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문제 놓고 게임 한 판 하실래요?
사회문제 놓고 게임 한 판 하실래요?
  • 이윤주 기자 (skyavenue@the-pr.co.kr)
  • 승인 2018.04.27 13: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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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기업을 찾아서 ⑩] 가치교육컨설팅
‘낯선이의 투자’ 보드게임을 플레이하는 모습. 사진=이윤주 기자
안상호 가치교육컨설팅 대표. 사진=이윤주 기자

 

[더피알=이윤주 기자] 지폐를 주고받으며 나라를 사고 건물을 짓고 임대료를 받는 보드게임, 부루마블을 기억하는가. 만약 부루마블이 부동산 투기를 꼬집는 목적이었다면? 플레이어들과 ‘코펜하겐 지은 호텔이나 빌딩 중에 무엇을 허물어야 할까’를 고민했다면. 물론 부루마블은 그런 게임이 아니지만 그랬더라면. 지금 우리의 경제관념은 조금 더 옳은 방향으로 바뀌었을까.

한 보드게임이 위와 같은 상상에서 출발했다.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텀블벅에 올라온 사회적 보드게임 ‘모두의 학교’다. 게임은 내용부터 독특하다.

특수학교 설립을 두고 찬성과 반대로 엇갈리는 주민들, 그 사이에서 어려움을 토로하는 공무원. 서로의 입장만을 내세우는 이들의 갈등은 작은 판 안에서 플레이된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사회적 이슈다. 게임을 제작한 이들이 궁금해졌다.

인터뷰 약속을 잡고 서울 구로의 사무실을 방문했다. 안상호 가치교육컨설팅 대표는 이제 막 배달 온 책상과 의자들을 바쁘게 나르고 있었다.

안상호 가치교육컨설팅 대표. 사진=이윤주 기자
안상호 가치교육컨설팅 대표. 사진=이윤주 기자

 

한창 바쁘시죠. 펀딩액을 보니 벌써 목표의 123%를 넘기셨던데요. (3월 16일 당시)

아직 얼마 안 돼요. 일반적으로 목표치를 낮게 잡거든요. 우선 저희 소개를 간단하게 해드릴게요. (PPT를 켠다)

가치교육컨설팅.. 뭔가 사회적기업답지(?) 않은 네이밍이에요.(웃음)

(웃음) 스타트업 같지는 않죠.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법인을 만들 때 그렇게 지었어요. 저희의 주요 사업은 GSC(Game-Structured Cooperation) 워크숍과 사회적 보드게임 프로젝트 두 가지예요.

GSC 워크숍은 조직의 협력, 신뢰, 소통을 위한 게임형 워크숍이에요. 가장 자주 사용하는 게임은 ‘세이브 더 프로빈시아(Save The Provincia)’에요. 프로빈시아라는 성이 있는데 모델링해서 저희가 직접 개발했어요.(웃음) 사람들은 네 지역으로 나뉘어서 한 마을에 최대 10명까지 살 수 있어요. 이들은 협력해서 쳐들어오는 적군을 막아내야 합니다. 그때 필요한 군사력을 얻기 위해 미션을 해야 하고요.

그럼 40명까지 참여가 가능한 건가요? 규모가 엄청나네요. 게임의 목적은 뭔가요.

협력을 몸으로 체득하는 팀 빌딩(team building) 게임이에요. 원래 게임을 할 때는 잘 하는 사람과 프리라이더(무인승차자)가 있어요. 그런 사람 없이 모두 참여할 수 있는 게임을 만들어보고자 했어요. 미션카드에는 (워크숍 주체) 회사의 요청으로 여러 가지를 추가해 넣을 수 있어요. 회사의 좌우명 말하기, 대표님부터 직책 순으로 이름 읊기 등이요.

안상호 가치교육컨설팅 대표. 사진=이윤주 기자

직원들 단합에 좋겠네요. 다른 게임은 또 없나요?

‘뉴클리어 클리어(Nuclear Clear)’도 있는데, 사실 지금은 사회적 보드게임 사업에 조금 더 치중하고 있어요.

사회적 보드게임은 다양한 사회문제를 게임을 통해서 환기시키는 사업이에요. 작년 5월에 ‘낯선이의 투자’를 개발해 100만원을 목표로 텀블벅을 시작했죠. 처음 해본 건데 의외로 반응이 좋아서 하루 만에 100% 목표치에 도달했죠. 그리고 두 번째 게임은 도시재생을 다룬 ‘늘봄마을 이야기’에요.

이번에는 특수학교 설립을 다루는 ‘모두의 학교’를 제작하셨잖아요. 지난해 서울 강서구 특수학교를 둘러싼 갈등이 생각나더라고요.

세 번째 게임인 ‘모두의 학교’는 성균관대 동아리 ‘성균SEN’과 함께 지난해 9월부터 준비한 프로젝트에요. 이 동아리의 부회장이 보드게임을 사러 왔다가 마음이 잘 맞아 같이 해보기로 했죠.

저희는 지난 6개월간 새로운 보드게임을 매주 2개씩 해보고, 관심 있는 사회문제에 대해 공부 했어요. 지난해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 사건이 파장이 컸기에 그 주제로 해보자고 한 거죠.

안상호 가치교육컨설팅 대표. 사진=이윤주 기자

특수학교 설립 이해당사자들은 이 게임의 존재를 아나요.

자문하려고 몇 번 특수교육지원센터에 찾아갔었어요. 그런데 팀장님께서 “이게 왜 여기에..” 하며 되게 신기해하시더라고요. 본인들은 웃긴 거죠.(웃음) 네거티브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는데 그분들은 오히려 인식 개선에 좋다고 생각해주시더라고요.

펀딩 첫날에는 대구에서 전화가 왔어요. 일반 학생과 장애 학생들이 한 교실을 사용하는 통합학교인데 아이들과 같이 해보고 싶다고요.

한 가지 사회문제를 놓고 토론하는 것과 보드게임을 통해 접해보는 것, 이 두 개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저는 사람들이 저희 보드게임을 접할 때, 특정 주제에 관해 관심 환기를 유도하는 정도로만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이런 현상이 있었네, 문제가 있구나’라고 인지하는 정도로만요.

그래서 보드게임 앞뒤로 워크숍 활동을 집어넣었어요. 게임을 시작하기에 앞서 우리 마을이 예전에 어땠는지를 생각해보도록 하는 거죠. 이 보드게임 자체로 토론을 하는 게 아니라 토론으로 이끄는 매개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보드게임은 계속 하고 싶게 만드는 재미 요소가 있어야 하잖아요. 주제가 무겁다 보니 두 번째에 쉽게 손이 안 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일단 해보신 분들은 두 번 이상은 하시더라고요. 학교 선생님들도 애들이 오히려 더 하고 싶어 한다고 하시고. 전략게임이라서 신선해 한대요. 자기들이 머리를 써야 하거든요. 그 과정에서 조금 더 재미를 느낄 수도 있어요. 협력게임이다 보니 ‘이걸 이렇게 하자’는 식의 이야기를 계속 나누게 된다는 점도 좋고요. 같이 이기거나, 같이 지거나.

예비 사회적기업을 1년 만에 받으셨어요.

생각보다 빨랐어요. 1년도 안 됐을 때 받았으니. 다들 사회적기업이라고 말씀해주시는데요, 어떻게 하면 선배 기업들처럼 좀 더 사회에 기여할 수 있을까 고민이 되긴 해요.

그렇게 생각해낸 게 기부 프로젝트예요. 보드게임이 나올 때마다 일정 부분을 지역아동센터에 기부해요. 그냥 기부만 하는 게 아니라 가서 놀아주고 알려주는 활동도 함께요.

안상호 가치교육컨설팅 대표. 사진=이윤주 기자

이번 해에 목표가 있다면.

일단 사회적기업 안으로 들어왔으니 할 거면 제대로 하자는 각오입니다.(웃음) 올해 목표는 시즌 5까지 출시해보는 것입니다.

주제별로 공부를 많이 하셔야겠어요.

제가 굳이 공부할 필요는 없더라고요. 대신 자문을 얻죠. 너무 많은 공부를 해버리면 게임이 재미가 없어져요.

게임에 다 넣으려고 하니까요?

그렇죠. 이전까지는 공부하고 스스로 만들었어요. 그런데 전문가들이 참여하면 조언도 받고 홍보도 되고 더 좋더라고요. 저희가 다룰 주제가 한두 종류가 아니잖아요. 통일, 유기견 보드게임 등을 만든다고 치면 몇 달에 한 개씩 내놓아야 하니 개발주기가 짧기도 하고요.

방금 예로 든 통일, 유기견 보드게임도 재밌겠는데요?

사실 반려동물을 주제로 한 보드게임을 만들려고 했어요. 독일은 반려동물을 입양할 때 되게 복잡하대요. 가족들이 입양에 앞서 몇 번 보러가야 한다는 룰도 있고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사육장 같은 데서 입양하기도 하죠. 요새는 이런 부분에 관심도 많지만 그래도 사회적기업은 사람이 우선돼야 하니까 특수학교 설립을 먼저 생각했어요.

그렇군요. 그럼 이제 직접 게임을 체험해볼까요. 엔딩까지 안 봐도 되니까 살짝 맛만...

일단 한번 해보시죠. 다른 기자님은 끝까지 하고 가셨어요.(웃음) ‘모두의 학교’는 아직 시제품밖에 없어서 ‘낯선이의 투자’를 해보도록 하죠.

(게임을 펼친다)

안상호 가치교육컨설팅 대표. 사진=이윤주 기자

여기는 온새미로라는 굉장히 예쁜 마을이에요. 주택, 카페, 음식점, 공방 같은 예쁜 상점이 많다 보니 사람들이 블로깅(blogging)을 하기도 하면서 유명해졌어요. 그러다 보니 낯선이들의 투자가 계속 들어오는 거죠. 게임의 단계가 올라갈수록 낯선이의 개입이 커져서 이들로부터 마을을 지켜내기 힘들어져요. 이 마을의 상점들에 경쟁력(네모블록)이 점점 줄어들게 되거든요. 경쟁력이 한 개도 남지 않으면 프랜차이즈로 변해요.

투자가 들어오는데 왜 경쟁력이 줄어드는 건가요.

투자가 들어오면 임차인을 내쫓기 위해 낯선이들이 어떤 행동을 한다고 보시면 돼요. 프랜차이즈가 8개가 되면 우리는 게임에서 져요. 그러면 어떻게 이기느냐. 여기 공정임대료협약이라는 카드가 있어요. 실제로 성동구청에서 진행한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임대료 인상으로 세입자들이 떠나는 현상) 방지대책인데요. 이 계약 체결을 7군데에 하면 이기게 돼요. 게임이 끝나고서 이 게임의 한 가지 비밀을 말해드릴게요.

엄청 쉬워 보이는데요? 이 게임에 실패한 사람이 있었어요?

한번 해보시죠. 어렵다는 얘기도 많이 듣습니다.(웃음)

(30분 뒤)

으아 어어!! 아... (게임에서 졌다)

그렇게 이 마을은 평범한 마을이 되어버렸습니다.

어..어렵네요. 결국 온새미로를 지켜내지 못했어요.

사실 원래 이 게임은 질 확률이 높게 만들어졌어요. 이기는 게 어려운 이유는 그게 현실이거든요. 졌을 때 느낄 수 있는 감정으로 더 얘기를 나눌 수 있게 되기도 하고요. 어때요. 젠트리피케이션이 이전보다 더 잘 와 닿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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