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7월 21일 액상소화제, 정장제, 외용제 중 일부 품목을 의약외품으로 전환하는 ‘의약외품 범위지정’ 고시 개정안을 공포, 시행함에 따라 본격적인 의약품 슈퍼 판매 시대가 막을 열었다.
이에 따라 종합편성 4개 채널 개국과 맞물려 제약 · 광고계의 유례없는 판도 변화가 예상되는 가운데 특히 제약업체들의 향후 홍보 전략이 어떻게 전개될지 초미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정부의 이번 발표에는 동아제약, 동화약품, 삼성제약공업, 일동제약, 광동제약, 유한양행, 동국제약, 한독약품, 조선무약, 한국슈넬제약, 일화, 영진약품, 일양약품 등 18개사의 총 48개 제품이 선정돼 있다. 이 중 마시는 소화제를 포함한 드링크 형식의 제품이 30여개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슈퍼 판매 1차전은 사실상 마시는 제품들 간의 각축전 양상을 띨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제약업계는 이번 제도 시행과 관련해 최대 관심 제품인 박카스가 포함돼 있는 동아제약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히 동아제약의 대표 상품으로 독보적인 판매량과 인지도를 자랑하는 박카스와의 경쟁에 겉으로는 난색을 표하면서도 점유율 확대를 위한 나름대로의 전략을 모색하는 눈치다.
동화약품은 ‘알프스티-2000액’ 의 경우 연매출 규모가 3억원 수준이라 박카스와 비교할 순 없다면서도, 일반 시장이 개방된 만큼 이에 걸 맞는 준비는 해야 되지 않겠냐는 입장이다. 이번에 연고제 안티푸라민과 자양강장제 유톤액이 포함된 유한양행은 “박카스와 겨뤘을 땐 회의적이지만, 시장 진출을 위한 상표 변경 등의 가능성은 열어둬야 하지 않겠느냐” 는 반응이다.
이에 동아제약은 “중요한 품목이다 보니 신중을 기하고 있다. 연말까지는 판매와 광고 등에서 특별한 변화 없이(슈퍼판매 하지 않고) 기존대로 갈 것” 이라고 전하면서 “구체적인 계획은 내년 이후에나 결정될 것 같다” 는 말로 한데로 쏠린 관심을 애써 무마하려는 모습이다.
‘박카스’ 행보 뜨거운 감자…제약사는 단체로 침묵 중
슈퍼 판매와 관련해 제약사들은 극도로 조심스러운 반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섣불리 가시적으로 움직였다간 약사들의 심기를 건드리게 될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 잘못 찍히면 큰일 난다는 긴장감 속에 대형 제약사들 몇 곳은 아예 일단 슈퍼 판매는 없을 것이라고 못을 박기도 했다. 경쟁력이 크지 않은 제품의 경우 굳이 위험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슈퍼 판매에 참여시킬 필요가 없다는 판단에서다.
한 제약사 관계자는 “기존의 인지도는 약국 때문인데, 제약회사가 이들과 등을 돌릴 수는 없다” 며 난처한 기색을 역력하게 내비쳤다. 또 다른 업체 역시 “기존 거래처(약국)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며 그 어떤 언급도 할 수 없음을 누누이 강조했다.
약사와의 관계뿐 만 아니라 종편 또한 제약사들에겐 풀어야 할 큰 숙제다. 종편으로 인해 광고시장 규모가 크게 확대돼 보다 적극적인 광고 진출 기회가 열렸지만, 종편에 대한 비판적인 여론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메이저 신문사의 언론 장악이라는 부정적인 인식이 상존하는 데다 한 약사 단체에서 정부의 의약외품 전환이 종편 먹여 살리기라는 비판을 제기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칫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
특히 동아제약, 녹십자, 일동제약, 동광제약 등 이번 종편 컨소시엄에 참여한 제약회사들의 경우 시민단체인 언론연대에서 일명 조중동 방송 퇴출을 기치로 참여 기업들의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까지 벌이고 있어 더욱 몸을 사리고 있는 상황이다.
“시장 넓어져도 광고예산 한계”…‘선택과 집중’에 부심
정부가 발표한 48개 품목들 중 절반 이상이 2009년 이후 생산 실적이 없거나 한 번도 판매되지 않은 제품들일 뿐만 아니라 판매 중인 제품들 가운데서도 제약사 주력 상품이 많지 않다. 때문에 회사의 주요 제품들이 향후 추가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추이를 관망한 뒤 전체적인 개요가 완성되면 그때 가서 본격적인 홍보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더 낫다는 판단도 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동화약품 관계자는 “이번에 포함된 까스활명수라이트와 까스활명수소프트의 경우 오래 전에 허가만 받아놓고 한 번도 출시된 적이 없는 제품이라 사실상 지금 당장 팔 수 있는 제품이 아니다” 며 “현재 판매되고 있는 까스활명수Q가 정작 포함돼 있지 않아 추후 추가 여부를 지켜보려 한다” 고 말했다.
삼성제약 측도 “광고시장이 확대돼도 예산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홍보를 하더라도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나갈 것” 이라고 전하는 한편, 아직 논의 중에 있는 두통, 감기약 시장이 더 크기 때문에 추이를 더 지켜본다는 입장이다.
이 같은 관망세와 치열한 눈치 보기에도 불구하고 제약업체들은 판매 환경 변화라는 호재를 맞이해 수면 아래서 비밀스럽게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모 제약회사의 경우 그동안 인지도에서 밀린(타사 유명 제품과 유사한 이름을 가진) 자사 제품에 대해 실제 원조라는 점을 적극 부각시킨다는 포부를 내비치기도 했다. 아울러 생산 중단된 몇몇 제품들의 경우 보완해 재출시 하는 것도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다른 제약회사 역시 슈퍼 판매와 관련된 모든 것에 대해 전면 보류라는 입장을 내세우면서도 절판된 제품의 재생산 및 제품명 변경 등을 고려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해 한국광고단체연합회 정종선 차장(기획관리팀)은 “유통망이 확대됐기 때문에 추후 제약사들의 마케팅 활동이 활발히 진행될 것” 이라고 전망하면서 특히 “대중적인 인기가 있는 대형 제약회사의 공격적인 마케팅이 예상된다” 고 말했다. 하지만 단순히 미디어 환경 변화에 좌지우지되기 보다는 어떻게 합리적으로 광고비를 적절하게 집행할 수 있는지에 대해 원칙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