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가니와 트위터, 트위터와 도가니…
도가니와 트위터, 트위터와 도가니…
  • 박민정 (admin@the-pr.co.kr)
  • 승인 2011.11.01 10: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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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도가니’ 를 보았는가? 대답은 세 부류였다. ‘봤다’, ‘조만간 볼 예정이다’, ‘보지 않았지만 무슨 내용인지 알고 있다’. ‘안 봤다’ 는 단답형으로 대화가 끝나는 경우는 없었다. 영화 ‘도가니’ 를 관람했는지부터 시작해 이 열풍에 대한 여러 의견을 들었다. 그러나 일일이 묻지 않아도 이미 인터넷 포털 메인 화면만으로 알 수 있다. 현재 대한민국 사회는 ‘도가니’ 의 도가니 속에서 끓고 있다는 것을.

2011년 ‘도가니’ 바람을 몰고 온 것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이하 SNS), 그 중에서도 트위터다. 공지영 작가는 광주 인화학교에서 일어난 끔찍한 실화를 재구성, 2009년 ‘도가니’ 라는 소설을 세상에 내놓았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쓴 충격적 실화의 소설책’ 이라는 타이틀만으로도 책은 날개 돋친 듯 팔렸겠지만 작가는 그보다 먼저 인터넷 연재를 시작했다. 혹 연재 당시 매주 ‘도가니’ 의 연재를 기다리며 글을 읽었던 독자가 지금 이 글을 읽고 있을지도. 기억하는가? 공지영 작가는 2008년 겨울부터 다음해 5월까지 인터넷 포털 ‘미디어 다음 문학 속 세상’에 ‘도가니’ 원고를 연재하면서 조회수 1100만 돌파 등 열띤 호응을 받았다.

영화판 뒤흔든 트위터 입소문
쌍방향 소통이 가능한 인터넷 공간에서 사람들은 이 사건에 대해 의견을 주고 받고 함께 분노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인터넷이라는 가상  공간이 만들어준 공론장은 그 외연을 더 넓히지 못했고 우리 사회의 수많은 미해결 이슈들 중 하나로 잊혀져 가고 있었다. 그러다 SNS가 온 세계의 화두가 된 2011년, ‘도가니’ 사건은 영화 작품으로 다시 세상에 등장했고 트위터를 통해 공론장이 새롭게 형성, 뜨겁게 회자되고 있다.

처음엔 여느 영화와 마찬가지로, 요즘 트렌드라는 소소한 SNS 마케팅에서 시작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유명 작가의 원작 소설이 존재한다는 것과 바로 그 작가가 트위터 내 거대 트위터리안이라는 점. 하지만 영화 마케터들은 이런 마케팅에서의 장점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낙관적이지 않았다. ‘도가니’ 가 무거운 주제를 담은 사회 비판적 영화라는 이유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한국 영화 관객은 가벼운 오락 영화를 더 선호해왔다. ‘로맨틱 코미디’, ‘추석 극장가 조폭 코미디’ 등의 강세를 들지 않더라도 장르 영화에서조차 한국 시장에서 성공하려면 ‘웃음 코드’ 가 필수라는 나름의 검증된 현상이 존재한다.

재난 영화 ‘해운대’ 나 법정 장르 영화 ‘의뢰인’ 등에서도 한국인 정서에 기댄 코미디를 엿볼 수 있으며 이런 웃음 코드가 영화 성공에 일조하는 사례는 애써 찾지 않아도 많다. 이런 영화계 전반의 분위기로 인해 영화 ‘도가니’ 는 제작 단계에서부터 성공할 수 없을 것이란 말을 들으며 만들어졌다. 그렇기에 마케팅 단계에서도 우려만 한 가득이었던 작품이다. 그런데 이게 웬걸, 트위터 내에서 ‘영화 도가니, 유료 시사회 이틀 만에 8만석 돌파, 시사회만으로 박스 오피스 5위 기록’ 이라는 트윗이 퍼지기 시작했다. 뒤이어 유료 시사회 현장 후기가 속속 올라오고 시사회에 다녀온 사람들의 좋은 평과 평점이 줄줄이 이어지면서 그야말로 대박이 터졌다. 여기에 공지영 씨를 비롯한 유명 트위터리안들의 합세는 그 인기를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한 또 다른 요인이기도 하다.

이렇게 트위터를 통해 ‘도가니’의 가파른 흥행세가 예측되자 사람들은 얼마 전 트위터 입소문이 영화판을 뒤집어 놓은 또 다른 사건을 함께 연상했다. 바로 ‘7광구’ 와 ‘최종병기 활’ 의 이야기다. 개봉 전 ‘한국 최초의 3D 괴수 영화, 초호화 캐스팅, 100억 원대의 제작비’를 내세워 TV, 신문, 인터넷 등에 일방향적 홍보를 했던 7광구는 영화가 개봉되자마자 SNS 상에서의 혹평을 견디지 못하고 주저앉아 버렸다. 이와 반대로 최종병기 활은 개봉 전 기대주가 아니었다. 누가 봐도 흥행 강자가 될 것 같은 ‘7광구’, 해운대를 만들어낸 ‘윤제균 사단’ 을 등에 업은 ‘퀵’ 이 경쟁하는 가운데 운 없이 낀 영화 정도로 인지되고 있는 동안, 조용히 영화가 개봉했다. 그 후 상황은 완전히 역전. 트위터를 통해 호평 일색 입소문이 난 최종병기 활은 개봉 후 두 달이 넘어가는 지금, 결과적으로 상반기 최고 인기 영화였던 ‘써니’ 까지 제치며 올해 가장 많은 관객을 불러 모았다. 
 
기성 언론은 뒤늦게 엉거주춤…
이처럼 트위터는 소리 없는 강자를 띄우는 마케팅 툴로써의 함의는 이미 충족시키고도 남는다. 그러나 우리는 ‘도가니’ 사례에서 유의미한 맥락을 이것 말고도 하나 더, 읽어낼 수 있다. 그건 바로 ‘도가니’ 가 사회 비판 영화라는 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가 트위터에 있다는 것이다.

“원래 사회적인 주제를 다룬 영화는 잘 안 봐요. 보고나면 마음이 불편한 경우가 많아서요. 하지만 트위터리안들이 트위터 상에서 영화를 보고난 뒤에 나눈 얘기들을 보고 있자니 스크린을 마주할 용기가 생겼어요. 왠지 모를 의무감도 느꼈고요.” 지면상 다 소개할 수 없는 많은 인터뷰 내용들을 압축한다. 줄잡아 열에 다섯은 이런 의견을 전했다.

이처럼 사회비판적인 주제를 담은 영화를 원천적으로 기피하는 사람들까지도 트위터에서의 ‘도가니’ 이슈에 참여하면서 영화 ‘도가니’ 를 관람하는 것은 더 이상 오락적 선택의 문제가 아니며 모두가 참여하는 사회적 이슈를 ‘나도 함께 공유해야 한다. 혹은 그러고 싶다’ 는 인식을 갖게 됐다. 바로 이 점이 영화 ‘도가니’ 의 흥행 포인트이며 이러한 현상은 수많은 공중이 작품과 실제 사건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서로 대화를 해나가는 과정에 제약이 없는 ‘트위터’ 라는 자유로운 ‘공론장’ 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언론의 기능 중 하나는 공론장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기성 언론은 공론의 장을 만들기 보다는 언론의 입맛에 맞게 게이트키핑 하는 데에만 열을 올려왔다. 그러다보니 중요한 이슈의 지속성 또한 이어지지 못했고 2009년 소설 도가니가 출간되었을 때에도 사건에 대한 관심은 흐지부지하다 끝나버렸다. 하지만 2011년 현재 같은 사건에 대한 다른 추이를 지켜보며 우리는 SNS가 언론이 해야 할 역할을 더 잘 수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단지 한 편의 영화를 흥행시키는 마케팅 수단으로 조명 받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트위터 내에서 시작된 나비의 날갯짓이 기성 언론으로 하여금 지금의 도가니 태풍을 몰아치게 하고 있다. 언론이 아닌 트위터가 의제를 설정했다는 사실이 가장 놀라운 점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트위터리안들은 지속 가능한 토론의 장을 만들었고, 문제 해결 촉구의 단계까지 이끌어오고 있다. 기성 언론은 뒤늦게 엉거주춤 트위터의 여론을 따라가는 형국이 됐고 언론 내부에서 이런 현상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까지 나온다. 이쯤 되면, 트위터가 완벽하게 언론의 기능을 대체하고 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그 중에서도 언론이 지난 긴 시간동안 잊고 있던 ‘소통’의 힘을 되살린 것이 트위터의 가장 큰 공일 것이다.

영화 ‘도가니’ 의 흥행과 그 후 진행된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트위터를 포함한 SNS는 더 많이 주목 받고 있다. 한국형 PR활동의 고질적인 문제로 손꼽히는 불균형적이고 일방향적인 소통 방식을 균형적이고 쌍방향적인 그것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기대를 하게 만드는 SNS는 이제 우리 사회에서 대체 불가능한 소통의 통로가 되고 있는 것 같다.

 

 박민정  The PR 대학생 명예기자 
<이화여대 언론정보학과 3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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