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편, 시작하자마자 몰락할 수 있다
종편, 시작하자마자 몰락할 수 있다
  • 이정환 기자 (top@leejeonghwan.com)
  • 승인 2011.05.18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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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는 한정…나눠먹을 플레이어만 ↑

종합편성채널은 애초에 잘못된 기획이었을 수도 있다. 업계 종사자들은 누구나 아는 이야기지만 신문은 물론이고 방송 역시 광고시장이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 새로운 채널이 생긴다고 해서 광고를 더 늘릴 기업은 없다. 결국 기존의 광고를 쪼개서 나눠줘야 할 텐데 과연 이들이 무엇을 더 보여줄 수 있을까.

분명한 것은 종편이 화려한 블루오션이 아니라 새로울 게 없는 척박한 레드오션이라는 사실이다. 신문사들은 이미 신문을 팔아 수익을 낼 수 없는 지경에 이른지 오래다. 신문 가격은 여전히 너무 낮고 제작 단가는 계속 치솟고 있다. 오히려 신문이 더 많이 팔리면 팔릴수록 손실이 늘어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다. 상당수 신문사들이 광고 효과보다 훨씬 더 많은 광고비를 기업들에게 받아내면서 기묘한 공생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동아일보, 매일경제 등이 사활을 걸고 방송 진출에 매달렸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방송 시장 역시 결코 녹록치 않다. 지상파 방송사들의 시청 점유율은 계속 줄어들고 있다. 방송 광고는 정체 상태다. 케이블 방송사들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고 IPTV나 스마트TV 같은 새로운 미디어 플랫폼이 계속 쏟아져 나오고 있다. 민영 미디어렙이 도입되고 중간 광고가 허용되는 등 규제 완화의 혜택이 기대되지만 경쟁이 가열되면서 오히려 파이가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종편은 결코 참신한 미디어 플랫폼이 아니다. 우선 방송사들의 외주 제작 비율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과거에는 방송사들이 외주 제작사를 선정했지만 이제는 외주 제작사들이 방송사를 선정한다. 권력이 이동한 셈이다. MBC의 인기 드라마 ‘하이킥’ 은 2시즌 제작 비용이 31억6000만원이었는데 3시즌에서는 87억1200만원으로 껑충 뛰었다. 외주 제작사인 초록뱀미디어는 3배 이상을 벌어들였지만 그만큼 MBC의 수익은 줄어들었다.

과거에는 외주 제작사가 콘텐츠를 공급하면 방송사가 해외 판매까지 도맡았지만 올해 초 방송됐던 SBS 드라마 ‘아테나, 전쟁의 여신’ 은 방송권만 넘겨 받고 제작사가 직접 해외 판매를 뚫었다. 케이블 채널 판권도 제작사가 가졌다. 방송사 입장에서는 과거처럼 외주 제작사들을 마음대로 부려먹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방송사는 이제 콘텐츠 기업이 아니라 플랫폼 기업으로 전락할 상황이다. 그 플랫폼은 과거처럼 막강하지 않다. 업계에 떠도는 여러 이야기를 종합하면 조중동매 등 신규 종편 사업자들은 최대한 기존의 콘텐츠를 활용해 제작 비용을 절감하되 저녁 무렵 피크 타임에는 과감한 투자를 아끼지 않고 시청 점유율을 끌어올릴 계획인 것으로 보인다. 선택과 집중 전략인 셈인데 그 과정에서 드라마와 연예·오락 프로그램의 제작 비용이 터무니 없이 치솟게 될 우려가 있다. 당연히 인기 연예인들의 몸값도 천정부지로 뛰어오를 가능성이 크다.

신문·방송 광고 갈수록 위축

콘텐츠 생산에서 판매, 유통까지 밸류 체인을 구축한 CJE&M 같은 기업이 주목받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동부증권은 최근 보고서에서 “콘텐츠 산업 특성상 초기투자 비용 부담은 매우 불확실한 반면 생산을 위한 한계비용은 상대적으로 매우 낮다” 면서 “방송과 통신이 융합되고 새로운 미디어 디바이스가 대중화되면서 전문화되고 특화된 단품 형태의 프로그램 수요가 폭발하게 될 것” 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물론 자본금을 5000억원 가까이 쏟아 붓고서라도 단기간에 손익 분기점을 넘어설 수 있다면 해볼 만한 모험이지만 전망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삼성증권 전망에 따르면 종편 방송사들의 시청 점유율이 2.0%에 그칠 경우 매출액은 785억원, 영업손실이 564억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시청 점유율이 4.0%일 경우 영업손실이 329억원, 6.0%가 돼도 영업손실이 93억원에 이른다는 전망이다. 시청 점유율을 이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게 과연 가능할까.

우선 2013년 지상파 방송의 디지털 전환 이후 MMS(멀티 채널 서비스)가 시작되면 지상파 방송사들은 기존의 채널을 쪼개서 고화질 HD 방송 뿐만 아니라 표준 화질의 SD 방송, 오디오 방송, 데이터 방송까지 최대 4개 채널을 동시에 전송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되면 유료 케이블 방송 서비스에 가입하지 않고도 지상파 안테나만으로도 20개 가까운 방송 채널을 시청할 수 있게 된다.

최근 OBS의 서울 지역 역외 재송신이 허용된 것도 주목된다. 지금까지는 OBS를 경기와 인천 지역에서만 볼 수 있었지만 이제 서울에서도 시청할 수 있게 됐다. 0.4% 수준에 그쳤던 OBS의 시청 점유율이 급증하는 것은 물론이고 광고 시장에서도 영향력이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여러 조사 결과를 종합하면 이처럼 채널이 늘어나더라도 광고주들은 광고를 더 늘릴 계획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파이는 한정돼 있는데 나눠먹을 플레이어만 늘어나는 상황이다.

추가로 받을 수 있는 ‘선물’ 도 제한적

조중동매는 지상파 방송 채널 사이에 종편 채널, 이를테면 7번이나 9번 등을 배정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케이블 방송 사업자들의 매출 가운데 많게는 20% 가까이가 홈쇼핑 채널 사업자들에게 받는 수수료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들을 밀어내고 종편 사업자들에게 황금 채널을 부여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조중동매는 현실적으로 15번 이후의 채널을 배당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새로운 미디어 플랫폼이 계속 늘어나면서 공짜 콘텐츠에 광고를 붙여 파는 미디어 수익 모델이 흔들리고 있다는데 있다. IPTV는 물론이고 다양한 형태의 주문형 비디오 서비스가 늘어나고 있고 아직 실험 단계일 뿐이지만 스마트 TV 보급도 늘어날 전망이다. 인터넷 접속이 가능한 커넥티드 TV도 보편화되고 있다. 미디어 산업의 헤게모니가 플랫폼 기업에서 콘텐츠 산업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제 플랫폼은 어디에나 있다. 미국의 넷플릭스나 훌루 같은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들은 드라마와 영화, 시사, 보도, 교양 콘텐츠들을 사들여 TV 셋톱박스는 물론이고 개인용 컴퓨터와 태블릿 컴퓨터, 콘솔 게임기 등 온갖 다양한 디바이스에서 서비스를 제공한다. 지금까지는 시간 맞춰 TV 앞에 앉아서 광고를 보며 기다려야 했지만 이제는 언제든지 보고 싶은 프로그램을 불러다 보는 시대로 옮겨가고 있다. 스마트폰과 태블릿 컴퓨터 보급이 늘어나면서 모바일 IPTV 서비스에 대한 관심도 늘어나고 있다.

종편은 수많은 미디어 플랫폼 가운데 일부일 뿐이다. 온갖 다양한 형태의 새로운 미디어 플랫폼과 서비스가 나타날 것이고 어느 것도 지배적인 헤게모니를 장악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결국 핵심은 어떤 콘텐츠를 만드느냐일 텐데 조중동매는 아직까지 콘텐츠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극단적인 가정을 해보자면 머지않은 미래에 굳이 종편이 아니라도 신문사가 방송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다양한 채널이 열릴 수도 있다. 콘텐츠만 있다면 스마트TV에 채널을 개설할 수도 있고 개방형 IPTV를 통해 스트리밍 방식의 방송 서비스를 할 수도 있다. 모바일 IPTV 서비스가 본격화되면 지금까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서비스가 쏟아져 나오고 온갖 다양한 콘텐츠 사업자들이 경쟁하는 시대로 들어서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조중동매가 상대적으로 이명박 정부에 우호적인 보도 태도를 보여왔고 종편이 이들에게 주는 특혜 성격이 강하지만 정부가 줄 수 있는 선물은 제한적이다. 일본 방송 편성 비율을 늘려준다거나 생수와 의약품 광고를 허용한다거나 먹을거리를 만들어주는 다양한 방안이 논의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시장이 너무 좁고 경쟁자가 너무 많은 상황을 극복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정환

미디어오늘 경제팀장

top@leejeonghw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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