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에서 얻은 교훈
바둑에서 얻은 교훈
  • 함기수 ( thepr@the-pr.co.kr)
  • 승인 2011.06.03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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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기수의 中國 이야기

“이젠 내가 백(白)을 잡아야 겠지?” 바둑 두 판을 내리 진 나에게, 상대방인 중국 바둑 친구가 내 앞에 있던 백돌을 자기 앞으로 가져가며 거침없이 한 얘기이다. 그는 당시, 나와 가장 많은 거래를 하고 있던 중국 철강회사의 사장이었다. 지금은 정계(政界)로 진출해 공산당 중앙위원회 후보위원 중 한 사람이 되었는데, 우리는 우연한 기회에 서로 바둑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돼 각별한 바둑 친구가 됐다. 나도 바둑을 좋아 하지만 그는 정말 바둑광이어서 우리는 만나기만 하면 바둑으로 자정을 넘기기 일쑤였다. 이실직고하자면 그의 바둑 실력은 나보다 못해 두 점을 접어주면 엇비슷할 정도의 수준이었다. 그래도 예우 차원에서, 상수(上手)가 백을 잡는 바둑의 관례대로 내가 백(白)을 잡고 두는 선에서 절충을 했는데 두 판을 거푸 이겼다고 바로 본인이 백(白)을 잡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는 나에게 대단히 중요한 사람이었다. 비즈니스 관계는 물론이려니와 향후 중국 정계의 거물로 클 가능성이 있는 사람과의 시(關係:관계)는 나로서는 결코 소홀히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존심이 강하고 승부욕 또한 남달라 승부에 대단히 민감한 반응을 보였는데, 그러다 보니 나는 자연스럽게 져 주는 쪽을 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초기 압도적이었던 나의 승률은 점차 나빠졌고, 그러던 중 나는 그와의 바둑 두는 횟수가 점점 줄어 들고 있음을 깨달았다. 예전처럼 그는 나와의 바둑에 열의를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얼마 후에야 나는 최선을 다하지 않은 나 자신이 잘못됐음을 알 수 있었다. 수하 직원으로부터 우연히 전해들은 그의 말은 나로서는 상당히 충격적이었는데, ‘함 선생으로부터는 더 이상 바둑을 배울 것이 없다’ 라고 했다는 것이다.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

나는 지금까지 오늘의 중국과 그들의 속 마음을 이렇게 분명하고도 간결하게 보여주는 예를 찾지 못했다. ‘빛을 감추고 어둠 속에서 힘을 기른다’ 는 도광양회(韜光養晦)가 오늘날까지 중국 외교정책의 근간이 되고, 중국 사람들의 특성을 가장 잘 나타내 주는 말 중의 하나가 됐음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개혁 개방 이후 중국은 경제대국이라는 그들의 발전전략을 치밀하게 추진해 왔고, 목표 달성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서구 열강을 비롯한 그 누구의 어떤 지식도 마다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것은 배울 것이 있고, 배울 것이 있을 때까지 뿐임을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다. 90년대 당시 중국의 외국기업 유치를 위한 물량공세는 대단했다. 유감스럽게도 우리 기업들은 이런 물량공세에 중장기적 치밀한 전략 없이 값싼 노동력과 토지에 현혹돼 몰려 들었다. 지금 중국에서 많은 우리 기업들이 어려움에 처해 있는 것은 중국이 더 이상 이들로부터 배울 것이 없다는 판단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사업에 실패했거나 취업을 못 한 경우 중국에 가면 기회가 있지 않겠느냐는 말을 듣는다. 그때마다 나는 그 사람이 갖고 있는 것이 ‘무엇’ 인가를 묻곤 한다. 그 ‘무엇’ 은 중국 사람이나 중국 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함은 물론이다. 회사라면 남들이 갖지 못한 기술력이 될 수도 있고 개인이라면 뛰어난 중국어 실력이나 중국에 미래를 건 뜨거운 열정일 수도 있다. 그것은 최소한 오랜 준비와 각고의 노력에서 우러나온 진정한 ‘무엇’ 이어야 한다. 중국은 더 이상 막연한 시장이 아니고 앞날이 없는 사람들의 도피처는 더더욱 아니다. 남들이 나에게 배울 것이 없다면 얼마나 비참한가? 내가 만일 진정한 실력으로 그와의 바둑에서 지고 그가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 라고 나와 바둑 두기를 거절했다면 나는 얼마나 참담했을 것인가? 내가 갖고 있는 것이 진정으로 더 넓은 세상을 필요로 할 때, 중국은 도전할 만한 가치로 다가옴을 잊어서는 안된다.

함 기 수
現 세계화전략연구소 객원교수(중국전문가)
前 SK네트웍스 홍보팀장 / 중국 본부장(상무)
저서 ‘중국, 주는 만큼 주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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