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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스케치] 치믈리에 자격시험이 남긴 것들
[현장스케치] 치믈리에 자격시험이 남긴 것들
  • 이윤주 기자 skyavenue@the-pr.co.kr
  • 승인 2018.07.23 12: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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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조’ 높인 다양한 이벤트 돋보여…동물보호단체 시위 해프닝도
제2회 배달의민족 치믈리에 자격시험이 열린 롯데 호텔. 사진=이윤주 기자

[더피알=이윤주 기자] 시험이라면 두근두근 긴장되는 것이 보통인데 웃고 떠드는 사람들이 더 많이 눈에 띈다. 지난 22일 롯데호텔에서 열린 제 2회 배달의민족(이하 배민) 치믈리에 자격시험장의 풍경이다. 표정은 각각이었지만 상당수 응시자들의 얼굴에서는 기대감이 묻어났다. 이때까지만 해도 참가자들은 계속 웃을 줄 알았지만, 그리 만만하기만 한 행사는 아니였다. 

예비 치믈리에 포토존. 사진=이윤주 기자

사전 모의고사 응시자만 58만 명. 2018 대학수학능력시험 응시자보다 많다. 이 중 모의고사에서 만점을 받은 2만 7000명이 추려졌고 추첨으로 선정된 500여명에게만 시험장 입장 티켓이 주어졌다. 54:1이라는 어마어마한 경쟁률을 뚫은 만큼 자부심을 가져도 될 터다.

이번 시험은 단순히 재미나 세간의 이목을 끌기 위한 이벤트가 아니다. 시험에 합격하면 진짜 ‘치믈리에 자격증’을 획득할 수 있다. 치킨가게 아르바이트를 하려면 이 자격증이 필요한 시대가 올까. 싱거운 생각과 함께 본격적으로 행사장을 둘러봤다.

치믈리에일을 서빙하는 배민 직원들. 사진=이윤주 기자

행사장 곳곳에서는 치킨의 ‘격조’를 높이는 장면들이 눈에 띄었다. 복도에 놓인 그랜드 피아노에서 다양한 치킨 CM송이 연주되는가 하면 웨이터 복장을 한 이들이 ‘치믈리에일’을 서빙하는 모습도 보였다. 치믈리에일은 배민이 치킨전문가와 함께 만든 맥주다.

가짜지만 그럴듯하게

응시자를 위한 공간, 대한민국 치킨전(展)도 볼거리였다. 이 중 바디페인팅을 한 행위예술가가 눈에 띈다. 자세히 보니 반은 프라이드, 반은 양념색이다. 온몸으로 ‘반반’을 표현한 이 남성은 사람들을 위해 열심히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명화 ‘진주목걸이를 한 소녀’는 파 머리와 치킨무 귀걸이로 장식한 소녀로 변신했다. 얼핏 원작과 다른 점을 찾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양손에 포크를 쥔 동상 ‘킴포크’는 두 개의 포크로 치킨을 찢어먹게 된 기원을 보여준다. 널리 알려진 매거진 ‘킨포크’를 교묘하게 패러디한 배민의 네이밍 센스가 엿보였다.

배민 치믈리에 치킨전. 사진=이윤주 기자

이 외에도 미국 켄터키 주의 한 카페에서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최초의 치킨 포장지, 뼈통과 치킨 집게의 탄생스토리 등이 눈에 띄었다. 대부분 ‘뻥’에 가깝지만 워낙 그럴듯한 설명 탓에 어쩌면 속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자세히 보면 흰색 무다. 사진=이윤주 기자
자세히 보면 흰색 무다. 사진=이윤주 기자

암막커튼을 걷고 들어가자 ‘무르띠에(Moortier)’라는 고급 액세서리가 전시돼 있다. 자세히 살피니 하얀 치킨 무로 만든 목걸이와 팔찌다. 뒤편에서는 치킨이 튀겨지는 영상이 계속 재생되는데 그 소리에 군침이 꿀꺽 넘어간다. 일종의 ASMR인 셈.

심지어 어디선가 치킨 냄새가 솔솔 풍겨오기도 한다. 큐레이터는 실제로 치킨을 튀기고 있다고 설명했지만, 자세히 보면 스크린 뒤 바닥에 치킨 박스가 얼핏 보인다. 뻔뻔하게(?) 큐레이션하는 이 사람의 정체는 다름 아닌 배민 마케팅팀 직원이다.

시험 보는 척 시식하기

행사장을 충분히 즐겼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치믈리에에 도전할 시간이다. 필기시험 시간은 30분. 문제 난이도를 살펴보니 치킨 좀 먹었다는 사람도 쉽게 풀기 어려울 법한 수준이다.

시험에 앞서 긴장한 수험생들의 모습. 사진=이윤주 기자<br>
시험에 앞서 긴장한 수험생들의 모습. 사진=이윤주 기자

아는 게 별로 없는 기자는 ‘찍기 신공’을 발휘해 10분 만에 답안 작성을 마무리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웬만한 자격증 시험 저리가라 할 정도로 진지하다. 수정테이프를 요청하거나 OMR 카드를 교체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OMR 카드이지만 채점은 배민 직원들의 손으로 이뤄진다.)

생각보다 어려웠던 시험. 사진=이윤주 기자

 

2번. 다음은 매장에서 치킨을 튀기는 소리이다. 잘 듣고 치킨을 총 몇조각 튀겼는지 맞히시오.
①6조각 ②7조각 ③8조각 ④9조각 ⑤10조각

9번. 다음 중 시즈닝(가루양념) 치킨이 아닌 것을 고르시오.
①치즐링 ②눈치콧떡 ③치토스 ④스낵후라이드 ⑤뿌링클

12번. 다음 중 뜨거운 기름에 닭을 넣고 일정시간 튀겨낸 오늘날 ‘후라이드 치킨’의 탄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들이 누구인지 고르시오.

①일본에 정착한 네덜란드 상인
②남아메리카 안덱스 산맥의 원주민
③미국 농장에 거주한 아프리카 노예
④몽골 징기즈칸과 시베리아 부족
⑤기원전 유프라테스강 유역에 거주하던 가산족

실기시험도 열기가 뜨거웠다. 

실기 시험을 위해 준비된 치킨. 사진=이윤주 기자

주어진 치킨 냄새를 맡는 사람, 한 입씩만 맛보고 고개를 갸웃하는 사람, 콜라를 3~4번 리필하는 사람 등 저마다의 방식대로 신중하게 시험에 임했다.

치킨을 맛보며 문제를 푸는 응시자들. 사진=이윤주 기자

그리고 대망의 문제풀이 시간이 다가왔다. 어렵고 헷갈렸던 문제를 위주로 답을 맞춰봤다. 튀기는 소리만 듣고 몇 조각의 치킨인지 맞추는 듣기평가는 채점 과정에서 실제 영상이 동원됐다. 맞춘 이는 환호하고 틀린 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MC 박수홍이 문제풀이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이윤주 기자

치킨 하나로 이렇게 다양한 문제를 낼 수 있을까하는 감탄과 함께 자격증 따기는 어렵겠구나 하는 직감이 머리를 스친다.

닭다리 모양의 가루가 흩날리고 있다. 사진=이윤주 기자

몰래카메라인 줄 알았던 해프닝

이날 행사가 순탄하고 재미있게만 흘러가지는 않았다. 사회자 박수홍이 오프닝 멘트를 이어나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무대 옆에서 대기 중이던 한 남성이 마이크를 잡고 별안간 ‘흙’과 ‘생명’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배민의 돌발 퍼포먼스가 아닌가 싶었는지 참가자들 사이에서는 “몰래카메라 인가?”라는 수군거림이 들려왔다.

곧이어 손 배민 광고 문구를 패러디한 피켓을 든 열 명 남짓한 사람들이 곳곳에서 뛰어나와 무대에 올랐다. 알고 보니 이들은 이날 시험을 비판하는 동물보호단체 회원들이었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행사 관계자들이 이들을 끌어 내렸고 참가자들은 웅성거렸다. 99.9% 완벽하게 준비해도 0.1%의 돌발변수가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준 장면이었다.

배민 문구를 변형한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인 동물보호단체. 사진=이윤주 기자

이와 관련, 장인성 배민 CMO는 행사 막바지에 무대에 올라 “예상치 못한 부분을 부드럽게 대처하지 못했다”며 “죄송한 마음을 전한다”고 말했다.

장인성 CMO가 무대 위에 올라 인사하고 있다. 사진=이윤주 기자

배민 홍보팀의 한 관계자는 “내부 직원들도 열린 마음이라 동물을 보호해야 한다는 사람들의 주장도 소중하게 생각한다”며 “다만, 반대를 표명하는 방식이 또 다른 사람에겐 아픔이 되는 방식은 안타깝다”는 생각을 전했다.

시험에서 사용된 컴퓨터용 사인펜에 적힌 문구. 사진=이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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