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운동, 그리고 한 PR회사 대표의 자성
미투 운동, 그리고 한 PR회사 대표의 자성
  • 강미혜 기자 (myqwan@the-pr.co.kr)
  • 승인 2018.02.20 17:2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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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보업계 피해사례 공개적으로 언급…“나도 구악일 수 있다”
각계에서 성추행 폭로가 이어지며 한국판 #미투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더피알=강미혜 기자] 검찰 내부 성추행 문제로 촉발된 한국판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이 문학계, 연극계, 영화계, 언론계 등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남성 중심적 문화와 권력관계가 낳은 우리사회 부끄러운 민낯이 드러나며 충격을 안기고 있는데요.

기자관계나 접대문화가 중시돼온 PR업계도 미투 물결에서 자유로울 수만은 없는 게 현실입니다. 일단 성비만 놓고 봐도 언론사 기자는 남성이 압도적인 반면, 홍보업 종사자들은 상대적으로 여성이 많습니다.

시대가 바뀌고 미디어 환경이 달라지면서 관행이란 이름의 ‘구악(舊惡)’이 사라졌고 지금도 개선되고 있다지만, 업무상 갑을관계로 엮일 수밖에 없는 특수성 때문에 여전히 경계의 목소리가 나옵니다.

이와 관련, 한 PR회사(홍보대행사) 대표가 공개적으로 이 문제를 거론해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최근 우리사회의 미투 운동을 지켜보며 “업계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이 시점에 다시 한 번 짚고 넘어가려고 한다”고 이유를 밝힌 에그피알의 홍순언 대표입니다.

페이스북 커뮤니티에 올린 글을 통해 홍 대표는 “돌아보면 이런 일(성추행)을 겪을 때만 울컥하거나 위로하거나 못 본척했을 뿐 정식으로 문제제기를 할 생각을 못했다”고 반성하며, 그간 보고 듣고 경험했던 피해사례를 이야기했습니다.

그의 동의를 얻어 해당 글의 전문을 공유합니다.

을 중의 을 홍보대행사도 #MeToo #미투 성추행 문제는 많이 있었다. 갑을 문제로 쉬쉬하거나 덮은 경우가 매우 많을 것이다. 내가 직접 접하거나 들은 얘기만 해도 수십건이 넘는다.

십년 넘게 홍보업계에 있던 여성이라면 기자나 클라이언트(에이전시에 업무를 맡기는 고객사)로부터 불쾌한 경험이 한 두 번이 아닐 수도 있다.

앞으로 홍보일을 하고 싶어 이 업계에 발을 디딜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이 시점에 다시 한 번 짚고 넘어가려고 한다.

홍보대행사 혹은 홍보업계의 성추행 문제는 갑 중의 갑인 기자들로부터 발생하는 경우가 제일 많다.

10년 전에는 기자들 스스로도 ‘구악’이라고 부르던 데스크들이 있었다. 홍보대행사나 홍보팀이 이들 데스크를 술 접대하는 일도 많았는데, 그럴 때면 홍보대행사 대표가 여직원들을 골라 나가기도 했다.

그 경우 당시 팀장이었던 나는 여직원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따라나가야 했다. 그 데스크가 술에 취해 내게 “오늘 쟤를 달라”는 소리도 했고, “모 대행사가 제일 예쁘고 에이스다”라는 말도 들었다.

대행사 사장이 기자들 사이사이에 자기 직원들을 앉히는 것도 보았고, “섹시한 것이 경쟁력”이라는 얘기도 사장으로부터 나왔다.

클라이언트가 업무시간에 성추행을 한 일도 있었다. 한 클라이언트 회사를 오후에 방문했을 때, 담당 차장이 낮술에 취해서 우리 직원의 뺨을 혀로 핥은 것이다.

너무 순식간의 일이라 클라이언트사 직원들이 해당 차장을 붙잡아서 데리고 나갔고, 나는 그 친구에게 어떻게 할지를 몰라 우선 데리고 나왔다. 나중에 다른 부장을 통해 사과를 받긴 했지만, 피해를 입은 친구가 더 이상 문제 제기를 안 한다는 이유로 유야무야 넘어갔다.

우리가 어레인지(준비)한 취재여행에서 클라이언트사 홍보팀 직원이 MBC 기자로부터 성추행을 당하는 일도 있었다. 당시 사장은 우리 직원이 그렇게 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라고 했다.

그 일이 있은 후 (문제의) 직원은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다른 계열사로 전근을 갔고, 클라이언트도 제기하지 않는 문제이고 성추행을 당한 당사자에게 피해가 될 수 있다며 우리 역시 쉬쉬하기에 급급했다.

심지어 내가 아는 홍보대행사 대표의 신입여직원 성추행 사건도 있었다.

위에서 얘기한 모 데스크가 직원들이 예쁘다는 홍보대행사 대표는 얼마 전 일간지 데스크와의 부정으로 인해 실형을 받기도 했다. 이것들은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일 뿐 업계에서는 빙산의 일각일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 매체 환경도 변하고 구악들도 언론사를 많이 떠났을 것이다.

여기자들도 늘어나면서 이제는 술접대 보다는 점심에 만나 이야기 나누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김영란법도 이러한 문제를 없애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지금 돌아보면 이런 일을 겪을 때만 울컥하거나 위로하거나 못본 척했을 뿐 정식으로 문제 제기를 할 생각을 못했다.

직원에게 찝쩍대는 기자 사무실에 찾아가 호통을 쳤다는 한 홍보대행사 대표님의 이야기는 전설처럼 있다.

누구에게는 나도 구악일 수가 있다. 나부터 정신을 바로잡고 후배들이 일할 환경을 더 바르게 하는데 노력해야겠다.

과거 그런 술자리를 반대하지 못했고, 그런 얘기를 들었을 때 박차고 데리고 나오지 못했고, 그렇게 하면(덮으면) 된다고 했을 때 강하게 반대하지 못했던 당시 나의 잘못된 대응에 대해 동료로서, 팀장으로서, 이사로서, 대표로서 사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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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대박 2018-02-21 18:26:12
뭐 이래... 더럽네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