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나는 추억을 틀고 풀고 먹는다
오늘도 나는 추억을 틀고 풀고 먹는다
  • 조성미 기자 (dazzling@the-pr.co.kr)
  • 승인 2018.02.02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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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즐기던 것을 복기하는 ‘어른이 세상’

[더피알=조성미 기자] 종이접기 선생님 김영만 씨가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을 통해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많은 이들은 울컥했다. “코딱지 친구들~”이라고 부르며 “옛날에는 만들기 어려웠겠지만 지금은 우리친구들이 모두 커서 만들기 쉬울 것”이라는 그의 말에 잊고 지내던 어릴 적 감수성이 터져버린 것이다.

어린 시절의 추억을 곱씹는 어른들이 많아지고 있다. 꼬맹이적 즐겨보던 만화영화를 다시 보고, 동생과 다퉈가며 하던 게임기를 구매한다. 엄마 말을 잘 들었을 때 혹은 소풍날에만 손에 쥐어졌던 간식도 이제 쌓아두고 내 맘대로 먹는다. 스스로 추억찾기는 비단 소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학생 땐 매일 밀렸던, 보기도 싫었던 학습지를 어른이 된 지금 스스로 찾아 풀기도 한다.

이렇게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어른들에 대해 손영화 계명대 심리학과 교수는 힘들 때 떠오르는 엄마의 집밥처럼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바라봤다. 손 교수는 “사회경제적으로 분위기가 안 좋고 사는 게 힘들다고 느껴질 때 어린 시절의 좋았던 기억으로 돌아가고픈 욕구가 무의식적으로 생긴다”며 “즐겁게 가지고 놀았던 장난감이나 좋아하는 사람이 주었던 선물이나 함께 한 순간들이 그러한 감정을 일깨우는 매개체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80~90년대 국민학생들의 인기를 끈 만화 '들장미소녀 캔디'와 '세일러문'.

그래서일까. 어린이 전문 채널인 투니버스의 시청자 게시판에는 옛날 애니메이션을 방영해 달라는 요청이 심심치 않게 올라오고 있다. ‘달빛천사’ ‘들장미 소녀캔디’ ‘80일간의 세계일주’ ‘호호아줌마’ ‘신밧드의 모험’ ‘은하철도 999’ ‘카드캡터체리’ ‘세일러문’ ‘원피스’ 등 3040세대에서 누군가의 추억을 일깨우는 작품들이 나열돼 있다.

또 ‘제목은 모르겠는데 곰돌이들이 구름 위에 살면서 배를 내밀면 무지개가 나오며 마법 같은걸 쓰는 건데...’라고 상세한 설명을 덧붙이거나 ‘추억의 애니가 너무 그립습니다ㅜㅜ’라며 그때 그 시절 만화를 방영해 달라는 간절한 요청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대해 투니버스 측은 “CJ E&M의 투니버스 채널은 애니메이션 전문 채널이 아닌 ‘어린이채널’로 운영돼 어른들을 위한 애니메이션 편성을 따로 고려하고 있지는 않다”며 “다만 ‘심슨네 가족들18’ ‘보루토’ 등 어른들에게 인기 있는 콘텐츠를 밤 11시 이후로 꾸준히 편성하고, 추억을 불러 일으키는 ‘세일러문 크리스탈’도 매주 수·목 22시30분에 방영하고 있다”고 전했다.

추억의 애니메이션 못지않게 추억의 간식도 인기를 끌고 있다. 쫀드기, 달고나, 쫄쫄이, 아폴로 등 학교 앞문 방구에서 판매되던 불량식품이 명성을 되찾은 데 이어, 최근에는 2000년대 초등학교에 다녔던 20대의 향수를 자극하는 간식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추억의 간식거리를 즐기는 어른들. 인스타그램

대표적으로는 2000년대 초중반 초등학생들의 소풍 음료수였던 ‘헬로 팬돌이(해태음료, 2000년 6월 출시)’가 있다. 팬더+곰돌이 형태의 보틀에 마시는 것이 아닌 쪽쪽 빨아먹을 수 있는 뚜껑이 특징으로 90년대 후반생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요소이다.

또 간편하게 짜먹을 수 있는 스틱형 요구르트의 대명사 ‘짜요짜요(서울우유, 2000년 9월 출시)’에 대해서는 ‘얼려먹으면 더 맛있다’는 말에 ‘맞아맞아’ 하며 공감하기도 하고, ‘텐텐(한미약품, 1992년 출시)’은 영양제(일반의약품)이지만 아이들이 좋아하는 딸기맛으로 만들어진 덕분에 간식으로 포지셔닝돼 많은 이들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이러한 트렌드는 SNS를 통해 체감할 수 있다. 실제 인스타그램에선 이들 제품을 해시태그(#)한 게시물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현재의 주 타깃층인 어린이들이 먹는 귀여운 모습도 많이 있지만 과거를 추억하는 ‘어른이들’의 감상도 종종 눈에 띈다.

텐텐을 즐겨 먹는다는 한 20대 직장인은 “어릴 때는 엄마가 하루에 하나씩만 줘서 어떻게 하면 한 개 더 먹을까 했었는데, 이제는 내가 먹고 싶은 만큼 먹을 수 있다는 것에서 쾌감을 느낀다”면서도 “(제품이) 약국에서만 팔기 때문에 살 때 좀 민망함이 들어 다른 걸 사면서 자연스럽게 구매해두곤 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어른이들의 모습에 대해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우리 사회가 나이에 따른 여러 가지 규범이 강했었지만, 지금은 그것이 깨지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며 “덕분에 옛날에 느끼던 것을 다시 느끼고픈 복고적 취향을 남의 눈치 보지 않고 드러낼 수 있게 된 것”이라고 풀이했다.

과거에는 어린아이들의 전유물로 여겨져 사회 통념상 자제하던 것들에 대해서 거리낌 없이 접근이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손영화 교수 역시 “세대별로 문화가 나뉘던 것이 흐려지고, 어른이라고 해도 특별히 놀이문화가 없다보니 자연스레 어릴 적 좋은 기억을 준 것들에 빠져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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