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행복 하십니까?
[기고] 행복 하십니까?
  • 이병권 (admin@the-pr.co.kr)
  • 승인 2010.06.11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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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권 한국메세나협의회 사무처장

일전의 어느 여론조사기관에서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현재 자신의 삶이 어느 정도 행복한가를 주제로 여론조사를 한 바 있다. 이른바 행복에 대한 국민들의 의식수준을 살펴보는 조사라 할 수 있는데, 결과는 반 이상의 응답자가 자신의 삶이 행복하지 않다고 답했고 행복하다고 응답한 사람은 불과 10%에도 미치지 못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한국인들의 어법인데, 굳이 ‘불행하다’라는 말 보다 많은 사람들은 ‘행복하지 않다’라는 애매한 표현을 선택한다는 점이다.

조사를 담당했던 여론조사기관 대표는 이러한 점이 바로 한국인들이 갖고 있는 체면문화의 반증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현재의 삶에 대해 자신있게 행복하다고 말 할 수 있는 사람이 극히 적은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불행하지는 않다는 표현으로 에둘러 자신의 불행한 처지를 다소나마 상쇄하려고 하는 것이 바로 정신적인 불행상태에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객관적인 경제수치로만 보면 2010년 한국인의 삶은 전 세계에서 행복한 수준에 속해야 한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세계 최상위에 속한다. 리먼사태 이후 경제성장율이 0.2%로 호주 등에 이어 OECD회원국 가운데 3위를 기록했고, 수출 규모도 세계 시장점유율이 2.6%에서 3%로 정부수립 이후 신기록이다. 국민 1인당 소득은 다시 2만달러를 향해 내달리고 있고, 외환보유고도 사상 최대치다.

자살률 1위…행복지수는 ‘최하위권’

이렇게 경제는 좋아지는데, 국민들은 과연 행복할까? 경제 외적인 숫자를 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행복지수’가 그것이다. OECD회원국 30개 나라 가운데 우리나라 국민들이 느끼는 행복지수는 23위로 최하위에 가깝고, 자살로 인한 사망률은 몇 년째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다. 지난해에만 1만 4천여명의 대한민국 국민이 스스로 목숨을 내놓았다. 20대 청년층의 자살율은 증가일로에 있다. 사교육비와 집값 부담으로 2020년에는 본격적인 인구감소가 예상되고 있다. 앞의 표현대로 ‘행복하지 않은’ 사회적 반증이다. 세계에서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것으로 알려진 희말라야의 소국인 부탄왕국과 비교하면 우리소득이 40배 이상 높다. 경제적 숫자로만 보면 그들보다 우리가 월등히 행복해야 하는데, 설명이 안 된다.

봄비가 추적거리는 지난 주말, 우연히 필자가 집어든 탁닛한 스님이 풀어쓴 ‘반야심경’에서 필자는 어렴풋한 한 가지 단상을 떠올려 보았다. 탁닛한 스님은 베트남 출신의 세계적인 영적 스승으로 불리며, 항상 ‘깨어있는 삶’을 강조하고 있다. 불교의 명상법을 일상 생활과 접목해 쉽고 재미있게 풀어 쓴 80여권의 저서를 발간한 ‘평화를 노래하는 살아있는 부처’라 불리는 분이다. 필자가 펼쳐든 ‘반야김경’에서 특히 눈에 띄었던 부분은 ‘공존’에 관련된 내용이었다.

불교적 원리에서 볼 때 세상 만물이 결국은 하나의 다른 모습이고, 다름을 통해 서로가 존재하니 다름을 존중하고 그 가치를 인정할 때 마음의 평화와 발전이 가능하다는 말씀이다. 다시 말해 행복지수가 올라가는 것이다. 우주와 본질도 공존의 원리이지만, 인간 역시 영육의 존재이니 정신과 육체가 다를 것이 없을 것이다. 인간사회를 구성하는 경제와 문화도 결국은 마찬가지로 하나의 수레바퀴를 돌리는 양축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물은 ‘하나의 다른 모습’…다름을 존중해야 행복

흔히 ‘먹고 사는 것이 해결되어야’ 하며, ‘문화예술을 즐기는 것은 먹고 살만한 이후의 문제’라고 한다. 일견 맞는 말 같지만, 제한적인 답일 수 밖에 없다. 탁닛한 스님이 설파한 ‘공존’의 원리에 따르면 정신과 물질의 선후가 없으며, 그 균형이 깨어질 때, 인간과 사회의 수레바퀴는 진행방향을 잃고 쓰러질 수 밖에 없음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히말라야의 소국 사람들은 비록 낮은 경제여건에도 불구하고 물질과 정신의 균형을 통해 우리 보다 월등한 행복지수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정신과 물질의 불균형과 파열은 역사적 몰락을 가져오기도 한다. ‘로마제국의 몰락’을 저술한 앤서니 기든스는 로마제국의 몰락원인 중 가장 큰 것이 바로 로마제국을 지탱할 수 있을 만큼의 정신적 성장이 뒷받침되지 않았던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중국의 영토를 사상 최대로 넓혔던 청나라 만주족의 실체를 지금은 찾아보기 어렵다. 한족의 문화에 철저히 합류되어 자신들의 정신과 정체성을 완전히 상실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가 문화예술에 관심을 갖고 인문학에 몰두하는 것, 바로 앞서 나가는 우리의 물질적 경쟁력을 곧추 세울 정신적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서이다. 언론인 정진홍씨는 이렇게 말한다. “빈곤은 밥과 돈의 문제이기 이전에 생각과 정신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빵일지 모르지만, 정말 긴요한 것은 ‘자존심의 회복’이기 때문이다”라고. 그렇기에 문화예술의 증진은 우리 사회의 정서와 낙후된 자존심을 회복하고 바로 우리의 경제를 발전시키는 ‘먹고 사는 것’의 문제이고, ‘행복지수’를 끌어올리는 중요한 과업인 것이다. 우리 스스로에게 다시 한 번 물어보자. ‘당신은 행복하십니까?’, ‘당신의 행복지수는 몇 점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 병 권
한국메세나협의회 사무처장

<주요 경력>

풀무원 홍보팀장
옥시 마케팅 팀장
해태제과 기업홍보부 수석부장
보광그룹 PDS미디어 기획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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