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아쓰기 언론이 150조 보물선 소동 키웠다
받아쓰기 언론이 150조 보물선 소동 키웠다
  • 안선혜 기자 (anneq@the-pr.co.kr)
  • 승인 2018.08.03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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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매체 신일그룹 측 자료 검증 없이 실어…“주장 타당한지 크로스체크 필요”
지난달 26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신일그룹 돈스코이호 기자간담회를 앞두고 많은 취재진들이 대기를 하고 있다.
지난달 26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신일그룹 돈스코이호 기자간담회를 앞두고 많은 취재진들이 대기를 하고 있다. 뉴시스

[더피알=안선혜 기자] ‘150조 보물선’ 논란을 일으킨 신일그룹이 투자사기 및 시세조종 의혹을 받고 있는 가운데 일부 언론들의 보도가 여론의 도마위에 올랐다. 별다른 검증 없이 회사 측의 보도자료를 받아쓰면서 피해자를 양산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다.

신일그룹은 지난 4월여부터 지역신문을 중심으로 자사가 돈스코이호를 발견했고 이를 7월 30일에 울릉도에서 전세계 최초로 공개하겠다는 보도를 내보냈다.

돈스코이호가 러일전쟁 당시 현재 가치로 150조원의 금화·금괴 5500상자와 함께 침몰한 것으로 전해진다는 배경설명과 함께, 러시아가 당시 전사한 승조원들을 위로하는 추모제 개최를 꾸준히 요구해 왔다는 등의 내용을 동일하게 담고 있다.

5월엔 이들의 요구대로 추모제를 개최한다는 내용을 담아 비교적 대중에 이름을 알린 일간·경제 신문들에도 같은 내용의 기사가 실렸다.

해당 기사를 실은 언론 대부분이 ‘울릉도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거나 ‘러시아 측이 돈스코이호가 하루빨리 인양되기를 손꼽아 기다리며 최대한 협조한다는 입장을 보였다’는 사측의 자료를 그대로 옮겨냈다.

국제법 상 소유권 문제라든지 사측이 주장하는 금괴 양이 과연 해당 함선에 실려 있을만한 양인지에 대한 검토는 보이지 않는다.

주가조작 의혹을 받고 있는 제일제강 인수 건을 전한 보도들에도 문제는 드러난다. 7월 초 신일그룹 대표가 제일제강과 주식양수도 계약을 체결하며 제일제강 최대주주가 됐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이 회사가 주장하는 사업 영역들을 검증 없이 그대로 전한 것.

해당 언론은 “신일그룹 주사업 중 하나인 아파트시공이 제일제강과의 시너지가 극대화 될것으로 보인다”는 해석까지 덧붙였지만, 신일그룹이 자신들의 모태라고 주장하는 신일건업은 지난 2015년 12월 법인등기부등본상으로 파산한 회사다.

게다가 신일그룹 측이 밝힌 바에 따르더라도 단지 ‘상표권’을 사들인 것으로 건설업을 보유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신일그룹 측이 배포한 보도자료를 거의 그대로 반영한 초창기 보도들.​​​
​​신일그룹 측이 배포한 보도자료를 거의 그대로 반영한 초창기 보도들.​​​

신일그룹 경영진은 현재 사기혐의로 경찰의 수사물망에 올라있다. 보물선 테마로 가상화폐를 발행하는 싱가포르 신일그룹 전 회장 유모씨는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 적색수배 절차를 밟고 있고, 신일그룹 전 대표는 이미 다른 사기 건으로 복역하고 있다.

돈스코이호 발견을 주장하며 공개한 영상마저 15년 전 해양과학기술원이 공개한 화면을 도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현재 피해를 주장하는 투자자들은 '신일그룹 사기 피해자 모임'을 결성, 100명이 넘는 사람이 참여한 상황이다. 논란이 확산되자 몇몇 언론은 과거 기사를 자사 페이지에서 삭제하기도 했다.

해당 건이 대중에 널리 알려지면서 언론의 집중 검증이 시작되긴 했지만, 이전까지 일부 언론이 보여준 태도는 우리 언론이 갖고 있는 고질적 병폐들을 고스란히 드러냈다는 지적이다.

이재신 중앙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처음부터 언론이 탐사보도에 들어가 잘못된 점들을 검증했다면 피해는 최소화됐을 것”이라며 “받아적기식 기사, 유사기사 반복, 타사와 변별력 없는 내용 등이 언론의 위기를 불러오고 있다”고 평했다.

송경재 경희대 인류사회재건연구원 교수(민주언론시민연합)는 “언론이 단발성으로 뜨는 주제를 급히 쫓아가기에 바쁘다 보니 이같은 일들이 벌어진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송 교수는 이어 “최근 언론 보도행태 자체가 검증 과정 및 자체 취재 시스템에 조금 문제가 있지 않나 싶다”며 “최소한 기자로서 기사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이들의 주장에 어떤 근거가 있는지를 정부 측 의견이나 관련 학자 의견 등을 통해 크로스체크 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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