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두 얼굴
중국의 두 얼굴
  • 함기수 (admin@the-pr.co.kr)
  • 승인 2011.05.12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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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기수의 中國 이야기

“저는 지금까지 중국의 겉모습만 보았던 것 같아요. 중국은 역시 무서운 사회주의 국가였습니다.”

술 자리에서 사소한 시비에 말려 공안국(경찰서)에 끌려 갔던 한 한국인 사업가가 혀를 내두르며 필자에게 한 얘기다. 바깥 세상과는 완전히 차단된 컴컴한 골방에서, 들어서자마자 사람 취급은 고사하고 다짜고짜 주먹이 날아들더라는 것이다. 그들의 고압적인 태도와 분위기에 눌려 숨도 제대로 못쉬었다고 그는 실토했다.

“정말 대단해요. 그들이 어떻게 이런 사소한 일까지 금방 알아 냈는지…”

한국 회사의 중국 지사장으로 있었던 후배 한 명이 정말 깜짝 놀랐다고 하며 필자에게 털어 놓은 얘기다. 본사에서 송금되어 제반 지사 관리비와 활동비를 충당하던 은행 계좌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거래선과의 상담이 성공적으로 끝나고 상대방 사장이 사례의 표시로 미화 500불을 주길래, 개인적으로 사용할 수가 없어서 사무실 운영비로 쓰려고 무심코 이 계좌에 입금했다고 한다. 바로 그 다음 날 해당 지역 세무국에서 호출이 왔단다. 500불의 출처에 대해 해명하느라고 그는 한참 동안 진땀을 흘려야 했었다고 털어 놓았다.

특정한 사물이나 상황 또는 사람에게서, 보는 관점에 따라 서로 다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경우를 우리는 주변에서 자주 경험한다. 재벌이 국가 경제에 미치는 긍정적인 면을 부각시키다 보면 그들의 횡포와 독점 속에서 숨도 제대로 못 쉬는 하청업자들도 있다. 이미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어 버린 ‘세계화’ 의 필요성을 부각시키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이는 제3세계의 희생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강대국들의 농간에 불과하다고 흥분하는 사람도 있다. 어느 날 나에게 유난히 친절한 사람의 웃음 뒤에는 대부분 다른 무엇이 있는 것이 일반적인데, 우리가 흔히 ‘야누스의 얼굴’ 에 비유하는 이러한 이중성은 결국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양(陽)과 음(陰)을 동시에 보아야 하는 ‘균형감각’ 의 문제로 귀착된다.

겉 모습만 보고 판단해선 안돼

같은 동양인으로서 우리는 유럽이나 미국 등 서방 국가들에 비해 중국에 대한 평가를 쉽게 내린다. 뉴욕의 존 에프 케네디 공항이나 영국의 히드로 국제공항에 내리면 우리는 마치 시골에서 상경한 사람처럼 기가 죽는데, 사람들의 생김새와 낯선 풍경에서 어쩔 수 없이 이질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은 다르다. 우리와 비슷한 사람들과 풍경들에서 우리는 외국에 나온 것 같지 않은 만만함을 느끼게 된다. 그리하여 보는 관점과 성격에 따라 중국의 위치와 수준, 발전 단계, 중국의 미래까지 다양하게 정의들을 내린다. 우리 보다 30~40년은 뒤쳐져 있다는 사람부터 우리를 벌써 한참 추월했다는 사람들까지 다양하다. 이러한 극히 단편적이고 주관적인 지식은 중국의 다양하고 복합적인 여러 이면을 보는 데에 치명적인 장애가 됨은 물론이다.

중국에 발을 들여 놓으면서 필자는 주변의 기관과 사람들로부터, 중국에서의 모든 행동을 조심하라는 충고를 들었다. 전화는 거의 전부가 도청된다고 보면 되고 한국의 웬만한 기업체의 대표 정도라면 그가 어느 술 집을 자주 가고 무슨 노래를 즐겨 부르는가 정도는 기본이라고 했다. 실제로 당시 필자는 어느 다국적 기업의 중국 대표가 사무실을 철수하면서 중국 측의 여러 가지 불합리한 점을 고발하자 상대방이 그의 여자 관계를 손바닥처럼 제시해 아무 말없이 손을 털었다는 등의 얘기를 듣곤 했다.

원칙이냐, 변칙이냐

우리 기업들이 중국에서 사업을 할 때 가장 갈등을 느낄 때가 얼마만큼 법과 원칙을 지키느냐다.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우스갯 소리처럼 하는 이야기 중에 ‘지킬 것 다 지키면서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 있다. 사실 영업허가라든가 인건비 신고에 따른 세무 문제 등 원칙과 약간의 변칙 사이에서 고민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당장의 손실과 사업 진행 차원에서 너무 많은 차이가 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우리는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물증은 없으나 손바닥처럼 우리를 보고 있는 눈을 느꼈기 때문이다. ‘너무 소심한 것 아니냐’ 라고 직원들이나 주변에서 얘기할 때 마다 결정적일 때의 회사 이미지 손실은 금전으로 따질 문제가 아니라고 무마하곤 했다. 우리는 일부 개인 사업자들처럼 야반도주도 할 수 없는 입장이었으므로…

역시 중국은 중국이다. 우리 식으로 보고 우리 식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중국이 우리보다 더 자유롭고 더 자본주의 같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그들은 아직도 중국을 잘 모르고 있다. 중국 현지에서 값싼 우월감으로 현지인들에게 방자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처음부터 중국에 갈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중국을 더 많이 알아야 한다. 더 많은 이해의 바탕 위에 우리의 전략을 세워야 한다. 날이 갈수록 중국의 한 면만을 보며 중국의 또 다른 얼굴을 무시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중국의 가장 중심부에서 가장 행동을 조심해야 할 사람들의 ‘상하이 스캔들’ 을 보면서, 문득 거인의 손바닥 위에서 벌거벗고 있는 듯한 걱정과 부끄러움이 앞섰다면, 필자가 너무 과민한 탓은 아닌지 모르겠다.

함 기 수
現 세계화전략연구소 객원교수(중국전문가)
前 SK네트웍스 홍보팀장 / 중국 본부장(상무)
저서 ‘중국, 주는 만큼 주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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