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부터 70대까지 삶과 생활이 녹아있는 곳
20대부터 70대까지 삶과 생활이 녹아있는 곳
  • 이윤주 기자 (skyavenue@the-pr.co.kr)
  • 승인 2017.12.22 14: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회적기업을 찾아서] 두손컴퍼니
서울역에서 노숙인을 만난 후 대학교 동아리 후배들과 취약계층을 도울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2013년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자 두손컴퍼니가 설립됐다.

[더피알=이윤주 기자] 박찬재 두손컴퍼니 대표는 행동력이 남다른 청년이었다. 2011년, 대학교 3학년 자취방에서 서울역 노숙인 강제퇴거 집행사건을 다룬 기사를 읽게 된다.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했던 그는 추리닝을 입은 채로 막걸리 2병을 사들고 서울역으로 향했다. 그 발걸음이 인생을 바꿀 것이란 사실을 까맣게 모른 채.

경의중앙선을 타고 도착한 11월의 양정역은 썰렁하다 못해 스산했다. 사회적기업 두손컴퍼니는 넉 달 전까지만 해도 서울의 핫플레이스로 꼽히는 성수동에 위치해 있었다. 하지만 이젠 카페조차 찾아보기 힘든 남양주 한 켠에 자리 잡았다. 위치만큼이나 많은 변화를 겪은 두손컴퍼니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커다란 물류센터 내부에서 박 대표와 만났다.

옷걸이, 노숙인, 대학생

“72:1의 법칙이라고 있어요. 72시간, 즉 3일 안에 실천하지 않으면 행동으로 옮길 확률이 1% 미만이라는 통계에요. 그걸 중요한 원칙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안할 거면 아예 안하고, 할 거면 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거죠.”

박찬재 두손컴퍼니 대표. 사진=이윤주 기자

서울역에서 노숙인을 만난 후 사회참여형 대학교 동아리 인액터스(enactus) 후배들과 취약계층을 도울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2013년 두손컴퍼니가 설립됐다.

회사가 만들어지고 첫 6개월은 거리에 있는 사람, 자활에 성공한 사람 혹은 실패한 사람, 복지사들을 만나며 자료조사에 나섰다. “그들에게 어떤 일자리가 필요한지, 정말 필요하긴 한 건지, 의지가 있는지 등을 조사했죠. 그런데 다들 열심히 사시는데 기회가 없거나 꾸준한 일자리가 없다는 게 문제였어요.”

몇 가지 사업을 시작하고 접고를 반복한 끝에 ‘종이옷걸이’ 아이템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다. 옷걸이의 틀을 감싸는 종이에 광고를 유치해 수익을 올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 옷걸이는 쉼터와 연계된 노숙인들의 일자리로 연결됐다.

하지만 고민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일자리 창출에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평소 사회적기업 마리몬드 대표와 친하게 지냈던 박 대표는 온라인 판매 소기업들이 물류 대행에 대한 니즈가 있다는 점을 파악, 물류 사업에 뛰어든다.

“예전 인터뷰를 하고나면 두손컴퍼니의 키워드가 ‘노숙인’ ‘옷걸이’ ‘대학생’으로 몇 년간 기사에 올랐죠. 그런데 상황이 바뀌었어요.”

노숙인 자체보다는 빈곤 문제로, 옷걸이 대신 물류로, 대학생 대신 대표로 말이다. 과거 키워드는 지워졌지만 미션은 그대로다. 취약계층을 위한 일자리 창출.

완전고용의 비전

물류 사업을 처음 시작한 때는 2015년 6월. 운송업과 물류 창고, 이 두 개의 아이템 중 잘 되는 것에 집중하기로 다짐한다. 운송업은 지하철 택배기사를 위해 어플을 제작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이대가 있는 기사들에게 어플지도는 낯설었다. 과감하게 중단한 박 대표는 자연스레 물류 창고에 집중했다.

“처음엔 엘리베이터가 없는 2층 18평 공간이었어요. 땀을 뻘뻘 흘렸죠. 누가 주황색 다마스를 지원해주셨는데 에어컨도 안 나오고 창문이 안 내려가는 거예요. 게다가 다마스는 운전석 바로 아래 엔진이 있어서 엄청나게 덥거든요. 그걸 4년을 탔어요.”

덥디 더운 시간을 보냈지만 사업은 성공적이었다. 오픈하자마자 온라인 소기업들의 연락이 빗발쳤다. 크라우드펀딩, 스타트업 등의 작은 회사들은 물류를 맡길 데가 없어 손수 포장‧발송 업무를 해야 했는데, 손을 덜어줄 전문 업체가 생겼기 때문이다. “시장규모의 가능성을 판단한 순간이었다”고 박 대표는 회상했다.

그렇게 두손컴퍼니는 10개월 만에 150평 정도의 공간으로 이사했고, 6개월 뒤에는 150평 하나 더, 1년 반 만에 현재의 남양주 사무실(450평)로 이사 오게 됐다. 매출액도 2015년 2억에서 7배 뛴 14억이 됐다. 나름대로 고속성장을 일구게 된 비결은 바로 e커머스 사업장을 기반으로 하는 물류센터라는 점이다.

남양주에 위치한 두손컴퍼니 '품고' 물류센터. 두손컴퍼니 제공

기존 물류센터는 소품종 대량납품이 일반적이다. 정해진 규격에 따라 박스를 포장해 발송해주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다품종 소량생산을 특성으로 하는 온라인 유통의 경우는 다르다. 데일리로 그때그때 주문을 처리해야 하기에 훨씬 까다롭고 많은 시간과 노력이 요구된다. 공장에서 바로 가져와 회사가 원하는 방법대로 일일이 수작업으로 포장하는 커스터마이징(주문제작)방식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방식을 물류업계에서는 풀필먼트(fulfillment)라고 지칭한다.

“저희 정도 물류센터 규모면 보통 100~150종을 다뤄야하는데, 지금 저희의 sku(재고관리코드)는 1만5000종이 넘어가요. 손이 되게 많이 가죠. 그나마 3년 정도 운영하니 어느 정도 노하우가 생겼고, 저희만의 차별점이 됐어요.”

현재 두손컴퍼니는 스타트업이나 소규모 제조업체들을 위한 물류브랜드 ‘품고’, 크라우드펀딩 개설자를 위한 ‘두윙’ 서비스 등을 론칭하며 사업을 확장 중이다.

이들이 본보기로 삼는 모델은 스페인의 몬드라곤 협동조합이다. 270여개의 기업이 가입해 있으면서 50년 간 한 명도 해고를 한 적이 없다. 한 회사가 어려워지면 그 직원을 다른 회사에서 채용하는 완전고용 형태다.

“어떤 분들은 두손컴퍼니가 종이 옷걸이라는 비즈니스 모델을 갖고 시작했다고 하시는데 실은 그 반대예요. 일자리 창출이란 미션으로 출발했고, 옷걸이라는 비즈니스 모델을 도구로 활용하고 있는 거죠. 그러다 보니 제품을 바꾸거나 비즈니스 모델을 리부트(reboot)하는 것에 대해 거리낌이 없어요.”

조직문화에 대한 고민

“지금 여기 노숙인은 없어요.” 노숙인을 보고 사업을 시작했는데 왜 노숙인을 고용하지 않느냐고 묻자 돌아온 답변이었다. “당연히 없을 수밖에 없죠. 여기 취직이 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집을 구하는 거예요. 노숙은 과거의 경험이에요. 꼭 거리에서 주무시는 분들을 채용하는 게 아니에요. 쉼터에서 생활하면서 일자리 기회가 없는 분들, 주거 취약 계층 등 그런 분들을 데려와요.”

두손컴퍼니 핸디맨들이 일하는 모습. 사진=이윤주 기자

회사와 연계된 쉼터에서 추천한 사람을 채용하고 나머지는 공채로 뽑다보니 직원은 20대에서 70대까지 연령대가 다양하다.

박 대표는 잠시 숨을 가다듬더니 한 가지는 분명하게 깨달았다고 했다. “사회적기업을 운영하다보면 사회라는 건 문제가 있는 개체고, 사회적기업은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라는 식의 프레임을 짜고 들어가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근데 그건 자만이에요. 오히려 쉼터에서 오신 분들이 저보다 훌륭하세요.” 노숙인 역시 개체화시켜서 바꿔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은 폭력적이라고 강조했다. 박 대표 스스로도 ‘노숙인 문제를 해결할거야’라고 생각했던 초반의 다짐이 자만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실제 쉼터에서 추천해줘 함께 일하고 있는 70대 직원은 외국계 회사 임원을 지냈다. 또 다른 한 명은 미국 HP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한 이력이 있다. 이들은 두손컴퍼니 프로그램을 짜고 개발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월례 회의에선 종종 삶의 지혜가 담긴 ‘행복과 배려’ 등의 주제로 특강도 진행한다.

박 대표는 “조직문화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직급도 없고 수평적인 조직이지만 아무래도 연령대가 너무 다양하다 보니 공통점을 찾아 융화시키는 작업이 어렵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 나름대로의 노력은 하고 있는 듯했다.

기자가 방문한 날에 열린 ‘제 1회 박스 만들기 콘테스트’는 직원들 간에 소통을 도와주는 일종의 사내 이벤트였다. 우승상품은 상금 5만원, 식사메뉴 선택, 간식 메뉴 선택. 소소하다는 말에 “저게 제일 세요. 스테이크 먹으로 가자고 하면…. 지금 좀 걱정하고 있어요. 그런데 웃긴 건 영업팀에서 우승했다는 거죠”라는 박 대표의 대답이 돌아왔다.

두손컴퍼니 핸디맨들이 '박스포장 컨테스트'에 참여하고 있다. 두손컴퍼니 제공

소셜과 벤처의 균형

대학생에서 바로 사회적기업 대표가 되고, 회사가 성장해가는 이야기를 듣다보니 질문 한 마디가 맴돌았다. “이렇게 커져가는 게 두렵진 않으세요?” 젊은 나이에 많은 사람들의 생활에 책임을 가져야 하는 무게감이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박 대표는 어느 정도 즐기고 있다고 했다. 존경할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길을 걷고 있다는 것 자체로 행복하다는 것. 아울러 스타트업이라서 좋은 건 기존에 없었던 것을 만들어가는 재미라고 덧붙였다. 그는 청년들이 더 많이 참여하길 바란다며 “소셜벤처는 사회를 바꿀 수 있는 힘이자, 앞으로 대한민국을 바꿀 수 있는 굉장히 중요한 키워드”라고 자신했다.

“이건 가난한 일이 아니거든요. 근본적으로 비즈니스를 통해 여기 참여하신 분들이나 저 자신의 삶을 윤택하게 바꾸는 게 목표에요. 청년들이 미래를 그릴 때 소셜벤처라는 선택지도 고려하길 바랍니다”고 말했다. 한편으로는 대표직에 대한 부담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사실 여기로 이사 올 때가 가장 두려웠어요. 융자를 받고, 억대를 거래하고, 직원도 늘고… 마치 카드값 나가는 것처럼 돈이 쭉쭉 나갔어요. 그땐 정말 무섭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하다못해 여행을 가도 변수가 많은데 이렇게 복잡한 비즈니스에서… 자칫하면 공중분해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런 두려움을 감내해야 성장하겠죠.”

사회적기업을 운영하는 데 있어서는 두 가지 어려움을 꼽았다. 첫 번째는 소셜벤처라고 했을 때 주는 편견이다. “가난한 길을 사서 가려고 하느냐는 것과 반대로 지원금을 받으려고 한다는 편견들과 싸우는 게 어려워요. 소셜과 벤처의 균형을 맞추는 것은 어떻게 보면 예술의 경지와 같아요. 어느 한 쪽으로 1도만 틀어져도 안돼요. 너무 소셜적이어도, 너무 비즈니스적이어도 안되죠. 항상 회사의 미션과 맞닿아 있어야지 떨어지는 순간 그 비즈니스는 생명력을 잃더라고요.”

박찬재 두손컴퍼니 대표가 물류센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이윤주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