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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야 사는 브랜드, 덜어야 사는 브랜드
죽어야 사는 브랜드, 덜어야 사는 브랜드
  • 정지원 jiwon@jnbrand.co.kr
  • 승인 2018.06.07 09: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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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모바일 시대 변화 성공한 사례들…생활의 불편·불합리 관찰하는 것에서 출발
모바일 시대 브랜드는 어떻게 바뀌고 무엇으로 승부해야 할까?
모바일 시대 브랜드는 어떻게 바뀌고 무엇으로 승부해야 할까?

[더피알=정지원] 최근 문의가 오거나 진행하는 브랜딩 프로젝트에서 ‘온라인’ ‘모바일’ ‘통합’ ‘플랫폼’ 관련 일의 비중이 현저히 높아지고 있다. 기업이 흩어져있던 역량을 통합해 집중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이제 사업 플랫폼 자체를 모바일에 두고 기존 인프라를 재편하고 있다는 것이 새삼 피부로 느껴지는 중이다. 문의해온 브랜드가 대부분 전통적인 오프라인 산업에서의 강자들이었기에 이들의 변화는 더욱 뼈아프지만 시기적으로는 좀 늦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다면 과연 모바일 시대를 사는 브랜드들은 어떤 각오와 어떤 생각으로 존재해야 할까?

제대로 죽어야 제대로 산다

폐업을 선고하고 3개월 만에 화려하게 부활한 브랜드가 있다. 패션 브랜드 베베(Bebe) 이야기다. 1976년 론칭 후 젊은 여성들과 셀럽들에게 사랑받았던 브랜드로, 자라나 H&M 등 패스트패션이 유행하고 온라인 쇼핑이 대세가 되면서 매출이 급감한 바 있다. 결국 2017년 4월, 175개 전 매장 철수를 발표하고 만다.

이 기간 베베를 인수한 투자회사는 대대적인 리뉴얼 작업을 진행한다. 가장 핫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투입하고 능력 있는 생산 파트너를 붙이면서 말이다. 많은 이들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이들은 3개월 뒤인 7월에 온라인으로 새로운 컬렉션을 발표하고 새롭게 구축된 온라인 플랫폼을 선보인다.

이 온라인 플랫폼은 철저히 밀레니얼과 Z세대를 정조준한다. 4명의 모델들은 가수, 싱어송라이터, 배우, 전문모델로 구성된 인스타그램 인플루언서들로 구성됐다. 이들은 억지 미인들의 인위적 포즈가 아닌 가장 자연스러운 표정, 구매에 가장 도움 되는 포즈로 젊은 세대들의 호응을 받았다.

폐업 신고 3개월 만에 화려하게 부활한 '베베'에서 운영하는 인스타그램.
폐업 신고 3개월 만에 화려하게 부활한 '베베'에서 운영하는 인스타그램.

베베가 그들이 가장 호응을 받던 드레스 품목에 집중하면서 여타 라인업을 싹 정리한 것도 성공요인으로 꼽힌다. 선택과 집중 아래 어떻게 팔 것인지 디테일하게 몰두한 것이다. 드레스 용도를 세분해 클럽파티용, 해변용, 졸업식과 같은 공식행사용 등 10개로 세분화했다. 베베를 선호했던 고객들의 최선호 속으로 파고들어간 셈이다.

매장이 없는 상태였는데도 당시 SNS 팔로어 800만명이 순식간에 반응했다고 한다. 그리곤 오프라인으로도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콘셉트스토어를 오픈하며 화려하게 부활한다. 뷰티바, 개인화 서비스, 토크쇼 등 다양한 경험을 선보인 신개념 매장으로 많은 2030들의 환호가 쏟아지고 있다.

175개의 매장을 일시에 철수하고 새롭게 시작한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결정은 아니다. 40년간 쌓아온 히스토리가 있는데 얼마나 두렵겠는가? 실제로 베베는 처음엔 3500만 달러만 투자받고 20개 매장을 철수하면서 점진적으로 리뉴얼하는 방향을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역시 천문학적인 비용이 수반되는 어려운 결정인데다, 무엇보다 해도 별로 티도 안 나면서 그냥 망해가는 이미지만 지속될 것이라는 리스크도 있다. 어떤 시점엔 좀 더 빠르고 공격적인 결정이 미래를 위해 도움이 되기도 한다. 그 결정이 설령 내 브랜드를 죽게 하고 다시 살려보는 절박함일지라도.

갑작스런 폐업, 철수 소식에 애도의 물결을 형성했던 베베는 불과 3개월 만에 온라인으로, 1년 만에 콘셉트스토어로 등장해 그 어떤 디지털 네이티브 브랜드보다도 더 영리하고 더 큰 환영을 받으며 재기했다. 온라인에 대처하지 못해 몰락했던 40년 된 브랜드가 무덤에서 다시 살아난 격이다. 자기가 가장 사랑받고 가장 잘했던 것을 무기로, 단 플랫폼은 모바일과 온라인으로 말이다.

불필요한 브랜드 택스는 뺀다

고품질, 친환경 제품을 3달러 균일가로 제공하는 온라인 플랫폼이 있다. 간편식품부터 가사용품, 화장품, 생활용품 등 200여 품목을 취급하는 미국의 온라인 스토어 브랜드리스(Brandless)이다.

브랜드명에서 드러나지만 이들의 전략은 불필요한 것들을 ‘덜어냄’에 있다. 독성을 덜어내고 GMO(유전자 변형 농산물)를 덜어내고 농약성분을 덜어내고 무엇보다 소비자들이 자동으로 지불하고 있는 브랜드료, 광고료, 패키지값 등을 덜어낸다. 이런 콘셉트가 우리에게 낯설진 않다. 가격을 덜어낸 노브랜드, 군더더기를 덜어냈던 무인양품, 운영·유통과정을 파괴한 달러쉐이브클럽 등의 브랜드를 이미 경험한 우리들이다.

브랜드리스 제품들.
심플함으로 차별화한 '브랜드리스' 제품들.

브랜드리스는 한발 더 나간다. 제품은 유사한데 브랜드가 붙은 타업체의 제품 가격은 브랜드리스보다 평균 40% 이상 비싸다. 브랜드리스는 이렇게 해서 더 붙게 되는 가격을 브랜드 택스(Brand Tax)라고 부른다. 소위 ‘브랜드 값’이다.

브랜드리스는 이 택스를 제거해 고객이 지불해야 하는 불필요하고 불합리한 비용을 덜어내겠다고 한다. 실제 온·오프라인 경쟁업체와의 가격비교를 통해 브랜드 택스를 얼마나 절감했는지 증명해주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생활용품의 민주화’를 지향하는 브랜드리스가 겨냥하는 경쟁자는 다름 아닌 전통적인 생활용품의 강자 프록터앤갬블(P&G)이다. 골리앗과도 같은 거대한 글로벌 브랜드 P&G에게 브랜드리스는 마치 이렇게 얘기하는 것 같다. “시대가 변했다. 모바일 시대의 밀레니얼에게도 여전히 P&G가 통할 것 같나?”

이들이 P&G, 월마트와 같은 전통적 제조·유통 브랜드들과 다른 점은 온라인 채널을 통해서만 소비자와의 접점을 유지한다는 점이다. 존슨앤존슨(Johnson & Johnson)의 CEO까지 역임했던 창업자 티나 샤키(Tina Sharkey)는 대다수 소비재 기업들의 고객은 유통업체들이지, 제품을 직접 구매·사용하는 소비자는 아니라고 지적하며 온라인 온리(online only) 리테일러로서의 강점을 언급했다.

실시간 데이터로 남는 소비자들의 정보와 피드백을 반영하면서 상품을 기획하는 온라인 유통점으로써 소비자가 왜 제품을 사는지 혹은 왜 사지 않는지를 알고 소비자의 입장에서 불합리한 것,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는 시각이다.

룰은 고객에게 있다

뉴욕에서 시작된 매키트릭 호텔(McKittrick Hotel)은 몰입형 연극 ‘슬립노모어(Sleep no more)’ 공연장이다. 호텔 전체가 무대로, 뒤집어서 말하면 무대가 없다.

여러 배우들이 1층의 볼룸에서, 2층의 바에서, 4층의 객실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각자의 이야기를 펼친다. 관객들은 흰 가면을 쓰고 입장한다. 공연 내내 흰 가면을 벗지 않을 것, 말하지 않을 것, 배우를 방해하지 않을 것이란 세 가지 약속을 하고 관객들은 층마다 임의로 흩뿌려진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며 공연은 시작된다. 그러나 내 눈앞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텅 빈 통로가 있을 뿐. 어느 배우도 내 시야 안에서 일목요연하게 이야기를 전개하지 않는다. 이 순간이 가장 당황스럽다. 알고 가도 그렇다.

관객이 마스크를 쓰고 관람하는 '슬립 노 모어(sleep no more)' 공연 장면. 

아무리 기다려도 공연은 시작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움직이기 전까지는! 가면을 고쳐 쓰고 운동화 끈을 동여매고, 배우를 찾아 뛰기 시작한다. 관객에게 둘러싸여 배우는 연기한다. 무대가 없으니 경계선도 없고, 배우를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우리는 충분히 원하는 만큼 다가선다. 그러는 동안 관객들은 공간의 새로운 법칙을 깨닫는다. 이 공연의 주도권이 관객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이제 사람들은 각자의 룰(rule)대로 공연을 진행한다. 흰 가면은 능동성을 자극한다.

매키트릭 호텔의 경험은 충격적이다. 그곳에서는 고정관념과 습관, 그리고 역할이 바뀌기 때문이다. 하나의 완결된 서사가 펼쳐질 거라는 고정관념, 앉아서 서사를 즐기는 습관, 그리고 연극의 주도권을 관객에게 넘기는 역할의 전복이 있다.

이제 오늘날의 고객들은 점점 마케팅의 룰이 자신에게 넘어오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미디언스(미디어 오디언스)의 파워가 그렇고, 실시간성으로 전개되는 검색과 리뷰의 향연이 그러하다. 전통적인 매체에 신뢰를 던지지 않는다. 역으로, 마케터들 역시 소비자 진영으로 넘어간 법칙들을 찾아내야 할 시간이다. 시간과 채널, 그리고 콘텐츠와 타깃팅. 모든 것이 새로운 룰로 정립된다.

이런 일련의 눈에 띄는 변화로 기업이 갖고 있던 주도권이 소비자에게로 넘어갔다고 착각해서는 곤란하다. 애초에 주도권은 고객에게 있었다고 보는 것이 맞다. 다만 그걸 찾지 못했거나, 지금까지는 고객 스스로 이를 드러내기가 어려웠을 뿐이다.

앞으로는 쉽사리 고객이 주도권을 놓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좋다. 단순히 플랫폼만을 온라인으로, 모바일로 구축한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답은 고객에게 있다. 룰도 고객이 쥐고 있다. 죽어가는 베베를 살린 것은 베베가 가장 사랑받았던 것에 집중하면서 밀레니얼 세대의 맥락을 찾았을 때였다. 브랜드리스가 빠른 시장 성장을 이어가고 있는 핵심요인은 고객에게 불합리한 점을 제거했다는 가치제안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변화는 고객의 삶 곳곳에 분포된 생활의 불편과 불합리, 문제점, 최선호점 등을 관찰하고 대화하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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