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에 대한 VIP의 흔한 착각들(1)
기자에 대한 VIP의 흔한 착각들(1)
  • 정용민 (ymchung@strategysalad.com)
  • 승인 2018.07.05 11: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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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민의 Crisis Talk] 예의는 CEO가 차려야 한다
기업 오너나 대표이사 그리고 고위 임원들은 각자 자신만의 언론관과 기자에 대한 평소 생각에 기반해 언론과 마주한다. 그 과정에서 여러 해프닝이 발생하고 홍보실은 매번 홍역을 앓는다.
기업 오너나 대표이사 그리고 고위 임원들은 각자 자신만의 언론관과 기자에 대한 평소 생각에 기반해 언론과 마주한다. 그 과정에서 여러 해프닝이 발생하고 홍보실은 매번 홍역을 앓는다.
※ 이 칼럼은 3회에 걸쳐 게재됩니다.

[더피알=정용민] 최근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여러 장면에서 공통점을 하나 발견했다. 얼마 전 끝난 지방 선거 직후에도 그랬다. 한 당선자가 언론과 축하 인터뷰를 하는 도중 자극적 질문이 이어지자 인터뷰를 거부하며 소리치는 장면이 있었다. “기자들이 예의가 없다!” 말하는 모습이 보도되면서 그런 방식의 대응에 대한 찬반 논쟁이 일어나기까지 했다.

사실 기업에서도 비슷한 상황들이 연출되고 있다. 기업 오너나 대표이사 그리고 고위 임원들은 각자 자신만의 언론관과 기자에 대한 평소 생각에 기반해 언론과 마주한다. 그 과정에서 여러 해프닝이 발생하고 홍보실은 매번 홍역을 앓는다.

이를 우려해 일부 기업에서는 미디어트레이닝을 통해 회사의 VIP들에게 언론 대응 방법을 소개하기도 한다. 업계에서 수십 년간 잔뼈가 굵었고, 연세도 대략 50~60대인 VIP들에게 ‘기자 앞에서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소개하는 모습도 어찌 보면 참 재미있는 장면이다.

매일 매일 기자를 만나고 그들과 커뮤니케이션하는 정치인들도 종종 기자 앞에서 실수를 한다. 수십 년간 언론에 몸담았던 분들도 퇴직 후 후배 기자들을 만나 설화를 만들어낼 때가 있다. 학자로서 평생 쌓아온 언론 전문가 명성을 술 한 잔에 잃어버리기도 한다. 이 같이 언론에 대해 자칭 타칭 전문가라 하는 분들도 기자 앞에서 자칫하면 문제를 일으킨다.

그런데 일반 기업 VIP들의 상당수는 언론 전문성이나 경험조차 없이 기자를 대한다. 매일 매일 기자와 밀고 당기는 커뮤니케이션을 해보지 않았다. 반면 언론사와 기자에 대한 편견은 개인별로 가득하다. 기자를 대부분 싫어한다.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일선 임원 시절 언론에게 ‘당했던’ 충격적인 트라우마를 지닌 분도 있다. 이런 VIP들이 회사를 대표해 기자와 마주하니 회사 차원에서는 좌불안석이 될 수밖에 없다.

기업 홍보실에서 감히 VIP에게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정리해 본다. 기업 VIP들은 물론 유명 정치인과 셀러브리티 상당수가 가지고 있는 기자에 대한 공통적 착각을 12개로 나누어 소개해 본다. 평소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왜 문제가 될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기자가 예의가 없어

기자는 원래 예의가 없다. 기자는 기업인이나 정치인 앞에서 예의를 차리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대만의 유명 여성 저널리스트 저우위코우(周玉蔻)는 기자의 예의에 대해 이런 말을 했었다. “저널리스트의 전문성은 예의에 있지 않다. 저널리스트는 질문을 제대로 해야 하며 이를 통해 진상(진짜의 모습)을 찾아내야 한다.”

기자는 질문하는 사람이다. 그 대상이 일반인은 아니다. 다른 사람들 보다 더 많은 특수 정보를 가지고 있고, 강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일거수일투족이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부류의 VIP에게 질문한다. 그들에게 예의를 차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VIP가 좋아하는 질문만 해야 한다는 의미일까? VIP에게 마음에 들게 행동해야 한다는 것인가? 그렇게 하면 진짜 진상을 파악할 수 있을까? 제대로 된 질문이 핵심일 뿐 기자에게 예의는 핵심이 아니다.

기자에게 예의를 따지고, 무시하며, 훈계하고, 화내는 그 모습 자체가 오히려 더 위험한 문제다. “예의를 차리라”는 훈계의 저변에는 “나는 네가 싫다” “그 질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라는 생각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일부 예의 없는 기자들은 답변자의 그런 반응이 더 고마울 때가 있다. 일용할 양식을 얻었다 생각할 것이다. 예의를 따지며 기자에게 화내는 모습이 TV 영상으로 반복되고, 다양한 캡처컷이 온라인에 떠돌게 된다. 기자는 원하는 것을 얻은 반면 답변자는 소중한 것을 잃은 셈이다. 이 모두가 예의를 따지다 발생한 일이다. 기억하자. 기자의 질문이 예의 없는 것인지 예의 있는 것인지는 결국 국민이 판단한다. 국민의 시각에 맞춰 대응하자.

#내가 무슨 일을 잘못했다고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사람에게 다가가는 기자는 없다. 어떤 일이든 무언가를 한 사람에게 가서 생각 또는 책임을 묻는다. VIP에게 기자가 마음먹고 다가갈 정도라면 그때는 어떤 일이 실제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가오는 기자를 보며 당황하는 VIP는 자신이 왜 당황해 하는지를 스스로 알고 있을 것이다.

이때 스스로 나서서 위와 같이 잘잘못을 따지는 경우가 있다. 기자가 질문했을 때 스스로 잘잘못을 이야기하는 것은 이미 기자가 깔아 놓은 덫에 걸려들었다는 의미다. 일단 기자가 다가오면 내가 취재 대상이 되고 있구나 생각하는 게 차라리 편한 마음가짐이다. 왜 나를 취재하는지 묻지 말자. 어떤 질문을 하는지 잘 들어보자. 그리고 답변 대신 시간을 벌면 간단하게 끝이 난다. 갑작스럽게 다가온 기자에게 즉석에서 답을 하고, 세세히 설명하면서 잘잘못까지 따지는 건 실패한 대응이다.

기자는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하는 것이고, 그 일을 더 잘하기 위해 VIP에게 다가온다. 이를 보는 VIP는 해당 기자가 자신의 일을 하고 있을 뿐이라는 관점을 가져야 한다. 기자가 취재를 더 잘해낼 수 있도록 일부러 도와줄 필요는 없다. 기억하자. 기자의 질문에는 담담하게 정해진 대응을 하는 것뿐이다. 서로가 해야 할 일만 한다는 생각을 하자.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5일 오전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말 한 마디 없이 법원으로 들어섰다는 타이틀이 달린 기사들이 생산됐다.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5일 오전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말 한 마디 없이 법원으로 들어섰다는 타이틀이 달린 기사들이 생산됐다. 뉴시스

#내가 누군지 알고

‘감히 나를’ ‘감히 나에게’라는 생각은 기자 앞에서 좀 접어버리자. 기자가 눈앞에서 깐족거리고, 부정적인 표현을 쓰고, 비아냥대는 시각을 거론할 때도 있다. VIP 개인적으로는 당황스럽고 화나고 기자가 밉게 느껴진다. 어느 누구도 자기 앞에서 이런 식으로 굴어 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일부 상황에서는 기자의 인간성을 평하기도 한다.

마음속으로 그렇게 느끼는 것은 자유다. 그러나 기자의 질문에 대한 대응은 정해진 그대로 실행돼야 한다. 기자에게 화를 내는 것은 국민들에게 화를 내는 꼴이 된다. 기자에게 하는 욕은 국민들을 향한 욕설이 된다. 기자를 밀치고 때리는 것은 국민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모습으로 해석된다. 그런 기사와 보도를 통해 결과적으로 VIP나 회사에게 피해를 끼친다.

기업을 대표하는 VIP라면 기자를 통해 국민에게 이야기한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기자 앞에서 공손해야 하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신중해야 하고 다정다감할 필요가 있다. 언론 커뮤니케이션에 있어 관점의 중심은 국민이다. 기억하자. 절대 VIP 자신이나 앞에서 알짱거리는 기자가 중심이 아니다.

#기자면 공부 좀 하지?

기자는 답변자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기자가 어눌하게 잘못된 정보를 기반으로 질문할 때도 그 진의는 의심해 보아야 한다. 말도 안 되는 질문을 하면, 그 질문을 말이 되게 바꿔주고 답해주면 된다.

틀린 질문은 당연히 틀린 답변을 낳는다. 기자의 질문이 이상하거나 틀렸다면, 이를 교정하고 답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면 일부 기자들은 자신의 질문 전략이 좀처럼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잔기술을 써도 나는 정식으로 대응한다는 VIP의 스탠스가 중요하다.

그러지 않고 기자에게 공부해라, 몇 년차냐, 아무 것도 모르면서 무슨 취재를 하는가 등의 개인적 평가를 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질의와 응답 범위를 벗어나 감정의 영역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확실한 것은 기자의 감정을 상하게 한 다음에도 성공한 언론 커뮤니케이션은 없다는 사실이다. 기억하자. 시종일관 상호간의 감정 관리는 매우 중요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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