 술 자체를 무조건 ‘그르다’고 가치 판단할 수 없는 게 우리의 문화요, 현실이다. 보건복지부 등 건강 관련 기관들이 ‘금주’가 아닌 ‘절주’를 내세우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지 않을까 싶다.

합의점을 위한 두 가지 제언

그렇다면 건강위험 행동장면의 부정적 영향을 적절히 제한하면서도 표현의 자유도 지킬 수 있는 합의점은 없는 것일까. 모두가 만족하는 해법은 없겠지만 두 가지 트랙으로 제언해 본다.

첫 번째는 미디어 속 건강위험행동 묘사와 관련해 제한을 가하는 요소들을 보다 적확하고 세부적이며 현실적이게 보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주지의 사실이지만 각종 건강위험행동과 관련된 심의기준은 존재한다. 하지만 각 항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다지 명확하지 않다. 개별 심의자에 따라 다소 주관적이거나 추상적일 수 있는 측면도 발견된다. 이 말인즉 심의자도 헷갈릴 수 있는 여지가 있고, 기준에 위배되지 않게끔 콘텐츠를 만드는 제작자도 혼란스러울 수 있다는 것이다.

보완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그 중에서도 특히 ‘법을 대놓고 어기는’ 장면에 대해서는 명확한 선을 그어 놓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법을 어기는 행동들도 스토리의 일부로 등장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위법 행동이 마치 ‘당연한 일인 것처럼’ 묘사된다는 데 있다.

얼마 전 모 지상파 드라마에서는 편의점 내부에서 술을 마시는 장면이 등장했다. 편의점에서는 내외를 막론하고 술을 음용할 수 없는 법이 있다. 하지만 해당 장면은 재미있는 유머 코드로 포장돼 너무도 자연스럽게 다음 장면으로 이어졌다.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등장인물이 보여준 음주행위가 불법인지 인지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관련기사: TV가 술취하고 있다

kbs 드라마 '아버지가 이상해'의 한 장면. 편의점 앞에서 맥주를 마시는 모습이 담겨 있다.

아마 공공장소, 그것도 실내에서 흡연을 하는 장면이 나왔어도 비슷했을 것이다. 건강증진법 개정에 따르면 오는 12월부터 실내 체육시설에서 담배를 피우지 못하는 규정이 시행된다.

두 번째 제언은 심의규정에 대해 명문화시키기 어려운 애매한 사항들에 대한 접근 방법이다. 법이나 규정으로 질서를 잡기에는 다소 명쾌하지 않거나 무리가 있을 것으로 판단되는 사안들에 대해서는 자발적이면서도 강력한 협조를 구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가령 ‘미디어 권고기준’을 만들어 전달하는 것도 방법일 수 있겠다.

‘권고’ ‘가이드’ ‘참고 지침’ 등은 의무적으로 준수해야 할 규칙은 아니다. 하지만 타당한 협의체에 의해 일정한 기준이 천명돼 사회에 공론화될 경우 파급 효과를 기대할 수는 있다. ‘자살보도권고기준’이 그 예다. 자살은 소위 ‘베르테르 효과’를 발생시킬 수도 있다고 알려졌다. 그럼에도 무분별한 자살보도 및 관련 콘텐츠들에 대한 제재는 거의 전무한 상태였다. 자살과 관련된 보도 혹은 정보를 무조건 유통하지 말라는 것은 억지며, 법이나 규정에 명문화하기에도 애매한 성격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보건복지부와 중앙자살예방센터는 정신건강의학 전문의와 예방의학자,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언론학자, 기자 등으로 협의체를 구성해 ‘자살보도권고기준’을 마련했다. 법이 아닌 탓에 일 권고기준을 준수하지 않는다고 해서 제한을 받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상당수의 기자들이 권고기준을 명확하게 인지하면서 지켜나가고 있음이 논문 및 보고서를 통해 드러나고 있다. 권고기준에 의해 일부 무분별하고 선정성 일변도의 자살보도들에 자정작용이 발생한 것이다. 이제는 기자들뿐 아니라, 국민들도 이에 대한 문제성을 인지하는 등 사회 전반적으로 퍼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결국 콘텐츠의 제작 주체와 소비 주체, 그리고 미디어 콘텐츠에 의한 부정적 영향력을 걱정하는 주체 등에 의해 일정한 ‘합의점’이 형성된 상태라고 볼 수 있다.

표현의 자유가 그 무엇보다 소중한 가치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지만 표현에 있어서 자유가 더욱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사회에 처해진 다양한 특수성을 고려하고 구성원간에 합의를 찾아내는 지점에서 더욱 빛을 발하기 때문일 것이라 믿는다.


유현재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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