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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봄에도 GM-포드는 한국 시장을 공략했다
1928년 봄에도 GM-포드는 한국 시장을 공략했다
  • 신인섭 1929insshin@naver.com
  • 승인 2018.04.27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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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섭의 글로벌PR-히스토리PR] 공업화 바람 속 광고캠페인 활발…지면 증면+광고 관심도 상승

▷해방 전 한국 광고의 뿌리를 보다
▷90년 전 유한양행 광고가 갖는 의미에 이어..

[더피알=신인섭] 1923년 일본 동경대지진 때 깡그리 타버린 동경에선 달구지조차 없어 복구와 난민 구제용품 수송에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긴급 수입한 포드(Ford) 트럭은 1년 뒤 일본에 공장을 세우고, 다시 1년 뒤엔 GM이 공장을 지었다.

1928년 포드(왼쪽)와 gm(쉐보레) 전면광고. 필자 제공

그 무렵 한국에 진출한 포드는 소규모 판촉 캠페인을 서울을 비롯한 주요 도시에서 전개했다. 이어 1928년 봄에는 포드와 GM(시보레라 불렀다)이 전면광고를 집행했다. 그런 대담한 광고 캠페인은 한국에서 유례가 없었다.

1937년 일본의 침공으로 시작된 중일전쟁 이후 일본은 포드와 GM의 철수를 강요, 결국 1939년 일본을 떠났다.

1934년 일제강점기 시절 gm 쉐보레(당시는 시보레) 신문광고. 필자 제공

두 미국 자동차의 한국 시장 진출은 불과 10년에도 미치지 못했으나 그 광고의 방대한 규모는 광고 시장에 큰 영향을 미쳤다. 정형 규격 광고라는 개념은 이들 미국 자동차 광고로 인해 변형광고로 바뀌었다.

1930년대는 식민경제 하이기는 했으나 한국 경제가 급속한 공업화를 이루는 시기다. 광고 역시 증가했고 신문 발행 면수는 4→6→8→12로 늘어났다. 전면광고도 많아졌다.

광고도안 현상 모집(오늘로 따지면 공모전)이 나타났다. 동아일보는 1938년부터 1940년 강제 폐간까지 3회에 걸쳐 대대적인 상업학교 학생 대상 포스터, 신문 도안광고 현상 모집을 전개했다. 수상작에 대한 시상은 물론이거니와 당시 한국 최대의 조선인 경영 백화점인 종로 네거리 ‘화신(和信)’에서는 <상업미술전람회(商業美術展覽會)>가 개최되기도 했다.

동아일보가 주최한 상업학교 학생 대상 '포스터, 신문광고도안 대모집' 광고와 수상작 소개(왼쪽), 제1회 중등 상업학교생도 상업미술 작품 전람회 사고. 필자 제공

조선일보는 1932년에 <광고에 대한 일반상식>을 14회에 걸쳐 연재했는데 해방 전 한국에서 가장 방대하고 깊이 있는 전문 기사였다. 한 권의 책자가 될 만한 분량의 이 연재 내용은 광고 전반에 걸친 것으로 한국 광고의 현황과 문제점을 학술과 실무 면에서 다룬 훌륭한 글이었다.

1937년에는 다시 조선일보에 한국 최초의 <광고강좌(廣告講座)>가 열렸는데 남아 있는 사진을 보면 당시 신문사 강당에 가득 찰 만큼 성황이었다. 강연 내용은 신문에 20회 가깝게 연재되었다.

1932년 조선일보에 14회에 걸쳐 연재된 <광고에 대한 일반상식 해설>. 1937년의 <광고강좌(廣告講座)> 제1강좌 내용 보도 및 가득 찬 강당 광경. 필자 제공

광고와 관련된 논설은 1930년대에 부쩍 증가했다. 대학 교재에 나오는 이른바 AIDA(Attention, Interest, Desire, Action)는 이미 80여년 전 1935년 조선일보에 실린 <상품광고와 심리학의 관계(商品廣告와 心理學의 關係)>에 나와 있다.

해방 전 가장 큰 광고주 가운데 하나였을 일본 조미료 아지노모도(味の素)는 일찍부터 광고 현지화에 앞장섰다. 치마 저고리 차림의 주부 그리고 색동저고리를 입은 어린이 등 한국 문화를 이용한 광고를 실었다.

조미료 아지노모도(味の素)가 현지화한 광고(왼쪽), 한국이 낳은 세계적 무희 최승희가 모델인 광고. 필자 제공

해방 후 우리의 거의 모든 식탁에 오르던 미원(味元)과 미풍(味豊)이 아지노모도에서 생긴 조미료였다. 또한 해방 전 한국이 낳은 세계적 무용가 최승희(崔承喜)가 제품 모델로 등장한 것도 1930년대였다. 남편과 함께 월북한 그녀는 숙청당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라디오, TV, 인터넷은 없었으나 따지고 보면 해방부터 현재까지 한국 광고의 뿌리는 이미 1920~30년대에 뿌려진 씨에서 생긴 것이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란 말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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