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틀몬스터는 왜 제품 없는 매장을 만들었나
젠틀몬스터는 왜 제품 없는 매장을 만들었나
  • 이승윤 (seungyun@konkuk.ac.kr)
  • 승인 2018.07.16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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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윤의 디지로그] 디지털 시대 역으로 오프라인 공간에 주력…브랜드 경험, 바이럴 효과 동시 꾀해
젠틀몬스터(GENTLE MONSTER)는 독특한 공간 마케팅으로 경쟁이 치열한 선글라스 시장에서 자신만의 브랜드를 구축했다.
젠틀몬스터(GENTLE MONSTER)는 독특한 공간 마케팅으로 경쟁이 치열한 선글라스 시장에서 자신만의 브랜드를 구축했다.

[더피알=이승윤] 디지털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공간(space)의 의미를 재정의해 나가고 있다. 과거 기업들은 오프라인 공간을 그들이 판매하는 제품, 서비스의 배경이 되는 곳으로 생각했다. 디지털은 이러한 공간의 개념을 혁신적으로 파괴시켰다.

이제 오프라인 공간을 방문한 이들의 손에는 인터넷이 연결된 또 다른 판매 공간인 스마트폰이 쥐어져 있다. 즉, 반드시 소비자가 방문한 공간에서 제품을 판매할 필요가 없어졌다.

공간이 브랜드 콘셉트가 잘 녹아 있는 체험전달자 역할을 충실히 한다면 당장 오프라인 매장에서 판매가 이뤄지지 않더라도 추후 고객의 선택을 기대할 수 있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 시대, 공간은 제품 판매를 위한 배경이 아니라 그 자체가 존재감을 갖고 소비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게 됐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많은 브랜드들이 제품 자체를 판매하지 않는, 독특한 오프라인 매장을 만들어가고 있다.

대중목욕탕을 그들만의 쇼룸으로

몇 년 전만 해도 선글라스 하면 한국 소비자들은 구찌, 샤넬과 같은 수입 유명 브랜드들을 떠올렸을 것이다. 이런 명품 브랜드가 서로 피 튀기게 경쟁하는 선글라스 시장에서 한국 토종으로 승승장구하는 브랜드가 있다. 선글라스 한 품목에 집중해 연 매출 1500억원을 달성한 젠틀몬스터(GENTLE MONSTER)가 그 주인공이다.

콧대 높기로 유명한 세계 1위 럭셔리 그룹인 루이비통 모에헤네시로부터 2017년 600억원 가량의 투자를 받고 전지현, 틸다 스윈턴과 같은 국내외 유명 연예인들과의 흥미로운 콜라보 마케팅으로 주목은 곳이다. 하지만 젠틀몬스터 성공에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는 것은 바로 독특한 공간 마케팅이다.

젠틀몬스터의 공간 전략은 크게 두 가지로, 서로 다른 성격을 가진 공간들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하나는 제품의 판매처라는 이미지를 가능한 숨기려 노력하는 오프라인 플래그십 ‘쇼룸 스토어’다. 다른 하나는 제품 자체를 위한 공간마저 없애버린, 제품을 판매하지 않고 오직 브랜딩을 위해 존재하는 컨셉 스토어 ‘배트(BAT)’다. 젠틀몬스터는 이 두 공간을 통해 끊임없이 고객들과 소통하려 노력하고 있다.

젠틀몬스터는 서울 계동 옛날식 목욕탕을 개조한 쇼룸 ‘배쓰 하우스(Bath House)’를 2015년 5월 오픈했다. 상용 목욕탕을 젠틀몬스터 콘셉트에 맞게 변화시켰다. 쇼룸에 들어가 보면 목욕탕으로 사용되던 보일러실, 사우나실, 욕탕 등이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다. 과거 목욕탕 그대로의 공간 곳곳에 자연스럽게 선글라스와 안경 같은 아이웨어 제품들이 노출된다. 이런 실험적이고 혁신적인 공간을 통해 그들이 소비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브랜드 정체성을 편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옛날식 목욕탕을 개조해 만든 쇼룸.
옛날식 목욕탕을 개조해 만든 쇼룸.

젠틀몬스터의 이 독특한 공간은 수많은 사람들의 방문을 이끌어냈고 브랜드 인지도 상승에 큰 역할을 했다. 찾아가기 쉽지 않은 장소였지만 SNS 상에서 좋은 방문 후기가 쏟아지면서 수많은 소비자들이 시간을 내서 흔쾌히 방문했다. 이후 가로수길, 홍대 등 다양한 장소에서 상품 판매라는 매장의 개념을 가능한 배제한 쇼룸들을 여럿 오픈했다.

고정관념 넘어선 콘셉트 스토어

독특한 쇼룸이 소비자들의 엄청난 관심을 받고 긍정적인 제품 판매로 이어지자 2016년 7월 젠틀몬스터는 새로운 공간 실험을 과감히 실행한다. 아이웨어 제품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공간인 배트(BAT) 스토어를 만든 것이다. 해당 매장은 안경 없이 철저하게 공간 그 자체에 집중한다. 주기적으로 콘셉트를 바꿔가며 공간 퍼포먼스를 연출했고, 젠틀몬스터가 추구하는 브랜드 가치를 공간에 담아내는 장소로 사용됐다.

예컨대 대중들에게 친근한 소재인 카페를 재해석해 ‘농장 속의 카페(Coffee in the Farm)’란 장소로 운영하거나, 이후에는 ‘코믹 북, 더 레드(Comic Book, The Red)’라는 콘셉트의 만화방으로 꾸미기도 했다. 특히 소비자들이 친근하게 느끼는 드래곤볼이나 슬램덩크와 같은 유명 만화책들의 표지를 모두 빨간색으로 특별 제작해 배치함으로써 공간 자체를 세련되게 재해석했다.

젠틀몬스터가 지속적으로 독특한 쇼룸 공간들을 만들어 소개하자 ‘예쁘다’ ‘멋지다’는 소비자 반응이 이어졌지만, 한편으로는 그 이상의 직접적인 체험을 주는 공간의 역할은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트는 제품을 돋보이게 하는 공간이란 고정관념을 넘어서서, 공간 자체에 관객들이 좋아할만한 오브제들을 만들고 그것들과 소통하는 형태로 직접 소비자를 참여시킴으로써 좀 더 브랜드 정체성을 밀도 깊게 체험하도록 구성했다.

온라인은 오프라인과 정반대에 놓인 대척점이라기보다는 상호보완하면서 서로에게 긴밀하게 영향을 주는 공간으로 판단해야만 한다. 과거 인터넷이 발달되지 않은 시대에는 오프라인 공간이 제품을 보여주는 배경 역할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판매가 이뤄지지 않는 단순한 예쁜 공간은 의미 없다고 평가받았기 때문이다. 디지털이 사방으로 뻗어나가 있는 지금 시대는 다르다. 이제는 오프라인 공간은 판매가 아니라 그 자체가 의미가 되는, 스스로가 주인공이 되는 곳으로 변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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