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W 위기관리, 글로벌 실패사례 전철 밟나
BMW 위기관리, 글로벌 실패사례 전철 밟나
  • 정용민 (ymchung@strategysalad.com)
  • 승인 2018.08.06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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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명성 못 미치는 대응에 소비자 원성↑…실패 자초하는 10가지 이유

지난 7월 초부터 불거지기 시작한 BMW 화재 사고가 한 달째 계속되며 글로벌 기업 명성에 금이 가고 있다. 이슈 대응 차원에서 BMW코리아는 공식 홈페이지에 사과문과 함께 리콜 조치 등을 안내하며 대소비자 커뮤니케이션에 나서고 있지만, 문제의 원인이 여전히 불명확한데다 안전 점검을 받은 차량에서도 최근 화재가 난 것으로 알려지면서 소비자들의 불신과 불만이 더욱 커지고 있다.

BMW라는 글로벌 브랜드가 왜 이슈 및 위기 상황에선 ‘글로벌 수준’을 유지하지 못하고 원성을 사는 것일까? 이와 관련,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의 지난 칼럼에서 그 원인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승객 폭행 사건으로 불거진 유나이티드항공의 위기와 대처 미흡을 지적한 당시의 분석을 BMW 사례에 대입해 봐도 전혀 무리가 없다.   

BMW 차량 화재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안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6일 서울 영등포 BMW 서비스센터에 점검을 받으려는 차량들이 줄을 섰다. 뉴시스
BMW 차량 화재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안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6일 서울 영등포 BMW 서비스센터에 점검을 받으려는 차량들이 줄지어 있다. 뉴시스

[더피알=정용민] 약 십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이런 신화들이 존재했었다.

“글로벌 기업은 한국 토종 기업들보다 훨씬 위기관리에 대한 마인드가 좋다.” “위기관리 매뉴얼을 비롯해 체계가 잘 잡혀 있다.” “위기대응 역량을 유지하기 위해 훈련을 꾸준히 받는다.”

이런 환상적 이야기(fairy tale)가 여러 글로벌 기업 PR담당자들 사이에서는 상식처럼 통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몇 년 사이에 이는 정말 환상이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깨닫게 됐다. 글로벌 기업이 제공한 제품으로 인해 수많은 한국 고객들의 생명이 위협받는 위기가 발생했고, 세계적인 리콜 캠페인을 진행하면서도 한국 시장에서는 법을 내세우며 맞선 사례를 경험하면서다.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글로벌 기업들이 위기 시 어이없는 실패를 자초하는 10가지 이유를 짚어본다. 

첫째, 위기 시 로펌에 대한 의지 수준이 너무 높다.

국내 토종 기업들도 그렇지만 외국기업들의 경우 위기 시에는 거의 대부분 로펌의 이야기를 듣는다. 대형 위기는 항상 법정에서 끝나기 마련이라 이를 대비해서가 아니다.

로펌이 자신들의 위기를 관리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라 항상 믿고 있다. 심지어 위기 시 언론대응에 대한 가이드도 로펌에게 받는다. 리콜이나 QC(Quality Control)같은 이슈에서도 변호사에게 길을 묻는다. 한국지사의 의사결정 권한의 한계 때문일 수도 있지만, 의지 수준이 과도한 기업들이 많다.

법을 지키는 것은 기본이다. 기본에만 머무르는 게 최선은 아니다. 그 기본을 바탕으로 여론과 추가적인 이해관계자들까지를 케어(care)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대부분 크게 실패한 글로벌 기업들의 위기관리 케이스를 들여다보자. 공통점이 보일 것이다.

둘째, 한국에서 돈을 벌지만 한국인을 이해하지 않는다.

한국 지사장을 비롯해 주요 임원들이 외국인이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상당수의 글로벌 기업들이 한국인 지사장을 임명하고 있고, 사내 임원들의 수만 보아도 한국인들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아졌다. IMF 시절에는 이해되던 글로벌 기업들의 한국에 대한 몰이해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면 문제다.

“왜 한국 언론은 저렇지?” “왜 한국 소비자들은 그리도 감정적이고 공격적인가요?” “왜 규제기관들은 법에 근거해서 이야기하지 않죠?” 이런 질문들이 글로벌 기업 위기관리 위원회 미팅에서는 아직도 흔하다. 재미있는 것은 그들 질문자 대부분이 한국인이라는 것이다.

위기관리는 주요 이해관계자를 이해하고, 그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었어도 성공하기 힘든 도박이다. 그들을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으로는 해결될 문제가 없는 게 당연하다.

BMW 코리아 홈페이지 메인 화면. 상단에 사과문과 함께 리콜 조치에 대한 안내를 올려놓았다.
BMW 코리아 홈페이지 메인 화면. 페이지 상단에 사과문과 함께 리콜 조치에 대한 안내를 하고 있다.

셋째, 글로벌 본사의 훈수가 너무 많다.

글로벌 기업 위기관리 실무자들을 만나보면 항상 컨퍼런스콜에 대한 두려움을 토로한다. 시차를 거스르며 집과 회사를 가리지 않고 쏟아지는 컨퍼런스콜 압력은 그 자체가 ‘위기’다.

한국적 시각으로 보면 별 것 아닌 이슈에 대해서도 글로벌 본사에서 일하는 위기관리팀은 큰일이 난 것처럼 관여할 때가 많다. 각종 질문을 쏟아내고, 자료를 요청하고, 조언을 한다. 물론 큰 원칙에 대한 가이드라인은 감사하지만, 현지에서 위기관리를 실행하는 경영진과 실무자에게는 적용 불가능한 내용이 많다는 게 문제다.

사실 본사에 있는 그들도 위기관리 전문가가 아닌 경우들이 많다. 그들이 현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내리는 가이드라인이 적절한지 아무도 검증하지 못한다. “대체 초.쑨.아일.보(Chosun Ilbo)라는 매체가 어떤 곳이야?”라는 질문을 영어로 받아 답변하면서 시작하는 위기관리 미팅이 생산적이기는 힘들다.

넷째, 한국지사 리더의 의사결정 한계가 너무 뚜렷하다.

한국 내 경영을 맡고 있는 리더들이 위기일수록 중요한 역할을 해주어야 하는데 한국 지사 자체의 한계로 힘든 경우가 많다. 본사의 가이드라인을 받아 충실히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지사장 자신의 상황 파악과 대응 전략 의견이 본사에게 확신을 줄 수 있어야 함에도 그 과정에서 여러 주저함과 고민이 있다. 순수하게 로펌에 의지하거나 PR회사에 의지해서 의견을 정리하는 습관도 그래서 반복된다.

수많은 컨퍼런스콜과 수백 장의 서면 보고가 진행되기 이전에도 한국 지사장과 본사와의 담판 통화는 중요하다. 상황에 대한 공감대와 대응 전략 및 방향성에 대한 컨펌(confirm)은 그 대화에서 신속하게 정해져야 도움이 된다. 실무자들끼리 밤을 새우는 컨퍼런스콜이 위기를 관리하는 것을 별로 보지 못했다. 권한 위임 없이는 위기관리도 없다.

다섯째, 위기 시 언어 장벽은 넘기 힘든 해자(垓子)다.

글로벌 기업에게 위기가 발생하면 번역 업체들만 돈을 번다는 말이 있다. 위기관리 실무자들도 실제로 위기대응 시간의 상당부분을 ‘번역 감수’에 할애한다. 기자가 요청한 공식 스테이트먼트(statement)를 개발해 번역하고 본사 컨펌을 받아 재수정하고 재컨펌을 요청하고 하면서 하루 이틀이 지나간다.

본사의 컨펌을 받은 공식 성명을 한국어로 다시 번역하면 문장 논리나 구성이 엉성하다. 이미 기자들이 정한 데드라인은 수일을 넘겼다. 사용 불가한 메시지들만 남았다. 상황이 다시 진전되거나 변수가 나타나 완전하게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면? 처음부터 개발과 번역은 다시 시작된다. 또 시간은 흐른다.

번역이 곧 위기관리다. 결과보다 과정에 충실해야 좋은 위기관리 매니저란 의미다. 토종 기업들은 결코 이해하기 힘든 해프닝이다.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 밖을 둘러 파서 못으로 만든 곳을 ‘해자(垓子)’라 부른다. 위기 시 언어장벽은 성공적 위기관리를 막는 큰 해자다.

여섯째, 글로벌 원칙이라는 것을 위기관리 실행에 적용한다.

“우리 회사는 글로벌 회사라서 그렇게 못 합니다”라는 말은 글로벌 기업 실무자들에게는 어찌 보면 핵심메시지다. 이해가 갈 때도 있지만, 당연히 해야 하는 위기관리 실행에 대해 그리 이야기하면 옵션이 줄어든다.

몇 십 년 비슷한 원칙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 보니, 몇몇은 그것이 실제 글로벌 본사의 원칙이 아닌 경우도 있었다. 그냥 실무 임원과 실무자들이 그리 ‘믿고 있는 것들’인 경우다.

위기관리 실행에 있어 윤리를 따지는 기업 실무자도 있다. 순수 저널리즘을 논하거나, 컴플라이언스(compliance·위반행위 방지를 위한 일종의 준법의식 생활화)를 언급한다.

A라는 실행을 당장 하지 않으면 해당 위기가 재앙이 돼버린다 해보자. 글로벌 회사의 원칙이라며 A실행을 하지 않는 경우가 발생했다. 그로 인해 단순 위기가 재앙으로 악화되었을 때 글로벌 본사는 어떤 평가를 내릴 것인가? “비록 그런 재앙을 만들었지만 원칙을 지켰으니 훌륭하다”할 것인가? 유나이티드항공사도 최초 자사 직원들에게 그랬으니, 한국지사도 그렇게 평가 받을 수 있을까? 의문이다.

다국적 기업의 위기관리 역량은 본사에 국한할 때가 많다.

일곱째, 평소 스트리트 파이터가 되길 거부한다.

“저희는 외국기업이라 언론관계에 대해서 당당합니다.” “오보가 나면 바로 언론중재위로 가거나 소송을 하게 되어 있어요.” “기자와 식사를 하거나 술을 같이 하는 것은 저희 컴플라이언스 때문에 불가능합니다.” “본사에서도 한국 기자들의 기사는 크게 괘념치 않는 편입니다.” “부정적인 기사가 나면 저희는 그냥 맞습니다. 개선의 기회로 삼죠.”

한국 토종 기업 실무자들이 들으면 놀랄만한 이야기다. 영어만 잘하면 외국기업 가서 실무자를 하고 싶다는 일부 기업 홍보담당자들의 하소연이 이런 이유 때문이다.

위로부터 평소에도 별반 적극적인 언론대응 압력이 없는 글로벌 기업들이 있다. 물론 한국 지사장의 캐릭터에 따라 그 대응 압력은 천차만별이겠지만, 상당수의 글로벌 기업 실무자들은 평소 이해관계자 관리에 스트리트 파이터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다 생각한다는 게 더욱 정확하다. 일부에서는 관계(relationship)를 살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PR회사들이 있기 때문이다.

여덟 번째, 막연하게 잘되어 있다 믿는다.

“글로벌 회사는 원래 위기관리에 철저하죠.” 그건 본사의 이야기인 경우가 참 많다. 본사와 한국지사는 다르다. 위기관리는 사람이 하는 일이다.

우선 사람이 다르다. 본사에서 훈련 받고 있다면, 지사에서도 동일하거나 더욱더 로컬 지향적인 훈련이 있어야 맞다. 그들에게 잘 구조화된 수십 년짜리 매뉴얼이 있다면, 한국 지사에도 진출 이후 갈고 닦인 매뉴얼이 있어야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다.

몇 년마다 바뀌는 임원과 실무자들은 5~6년 전 자사에 발생했던 위기 케이스를 잘 모른다. 해당 위기를 관리했던 에이전시 임원들이 오히려 그들에게 당시 상황을 설명해 주는 경우가 있다. 매뉴얼은 수년마다 새로 만들지만 담당자가 바뀌면 온 데 간 데 없다. 일부는 본사에서 만든 매뉴얼을 번역해 보유하고 있다. 잘되어 있다는 자신감 자체를 정확하게 다시 돌아보자.

아홉 번째, 마케팅 근육만 강하다.

한국에서 글로벌기업들은 본사와 동일한 법인 구조와 경영 목적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대부분의 글로벌 기업들이 한국을 ‘시장’으로 본다. 당연한 이야기다. 그 시장을 위해 가장 강력한 근육에 먼저 집중한다. 마케팅과 영업이다. 반면에 위기가 발생하면 실행을 해야 하는 근육들은 기본적인 형태만으로 유지된다.

글로벌 차원에서 수십조 매출을 올리고, 한국 시장에서도 수천억원 매출을 올리는 글로벌 기업 한국 지사가 이런 말을 한다. “저희 홍보팀 예산이 없어요… 싸게 해 주세요.” “아시잖아요. 저희 신문에는 광고 안 하는 거요. 광고회사에서 효과 없다고 해서…”

이런 상황에서 한국 시장을 기반으로 하는 기업의 정무감각이나 여론감각, 이해관계자·언론에 대한 관계 자산 같은 위기관리 기본의 성장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크게 잃지 않으려면 먼저 써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진짜 경영인데 아쉽다.

열 번째, 평시 투자가 상대적으로 적다.

정부, 국회, 시민단체, 언론, 소비자, 각종 단체 및 기관, 커뮤니티 등 이해관계자들과의 관계는 기본적으로 돈을 주고 살 수 없다. 일부나 한 번은 가능할 수 있어도 그것을 지속시킬 수는 없다.

급할 때 잠깐 도움을 받고는 이내 사라져 버리는 글로벌 기업들에 대해 생각보다 많은 사회 내 이해관계자들이 불편함을 토로한다. 글로벌 기업들은 원래 그러냐고 묻는 이해관계자들도 많다. 다음 위기가 발생하면 그런 나쁜 기억들은 부메랑이 된다. 관계는 투자다.

국내 토종 기업들 중 제대로 위기를 관리하고 있는 기업들은 그런 관계 투자를 일관성 있게 해 자산화한다. 관계에 대한 투자를 범법이라거나 부정적 시각으로 보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런 시각을 견지하고 있기만 해서는 실제로 자사에 위기가 발생했을 때 도움 받을 수 있는 길은 요원하다. 보다 현명해야 한다. 전략적으로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우리는 ‘못하게 되어 있다’는 말보다 ‘어떻게든 해 나가야죠’라는 위기관리 의지가 필요해 보인다.

*이 칼럼은 2017년 5월 16일자에 게시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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