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편의 詩에 펼쳐진 PR 인사이트
한 편의 詩에 펼쳐진 PR 인사이트
  • 윤성학 (kjyoung@the-pr.co.kr)
  • 승인 2011.06.10 11: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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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학의 PR人 책꽂이

늦은 밤에 돌아와 책상머리에 앉았습니다. 오늘은 시집들이 꽂혀 있는 서가에 눈길이 갑니다. 소동파와 도연명을 꺼내 읽고, 백석과 김현승을 읽다가 한국경제신문 문화부장을 맡고 있는 고두현 시인이 쓴 ‘시읽는 CEO’ 를 뽑아들었습니다. 시집 같은 에세이집이고 에세이집 같은 시선집. 우리나라 CEO 가운데 누가 시를 즐겨 읽을까 궁금한 마음도 있고, 고두현 시인과 통화를 나눈지도 오래되어서 책갈피 사이에 전해지는 그의 낮고 정갈한 음성을 떠올려보기 위함이기도 했지요. 거기서 한 편의 시를 만났습니다.

‘시읽는 CEO’ 중 ‘세상을 보는 안목’ 편에 소개된 오마르 워싱턴(Omer Washington)의 시 ‘나는 배웠다(I’ve learned)’ 1~4연을 전해드립니다. 이 시는 원래 류시화 시인이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에서 번역했는데요,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두는 것이 더 의미있는가를 성찰하게 하는 시이지만 한편으로 PR인에게 필요한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배웠다.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하게 만들 수 없다는 것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 되는 것뿐임을.
사랑을 받는 일은 그 사람의 선택에 달렸으므로.

기업PR은 광고나 마케팅 활동에 비해 반응이나 경영성과가 상대적으로 낮게 혹은 늦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지요. 하지만 한 번 긍정적으로 각인된 기업이미지는 광고나 마케팅에 비해 깊고 오래 지속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좋은 이미지를 가진 기업의 효과로 경쟁효과(우선적으로 그 기업의 제품을 구입한다), 승인효과(‘과연’ 이라는 말을 듣는다), 쿠션효과(실수도 관대히 봐준다)가 있다는 연구결과가 이를 뒷받침해 줍니다.

심리치료사이자 컬럼리스트 바비 샌더스는 그의 저서 ‘돌고래에게 배운다(Listening to wild dolphins)’ 에서 “꿈을 이루려면 자신이 먼저 매력적인 존재가 되어 꿈을 유혹하라” 라고 말했습니다. 고객에게 ‘우리를 사랑해주세요’ 라고 아무리 외쳐도 그 말을 들어주지 않습니다. 고객이 사랑할 가치가 있는 기업, 흥미를 가질 만한 대상이 되는 수밖에 없습니다. 기업 PR활동의 축이 매스커뮤니케이션에서 SNS로 이동하는 양상을 보이는 주된 배경도 기업이 자신의 매력을 드러내는 데 어떤 방식이 더 유효하냐라는 반성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나는 배웠다. 아무리 마음 깊이 배려해도
어떤 사람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신뢰를 쌓는 데는 여러 해가 걸려도
무너지는 것은 한 순간이라는 것을.

우리는 고객이 기업, 정부와 같은 PR주체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여러 차례 보아왔습니다. 기업이 위기에 처했을 때 고객이 기업에 대해 신뢰를 잃는 경우는 위기이슈 그 자체에 관련된 것이기도 하지만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신뢰를 잃어 위기이슈를 더욱 크게, 돌이키기 힘든 것으로 만든 사례가 많습니다. 식품회사, 자동차회사, 제약회사 등 다양한 분야의 기업들이 단 한 번의 이슈로 오랜 기간 축적해온 신뢰를 잃어버린 경우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골키퍼가 있다고 골이 안 들어가는 것은 아니지만 한 골 먹었다고 게임이 끝나는 것도 아닙니다. 미디어 트레이닝, 위기관리 시뮬레이션 등 몇몇 형태의 골키퍼가 우선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은 새삼 강조하지 않아도 좋겠지요.

인생에선 무엇을 손에 쥐고 있는가보다
누구와 함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우리의 매력은 15분을 넘지 못하고
그 다음은 서로 배워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기업시민(Corporate Citizen)이라고 합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이라는 개념의 근본 철학일 텐데요, 기업과 개인은 서로 관계를 맺으며 사회를 구성한다는 의미이지요. 기업은 고객에게 경영의 미래를 듣습니다. 듣는 귀가 어두우면 결국 미래가 어두워집니다. 저는 CSR이란 기업 구성원들이 지역사회 봉사활동을 하고 이웃을 돕는 기금에 동참하고 기업이 사회를 위해 성금을 기부하는 것에 앞서, 기업과 개인이 사회 속에서 서로 배워간다는 마인드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시민’ 의 개념은 고대 그리스부터 토론과 투표, 참여 등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태어난 것이라고 합니다. 기업은 고객의 소리를 듣고 소비자는 기업을 이해하면서 서로 배워가며 각기 조금씩 세련되어지는 과정이 진정한 CSR의 바탕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배웠다. 다른 사람의 최대치에 나를 비교하기보다
내 자신의 최대치에 나를 비교해야 한다는 것을.
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보다
그 일에 어떻게 대처하는가가 중요하다는 것을.

요즘 안타까운 일들이 많았습니다. 특히 가까운 섬나라 소식, (안타깝다기 보다 약간 당혹스럽던) 문화대통령이라 불렸던 아티스트의 이혼 소식, 그리고 전산망 마비사태를 겪은 한 금융기업의 사례. 인류 역사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지 않은 적은 없었겠지요. 늘 무슨 일인가는 일어나고 미디어는 그 일들을 경중에 따라 게이트키핑하고 사람들은 그 일들을 재해석하며 역사는 흘러왔습니다.

PR의 관심사는 사건도 사건이지만 그 이슈의 주체가 해당 이슈에 어떻게 대응하는가, 커뮤니케이션 관리를 어떻게 하는가입니다. 효과적인 메시지 관리가 되고 있는지를 지켜봅니다. 때론 감탄스러울 정도로 빠르고 효과적인 메시지가 등장하기도 하지만, 때론 제발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메시지가 전해질 때도 있었습니다. 물론 노코멘트로 밀어부치는 예도 있지요. 설득력 있고 일관된 메시지 전략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봅니다.

이 시는 모두 11연으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2행으로 구성된 마지막 연은 “그리고 나는 배웠다/ 사랑하는 것과 사랑받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입니다. 신호등이 차를 움직이게 하듯,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는 사랑이라는 신호가 마음을 움직이게 합니다. 이 시는 사람과 사람 사이, 즉 사회 속에서 오고가는 신호들을 포착해 보여주는데 그것이 PR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PR은 사랑하는 것이고 또한 사랑받게끔 나를 가꾸는 것이니까요. 오늘 책읽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윤 성 학

농심 홍보팀 과장 · 시인

(시집 ‘당랑권 전성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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