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관리 위한 신문광고,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다
여론관리 위한 신문광고,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다
  • 박형재 기자 (news34567@the-pr.co.kr)
  • 승인 2017.11.29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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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인 듯 사과 아닌’ 해명광고도 상당수…에두른 표현으로 대응

[더피알=박형재 기자] 대형 위기에 맞닥뜨린 기업의 수습 국면에서 빠지지 않는 단계가 있다. 다름 아닌 신문광고다. 사회적 파장이 큰 A급 이슈들에 대한 복잡한 셈법이 광고 전략으로 나타나곤 한다. ▷관련기사: 사과광고로 보는 기업의 속내

최근 3년간(2014년 10월 16일~ 2017년 10월 15일) 기업에서 신문을 통해 내보낸 사과광고는 총 15건으로 집계됐는데, 그 사이에서 눈길을 끈 또 다른 유형도 있다. 이른바 ‘사과인 듯 사과 아닌’ 해명광고들이다.

논란 대응 차원에서 해명광고를 집행하고 있다.

롯데그룹은 지난해 10월 신동주·동빈 경영권 분쟁과 함께 ‘일본기업 논란’이 확산되자 “롯데가 새로운 각오로 거듭나겠습니다”라는 제목의 광고를 냈다. 특히 “롯데가 과감한 혁신으로 새롭게 태어나고자 한다”며 △기업 공개로 경영 투명성 확보 △순환출자 해소 등 지배구조 개선 △청년채용·사회공헌 확대 등을 약속했다.

내츄럴엔도텍 역시 2015년 4월 ‘가짜 백수오’ 논란에 대해 “100% 진품 백수오만을 사용합니다”라는 해명광고를 올렸다. “짝퉁 백수오인 이엽우피소를 쓸 이유가 전혀 없으며, 우수한 품질관리 시스템을 활용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P&G는 ‘옥시 가습기 살균제 사태’ 이후 페브리즈도 독성 물질을 포함하고 있다는 논란이 커지자 두 차례 지면광고를 통해 “페브리즈는 세계 80개국에서 사용하는 안전한 제품입니다”라고 진화에 나섰다.

해명광고는 기업 논란 대응 차원에서 집행한 것으로 풀이된다. 사과하긴 애매하고, 오해는 바로잡아야 할 때 ‘죄송합니다’ 대신 ‘새롭게 거듭나겠다’고 에둘러 표현하는 것이다. 총 5곳의 기업이나 단체가 <표>에서처럼 이런 방식의 광고를 내보냈다.

​​​이밖에 신문 지면을 통해 경쟁사를 비판하거나, 기업 중대 이슈에 대한 입장을 밝힌 기업도 관심을 모은다. LG유플러스와 KT는 지난해 3월 2회에 걸쳐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합병을 비판하는 광고를 공동명의로 냈다. 첫 번째 광고에는 “SK텔레콤에게 묻습니다. CJ헬로비전을 인수합병하려는 진정한 의도는 무엇입니까”라고 언급했고, 두 번째에는 보다 직설적으로 “SK텔레콤은 나쁜 인수합병을 포기하십시오”라고 주장했다.

하나금융그룹은 2015년 2월 4일 서울중앙지법이 하나·외환은행 합병절차 중지 가처분 결정을 내리자마자 다음날 지면광고를 내놨다. “꿈을 향한 노력에 쉼표는 있어도 마침표는 없습니다”라는 제목의 광고에는 “통합은 미래를 향한 최선의 선택, 고객을 위해 흔들림없이 나아가겠다” 등의 다짐을 담았다.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는 “이러한 광고들은 기본적으로 IR(투자자를 위한 홍보) 형식을 띄고 있으나 실제 목적은 기업에 유리한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여론 정지작업”이라고 평가했다. 기업 인수합병 과정은 주주끼리 하는 것으로, 굳이 일간지에 광고를 낼 때는 목적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특히 “통신사와 같은 국가기간산업의 경우 정부의 영향력이 막강하므로 광고를 포함한 언론 플레이를 통해 국민 여론을 조성하고 정부 의사결정에 영향을 주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광고 덕분인지(?) 실제로 SK텔레콤-CJ헬로비전 인수합병은 무산됐고, 하나-외한은행 합병은 성공했다.

신문 광고판은 기업의 사과·해명 공간 외에도 이익집단의 갑론을박 토론장으로 활용됐다. 이들은 주장광고를 통해 자신에게 불리한 제도를 비판하고, 정치이슈를 쟁점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2016년 1년 동안 조선일보에 실린 주장광고는 무려 104건에 이른다.

광고판이 갑론을박 토론장으로

구체적으로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38곳은 “19대 국회는 경제활성화법을 하루빨리 통과시켜 달라”는 내용의 광고를 집행했고, 대한변리사회는 “변호사에게 변리사 자격을 부여하는 입법 개정안을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대한피부과의사회는 “치과 의사의 보톡스 시술과 레이저 치료 허용 반대” 광고를 냈고, 축산관련단체협의회는 “농림부의 축산특례 조항 삭제에 반대한다”며 들고 일어섰다.

심지어 지면을 통해 공개적으로 다투는 경우도 있었다. 골프존과 골프존대리점주는 ‘골프존 대리점 갑질논란’과 관련 각각 광고를 내고 설전을 벌였다. 골프존은 “스크린골프 시장을 혼탁하게 하는 특정 단체의 비방과 명예훼손에 유감을 표한다”고 말했고, 이에 맞서 대리점주는 “골프존 김OO 회장에 대한 특검을 요청합니다”라고 대립각을 세웠다.

정치이슈에 대한 주장광고도 잇따랐다. 정치적 내용을 다룬 광고는 총 72건이었는데, 이 중 40건이 ‘최순실 박근혜 게이트’에 집중됐다. 박사모, 엄마부대, 대한민국 상이군경회 등 보수단체들이 광고비를 냈으며 촛불 반대 태극기집회 공지, 애국시민 결집 호소문이 주를 이뤘다. “대통령 하야 주장 세력에 선동당하지 말고, 대한민국 법치주의를 지킵시다”라는 내용이 눈길을 끈다. 이 외에도 북한 핵실험 규탄, 사드배치 찬성 등 안보 관련 내용으로 채워졌다.

이러한 주장광고의 타깃은 국민이지만 진짜 목적은 정부를 겨냥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국민 여론을 움직여 정부나 국회 등 핵심 이해관계자를 압박하기 위한 수단인 셈이다. 흥미로운 점은 72건의 정치적 주장광고 중 진보단체는 단 한 곳도 없다는 것이다. 이는 보수언론이라는 조선일보의 특성을 감안, 지지세력과 부동층을 규합하는 게 반대진영을 끌어들이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이라 판단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아모레퍼시픽은 '가습기 살균제 치약' 파문과 관련, 9월 28일자 일간지에 사과광고를 낸바 있다. 당시 회수된 치약이 카트에 쌓여 있는 모습. 뉴시스

지금까지 신문 사과광고 분석 결과를 종합하면 크게 3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기업은 신문 지면으로 사과하는 데 대단히 신중하고 △사과 대신 해명이나 입장광고로 대체하는 경우가 많으며 △사과 내용은 형식적인 수준에 그친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기업들이 좀 더 쿨하게 사과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잘못을 했으면 이를 인정하고 구체적인 보상과 개선안을 제시해야 하는데, 어떻게든 상황을 회피하려고만 하면 오히려 기업에 더 큰 부메랑으로 돌아온다는 지적이다.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는 “사과문을 보면 ‘고객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겠습니다’와 같은 표현이 많은데 그런 모호한 단어로는 신뢰를 얻기 어렵다”면서 “유감표명과 해명 대신 해결책의 비중을 높이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김영욱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는 “제일 중요한 것은 소비자로 하여금 불미스러운 사건이 다시 일어나지 않을 거란 확신을 심어주는 것”이라며 “액션이 뒷받침된 사과나 해명이어야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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