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를 만든 기업과 위기를 만들 기업
위기를 만든 기업과 위기를 만들 기업
  • 정용민 (ymchung@strategysalad.com)
  • 승인 2018.01.23 14: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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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민의 Crisis Talk] 반복되는 나쁜 관행, 예상 가능한 논란 키워
※ 이 칼럼은 2회에 걸쳐 게재됩니다.

[더피알=정용민] 미국 위기관리 명언에 이런 말이 있다.

“이 세상에는 두 가지 기업이 있다. 위기를 경험한 기업과 위기를 경험할 기업이다.”

어떤 기업도 위기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의미다. 그렇기에 위기를 경험한 기업은 반면교사를 찾아 다시 동일한 위기를 경험하지 않게 노력하고, 앞으로 경험할 기업은 미리 준비해서 더 나은 위기관리에 힘쓰라는 뜻이다.

위기를 맞는 기업에도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이 명언에서 우리가 더 주목해야 할 부분은 위기를 ‘경험한’ 기업과 ‘경험할’ 기업이라는 표현이다.

분명히 위기를 ‘만든 기업’과 ‘만들 기업’이라는 표현이 아니라는 것이다. 위기관리 관점에서 특정 기업이 위기를 단순히 경험하는 것과 위기를 의도적으로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다시 보는 존슨앤존슨

‘위기를 경험한다’는 것은 위기의 원인이나 책임 대부분이 기업에게 있지 않을 때 사용 가능한 표현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수십 년간 위기관리 성공 케이스로 이야기하는 존슨앤존슨의 타이레놀 케이스를 기억해 보자.

존슨앤존슨은 해당 위기를 발생시킨 주체가 아니었다. 독극물 타이레놀 사태를 일으킨 주체는 악의를 품고 정상 제품에 독극물을 넣은 범죄자였다. 존슨앤존슨은 일종의 피해자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더십을 보이면서 환자와 그 가족들을 보호하는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 핵심이다. 존슨앤존슨은 해당 위기의 원인이나 책임에서 자유로웠다. 이런 경우 ‘존슨앤존슨은 위기를 경험했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1982년 미국 시카코에서 발생한 타이레놀 독극물 테러로 2일 만에 7명이 사망, 제조사인 존슨앤존슨은 최악의 위기상황을 맞았었다. 출처: 유튜브 관련 영상(www.youtube.com/watch?v=wofmqc8sqgc) 캡처

만약 존슨앤존슨이 생산 부실로 독극물이 포함된 타이레놀 제품을 시중에 판매하다 소비자들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면 어떨까? 만약 존슨앤존슨 직원의 실수로 문제의 타이레놀을 생산 판매했다거나, 경영진의 지시로 비용절감을 위해 용량을 달리하다가 문제가 발생했다면? 이런 경우 ‘존슨앤존슨은 위기를 만들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위기를 만든 기업이라는 의미는 위기관리 관점에서 대부분 평시 위기에 대한 개념이나 관심이 전혀 없는 곳들이다. 경영적 의사결정은 물론 일선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수행하는 모든 과정에 걸쳐 전혀 위기관리 마인드가 존재하지 않는 경우다.

최근 사례들을보자. 얼마 전 모 대형 병원에서 신입 간호사들에게 원내 행사장에서 걸그룹 댄스를 공연하게 하다 논란이 된 적이 있다. 노출이 심한 옷을 입게 하고, 간호사들과는 어울리지 않는 선정적인 춤을 추게 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관련기사: 시대착오적 조직문화도 ‘죄’가 되는 세상

병원 측은 국민들에게 사과를 하고 사려 깊지 못해 발생한 사건이라고 했다. 어떻게 수년간 그런 문제의 전통이 이어졌는데도 해당 병원 내 의사결정자들은 한 번도 문제 가능성을 인식하지 않았을까? 문제 소지는 예상했어도 개선하지 못했던 것일까?

병원 간호사들이 장기자랑을 준비하는 과정을 심층 보도한 jtbc 프로그램 화면.

이런 케이스를 보면 이 병원은 위기를 경험한 기업이라기보다는 위기를 스스로 만든 기업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해 보인다.

사려 깊지 못한 잘못

어떤 기업은 생산 과정에서 오염된 식자재를 정상 제품에 섞어 쓰다가 크게 논란이 됐다. 사내에서 그 누구도 이런 생산 관행이 문제 소지가 있다는 지적을 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물론 누군가 문제를 지적했었지만 개선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생산시설에서 일하던 내부고발자가 해당 관행을 언론에 제보하고 난 뒤에 이 기업은 허둥지둥 위기관리에 나섰다. 이 경우도 마찬가지로 위기를 만들었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평소 조금만 사려 깊었으면, 조금만 더 관심을 가졌으면, 조금만 개선했으면 이런 위기들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기업들이 이와 비슷한 사려 깊지 못한 관행을 계속하고 있는지 모른다. 유사한 위기와 논란이 계속 이어져 왔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또 다른 개념인 ‘위기를 만들 기업’이라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필자가 개인적으로 아는 한 호텔에서는 지난 송년회에서도 신입 직원들에게 앞선 병원 사례처럼 걸그룹 공연을 요구했다고 해서 놀란 적이 있다.

바로 몇 달 전에 동일한 논란을 목도했음에도 그 호텔은 전혀 그 문제에 공감하거나 주목하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까지 신입들은 그렇게 해 왔는데 무슨 문제냐 하는 식의 분위기라고 전해 들었다.

오염된 식재료를 재활용하는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식약처나 여러 규제기관에서 일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안다. 그런 생산 관행을 계속 유지하는 기업들이 얼마나 많은지 말이다.

이런 기업들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곧 ‘위기를 만들 기업’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아직까지는 위기로까지 대두되지 않았지만, 이르면 다음 달에서 올해 한 번 정도는 위기를 만들어 낼 기업이 될 수 있다.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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