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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강 앞둔 어느 복학생의 ‘복잡한 셈법’
개강 앞둔 어느 복학생의 ‘복잡한 셈법’
  • 이광호 dumber421@nate.com
  • 승인 2018.02.13 11: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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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s 스토리] 미래 위해 허리띠 졸라매라고?
복학 전 한 학기 자금사정을 들여다봤다. 플리커

‘한 학기 등록금은 300만 원이 넘고, 교통비, 식비, 교재비만 해도 한 달에 20~30만 원은 들어가겠지. 가끔은 헤어짐을 핑계로 술자리 만드는 친구를 만나기도 할 거고, 혹시나 경조사가 있으면 사람 된 도리는 해야 할 테니 비상금도 조금 있어야 할 거고. 그럼 한 달에 4~50만 원은 있어야 할 텐데. 복학하기 전에 최소 300~400만 원은 모아둬야겠네...’

이런 생각이 드니 함부로 돈을 쓸 수가 없다. 다들 돈을 벌면서도 습관처럼 “돈이 없어”를 읊는다. 동아리 사람들과 술을 마시며 ‘우리의 월급은 어디로 사라졌는가?’를 놓고 이야기했지만 스쳐 지나간 월급의 흔적을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분명 치킨집에서 소맥을 마시며 대화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내 방이다. 말소리가 점점 흐릿하게 들린다 싶었는데 정신줄을 놓아버렸나 보다. 택시를 타고 온 기억밖엔 없다. 언제 헤어져서 어디서 탔고 어디서 내린 거지. 어쨌든 살아있으니 출근해야 한다. 숙취는 그다음의 일이다.

근데 지갑도 카드도 없다. 망했다. 다행히 현관에 버스카드가 하나 있다. 잔액이 제발 남아있길 기도하며 지하철을 탄다. 다행히 출퇴근할 정도는 된다. 살았다. 그것도 잠시. 핸드폰을 확인해보니 보니 결제 문자가 가득이다. 속이 쓰려온다.

[XX체크카드 승인(****) 08/16 12:02 10,000원 GS25]
[XX체크카드 승인(****) 08/16 12:33 50,600원 (주)이X카드]

몇백 원, 몇천 원 차이가 아까워서 최저가를 검색하고, 중고 매물을 뒤적이는 주제에 택시비는 시원하게 썼다. 뿐만 아니다. 지갑 속 현금에, MP3에 잃어버린 것만 계산해도 수십만 원이 훌쩍 넘는다.

다시 계산을 시작했다. ‘얼마 전에 투고한 글 원고료랑 공연 페이 합치면 얼마 정도는 들어오겠지? 아, 근데 일요일 공연은 대관료도 내야 하고 합주비도 내야 하잖아. 월요일에 핸드폰 요금도 빠져나갈 거고. 그럼 지갑은 당장 필요 없으니깐 다음 달 월급 들어오면 사고, MP3는 당장 필요하니깐 중고로 사야겠다.’

열심히 벌고 아껴 써도 수중에 남는 돈이 별로 없다. 플리커

하지만 통장 잔고를 조회해보니 MP3는 무슨. 당장 며칠 후부터는 점심시간에 숟가락만 빨고 있어야 할 처지였다. 그래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적금을 깼다.

평소 눈독 들이던 MP3 하나 장바구니에 넣고, 지갑도 대충 골라서 집어넣고, 지르는 김에 보고 싶었던 책들도 몇 권 골라보고. 5만원 이상 사면 사은품도 주네? 윙윙 울리는 결제 문자와 줄어드는 통장 잔고를 확인하고 나서야 이성이 돌아왔다. 속이 다 시원했다.

역시 스트레스 해소엔 시발비용. 탕진 잼이다. 언제까지 고민만 하며 살(live)건가. 가끔은 고민 없이 사(buy)기도 해야지. 그러고 나서야 연락이 되지 않았던 것, 술을 과하게 먹은 것에 대해 주변 사람들에게 사과를 구했다.

금전적 여유가 없으면 마음의 여유도 없다. 하지만 금전적 여유를 위해 포기해야 하는 게 너무 많다. 일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그나마 공정하다고 여겼던 공기업마저도 부정 취업이 만연했다는 게 밝혀지고 있다. ▷관련기사 바로가기

그럼에도 경쟁에서 패배한 사람은 노력하지 않았거나 의지가 없는 사람이 되어 손가락질 받는다. 모든 것은 개인의 탓이 된다. 기본수당이나 청년수당 도입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노력하지 않아놓고 이제 와서 징징댄다’며 조롱하기도 한다.

사람은 실수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줄에서 떨어졌다 다시 올라가기를 반복해야 줄 타는 법을 배울 수 있다. 떨어져도 괜찮다는 걸,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걸 배운다. 하지만 지금의 사회는 자그마한 실수조차 용납하지 않는다. 천 길 낭떠러지 위에서 줄을 타는 셈이다.

그러면서 창의성과 독창성을 기르라고 한다. 미래를 위하라고 한다. 말도 안 된다. 최소한의 삶이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선 살기 위한 가장 안전한 방법을 찾을 뿐이다. 오히려 사회는 점점 경직될 뿐이다. 그러니 탕진은 짜릿할 수밖에. 오늘의 나를 위해, 오늘 지르는 것이고, 미래를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는 것이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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