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행정처 ‘상고법원 홍보방안’, 뭐가 문제일까
법원행정처 ‘상고법원 홍보방안’, 뭐가 문제일까
  • 박형재 기자 (news34567@the-pr.co.kr)
  • 승인 2018.08.03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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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타 공공부처·기관도 ‘지면 구매’ 관행…불법적 목적, 행위 여부 따져야
양승태 사법부 당시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상고법원 홍보방안’ 문건들. 뉴시스
양승태 사법부 당시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상고법원 홍보방안’ 문건들. 뉴시스

[더피알=박형재 기자] 법원행정처의 ‘상고법원 홍보 문건’이 연일 논란이 되고 있다. 사법기관의 홍보활동 자체가 위법 소지가 있는 것일까? 숙원사업을 위해 언론을 설득하고, 광고 예산 집행을 통해 우호적 여론 조성에 나서는 건 여타 공공부처·기관이나 일반 기업에서도 비일비재한 일인데 뭐가 문제인 걸까?

법원행정처가 지난달 31일 공개한 196건의 문건에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중 상고법원 추진을 위해 국회·언론 등을 상대로 로비를 펼친 정황이 들어있다. 이들은 상고법원에 우호적 여론 조성을 위해 ‘전통매체 홍보전략’, ‘신문방송’, ‘뉴미디어 활용’ 등 구체적인 방안을 세우고 언론 칼럼과 기고문 작성, 전문가 좌담회 등을 진행했다.

조선일보에는 설문조사 결과를 제공해 상고법원 관련 우호적 논조의 기사가 나갈 수 있도록 하고, 해당 설문은 찬성 답변이 더 많이 나올 수 있도록 조사방법과 문항을 조정했다고 언급됐다.

이밖에 ‘BH(청와대) 설득 전략’, ‘상고법원은 민생법안이란 프레임 설정’은 물론 반대 의원과 변호사 대응방안도 문건에 포함됐다. 해당 자료를 직접 살펴본 결과 상당히 구체적이고 전략적이다. 

법원행정처는 ‘조선일보 홍보전략’으로 설문조사, 좌담회, 칼럼 등을 명시했다.
법원행정처는 ‘조선일보 홍보전략’으로 설문조사, 좌담회, 칼럼 등을 명시했다.

그럼에도 홍보 활동 자체만을 놓고 보면 법원행정처에 잘못을 묻기는 어렵다. 다른 부처나 기관들이 펼치는 정책홍보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신문사 광고협찬비를 지불하고 기사 개런티(guarantee)가 이뤄진 것도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실제로 미디어오늘에 따르면, 통일부는 한국경제신문과 함께 ‘통일부 29초 영화제’를 주최한 뒤 1억2000만원을 협찬하고, 한국경제에 인터뷰 등 4건의 기사를 노출한 예가 있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조선·동아·국민일보 등 5개 언론사가 한국수력원자력으로부터 수백~수천만원의 돈을 받고 ‘원전은 안전하다’는 내용의 협찬 기사를 써줬다고 밝히기도 했다. 

정부부처에서 발주하는 홍보용역 제안서(RFP)에도 중앙일간지 OO건, 방송사 OO건 식으로 언론보도 횟수를 구체적으로 요청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런 이유로 유력 방송사나 미디어들이 홍보성 콘텐츠 노출을 보장하며 공공PR 사업 유치에 직접 나서고 있다. ▷관련기사:공공PR 숫자로 정리해보니 

법적으로도 법원행정처의 PR활동을 문제 삼을 순 없다.

A변호사는 “법원을 흔히 재판하는 곳으로 알지만, 거기도 조직이기 때문에 인사, 예산, 회계, 홍보 등을 총괄하는 부서가 필요하다. 이런 역할을 담당하는 법원행정처에서 사법부가 전략적으로 미는 정책을 홍보하는 건 너무도 당연하다”고 봤다. B변호사 역시 “법원에서 상고법원이 왜 필요한지 당위성을 설명하는 정도의 내용이라면 문제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6월 1일 경기도 성남시 자택 인근에서 ‘재판거래 의혹’ 관련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6월 1일 경기도 성남시 자택 인근에서 ‘재판거래 의혹’ 관련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그러나 홍보라는 행위의 목적이 불법성을 띄거나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이 위법할 경우 판단은 달라진다. 

특정 언론에 수억원의 광고비를 지출하며 지면을 사다시피한 정황은 관행 쯤으로 차치하더라도 재판 거래 의혹, 상고법원 반대 인사의 개인정보 수집 의혹 등이 사실이라면 사법기관의 본분을 망각한 일탈과 다름 아니다. 

더욱이 PR행위의 목적이 공익 추구가 아니라, 법원 조직을 키우고 일자리를 늘리기 위한 것이라면 지탄받을 수 밖에 없다. 

A변호사는 “언론보도를 종합하면 홍보 행위가 재판거래 의혹 등 삼권분립 원칙을 어기면서까지 추진된데다, 상고법원 도입 목적이 겉으로는 국민의 재판 청구권 보장을 위한 것처럼 말하지만 사실은 사법부 조직 확대를 위한 것이라 비난이 거세지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현재 사법부는 인사적체가 심각해 고등법원 부장판사 직함을 못 달고 퇴임하는 판사들이 상당히 많으며, 새 조직을 만들어 덩치를 키우려는 법원이 여론조성  과정에서 무리수를 두다 문제가 불거졌다는 분석이다. 

B변호사 역시 “PR활동까지는 괜찮은데 재판 개입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명백한 직권남용에 해당한다”면서 “반대 측의 개인 활동 뒷조사 등은 불법의 여지가 다분하다”고 비판했다.

법원행정처 ‘상고법원 입법 추진을 위한 BH 설득 전략’ 문건에는 “상고법원 판사 임명에 관한 VIP의 인사권을 보장한다”고 적혀 있다. 
법원행정처 ‘상고법원 입법 추진을 위한 BH(청와대) 설득 전략’ 문건에는 “상고법원 판사 임명에 관한 VIP의 인사권을 보장한다”고 적혀 있다. 

한편,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정부 차원에서 공공PR 실태를 점검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국민 홍보를 위해 연간 적게는 수억에서 많게는 수십, 수백억원에 달하는 예산이 책정된다 해도 그중 상당수가 유력지에 홍보기사를 싣기 위한 ‘지면 구매용(Buying)’으로 쓰이는 것이 현실이다. 실질적 성과를 따지기보다 보고를 위한 성과 만들기에 치중하는 탓이다.

많은 정책 홍보가 구태를 벗지 못하고 있는 만큼 정부가 나서서 시대에 뒤떨어진 불필요한 관행을 손질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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