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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보호하는 사람들 ②] “길거리에 사직서 붙은 이유가…”
[을 보호하는 사람들 ②] “길거리에 사직서 붙은 이유가…”
  • 이윤주 기자 skyavenue@the-pr.co.kr
  • 승인 2018.07.18 13: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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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법인 벗…입법 활동으로 제도 개선까지

[더피알=이윤주 기자]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갑질 이슈가 떠오른다. 외신은 한국 고유명사로 ‘Gapjil’을 소개하고, 초등학교 장래희망 란엔 갑(甲)이 새롭게 등장할 정도다.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을의 목소리에 주목하는 기관·단체·기업이 있다. 각각의 심층 인터뷰를 통해 갑을 문제에 있어서 실제로 무슨 이야기가 오가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해외 사례 등은 어떤지 등을 두루 살폈다.

사단법인 벗 이동우 변호사

(왼쪽부터) 박지후 기획팀장, 하윤정 홍보팀장, 심기현 이사, 이동우 변호사 겸 상임이사
(왼쪽부터) 박지후 기획팀장, 하윤정 홍보팀장, 심기현 이사, 이동우 변호사 겸 상임이사

‘벗’을 소개해주세요.

국회에서 일하던 시절, 갑질 피해에 대해 실질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부분이 없다고 느꼈습니다. 변호사를 고용해도 본인들 이익이 중요하다 보니, 약한 자의 처지를 대변하기 보단 어쩔 수 없이 수임료를 많이 주는 쪽으로 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제도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구멍을 발견했고 이들을 돕기 위해 2016년 4월 벗을 설립했습니다.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해 현재 6명의 이사진과 3명의 실무진이 함께 운영 중입니다.

어떤 시스템으로 활동하시나요.

처음엔 불공정거래 측면에서 기업 간 발생하는 피해 사실에 대해서 지원해드렸는데, 직접 제보를 받아보니 일반적인 갑질 이슈가 많았습니다. 현재 범위를 넓혀서 자영업자, 일반 직장인까지 포함해서 상담을 진행 중입니다.

주요 활동은 피해 상담, 이슈화, 전문가 지원, 경제적 지원, 제도 개선 등입니다.

이슈화라면 기사화되는 것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네. 그런데 이슈화하려면 일차적으로 피해자 본인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생업 문제가 걸려있으니 민감해 하시거나 언론보도로 다뤄지길 꺼리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얼마 전 온라인상에서 사직서 포스터가 화제가 됐어요. 어떻게 기획하셨는지?

길거리에 붙어있는 사직서. 사단법인 벗 제공
길거리에 붙어있는 사직서. 사단법인 벗 제공

“본인은 사장님께서 친딸처럼 아껴주시고 조언해주시는 마음을 알지 못하고 체중감량을 하지 않았습니다. 체중감량을 하지 않으면 회사에 남을 수 없다고 사장님께서 여러 번에 걸쳐 말씀도 해주셨지만 체중감량을 하지 못했고, 회사의 품위에 맞지 않다는 이유로 사직을 권고 받았습니다.”

“본인은 사장님의 휴대전화 배터리 충전이 끝났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충전기 선을 분리하지 않았습니다. 이로 인해 사장님의 입에서 험한 욕설이 나오게 만들었고 회사의 소중한 자원을 낭비하였다는 이유로 사직을 권고 받았습니다.”

아직은 벗에 대한 인지도가 높지 않은 편입니다. 벗을 알리는 게 1차 목표였고, 그 다음이 저희 같은 기관이 있으니 주저하지 말고 상담하라는 메시지를 주려 했습니다.

포스터에 나온 사례는 실제 보도된 이야기들입니다. 얼마나 반응할까 걱정했는데, 거리에 나가보니 ‘이런 황당한 일이 실제로 일어나?’라면서 관심을 두는 시민이 많았습니다. 이후 실제로 들어오는 상담 건수도 늘었습니다.

주로 어떤 사례가 접수되나요?

피해자에게 2차 피해가 갈 수 있어 대부분 공개가 어렵습니다. 대신 공개가 가능하다고 했던 ‘가맹분쟁조정신청’ 사례를 소개합니다.

편의점 본사와 지점 간 일어나는 갑질이 많습니다. 내가 사장이 돼서 직접 운영하려고 가맹점을 낼 때, 본사는 ‘우리랑 거래하면 이 정도 수익은 가능해’라며 장밋빛 계획을 제시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을 때가 많죠. 그래서 계약을 해지하려고 해도 위약금을 내놓으라고 합니다. 또 지점에 재고를 떠넘기는 사례도 빈번합니다.

해결 과정을 설명해주세요.

벗 홈페이지에 제보하시면 내부적으로 검토를 합니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권력의 우위에 따른 불공정한 부분인지, 저희가 얼마만큼 도와줄 수 있는지 등을 봐서 채택합니다. 가령 재판까지 가서 패소하고 오시는 분도 종종 있는데, 이런 사례는 법률적으로 다가가기보단 다른 방안을 검토해봅니다.

현재 들어오는 사건 건수가 많진 않아서 대부분 통화로 직접 들어보는 편입니다.

최근 갑질 이슈가 연달아 터지면서 말할 수 있는 창구들이 많이 생기는 추세입니다.

맞습니다. 아직도 ‘신고해봤자 해결되겠어?’라고 여기는 분도 분명 있지만, 목소리를 높여야 내 권리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아졌습니다. 더 이상 숨지 말라는 메시지를 던져주고 싶습니다. 을이 소리를 내지 않았기 때문에 상하관계가 더 고착화되지 않았을까요?

어떻게 보면 모든 관계는 공평하기 참 어려운데요. 특히 자본주의 속성상 어디든 갑과 을의 불편한 관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앞으로 어디까지 개선될 수 있을까요.

시민들이 관심 가져주시고, 또 사회 각 분야에서 계속 이렇게 활동하는 분이 늘어나면 분명 나아질 수 있습니다.

현 정부도 결국엔 촛불혁명을 통해 출범했잖아요. 1년 6개월 전까지는 상상도 못 했던 일이었습니다. 지금 사회 분위기는 이런 일들에 굉장히 관심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쉽지는 않을 겁니다. 노력하고 시민들의 이야기를 언론에서 다룬다고 해도 하루아침에 오랫동안 형성된 갑을관계가 갑자기 바뀌진 않겠죠. 그 속도의 체감이 굉장히 더디고 안 되는 부분도 있겠지만 바뀔 수 있다고 봅니다.

벗의 활동 중 입법을 통해 제도를 개선하는 일도 있습니다. 현재 추진 중인 입법 활동이 있나요.

징벌적손해배상 제도를 활성화 하는 법안을 변호사들과 고민 중입니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 때 문제가 됐던 부분이기도 합니다. 실제 1억원의 손해가 났을 때 1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옵니다. 그런데 징벌적손해배상은 3억까지도 배상할 수 있게 됩니다. 현재 국내에선 가맹사업법에 도입돼 있는데, 단 한 번도 이와 관련된 판결이 나온 예가 없습니다. 왜 작동을 안 하는지 살펴보고 활성화할 수 있도록 준비 중입니다.

벗이 후원금으로 운영되고 있는데요. 후원금이 적으면 그만큼 다룰 수 있는 제보도 덩달아 적어지지 않을까요?

그럴 수 있습니다. 저희도 모든 분야, 모든 피해자를 상담하고 싶지만 인력의 한계가 있습니다. 대신 벗의 규모가 커질수록 사회의 사각지대를 더 없앨 수 있습니다. 벗이 더 많이 알려지면 그만큼 해결할 수 있는 제보가 많아지고 선순환 구조가 형성됩니다. 반대로 저희를 잘 모르시면 후원도 안 될 수밖에 없겠죠.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부당하거나 불공정하게 피해 당한 분들이 도움을 요청하고 고민을 나눌 수 있는 곳으로 가장 먼저 벗이 떠올랐으면 좋겠습니다. 주변인도 “벗에 한 번 가봐”라고 할 수 있는 기관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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