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복이 심하면 그건 진짜 실력이 아니다
기복이 심하면 그건 진짜 실력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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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3.1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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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민의 Crisis Talk] 1등과 50등 가르는 열 가지
전교 또는 전국에서 수위를 다투는 친구들은 매번 시험에서 꾸준한 성적을 거둔다는 특징이 있다. 기업의 위기관리도 마찬가지다.

[더피알=정용민] 학창 시절 기억을 되살려 보자. 반에서 1등도 그렇지만 전교 또는 전국에서 수위를 다투는 친구들은 매번 시험에서 꾸준한 성적을 거둔다는 특징이 있다. 어쩌다가 운이 좋아 단 한 번 반에서 2~3등을 찍어 본 20등짜리 학생과는 무언가 다른 일관성이 있었다. 기복이 없다는 점이다.

시험 준비를 별로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던 전교 1등 친구 녀석이 바로 그랬다. 쉬는 시간에 곧잘 농구도 하고 방과 후 아이들과 라면집에서도 어울리던 그 녀석은 항상 입에 “이번엔 시험공부 많이 못했다. 큰일이야”라는 중얼거림을 달고 살았다. 그러나 시험 당일 방과 후 함께 답을 맞춰보면 그 녀석은 별로 틀린 문제가 없이 완벽했다. 그것도 매번.

실력이라는 것은 기복이 없이 꾸준하게 잘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그때 하게 됐다. 시험 때마다 일희일비하는 학생들은 실상 실력이 없는 것이었다. ‘시험 범위를 잘못 알았었다’ ‘이번에는 시간이 모자랐다’ ‘시험감독 선생님이 시험지를 너무 빨리 뺐어갔다’ 등등의 핑계도 실력이 없다는 증거였던 것이다.

기업이나 조직의 위기관리도 동일하다는 생각이다. 위기관리를 잘하는 기업에서는 자사가 위기관리를 잘한다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위기관리 시스템을 자랑하는 보도자료도 내지 않는다. 항상 무언가 모자라다 생각하면서 지속적으로 노력한다.

기업이나 조직의 수많은 위기요소들 중 실제 위기로 발화돼 수면위로 떠오르고, 그것이 국민들에게 알려져 기억되는 비율은 1%가 채 되지 않는다. 그 외 대부분의 위기요소는 사전에 관리되고 방지되고 약화된다. 그런 모든 노력이 위기관리다. 이런 활동이 꾸준히 수면 아래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알려지는 위기의 수나 비율이 그나마 관리되고 있다.

흔히 ‘일이 터졌다’는 말을 쓰곤 하는데 그건 사실 의미가 맞지 않는 표현이다. 어떻게 ‘일’이라는 것이 스스로 터질 수 있나? 일은 사람이 터뜨리는 것이다. 반대로 일을 터뜨리는 사람이 없다면 일은 터지지 않는다. 즉, 일을 터뜨리지 않게 사람들을 관리하는 것이 곧 위기관리이기도 하다.

등수 낮은 기업의 특징

지속적인 위기관리 속에서도 몇몇 기업들은 반복적으로 연이어 문제를 터뜨리는 것을 보게 된다. 다른 기업이 한 개의 문제를 터뜨릴 때 어떤 기업은 두세 개 이상을 터뜨려 세상을 떠들썩한다.

문제를 터뜨리지 않는 기업과 문제를 계속 터뜨리는 기업 간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간단히 말해 위기관리 역량에 있어 전교 1등과 전교 50등의 차이라고나 할까? 기복이 있다면 더더욱 그 차이의 원인이 궁금해진다. 기복이 있는 그리고 심한 기업의 위기관리 역량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CEO가 바뀌면 위기관리 역량도 바뀐다.

이런 기업의 경우 완전히 바뀐다. 매뉴얼 구조와 의사결정 프로세스는 물론 외부 자문 그룹도, 심지어 보고하는 포맷조차 바뀐다. 새로운 CEO의 경험과 생각이 바뀌었기 때문에 이전과 동일한 위기의 대응도 완전히 바뀌어 버린다. 작년까지 쉬쉬하고 홍보실의 짧은 코멘트로 가늠하던 논란이 새로운 CEO 체제에선 CEO가 주최하는 대대적인 사과 기자회견으로 가늠된다. 적폐라는 말이 튀어 나오고 철저히 개선하겠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바뀌지 않은 직원들만 어리둥절해진다.

둘째, CEO는 그대로인데 위기관리 철학이 그때그때 바뀐다.

한 번은 CEO가 천리를 마다하지 않고 달려가서 고개를 숙였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발생한 위기 때는 움직이지도 고개를 숙이지도 않는다. 지난번에 그렇게 했으니 이번에도 그리 하심이 어떤가 하고 말씀드리지도 못한다. 그때는 왜 그랬고 이번에는 왜 다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 홍보실도 적절한 답을 찾지 못한다. 다음번에 또 유사한 위기가 발생되지 않기만 기도한다.

셋째, 위기관리 위원회에 경험 있는 임원들이 적다.

대표이사가 젊다고 평소 홍보를 열심히 했다. 언론에서 젊은 대표의 성공 신화를 찬양한다. 그러다가 위기가 발생했다. 대표이사가 젊어서인지 주변 임원들도 젊다. 생애 첫 번째로 경험해 보는 대형 위기다. 평소 일부 임원들이 개인적인 모임에서 들어봤던 위기관리 전략과 대응 방식을 기억해낸다. 각자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고 창의적으로 대응하려 애쓴다. 온라인과 소셜미디어에 집중해서 드라마틱한 결과를 얻어낸다. 다음번에는 어떻게 잘해낼 수 있을지 벌써 걱정이 든다.

넷째, 자사의 위기와 위기관리 히스토리를 잘 모른다.

어렴풋이 회사에 위기관리 매뉴얼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있다. 위기가 발생해서 알음알음으로 오래된 문서 파일을 얻어 열어보니, 예전 홍보실이 만든 부정기사 대응 매뉴얼이다. 이건 위기관리 매뉴얼이 아니다. 더구나 기자들이 우리 회사에서 몇 년 전 이와 유사한 일이 있었다고 하는데, 내부에서는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오래된 기사를 찾아 봐도 무슨 일이었는지가 구체적으로 떠오르지 않는다. 당연히 당시 누가 무슨 대응을 했는지 잘 모른다. 그냥 다시 새롭게 위기대응을 한다.

다섯째, 관리 역량 이상의 큰 위기를 그대로 방치한다.

‘실제 발생하면 그 때에는 무슨 별 수가 있겠어? 그냥 최악의 상황이 되는 거지’. 이런 식으로 위기를 알면서도 방치한다. 정확하게 말해서는 방치할 수밖에 없는 유형이다. 일반적으로 오너 관련 위기가 그렇다. 그 외에도 핵심 경쟁력과 관련된 위기 유형들도 비슷하다. 단순하게 해당 위기가 스쳐 지나가면 어느 정도 관리도 가능해 보이는데, 제대로 정통으로 터지게 되면 감당이 안 될 것이 뻔하다. 그때 가서 한번 생각해 봐야지 하는 마음이 평소 지배한다.

여섯째, 매뉴얼을 따르기보다 트렌드를 따른다.

위기가 발생하고 나면 주변에 전문가라는 사람들을 찾는다. 임원들이 트렌디하게 여론을 선도하고 있다는 여러 사람들을 만난다. 특히 온라인과 소셜미디어 전문가들의 이야기가 귀에 들어온다. 소위 말하는 밀어내기, 물타기, 댓글달기, 바이럴 등등 정치권 뉴스에서나 들어 봤을 법한 이야기들이 흥미롭다. 실질적인 위기대응은 왠지 버겁고, 일단 여론을 좀 어떻게든 움직여 보려고 시도한다. 매뉴얼에는 이런 저런 이야기가 있지만 일단 트렌드가 그러니 따라가 보자는 거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길을 가본다.

일곱째, 매번 미신을 믿는다.

위기관리에는 원칙이라는 것이 있다는 이야기를 알고는 있다. 그러나 그런 원칙이 우리에게 맞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 대신 여러 편법과 창의적인 어프로치가 국면을 전환 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긴다. 누구는 ‘가만히 있으라’ 한다. 누구는 ‘대표가 앞에 빨리 나서라’ 한다. 누구는 ‘내가 힘을 좀 써 줄 테니, 잠깐 기다려 보라’ 한다. 행동은 마비되고 믿음만 앞선다. 주체적으로 무언가를 해야 상황이 관리될 텐데 여러 조언들이 상호 출동하고 복잡다단하다. 일단 문제를 뒤에서 해결해 준다고 하니 조금만 기다려 봐야지 하는 미신이 위기관리를 지배한다.

여덟째, 잘못된 방식으로 위기관리 역량을 키우려 한다.

들어보니 정치권 인사들을 대거 영입해 보라고 한다. 일간지와 방송사 출신 임원들도 좀 뽑아 놓아야 한단다. 검찰하고 국세청에 공정위, 감사원 출신 인사들을 영입해 보라고 HR임원에게 지시한다. 어떤 로펌에 관련 기관 출신 인사가 있는지를 알아보면서 누가 더 힘을 잘 써줄 수 있는지를 비교 평가한다. 관계는 구입하면 되고 사람도 사서 쓰면 된다고 믿는다. 이번만 어떻게 잘 넘기면 그때부터 무언가 제대로 된(?) 조직을 꾸미겠다는 결심을 한다.

아홉째, 부서 간 사일로(silo)가 강하다.

작년에 한번 위기를 겪고 나서 감사부서와 대관부서, 홍보부서에 협업체를 꾸리라고 대표이사가 지시했다. 올해 초에 다시 비슷한 문제가 발생해서 그 협업체에서 처리 좀 하라고 했더니, 감사와 대관 임원이 금시초문처럼 받아들인다. 그나마 홍보임원이 협업체계가 가동하지 않는 것이 감사쪽 임원이 바뀌어서 그렇다고 올해 상반기까지는 가동시키겠다고 보고를 한다. 대관 임원은 그대로인데 그 임원은 왜 금시초문인 것처럼 이야기하는지는 오리무중이다. 평소에 서로 아무 커뮤니케이션도 없다 보니 그런가 보다 한다.

열째, 이상의 기복 원인에 대한 반면교사가 부족하다.

사실 반면교사가 있고 지속적인 개선과 업데이트만 있어도 기복은 작다. 최소화는 된다. 이상의 여러 기복의 원인들을 한두 개 이상 골고루 경험하고도 새로운 위기를 맞으면 또 다른 새로운 원인들 때문에 또 다른 기복을 경험한다. 그 후에도 이는 반복되고, 반복되고, 반복된다.

다른 회사가 위기관리를 한다고 하면서 황당한 대응을 하는 것을 보면 재미있어 한다. 어떻게 저럴 수 있는가 하면서 술자리에서 안주거리로 삼는다. 그러나 몇 달이 채 지나지 않아 비슷한 위기를 맞고, 그와 다를 바 없는 위기관리를 한다. 저번에는 우리가 이렇게까지 하지는 않았는데 왜 이번에는 이럴 수밖에 없었는가라는 이야기가 나오지만 이내 사라진다. 어느 한 두 부서의 잘못이라는 평가가 너무 부담된다는 표정이다.

이유를 없애라

기복이 있는 시험 결과에는 언제든 다양한 이유가 있다. 그 이유를 찾아 정확하게 하나하나 개선하면 그 다음 시험에서는 기복을 줄일 수 있지만 대부분은 그러지 못한다. 재미있는 것은 기복이 없는 시험 결과에는 이유가 없다는 사실이다. 그냥 예전처럼 해왔을 뿐이라는 것이 전부다.

기업이나 조직의 위기관리에서도 ‘예전처럼 꾸준히 해 오고 있다’는 이야기들이 좀 더 많아지기를 바란다. 매년 그렇게 노력 하고 있다, 꾸준히 개선해 나가고 있다, 열심히 훈련하고 시뮬레이션 하면서 여러 이슈를 살피고 있다, 지속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이런 이야기가 많아지기를 바란다.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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