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기업 평판이 미래의 경쟁력
[기고]기업 평판이 미래의 경쟁력
  • 이노종 (admin@the-pr.co.kr)
  • 승인 2010.06.04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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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아닌 평판으로 승부하는 시대 열린다

2007년 10월, 김용철 변호사와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삼성그룹 50억 비자금’ 폭로 사건으로 삼성그룹 전체가 엄청난 위기 상황에 처했던 사실을 모두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해 11월 삼성 비자금 특검법이 국회 의결을 거쳐 2008년 1월 삼성특검팀이 출범했다. 이후 3개월에 걸친 수사 결과 이건희 회장 등 10여 명이 기소됐다. 결국 이 회장은 2008년 4월 22일 삼성그룹 회장직을 사퇴했다.

만약 삼성이 아니고 무명의 중견기업이나 평판이 좋지 않은 중소기업이었다면 기업주는 물론 기업도 회생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삼성그룹의 주력사인 삼성전자 주식은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았다. 오히려 위기 당시인 2007년 10월 종가 기준 54만원에서 선고 공판이 있던 2008년 4월에 종가 기준 73만1000원으로 큰 폭의 상승세를 보였다.

이건희 회장도 퇴임 2년 만인 올해 사면·복권되었고 IOC 위원으로서, 그룹 회장으로서 다시 복귀해 왕성한 활동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좋은 평판이 위기시 기업 살려

비자금 폭로 사건 당시 삼성그룹의 이미지와 이건희 회장의 이미지는 큰 폭의 하락을 가져왔다. 그러나 삼성그룹의 기업 평판과 이건희 회장의 CEO 평판은 전혀 동요가 없었다. 오히려 높은 글로벌 브랜드 파워에 힘입어 과거보다 더 높은 평판을 유지할 수 있었다. 5월 초에 공개된 삼성생명 주식 공개는 사상 유례가 없는 높은 경쟁률과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주당 110만원(현재 액면 분활로 1주당 11만원, 1주 액면 가격 500원)이라는 놀라운 기업 가치를 기록했다.

기업의 좋은 평판이 정말로 위기시에 그 기업을 살릴 수 있는가? 경영자들이나 기업 커뮤니케이션 책임자(CCO)들이나 IR 전문가, 투자자문회사나 애널리스트들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그 대답을 원한다. 만일 회사의 좋은 평판이 시장가치에 영향을 주고 위기시에도 회사가 발행하는 채권이나 주식가치가 떨어지지 않고 제품과 서비스의 신뢰도 역시 손상을 받지 않는다면 모든 경영자들이 기업의 평판가치(Reputation Value)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만일 어떤 투자자가 주식을 살 때, 그리고 신입사원이 자기가 평생 몸담을 직장을 선택할 때, 소비자가 수많은 브랜드의 제품 중 어느 회사 제품을 고를 때, 애널리스트가 고객에게 어느 회사 주식을 권유할 때, 그리고 언론 미디어가 기사를 게재할 때 어느 회사의 것을 선택하겠는가? 이에 대한 답은 분명하다. 이미지가 좋은 기업보다는 평판이 좋은 기업을 권유하고 선택할 것이다.

사우스웨스트항공사는 미국에서 다섯 번째 규모의 항공사지만 26년 연속 흑자를 달성한 미국 내 유일한 항공사로 유명하다. 그리고 미국의 경제 전문지 ‘포춘’의 조사에 의하면 미국 항공사 중 가장 평판이 좋은 회사다. 이 회사는 재미있고 신나는 직장문화 조성을 통해 종업원을 만족시키고 나아가 고객을 만족시키는 데 최우선의 가치를 두었다. 입소문에 의해 동종업계에서 평판이 좋아지자 우수한 인재가 모여들었고, 고객들도 한번 타보고 싶은 항공사 1위로 꼽았으며, 이어 투자하고 싶은 기업으로 꼽혀 기업가치도 높아졌다.

기업을 둘러싼 도전이 날로 거세지면서 100년을 지속하는 우량기업을 영위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 되었다. 특히 우리나라는 경영환경의 변화가 극심해 장수기업의 출현이 그만큼 어려울 수밖에 없다.

1878년 설립 이후 130년 가까이 세계 최고의 지위를 누리고 있는 기업이 바로 GE이다. 2000년 이후 5년 동안 전세계에서 시가 총액이 가장 높은 회사로 비즈니스 위크 글로벌 1000순위에서 1위를 유지하고 있으며, 매출액 기준의 ‘포춘’지 500대 기업 순위에서도 지난 50년간 5위 이내의 상위권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이외에도 엑슨모빌, 쉐브론텍사코, 씨티그룹, 알트리아그룹, 화이자, 존슨앤존슨, IBM, AIG 등 시가총액 30위 안에 드는 기업 17개 중에 9개가 100년을 넘긴 기업들이다.

이미지는 감성적이고 주관적

우리나라의 경우 매출액과 시가 총액 모두 30위 안에 드는 기업 중 50년 이상 된 기업은 채 10여 개가 되지 않는다.

좋은 평판을 쌓기는 어렵지만 허물기는 순식간이며, 부정적인 평판을 다시 회복하기란 더더욱 어렵다. 개인뿐 아니라 기업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대기업은 망하지 않는다는 대마불사의 법칙은 IMF를 겪으면서 여지없이 무너졌다.

좋은 평판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그것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이를 통해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평판이 왜 중요한가? 사람들은 반드시 사실에 입각해서만 의사결정을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정확하든 그렇지 않든 자신들의 편견에 바탕을 두고 의사결정을 하기 때문에 평판이 중요한 것이다. 행동심리학자들에 의하면 소비자가 구매결정을 할 때에도 비이성적인 요소의 영향을 심하게 받는다고 말한다. 여기저기의 풍문에 귀 기울이고, 세평에 신경을 쓰는 것이다. 심지어는 블로그, 트위터 등 소셜 미디어에도 굉장한 영향을 받는다. 일반적으로 평판이란 조직의 바람직함에 대한 이해관계자들(Stakeholder)의 현재의 평가이다. 즉 기업을 둘러싼 조직의 구성원, 고객, 투자자들, 언론인들, 시민사회운동가들, 그리고 정부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밖에서 보는 그 조직의 실체에 대한 평가이다.

반면에 지금까지 PR 분야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온 이미지는 공중에 대한 조직의 정보를 바탕으로 하여 개인의 인식 내지는 추론에 의해 형성되므로 상당히 감성적이고 주관적이며 조직의 의도에 의해 좌우될 수 있으므로 조직의 실체와는 유리될 가능성이 크다. 지난달 삼성그룹의 사장단 회의에서 삼성의 기업 평판과 CEO 평판이 앞으로 삼성의 미래경쟁력에서 중요하다고 강조한 것은 앞으로 평판이 얼마나 중요한 미래경쟁력 요소인가를 느끼게 해주는 사례이다.

기업 평판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단 하나의 차원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영향 요인에 의해 수립되고, 지속되고 유지되는 것이다. 기업 평판을 측정하기 위한 여러 연구가 있었고, 많은 기관에서 평판에 관련된 평가요소를 찾기 위한 연구가 실시되고 있다. ‘포춘’지는 8개의 척도로 기업 평판을 측정해 발표하고 있고 미국 평판연구소는 사회적 책임, 제품과 서비스, 존경과 신뢰, 근무환경, 재무성과, 비전과 리더십 등 6개 척도로 평판 순위를 정하고 있다. 이외에 정치인 평판, 연예인 평판, CEO평판, 지자체장 평판, 국가 평판 등 여러 분야에서 앞으로 활발한 연구가 진행될 것이다.

이제는 개인이든 조직이든 이미지가 아니라 평판(Reputation)으로 승부하는 시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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