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구는 1초, 사용은 1년, 폐기는 100년
욕구는 1초, 사용은 1년, 폐기는 100년
  • 이윤주 기자 (skyavenue@the-pr.co.kr)
  • 승인 2018.07.11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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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기업을 찾아서 ⑬] 터치포굿

[더피알=이윤주 기자] 서울 성동구 새활용플라자에 입주해 있는 사회적기업을 만나러 가는 길. 로비에는 일회용 컵이 무덤처럼 쌓여 있었다. 안내판을 보니 한 사람이 일 년에 버리는 일회용 컵은 512개. 참회하는 심정으로 인터뷰이를 기다렸다. 반성은 이날의 대화 내내 계속됐다.

서울 새활용플라자 로비에 위치한 작품. 사진=이윤주 기자
서울 새활용플라자 로비에 위치한 작품. 사진=이윤주 기자

터치포굿은 버려지는 자원을 재활용하는 사회적기업이다. 박미현 대표가 재활용지로 만든 명함을 내밀었다. 종이 한 장도 허투루 쓰지 않겠다는 마음이 담겨있다.

이들이 하는 사업은 현재 우리가 마주한 환경 문제와 연관돼 있다. 서울시 아파트 분리수거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든 쓰레기 대란, 마스크 없이 나갈 수 없게 만드는 미세먼지 등 일상생활과 밀접하다.

가령 평창올림픽 개회식 당시 남북 선수가 함께 계단을 올라 성화대로 향하는 장면은 국민의 마음에 깊은 감동을 줬다. 하지만 그 뒤 이야기를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터치포굿은 평창올림픽 때 나올 폐기물을 염려해 오래 전부터 연락을 시도해 개회 직전 뜻을 전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올림픽이 끝난 뒤 성화대를 향한 슬로프 계단의 재료인 나무판을 넘겨받았다. 버려졌을 나무로 ‘ㅍ’ ‘ㅊ’ 등의 자음을 형상화한 램프와 계단 모양을 본 뜬 굿즈를 제작했다.

평창올림픽 성화대 슬로프 계단 폐기물로 만든 램프. 사진=이윤주 기자
평창올림픽 성화대 슬로프 계단 폐기물로 만든 램프. 사진=이윤주 기자

“올림픽 스타디움 경기장에 남아 있는 폐기될 의자들도 많았어요. 다 가져오려고 했는데, 기적적으로 충청도에 있는 체육관이 고스란히 사용하겠대요. 너무 잘됐다면서 가져가시라고 했죠.”

이어 박 대표는 지난 6·13 지방선거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도 들려줬다.

박미현 터치포굿 대표. 사진=이윤주 기자
박미현 터치포굿 대표. 사진=이윤주 기자

공약은 친환경, 선거문화는 非친환경

선거가 끝나면 기다렸다는 듯이 현수막, 개표책상, 공보물 등이 길가에 버려진다. 한때는 누군가의 당선을 위해 만들어졌던 것들이 한순간에 쓰레기로 전락하는 것이다. 터치포굿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후보자에게 친환경 선거캠페인 체크리스트를 전달했다.

리스트에는 ‘저는 친환경 선거를 만드는 <    > 후보자입니다’란 제목으로 선거운동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환경 피해를 최소화할 방안이 나열돼 있다. 에코폰트 사용, 콩기름 인쇄를 적용한 공보물, 친환경 종이로 만든 명함 사용, 현수막 업사이클, 친환경 유세차량 이용 등 16가지다.

친환경선거를 위한 체크리스트. 터치포굿 블로그
친환경선거를 위한 체크리스트. 터치포굿 블로그

“친환경적으로 선거를 진행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목록으로 만들었어요. 선거 끝나면 당선자는 바쁘고, 안된 사람들은 잠적하는 등 관심이 사라지니 개표 전 미리 리스트를 돌렸어요.”

하지만 참여하겠다고 응답한 후보자는 달랑 8명. “각 당에 팩스와 이메일을 보내도 연락이 진짜 힘들어요. 후보자는 하고 싶어도 당에서 반대했다는 곳도 있었고요.”

참여한 소수 중에서 김상호 하남시장, 노옥희 울산시 교육감, 박원순 서울시장, 박명혜 부천시의원은 당선됐다. 결과는 아쉽지만 친환경 선거에 동참한 김종민 정의당 서울시장 후보, 고은영 녹색당 제주도지사 후보, 윤성일 정의당 마포구청장 후보, 송혜성 녹색당 파주시의원 후보 등도 있다.

터치포굿이 선거와 연을 맺은 건 처음이 아니다. 지난 대선 당시 후보자 현수막으로 만든 에코백으로 한 차례 이슈를 모은 바 있다. 에코백 안 쪽에 후보자 공약을 새겨 크라우드 펀딩으로 배포했다.

박 대표는 “이 캠페인이 잘 되려면 (선거운동이) 정책 중심으로 진행돼야 해요. 선거가 끝나면 약속도, 약속의 매개체도 버리지 말자는 의미거든요. 그런데 이번처럼 진흙탕이면 저희 같은 소소한 환경 캠페인이 끼어들 자리가 없어요”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다들 미세먼지를 해결할 거라고 말만 하지 매연 풍기는 차 끌고 다니면서 선거운동 했잖아요”라는 목소리엔 아쉬움이 가득했다.

버려지는 제품, 기업이 되사간다면?

‘쓰고 싶다’는 생각에 제품을 구매한다. 기업은 그 제품을 생산한다. 소비자는 사용하다가 버린다. 쓰레기의 탄생 과정이다. 터치포굿은 이러한 ‘자원의 라이프 사이클’에 문제를 제기했다. 해결책은 ‘리싱크(Resync) 캠페인’. 기업에서 지속적으로 폐기되는 자원으로 업사이클 제품을 만들어 기업이 되사가게끔 하는 방안이다.

“기존 재활용 사업에서 가장 안타까웠던 점이 ‘누군가 쓸모없어서 버린 것으로 만든’ 게 되는 거였어요. 그렇게 하지 말고 그 기업이 다시 쓸 수 있는 걸 만들면 되잖아요. 애초에 라이프 사이클을 바꿔내는 작업이 될 수 있어요.”

리싱크의 대표적인 사례는 아모레퍼시픽에서 나온 화장품 공병으로 훌라후프와 줄넘기를 만든 캠페인이다. 피부를 아름답게 했던 화장품이 건강을 위한 상품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의미를 부여했다. 제작된 상품은 아모레퍼시픽이 다시 사들였다.

LG화학 신입사원은 차량용 카시트로 친환경 핫팩을 만들어 노숙인에게 나눠주는 사회공헌을 했다. 또 제일모직은 삼청동 가로수 옷 입히기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겨울 내내 가로수가 빈폴을 입고 있었던 이유다.

최근에는 한화, 락앤락에서 나오는 플라스틱으로 레고 모양의 업사이클 블록수납상자를 제작했다. 플라스틱 폐기물이 나오는 기업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터치포굿의 신제품 '업사이클블록'. 터치포굿 페이스북 페이지
터치포굿의 신제품 '업사이클블록'. 터치포굿 페이스북 페이지

제품에 따라 유독 폐기물이 많이 나오는 기업도 있을 터. 하지만 그 이유로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진 않는다. “기업별로 특징은 있을 수 있지만 최대한 구분하지 않으려 노력해요. 컨설팅하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부터 상의해보자’라고 시작하는데요.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기업이 조금씩 해낸다는 그 자체에 의미를 두고 있어요.”

기업이 배출하는 폐기물 종류는 공장 당 100여 가지다. 그 중 유해성이 없는 것과 사람들이 알만한 재료를 추린다. 물론 기업 입장에선 ‘돈 주고 버렸는데 우리가 왜?’라는 의문을 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손해를 보기보다는 마케팅 효과가 더 크다는 게 박 대표의 설명이다. 남들은 버리지만 우리는 이렇게 신경 쓰고 있다는 의미를 전할 수 있을뿐더러, 업사이클 제품 자체에 어떤 제품으로 만들었는지가 묻어나 친환경적 기업 이미지로 어필하기 좋다.

“실제로 이번 쓰레기 대란 당시 많은 기업이 공격받았어요. 이들은 내부적으로 폐기물에 대해 고민하지만 그 부분을 쉽게 드러내진 못해요. 드러내는 순간 욕을 먹으니까요. 저희가 컨설팅 파트너가 되어주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니 언제든지 문의해 주세요.”

업사이클에 대한 편견

“누군가는 쓰레기를 만드는 주제에 왜 이렇게 비싸냐고 말할 수 있지만 사실 핸드메이드에 가까워요.”

업사이클 제품은 여러 종류의 폐기물로 제작한다. 일일이 선별해 세척하고 재단하는 수고가 들어갈 수밖에 없다. 박 대표는 업사이클 제품은 비싸다는 편견에 대해 “사실 저희가 제대로 된 값을 받는 거고, 오히려 기존 (저렴한) 업사이클 제품이 착취된 가격일 경우가 많다. 내가 싸게 쓰기 위해 누군가 적게 받은 거”라고 설명했다. 현재 터치포굿은 저소득층 여성, 지역 소규모 공동체와 함께 재단과 분류 과정을 거치고 있다.

“저희는 제대로 된 값을 받고 제대로 된 제품을 만들자는 게 철칙이에요. 그래서 터치포굿(좋은 상품)이란 이름을 쓰는 거고요. 재활용이라도 제대로 된 물건을 만들지 않으면 안 하느니만 못한 거니까요.”

세척에 대한 부분을 강조하다보니 청결에 대한 문의는 거의 들어오지 않는다. 소비자에게 신뢰를 주기 위해 유해성 검사도 마쳤다. “우리가 가죽 가방을 사면 나는 냄새 있죠. 오히려 사람들은 ‘가죽이니까 당연해’라고 여겨요. 그런데 그게 1급 독성물질이에요.”

박 대표는 “오히려 제품을 새것처럼 보이기 위해 다시 염색하면 다시 독성물질로 염색하는 것”이라며 “약간의 스크래치나 색이 바라져 있어도 세월의 흔적으로 봐 주시면 훨씬 건강한 제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터치포굿은 서울 성동구 새활용플라자에 위치한 소재은행 위탁사업자로 선정돼 오는 9월부터 운영을 맡게 됐다. 소재은행은 버려지는 자원을 가공, 세척을 대신해 판매한다. 예술인부터 업사이클링 기업까지 폐품 자원을 구하려는 이들을 위한 공간이다.

“업사이클 기업들은 1인이 운영하는 곳이 많아요. 그런데 폐품 소재를 공급하는 걸 어려워하시더라고요. 그런 분들이 디자인에 더 집중하게 하고 저희는 소재들을 대신 구해드리는 거죠.” 국내 1호 업사이클링 기업으로서 11년간 쌓인 인프라와 노하우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박미현 터치포굿 대표. 사진=이윤주 기자
박미현 대표가 세척된 재활용품 사이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이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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