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가 거품 없애기” vs “제약산업 말살”
“약가 거품 없애기” vs “제약산업 말살”
  • 최지현 기자 (jhchoi@the-pr.co.kr)
  • 승인 2011.09.14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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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가 인하 놓고 복지부-제약업계 ‘不通’

 

 

의약 산업의 투명성 강화 및 선진화를 위한 정부 정책이 잇달아 시행되고 있는 가운데 정부와 제약업계의 불협화음이 정점으로 치닫고 있다.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가 지난 8월 12일 동일 성분의약품에 대한 동일한 보험 상한가를 일괄 적용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약가제도 개편 및 제약산업 선진화 방안’ 을 전격 발표했다. 정부의 이 같은 방침에 대해 제약계는 제약산업을 말살하는 비상식적인 정책이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정부의 이번 약가 제도 개편 및 혁신형 제약기업 중심의 특성화 지원 방안의 취지는 복제약 중심의 약가 거품을 없애 건강보험재정을 흑자 전환하고, 영업에 치중돼 있던 제약업계를 R&D 중심으로 정비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춰나가겠다는 것이다.

제약계는 정부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그 시기나 규모 면에서 당장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정부 처사가 일방적이라고 맞서고 있다. 약가인하로 인한 수익 감소를 감수하면서 R&D 투자를 강화하라는 것은 모순된 발상이자 무리한 요구라는 것이다. 약가인하와 더불어 정부가 제시하는 ‘당근’ 도 섣불리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다.

복지부는 그동안 특허만료 전 약값의 68~70%였던 제네릭(복제약)의 상한가를 53.55%로 일괄 적용시키는 대신, 일정 규모 이상의 신약 개발 R&D 투자 실적이 있는 제약기업의 경우 제네릭 약가를 현행과 동일한 68%로 적용해 주고, 법인세 감면 등의 세제지원은 물론, 이번 대책에 따른유동성 위기를 예방하기 위한 금융지원 등을 실시한다는 방침을 내놨다.

하지만 제약계 입장은 반신반의다. 한 제약사 관계자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실제 지원 규모가 현실적인지, 메리트가 있는지 아직은 알 수 없기 때문” 이라며 섣부른 판단을 자제했다. 제약협회 관계자는 “선심성 멘트일 뿐” 이라고 일축했다. 복지부가 말하는 각종 지원 혜택들은 지식경제부의 최종 결정에 달린 것이지 복지부가 임의로 추진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R&D 관련 혜택도 제약산업에만 적용하는 것은 형평성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관련 법 제정 등 제도적 뒷받침이 이뤄지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라며 냉소했다.

 

제약 “일방적 밀어붙이기” 에 정부 “지속적 시그널 무시”

이번 정책에 대해 적잖은 기간 동안 논의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복지부와 제약계가 이토록 팽팽하게 대립각을 세우는 이유는 뭘까. 양측 입장을 들어보자면 제약계는 “정부의 일방적 태도 탓”, 복지부는 “제약계의 무심함” 이 그 원인이라는 등 서로 엇갈린다. 특히 제약협회 관계자는 “기회가 있었던 들 의사개진을 해도 일방적으로 나오는데 대수가 있냐” 며 정부 행태는 “마치 깡패와 같다” 고 항변했다. 한 제약사 관계자는 “예전부터 얘기돼 온 것은 맞지만 진짜로 이렇게 한꺼번에 들이닥칠 줄 몰랐다” 는 반응이다.

이에 대해 복지부는 건보재정 적자가 오는 2015년 5조 원에 달하는 등 건보재정 위기에 따른 전반적인 정비를 하고 있는 상황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지금의 혼란은 이 같은 정부의 의지를 제약계가 너무 안일하게 받아들인 결과라는 것. 복지부 관계자는 “의약산업의 체질을 개선하기 위한 첫 시도로 지난해 리베이트 쌍벌제를 전격 실시하는 등 제약업계의 기존 구조를 혁신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했다” 며 “설마 시행할까 했을 것” 이라며 제약계의 뒷북치기를 꼬집었다.

제약계 내에서의 소통 부재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한 제약계 관계자는 “복지부에 일방적으로 끌려갈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바로 제약산업계 창구가 일원화 되지 못해 한 목소리를 내지 못했기 때문” 이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과거에는 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속앓이를 많이 했다. 이번 약가인하를 통해 그동안의 외로움을 (제약협회에) 알리고 협회를 통해 한 목소리를 낸 것” 이라며 그간의 고충을 토로했다. 동시에 “제약계 내에서도 다양한 관점과 입장이 존재하기 때문에 어느 것 하나 속 시원하게 얘기할 수 없는 것이 현실” 이라고 덧붙였다.

 

“제약산업에 대한 이해 부족” vs “비효율 더 이상 방치 못해”

제약계는 약가 인하 정책이 정부의 제약산업에 대한 이해 부족 탓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 제약사는 “정부의 각종 정책들이 제약계를 압박하고 있다”며 “복지부가 제약계 실상을 모르지 않을 텐데도 무리하게 정책을 밀어붙이는 것이 답답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제네릭 원가를 감안할 때 53.9%로 도저히 수익을 낼 수 없어 많은 품목을 구조조정해야 할 판”이라며 “수익구조가 어느 정도 돼야 연구개발도 이뤄질 수 있는 것” 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정부는 타 산업에 비해 수익률이 높다고 하지만 이는 제약산업의 수익성을 잘못 파악하는 것” 이라고 지적하며 “광고비 지출이 많은 제약계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 수익률로 접근해선 안 된다” 고 말했다.

R&D 투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외국의 경우 신약 개발이 2차 대전 이후부터 적극적으로 이뤄졌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이제 막 싹이 나려는 단계인데 열매를 맺으라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한 제약사 관계자는 “산업체 상황을 봐가면서 정책을 시행해야 하지 않겠나. 신약 개발이 단기간에 되는 것도 아니고 5년에서 길게는 15년까지 걸린다. 정책 취지에는 공감하기 때문에 시간을 좀 더 달라는 것일 뿐인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 역시 “제약산업 특성은 하루 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투자와 연구, 노하우를 갖출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주장에 대해 복지부는 수익성 구조를 오히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나온 결과라는 입장이다. 복지부 관계자에 따르면 타사업의 부채비율이 100%인데 비해 제약업의 경우 절반 수준인 50% 정도. 그만큼 적극적 투자 없이 안정적으로 사업을 운영해 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제약사 R&D 투자비율을 따져봤을 때 상위 몇 개 사가 전체 투자비율의 80%를 차지하는 실정. 때문에 그동안 투자에 신경을 써온 제약사들을 더 늦게 전에 제대로 지원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일축했다.

재정 지원에 대해서도 내년 3월에 시행되는 ‘제약산업 육성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제15조 조세에 관한 특별 조항’을 근거로 들며 문제없다는 입장이다. 해당 조항에 따르면 ‘제약기업 M&A 촉진을 위해 기업인수, 합병, 분할 시 법인세, 취득세 감면’ 등을 추진할 예정이다. 글로벌 신약개발 R&D 지원 확대와 관련해서도 교육과학기술부, 지식경제부 등 3개 부처와 공동 추진해 2011년에서 2019년까지 1조600억 원과 국고 5300억 원이 투입될 것이라고 밝혔다.

복지부는 오는 12월, 관련 법규를 개정 및 보완해 내년 1월부터 약가산정방식을 변경·적용할 방침이다. 약가인하로 인한 소란과 관련해 “세부사항들이 남아 있는 만큼 제약계와 적극적으로 협의할 것” 이라며 어려울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반면 제약업계 측은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난감하다” 며 상대적으로 벅찬 기색이 역력하다. 제약협회 관계자는 “대화를 포기할 순 없고 지금과 같은 충격을 가하는 방식이 안 되게 제도시행을 단계적으로 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 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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