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누리꾼의 ‘가짜뉴스 실험’이 시사하는 바
한 누리꾼의 ‘가짜뉴스 실험’이 시사하는 바
  • 서영길 기자 (newsworth@the-pr.co.kr)
  • 승인 2018.01.31 18: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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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항서 감독 소재 삼아 낚시성 글올려, 언론기사로 이어지며 ‘진짜뉴스’로 둔갑

[더피알=서영길 기자] 최근 언론에서 자주 언급되는 박항서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23세 이하) 감독이 느닷없이 ‘가짜뉴스’의 주인공이 됐다. 단순 해프닝으로 볼 수도 있지만 가짜뉴스에 취약한 우리사회 단면을 여실히 드러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작지 않다.

지난 23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라온 ‘박항서 훈련도중 베트남 선수 울린 일화’라는 글이 발단이 됐다.

박 감독이 베트남 국가대표팀 선수들의 훈련 태만을 지적하며 “너희들이 입고 있는 경기복, 신발, 먹고 마시는 어느 것 하나 국민들의 피와 땀이 아닌 게 없다. 겨우 그 정도가 힘들어 편한 걸 찾으려면 축구선수 하지 말고 다른 것 해라”라고 호통쳤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어 “힘들면 가슴에 붙어있는 금성홍기(베트남 국기 이름) 하나만 생각해라. 넘어지고 실패해도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라고 하자 베트남 선수들이 박 감독 말을 듣고 눈물 콧물을 흘렸다는 일화도 들어갔다.

글 말미엔 ‘경제시보(Thoi Bao Kinh Te) 17. 11. 25. 기사’라고 출처를 밝혔다. 경제시보는 베트남에 실제 있는 언론사다.

이처럼 박 감독과 관련한 훈훈한 내용이 현지 언론을 통해 보도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온라인을 중심으로 해당 글은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박항서 감독과 관련한 가짜뉴스를 받아 쓴 한 매체의 기사 화면.

몇몇 스포츠신문과 인터넷신문도 이를 받아 썼고, 한 매체의 경우 ‘박 감독의 카랑카랑 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거나 ‘박 감독의 얼굴이 굳어졌다’ 등의 묘사를 덧붙이며 현장감을 더했다.

미담은 종편 메인뉴스로도 이어졌다. MBN ‘뉴스8’ 앵커들은 지난 28일 뉴스 말미에 관련 내용을 언급하며 확산에 일조했다.

하지만 이는 가짜뉴스로 판명됐다. 황당한 건 최초 해당 글을 올린 누리꾼이 허위였다며 가짜뉴스를 실토했다는 점이다.

그는 일주일 만에 같은 게시판에 다시 나타나 “그거(박항서 감독 일화) 내가 올렸는데 사실 뻥이었다. 근데 그 결과가 좀 재미있다”며 자신의 낚시에 걸린 온라인 게시물과 언론 기사들을 캡처해 공유했다.

그러면서 “기자놈들아 발로 뛰면서 기사 써라”라고 일침했다.

제대로 된 사실 확인 없이 이슈를 쫓아 기사화하기에 급급한 한국 언론의 관행을 꼬집기 위해 일종의 ‘실험’을 했던 것. 이를 통해 가짜뉴스가 언론보도를 통해 ‘진짜뉴스’로 둔갑하게 되는 위험성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해당 글 아래론 “기레기한테 저작권료 받아라 니가 원작자니까” “저걸 곧이곧대로 믿고 퍼나르는 노답 기레기**들” “대어를 낚았다”는 등의 조롱 섞인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이번 사안의 경우 박항서 감독과 관련한 미담에 바탕을 두고 있어 그나마 크게 문제 소지가 없지만, 기사 하나에 사회적으로 큰 파장이 이는 ‘암호화폐’ 등과 관련돼 있었다면 엄청난 혼란을 야기했을 것은 자명한 일이다.

지난해 ‘240번 버스’ 운전기사는 잘못된 언론보도로 지옥을 오갔다. 온라인 여론 또한 극단으로 쏠렸었다. 이번 ‘박항서 미담 조작뉴스’는 언제든지 제2, 제3의 240번 버스 사건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경고의 시그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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