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에겐 한 가지 선택지밖에 없었을까?”
“왜 우리에겐 한 가지 선택지밖에 없었을까?”
  • 이윤주 기자 (skyavenue@the-pr.co.kr)
  • 승인 2018.06.21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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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기업을 찾아서 ⑫] 이지앤모어

[더피알=이윤주 기자] 불편함에 문제를 제기하고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그들을 선구자라고 부른다. 여기에 한 명의 선구자가 있다. 이름은 ‘이지앤모어’다.  

“여성들이 행복하게 월경을 맞이하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건강한 월경을 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지앤모어는 이와 같은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예비사회적기업이다. 똑똑한 월경 라이프를 꿈꾸며 대한민국 여성들에게 새로운 선택지를 만들어준다.

이 이야기의 시작은 안지혜 이지앤모어 대표의 장보기에서 시작된다.

안지혜 이지앤모어 대표. 사진: 이윤주 기자
안지혜 이지앤모어 대표. 사진: 이윤주 기자

전 6년 차 외식업 마케터였어요. 평소 월경이 규칙적인 편은 아니었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6개월 간 이어지기도 했죠. 누구보다도 생리대를 많이 사용하던 사람이었어요.

장을 보던 어느 날, 남편이 일회용 생리대 가격을 보더니 “이렇게 비싸?”하고 묻는 거예요. 매달 구매하는 필수품이 2~3만원이나 하는 게 이해할 수 없었대요. 전 그때까지 생리대 가격이 비싸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제3자가 그 사실을 처음 저에게 인지시킨 거예요. 이지앤모어를 시작하게 된 가장 큰 계기가 됐죠.

사실 온라인에서 구매하면 저렴하지만 급할 땐 마트나 편의점에서 사잖아요. 두 배에 달하는 가격을 보면서 왜 우리는 혜택도 없이 이런 불편함을 겪어야 하느냐고 문제의식을 느끼게 된 거죠. 그래서 생리대를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는 소셜커머스를 생각했어요.

생리대로 시작했지만 현재는 ‘월경컵’으로 더 유명하네요.

처음엔 생리대 가격 측면의 문제에만 초점을 맞췄어요. 그런데 시장조사를 하다 보니 비싸서 생리대를 사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비즈니스 모델을 변경했어요.

여성들이 가지고 있는 월경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아이들에게 지속해서 월경 용품을 지원할 방법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 거죠. 사실 저소득층뿐 아니라 노숙인과 장애인 등의 문제기도 하잖아요. 그렇지만 많은 분이 외면하죠. 종종 기업에서 생리대 1년 치를 지원해줬다는 보도자료가 나오긴 하지만 일시적이거든요.

그래서 저희가 지속할 수 있는 지원을 해보자해서 예비사회적기업으로 인증 받았어요.

정부에서 지원하는 친구들은 대부분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에요. 그보다 한 단계 위에 있는 차상위계층은 더 심각한 상황이어도 지원을 받지 못해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에만 지원이 몰리니까요. 그래서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을 도와주고 있어요. 저희와 협력관계인 부스러기 사랑나눔회와 밀알복지재단 등의 NGO 단체를 통해 이들에게 지원하고 있습니다.

국외에는 이미 생리컵 종류가 다양하다. 이지앤모어 제공

대한민국을 큰 충격에 빠뜨린 ‘깔창 생리대 사건’이 기억나요. (2016년 5월 여성용품을 살 돈이 없는 저소득층 가정의 소녀가 신발 깔창을 대신 이용한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2016년 5월 소비자가 1개를 사면 1개를 기부하는 크라우드 펀딩을 시작했어요. 그리고 그 사건이 터졌죠. 타이밍이 좋았다고 할까요. 덕분에 생리대 기부가 이슈화돼 매출도 많이 올라갔죠.

하지만 결국 기부되는 생리대 가격을 소비자들이 내야 하는 구조가 된 거예요. 처음엔 가격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작했었잖아요? 오히려 가격에 부담을 주고 있는 상황이 된 거죠.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 중에 눈을 해외로 돌렸어요. 월경컵, 월경팬티, 해면탐폰 등 다양한 월경용품이 시장에 나와 있더라고요. 반면 국내는 일회용 생리대와 면 생리대, 두 가지밖에 없었고요. 우리는 생리대에서 부작용을 경험하면 또 다른 생리대로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해요. 선택권이 없으니까요.

우리나라에는 왜 월경컵이 없는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서 본격적으로 고려하기 시작했어요.

그렇지만 큰 장벽이 있었다고요.

국내에선 월경컵이 안전하다고 품목평가를 받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요. 이 때문에 처음 제조하거나 수입을 시도하는 회사가 직접 안정성을 입증하기 위한 임상시험과 품목허가를 받아야 해요.

저희는 해보자고 했고, 크라우드 펀딩으로 5000만원을 모았어요. 이 시점에 인증을 받기 위해 식약처와 계속해서 미팅을 했는데 좀 더 빠른 방법을 일러주시더라고요. 해외에서 임상시험을 완료한 제품을 수입하면 된다는 거죠. 비용을 줄이고 국내 시장 형성도 빠르게 앞당길 수 있잖아요. 그렇게 작년 11월 품목 허가를 받았고 페미이사이클 제품을 수입하기 시작했어요. 이제는 이지앤모어 자체적인 제품 ‘블랭크컵’ 출시를 앞두고 있고요.

사실 월경컵이 많이 생소해요. ‘무섭다’ ‘위험하다’는 인식도 적지 않고요. 이에 대해 홈페이지에 ‘에디터K의 페미사이클 탐험기’ 콘텐츠로 재미있게 설명해놓으셨더라고요. 심리적 진입장벽을 낮추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페미사이클 탐험기. *사진을 클릭하면 해당 콘텐츠로 이동합니다

2016년 11월부터 매달 ‘월경컵 수다회’를 소규모로 진행하고 있어요. 50여종의 월경컵을 직접 만져보면서 어떤 제품이 나에게 맞는지 찾아볼 수 있어요. 평소 궁금했던 것들도 나눌 수 있고요. 2016년 11월만 하더라도 10명 모집하는 게 엄청 힘들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오픈하자마자 한두 시간 만에 매진돼요. 그만큼 관심이 많아진 거겠죠.

월경컵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전달하는 가이드 역할을 잘 해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처음부터 잘못 사용하면 오히려 ‘나와 안 맞네’라고 단정 지어버릴 수 있거든요. 이와 비슷한 사례가 탐폰이에요. ‘아파서 못 쓰겠다’는 사람이 매우 많거든요. 사용법을 잘 몰라 잘못 착용해서 아팠을 텐데요. 어디 물어볼 곳도 없었을 테고요.

‘월경은 참지 않긔’라는 페이스북 비공개 그룹을 만들었어요. (공개그룹에선 질문을 못 하시더라고요. 계정이 오픈돼 있으니까) 이곳에서 여러 고민과 질문이 오가는데 저희뿐만 아니라 가입된 많은 사람들이 대신 답변을 해줘요. 고민은 다 비슷비슷하거든요. 신청하면 아무나 들어올 수 있으니 기자님도 들어오세요.(웃음)

네. 바로 들어가 봐야겠네요.(웃음) 특히 기억에 남는 소비자가 있었나요?

저희 직원끼리 ‘명언’이었다고 생각하는 말이 있어요. “월경용품은 직진만 있고 후진은 없다”는 수다회 참석자의 후기요. 그 말인즉슨 일회용 생리대를 쓰다가 탐폰을 쓰면 일회용 생리대를 다시 못 쓰고, 탐폰을 쓰다가 월경컵을 쓰면 탐폰은 쳐다보지도 않는다는 거예요. 경험을 해보면 다르다는 걸 말하고자 한 거죠.

안지혜 이지앤모어 대표. 사진: 이윤주 기자
안지혜 이지앤모어 대표. 사진: 이윤주 기자

최근 SNS에 올라오는 콘텐츠 중에 생리통을 완화해주는 스위스 초콜릿이 눈에 띄더라고요. 이지앤모어 홈페이지에도 소개가 됐던데요.

저희가 만든 건 아니고요. 저도 먹어봤어요. 효과는… (웃음) 2만원이라 많이 비싸긴 하죠? (웃음)

(이 초콜릿처럼) 월경과 관련된 물건을 계속 찾고 있어요. 좋은 월경용품을 개발하는 중소기업도 많지만, 대기업의 그늘에 가려서 성장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거든요. 발굴해서 같이 홍보하고 마케팅하는 게 저희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요새 가지고 있는 고민이 있나요.

예전보단 고민이 많이 없어지긴 했는데.(웃음) 사실 저희가 월경컵을 판매하는 회사가 되는 게 목표는 아니잖아요. 여성들이 자신들의 몸에 맞는 월경용품을 찾게끔 선택지를 늘려주자고 해서 이 시장을 만든 건데, 지금은 오히려 ‘이지앤모어=월경컵’이라는 이미지가 너무 강해졌어요. 지금 고민은 이걸 어떻게 없앨 것인가….(웃음)

최근 월경컵을 제작하는 회사가 늘고 있어요. 근데 이지앤모어에 입점해서 같이 해보자고 하면 ‘너네는 경쟁사인데 너희랑 왜?’라는 반응이에요. 저흴 경쟁사라고 보시면 안 된다고 설득하죠. 월경컵 이미지가 앞으로 저희가 하는 사업에 장벽을 세울 것 같아요.

월경박람회에 참석한 한 여성이 자신의 고민을 적고 있다. 이지앤모어 제공

이지앤모어의 다음 스텝은.

월경컵이 아닌 또 다른 월경용품을 자체적으로 개발하고 있어요. 월경용품 시장에 최소한 5~6가지 카테고리가 있어야 여성들의 문제가 해결된다고 보기 때문이에요.

궁극적으로 모든 여성이 자신에게 맞는 용품을 찾고, 그때까지 가이드 역할을 잘 해보려고요.

인터뷰 후

지난 13일 롯데마트도 ‘생리컵’을 판매를 시작했다. 관련 기사를 안지혜 대표에게 공유하자 그다운 대답이 돌아왔다. 

선택권이 더 많아지면 좋지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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