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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커뮤니케이션 업계를 돌아보며[신인섭의 글로벌PR-히스토리PR] 업종불문 무한경쟁 가속화…비즈니스 철학 간과해 문 닫기도

[더피알=신인섭] ‘닭이 운다 꼬끼요’의 해, 정유(丁酉) 2017년이 간다. 이번 닭의 해는 몹시 시끄러웠다.

사실상 세계의 정치·경제를 주도하는 미국 대통령직에 정치인 출신이 아닌 부동산업자가 올랐다. 국가 원수, 특히 미국의 리더가 될 사람으로서는 너무 ‘표현의 자유’를 거침없이 행사하며 하고 싶은 말은 모두 다 하는 듯했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리라고 예상한 미국 언론은 거의 없었고 여론조사도 힐러리를 점찍었으나 모두 뒤집혔다. 주류언론과 조사업체가 망신을 당한 것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2017년 한해는 국내외 정치·사회적으로 몹시 시끄러운 한해였다. 편집: 더피알

우리나라 대통령도 바뀌었다. 촛불의 힘에 박근혜 전 대통령은 맥없이 죄수가 되었다. 그리고 전에도 그랬듯 이번에도 하루가 멀다 하고 지난 정권의 퀴퀴한 냄새 나는 일이 터져 나오고 있다.

정치 못지않게 세계 광고계에도 청천벽력 같은 일이 일어났다. 지난 6월 연례 칸 라이언즈 크리에이티비티 페스티벌(이하 칸 광고제)에서 있은 사건이다.

광고계의 연이은 폭탄선언

세계 광고회사 그룹 중 수입 기준으로 랭킹 3위인 프랑스 퍼블리시스의 신임 회장 아더 사둔(Arthur Sadoun)이 2018년에는 칸을 위시해 모든 국제광고제에 불참하겠다고 발표했다. 세계 광고계가 발칵 뒤집어지는 서프라이징 뉴스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광고주는 예산을 쥐어짜며 “몰 포 레스(More for Less)”, 즉 일은 더하되 돈은 더 적게 지불한다는 말이 유행어처럼 사용하는데, 칸 해변가는 춘향가의 ‘금준미주천인혈…가성고처원성고(金樽米酒千人血…歌聲高處怨聲高)’까지는 아니어도 전혀 상반된 분위기의 럭셔리 판이 벌어진다.

유명한 로제 포도주가 끊임없이 나오는 파티장, 스카치 한 잔에 27유로(3만5000원), 치킨 샌드위치 한 개에 32유로(4만1600원)이고, 한 끼 저녁 값이 적어도 40유로(5만2000원)에 달한다. 뉴욕포스트 보도에 따르면 퍼블리시스가 칸 광고제에서 한 해 쓰는 여비, 숙박비, 접대비, 출품비, 참가비 등을 모두 합치면 2000만달러에 이른다. 우리 돈으로 하면 무려 260억원에 달하는 거금이다.

사둔 회장은 그 돈을 아껴서 마르셀(Marcel) 프로젝트에 투자한다고 밝혔다. 퍼블리시스 그룹 8만명이 가진 수백 가지 재능을 파악해 광고주 요청에 언제 어디서든 즉시 대응이 가능한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골자다. 최고의 크리에이티브와 IT기술에서 얻은 데이터로 최고의 맞춤 서비스를 제공할 준비를 하겠다는 것이다.

퍼블리시스그룹의 내년 칸 광고제 보이콧을 비롯해 광고업계에도 변혁의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편집: 더피알

쉽게 설명하면 인공지능(AI)형 광고회사로의 탈바꿈이다. 지금 세계 주요 광고주들이 찾는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차비를 한다는 것이 퍼블리시스의 목표이다.

물론 칸 광고제를 나쁘다고 하는 사람은 없다. 일주일 사이에 세계 최고의 창의력을 가진 사람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서로의 작품을 볼 수 있는 무대는 칸을 당할 곳이 없다는 사실은 누구나가 인정한다. 문제는 이 훌륭한 행사가 너무 비싸졌다는 점이다. 작년에 비하면 칸 광고제 출품작 수는 줄었으나 주최사인 어센셜(Ascential)의 수입은 7%나 성장했다는 보도는 이런 불편한 사실을 뒷받침한다.

공교롭게도 이 자리에는 연간 100억 달러가 넘는 광고비를 주무르는 세계 최대의 광고주인 미국 프록터&갬블(P&G)의 브랜드 총책임자 마크 프리처드(Mark Prichard)가 와 있었다. 그는 올해 1월 말 인터랙티브 광고국(Interactive Advertising Bureau. IAB) 리더십 회의에서 폭탄선언과 같은 연설을 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프리처드의 연설 대상의 일부는 칸 광고제를 실질적으로 지탱하는 세계 5대 광고회사 그룹인 WPP, 옴니콤, 퍼블리시스, IPG, 덴츠 등이다.

프리처드는 해당 연설에서 디지털상의 불합리한 광고 관행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P&G의 광고를 담당하고 있는 그룹 산하의 매체 전문회사가 디지털 미디어 대량구매 뒤 매체사로부터 받은 보너스 물량을 다른 광고주에게 되팔아 수익을 올린 일이 탄로 난 것이 계기가 됐다.

광고주의 돈을 가지고 산 매체로부터 받은 보너스 면과 시간을 광고주 몰래 되팔아 자기 배불리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밖에도 약속과 달리 제대로 노출되지 않는 광고, 불량 프로그램 옆에 게재되는 광고, 불투명한 거래 관행 등이 널리 퍼져 있다는 것이 밝혀졌는데, 이 사실을 공개한 이가 다름 아닌 P&G의 프리처드였다.

그는 칸에서 고가의 요트를 타고 유명 가수의 노래를 즐기며 일보다 포도주에 취해 있는 듯한 광고인들을 보았을 것이다. 그러던 차에 퍼블리시스의 광고제 보이콧 선언이 나왔으니 파장은 실로 컸다. 주최사 어센셜의 주가가 떨어졌고, 부랴부랴 관련 회사와 긴급 모임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광고회사 그룹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칸광고제는 대대적인 조정을 했다. 기간의 단축, 출품 부문 조정, 관람권(Pass) 가격 인하 등 값이 싸진 것이 두드러진다.

칸에서 일어난 변화는 앞서 올 1월 미국 광고주와 광고회사 간의 신뢰 기반을 뒤흔드는 사건의 연장이라고 볼 수 있다. 실마리는 이미 2015년 미국 광고주협회가 실시한 광고대행 거래 조사에서 발견된다. 당시에도 디지털 매체 거래에서의 불미스러운 일이 드러났었다.

이 일로 한때 미국광고주협회와 광고회사협회 간에 어색한 기운이 돌기도 했다. 미국광고주협회는 일개 광고단체가 아니다. 사실상 세계 광고주협회이며 올해 세계광고비 약 6000억 달러의 45%쯤을 지불하고 있는 거대한 국제광고주 모임이다. 이 단체에는 한국 기업인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LG전자 등도 회원사로 가입돼 있다.

‘광고+알파’ 축제가 된 국제광고제

광고주의 불신 외에도 광고업계에는 또 다른 먹구름이 도사리고 있다. 올 칸 광고제에서는 주요 행사가 열리는 국제회의장 팔레(Palais) 앞에 창설 6년째인 스냅챗(Snapchat)이 스폰서한 관람차(Ferris Wheel)가 들어서 시선을 사로잡았다. 아울러 굴지의 경영 컨설턴시들이 수억 원을 들여 대형 요트에서 술자리를 차려 놓고 광고주들을 접대했다. 액센츄어, 딜로이트를 비롯해 IBM iX, PwC 등 과거엔 전혀 다른 리그에서 뛰던 주자들이 전통 광고회사의 경쟁자로 전면에 나섰다.

수입 규모에서 컨설턴시는 광고회사 그룹보다 훨씬 크다. 5대 광고회사 그룹과 컨설턴트 등 4개사 수입을 대비하면 아래 <표>와 같다.

컨설턴시/기타 및 광고회사그룹 수입. 2016 (금액: 억$)
경영·회계컨설팅으로 유명한 회사들이 전통 광고회사의 수입을 앞서고 있다. 필자 제공

나아가 본래 경영·회계 컨설팅사로 출발한 이 회사들은 기업의 최고경영자와 면밀히 상담해온 관계가 있다. 대개 광고담당 임원, 마케팅 부서장 등과 상대해 온 광고회사와는 클라이언트 CEO 대응 차원이 다를 수밖에 없다.

경쟁 업종은 아니나 세계 3대 테크회사인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도 칸에서 판촉 활동을 벌였다. 구글의 경우 올해 20개가 넘는 라이언즈상을 수상했는데, 그중 15개는 자사 계열 인하우스 작품이었다.

올해 칸 출품작 4만3000여개의 회사별 내역은 나와 있지 않으나, 상당수가 컨설턴시와 새로운 디지털 미디어 회사의 것으로 짐작된다. 아직 소수이긴 해도 디지털 테크 회사의 대두도 눈여겨 볼 일이다. 칸 광고제가 광고회사 중심의 행사에서 벗어나 ‘광고+알파’의 축제로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

영국 5위 PR회사의 몰락

영국이 낳은 철권 여재상(女宰相) 마가렛 대처의 PR고문으로 이름을 날리고 1987년 PR회사로 설립된 영국 5위(2014 기준)이자 세계 40위인 벨 포틴저(Bell Pottinger)사가 문을 닫았다. 폐업이라기보단 패가망신(敗家亡身)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PR회사가 해서는 안 될 일을 하다가 들통이 났기 때문이다.

영국 5위 PR회사 벨 포틴저 파산 소식을 다룬 기사 일부. (클릭시 해당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일의 시작은 2016년 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제이콥 주마(Jacob Zuma) 대통령과 아주 가까운 인도의 유력 재벌 굽타(Gupta)를 감싸는 캠페인 ‘경제해방(Economic Emancipation)’이 인종문제로 비화됐다. 긴 이야기를 줄이자면 주마 대통령과 밀접한 굽타 일가를 향한 비난의 화살을 돌리려고 PR캠페인을 벌였는데, 흑백 인종문제를 부추기는 결과를 낳았고 종국엔 남아공 전체를 뒤흔드는 정치 스캔들로 번졌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올 가을에 포틴저의 사장을 비롯한 사건 관련자들이 사임했고, 영국 PR기업협회는 포틴저사를 퇴출시켰다. 신뢰를 기반해야 할 PR회사로서는 안팎에서 치명타를 입은 셈이다. 회사는 매각 등 법적인 정리 절차에 들어갔지만 살 작가가 나타나지 않아 몰락했다.

사건 뒤에는 말할 것도 없이 돈이 관련돼 있다. 매달 10만 파운드(약 1억4400만원)의 피(Fee) 수입이 계약돼 있었다. 이전부터 벨 회장과 사장 사이에는 회사 수입 공헌도를 둘러싼 암투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연봉 100만 파운드를 받는 회장이며 귀족인 벨 경(卿)이 정작 회사를 위해선 돈을 벌어들이지 못한다는 내부 비판이었다.

ㄴ그러니 벨 회장 입장에서는 굽타와의 계약은 매우 중요한 업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남아공의 손꼽는 재벌일 뿐 아니라 장관 임명에까지 관여한다는 ‘실력자’에 대한 대중의 비난이 돌이킬 수 없는 악수로 작용했다. 포틴저의 몰락은 영국은 물론 세계 PR계에서도 오명의 기록으로 남게 됐다.

프랑스 광고회사 퍼블리시스의 폭탄선언과 영국 포틴저 PR회사의 몰락이 2017년 커뮤니케이션업계를 매듭짓고 있다. 변화와 아픔을 딛고 다가오는 무술(戊戌)년은 과연 슬기로운 개의 해가 될 것인가.

신인섭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 초빙교수

신인섭  1929insshi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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