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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홍보인들은 ‘미투’ 못할까
왜 홍보인들은 ‘미투’ 못할까
  • 안선혜 기자 anneq@the-pr.co.kr
  • 승인 2018.04.05 11: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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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더라식 뒷말만 무성…문제의식에도 업무관계 고려 ‘옛날일’ ‘남의일’로 치부
언론홍보를 위한 기자관계가 중요한 상황에서 ‘용기’를 내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더피알=안선혜 기자] 미투 열풍이 우리사회 전반을 강타하고 있는 가운데, 업무상 기자와 갑을관계에 놓일 때가 많은 홍보인들은 잠잠하기만 하다. 혀를 내두르게 하는 기자들의 추태를 본 무용담(?)은 넘쳐나는데 정작 사회적 이슈로 키워지지 않는 이유는 뭘까.

“기자들 중 미투하면 사직서 써야 할 만한 쓰레기 많잖아.”

커뮤니케이터들이 모인 블라인드 앱 게시판에 올라온 글 중 일부다. ‘홍보업계도 미투 한 번 갈까’라며 올라온 이 글에는 본인이 겪거나 들은 간증(?) 사례들이 줄지어 댓글로 달렸다. “제발 갑시다”는 간절한 성화부터 특정 매체명까지 언급하며 소위 ‘기레기’에 대한 성토가 쏟아졌다.

미투 필요성에 공감을 표하는 이는 많았지만 이들의 목소리가 기사화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용기낼 수 있는 사람, 진짜 기레기 집에 보내버리자”는 외침에서 역설적으로 답을 찾을 수 있다. 언론홍보를 위한 기자관계가 중요한 상황에서 이 ‘용기’를 내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 검찰 내부 성추행 문제로 촉발된 한국판 ‘미투(#MeToo·나도 고발한다) 운동’이 문화예술계, 종교계, 정계로까지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지만 기자들을 향한 PR인들의 미투는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고 있다.

언론계 미투 폭로가 터져 나오긴 했지만 이는 언론 내부에서 불거진 일들이다. PR인의 경우 업무 특성 상 기자와의 만남이 잦을 수밖에 없고, 또 이들과의 관계가 갑을관계로 엮이곤 하기에 피해 환경에 노출될 가능성은 커도, 이를 이슈화시키는 데에는 부담이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갑을관계, 내부 관성화

사실 미투 운동이 본격적으로 탄력을 받던 시기 부적절한 행위를 했던 기자를 향한 폭로가 없던 건 아니다. 유명 오디션 프로그램의 심사위원으로도 출연했던 한 문화부 기자를 고발하는 미투 메시지가 카카오톡 등을 타고 전파됐지만, 벌써 몇 년이 지난 일인데다 익명 제보 형태로 이뤄지면서 관계자들 사이 정보 공유 수준에 그쳤다.

한 PR회사 대표는 업계 내에서 대표가 직접 기자들 사이사이에 여직원들을 앉히거나, 고객사 홍보팀 직원이 취재 여행에서 기자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일 등을 자신의 SNS에 풀어내기도 했다. “돌아보면 이런 일(성추행)을 겪을 때만 울컥하거나 위로하거나 못 본척했을 뿐 정식으로 문제제기를 할 생각을 못했다”는 반성어린 목소리였다. ▷관련기사 바로가기

지난달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전국미투생존자연대 발족식 및 권력형 성폭력 2차 피해 방지 정책 제안 세미나에서 참석자들이 성폭력 피해자들을 위한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뉴시스

이처럼 기자와의 교류 과정에서 빚어지는 여러 불만을 털어놓는 목소리들이 있지만 과거보다는 환경이 많이 개선됐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한 PR인은 “50대 이상에서 벌어졌던 일이지, 요즘은 여자 기자들도 많고 소위 ‘구악(舊惡)’들은 많이 사라졌다”고 전했다. 20대 PR회사 종사자 역시 “요즘은 그런 경우가 별로 없는 듯하다”며 “나이스하고 매너 좋은 분들도 많아서 미투를 할 만한 일은 겪어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현재 진행되는 미투 양상이 몇 십년 전에 발생했던 부조리에 대해서도 고발하는 특징이 있는 만큼 과거의 만행을 폭로하는 일도 가능하지만, 이 역시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한 PR회사 대표는 “과거에 만연하긴 했지만 지금은 시간이 흘러 제 위치도 변했고 세태도 변하면서 이를 굳이 알릴 필요성을 못 느낀다”며 “아무래도 언론사와 비즈니스 관계로 얽혀 있는 점도 한 몫 하는 듯하다”고 말했다.이미 언론 관행이 상당 부분 바뀐 상황에서 부러 과거의 일을 끄집어내 서로 껄끄럽게 만들 이유가 없다는 설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계의 목소리는 지속적으로 나온다. 언론사 내부에서 불거지는 미투 폭로들을 보더라도 위계질서가 뚜렷하고 경직된 문화에서 불거진 문제들이 상당수이기 때문이다. 또 사회 전반에서 미투 운동이 확산되면서 언론이 관련 내용들을 보도하고 있지만, 정작 자신들의 치부를 다루는 데는 소극적이라는 지적도 일각에선 제기되고 있다.

구악은 정말 사라졌나

얼마 전 월간조선에서 같은 조선미디어그룹 계열사인 TV조선의 이모 부장의 후배 성폭행 의혹을 ‘단독’을 붙여 보도하는 드문 광경이 벌어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드러나지 않은 사건이 많다는 게 중론이다. 언론끼리 쉬쉬하고 감싸주는 것은 아니냐는 의혹의 눈초리다.

그나마 SNS 등을 통해 공개적으로 폭로된 건에 대해서는 기사화되면서 내부 감사가 이뤄지는 등의 조치가 취해지고 있다.

서울 도심의 한 공사장 외벽에 미투 운동(#metoo)을 의미하는 그라피티가 그려져 있다. 뉴시스

YTN의 경우 여기자협회에서 성명을 내고 지지의사를 밝혔고, 가해자로 지목된 기자는 공개사과 후 6개월 정직의 중징계를 받았다. 오픈 채팅방을 통해 가해자로 지목된 또 다른 PD에 대해서는 해고라는 강도 높은 처분을 내리기도 했다. KBS의 경우도 전 계약직 직원의 폭로로 가해자로 지목된 기자에 대한 감사에 착수했으나, 해당 기자가 피해자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면서 사태가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언론계발(發) 성폭력 사건들은 결국 조직문화나 구조적 문제에서 발생한다고 보는 경향이 강하다. 이정환 미디어오늘 대표는 “언론사도 검찰이나 문화계 못지않게 위계 구조가 강한 곳이고, 크고 작은 성추행 사건과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며 “최근엔 많이 나아졌지만 관행적이고 구조적으로 성차별이 이뤄지곤 했다”고 말했다.

다만, 언론계 미투가 상대적으로 파급력이 약한 이유에 대해서는 가해자의 유명세가 영향을 미친다고 봤다. “언론계 미투는 가해자들이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을 정도의 유명인이 아닌 데다, 피해자가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보다 소극적이 되는 듯하다”는 것.

업계 특성상 한 다리 건너면 다 알게 된다는 생각에 전면에 나서기를 꺼리는 경향이 엿보인다. 이런 이유로 공개적 폭로와 이슈화 보다는 내부적으로 조용히 처리하는 경우도 많다는 전언이다.

이 대표는 “왜 언론계는 치부를 드러내지 않느냐 비판하는 여론도 있지만 성폭력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건 피해자 보호”라며 “내부 문제 제기로 해결되지 않는다면 미투가 터져나오는 것인데, 폭로 방식도 피해자 의지에 달린 것이라 본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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