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반자였던 언론인-홍보인, 지금은 말 한마디가 무섭다”
“동반자였던 언론인-홍보인, 지금은 말 한마디가 무섭다”
  • 강미혜 기자 (myqwan@the-pr.co.kr)
  • 승인 2018.08.06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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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피알 100호 기념 인터뷰] 이순동 한국광고총연합회 회장

[더피알=강미혜 기자] 말 한마디가 빚을 갚는 게 아니라 온갖 억측과 해석을 낳는 시기다. 다른 생각과 의견을 이야기하면 공격당하기 십상이니 입을 다물게 된다. 때로 지나온 업력이 구설의 빌미가 되기도 하니 몸을 낮출 수밖에.

더피알 100호를 맞아 커뮤니케이션 업계 원로로 인터뷰에 응한 이순동 한국광고총연합회 회장도 “불필요한 오해를 사고 싶지 않다”며 신중하게 운을 뗐다. 서울 역삼동 개인 집무실에서 만난 그는 막상 대화가 시작되니 거침없이 말을 이어갔다.

이순동 한국광고총연합회 회장은...중앙일보 기자로 10년간 활동한 뒤 1981년 삼성전자로 이동해 홍보실장, 삼성 전략기획홍보팀 부사장, 삼성전략기획실 사장, 삼성브랜드관리위원회 위원장, 삼성사회봉사단 단장 등을 역임했다. 한국광고주협회 회장과 한국자원봉사문화 이사장 등도 지내며 근 반백년간 커뮤니케이션업계에 몸담고 있다. 사진: 성혜련 기자
이순동 한국광고총연합회 회장은...중앙일보 기자로 10년간 활동한 뒤 1981년 삼성전자로 이동해 홍보실장, 삼성 전략기획홍보팀 부사장, 삼성전략기획실 사장, 삼성브랜드관리위원회 위원장, 삼성사회봉사단 단장 등을 역임했다. 한국광고주협회 회장과 한국자원봉사문화 이사장 등도 지내며 근 반백년간 커뮤니케이션업계에 몸담고 있다. 사진: 성혜련 기자

더피알 창간 당시에도 ‘PR의 위기’란 말이 공공연히 나왔었는데, 지금은 완전한 현실 문제로 굳어진 것 같습니다.

광고도 진작부터 어렵다는 얘기가 많았지만 광고비를 보면 산업의 성장과 비교해 그리 줄지 않았어요. 오히려 늘었습니다. 단, 우리가 생각하는 전통적 광고, 즉 4대 매체의 사정은 다릅니다. 광고 물량이 네이버 등 뉴미디어로 빠져나갔거든요. 네이버에서 일하는 친구들을 봐도 사실상 광고 기능을 수행하지만 스스로를 광고인이라고 부르진 않습니다. 결론은 광고의 본질은 계속 성장하고 있지만 전통적 개념으로 봤을 때 어려워진 겁니다. PR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치·사회 등 각 분야에서 PR은 성장, 발전하고 있어요. 단지 기업PR, 그 중에서도 전통적 PR이라 할 수 있는 퍼블리시티(publicity·대언론관계)가 어려워지게 된 거죠.

언론계 사정이 안 좋다 보니 요즘 퍼블리시티는 너무 광고 중심의 논리로 가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돈 없으면 홍보 할 수 있느냐는 말까지 해요.

언론과 기업(홍보) 간 신뢰관계가 깨지면서 각자 본연의 역할, 목적을 잃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과거 언론인과 홍보인은 상호 동반자였어요. 좋은 기사를 잘 쓸 수 있도록 돕는 스태프가 바로 홍보인이라는 생각을 저도 했고 기자들도 했습니다. 광고 준다고 쓸 기사를 안 쓰고, 안 쓸 기사를 쓰고 그러지 않았어요. 언제부턴가 서로에 대한 불신이 깊어졌어요. 대화를 안 해. 그러니 더욱더 관계가 틀어질 수밖에요.

언론 입장에서 보면 인터넷 기반 매체가 워낙 많아지면서 경쟁이 심해진 게 조급해진 배경입니다. 생존을 위해 효율 위주의 기사를 찾다보니 너무 기업을 몰아세우는 형국이에요. 언론 본연의 기능은 워치독(watchdog) 아닙니까. 권력을 비판하고 감시해야죠. 그런데 지금은 너무 대기업에만 관심을 두고 워치 역할이 편중돼 있어요. 제일 안타까운 게 홍보인이 하는 얘기를 그대로 기사화하는 경우에요. 홍보인은 기본적으로 기자의 조력자지 취재 대상이 아닙니다. 그런데 요즘은 식사자리서 “회사 어렵죠?” 묻고 “아이고 힘들죠 뭐” 하는 말까지 그대로 쿼트로 내보내는 상황이에요. 무서워서 무슨 얘기나 할 수 있겠어요?

물론 이렇게 된 데는 기업 쪽 책임도 있습니다. 일단 기업 안에 있는 사람들은 기자를 안티(anti)하게 생각해요. 피해의식이 있어서 그런지 조금만 불편한 보도가 나도 기자들 욕하기 급급합니다. 근데 그 사람들은 나름 자기 역할을 하는 거잖아요. 기사 쓸 건 써야지. 시장경제가 유지되려면 언론이 제대로 역할 해야 하고, 그런 언론이 존립할 수 있도록 기업이 비용 부담을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게 삼성 재직 시절 늘 들었던 이건희 회장의 지론이기도 했어요. 그리고 솔직한 언론사도 기업인데 지속하려면 수익성을 고민해야 하잖아요? 물론 광고 자체만을 목적으로 둔 악성기사는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는 사실은 언론 스스로가 깨달아야하겠지만요.

이순동 회장(왼쪽)은 “경영자들이 사명감을 갖고 뛰도록 홍보팀(인)에 미션을 잘 안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진: 성혜련 기자
이순동 회장(왼쪽)은 “경영자들이 사명감을 갖고 뛰도록 홍보팀(인)에 미션을 잘 안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진: 성혜련 기자

과거 ‘미디어의 힘이 약해지면 PR 담당자들 또한 힘을 잃게 될 수도 있다’는 말씀을 하셨는데요. 실제 언론 신뢰도나 영향력이 떨어지면서 기업 내에서 홍보의 위상이 많이 하락했다는 목소리가 들립니다.

솔직히 제가 활동할 때만 해도 각 그룹 홍보책임자가 부사장급 이상이었는데 지금은 다소 떨어진 것이 사실입니다. 다만, 홍보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경영자들이 사명감을 갖고 뛰도록 미션을 잘 안 주는 거 같아요.

신문기자 하다가 홍보팀장이 된 때가 81년도인데 당시 부회장이셨던 이건희 회장이 각 계열사 간부들을 모아 놓고 한 첫 강의가 홍보교육이었어요. 그때 “국민들은 기업이 하는 일에 대해 잘 모를 수밖에 없다. 우리 활동을 잘 알려서 국민을 이해시키고, 또 국민이 원하는 바를 경영에 잘 반영하는 상호 커뮤니케이션이 바로 홍보다. 홍보를 잘 못하면 회사가 없어지기도 한다”고 했어요. 제 스스로 이 회장의 그 말을 ‘삼성홍보장전’이라고 이름 붙였어요. 30년도 더 전에 최고경영자가 홍보에 프라이드를 팍 심어준 거죠. 심지어 이 회장 당신이 삼성 홍보의 총책임자라고까지 했어요. 그 관점으로 나는 지금도 홍보가, 홍보인이 기업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중책이라고 믿고 있어요. 그런데 지금 많은 CEO들이 그 중요성을 모르니 참 답답합니다.

이순동 회장은 기업홍보 1세대다. 80년대 언론통폐합 조치를 계기로 중앙일보에서 삼성전자로 자리를 옮겨 팀 구성과 함께 홍보업무를 처음으로 맡았다. “당시 수원사업장에 전화해서 ‘홍보팀인데요’ 하고 소개하면 ‘뭐? 문공부요?’라고 되물어볼 정도였어요.(웃음) 홍보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었지.”

그렇게 퍼블리시티 중심의 초창기 홍보를 지나 이미지 제고를 위한 기업광고, 스포츠 마케팅, 글로벌PR, 그리고 사회공헌까지 PR의 외연이 확장되는 과정을 모두 경험하며 사장까지 올랐다. 스스로는 ‘한국 홍보의 진화’와 함께 커리어를 쌓게 됐다고 표현한다.

기업홍보의 다양한 기능 중에서 지금은 프로텍션(protection)을 위한 위기관리PR만 남았다는 자조적 기류가 감지됩니다. 특히 최근엔 갑질 이슈와 얽혀 오너리스크가 빈번히 돌출되는데 홍보실의 위기관리가 ‘전략적 무능’으로 가고 있다는 지적도 있어요.

나쁜 짓을 하면 그 죄를 물어야지 지금은 온갖 사생활까지 다 끄집어내서 여론재판부터 해버리니 말 한 마디 하기가 어려워지는 거죠. 기업 내부에선 ‘여론이 악화될 수 있으니 침묵하는 게 좋습니다’가 전략이 되곤 해요. 그럼에도 홍보담당자라면 팩트가 틀린 부분에 대해선 되든 안 되든 교정하려고 최선의 노력을 다 해야 합니다. 막말로 고소고발을 하라는 게 아닙니다.

일부 사람들은 언론을 적으로 알고 무슨 일만 있으면 고소고발부터 운운하기도 하는데 그래선 될 일도 안 돼요. 법조인들은 법적으로 해결한다고 홍보실에 대해서도 입 다물라 하지만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상호 이해를 높이는 일을 하는 조직에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는 거거든요. 홍보인이 기업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인데 무슨 큰 피해를 준다고 그러나요. 커뮤니케이션 창구로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오히려 더 믿고 맡겨야죠.

기자 출신 홍보인 1세대인 이순동 회장은 같은 길을 걷는 후배들에게 “(언론계에서) PR분야로 넘어왔으니 업계 성장과 종사자들의 권익 신장을 위해 더 적극적으로 나서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사진: 성혜련 기자
기자 출신 홍보인 1세대인 이순동 회장은 같은 길을 걷는 후배들에게 “(언론계에서) PR분야로 넘어왔으니 업계 성장과 종사자들의 권익 신장을 위해 더 적극적으로 나서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사진: 성혜련 기자

회장님은 기자 출신 PR인 1세대이기도 하십니다. 요즘 주요 기업들 CCO를 보면 언론계 출신이 상당히 많은데요, 어떻게 보세요?

저는 10년을 기자 하다가 30년 넘게 PR을 했기에 본업은 PR인이 된지 오래입니다.(웃음) 다만 경험상으로 기자 출신의 장점을 너무 잘 알죠. 일단 판단이 빠릅니다. 그리고 객관적인 안목이 굉장히 뛰어나요. 그건 아무나 가질 수 없는 겁니다. 변호사가 가진 법률적 지식만큼이나 PR인에게 중요한 소양입니다. 반면 디테일은 조금 약합니다. 핵심만 전달하는 훈련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이라. 실제 일을 시켜보면 기자 출신들은 보고서도 기사 쓰듯이 딱 한 장 써오더라고요.(웃음)

근데 기업에서 쭉 큰 홍보인들은 달라요. 상대적으로 판단속도는 좀 느릴지언정 전체 상황을 종합적이고 입체적으로 분석하는 능력은 탁월합니다. 그러다 보니 일이 되게 만드는 리더 입장에선 기자 출신과 정통 PR인의 강점 모두가 필요해요. 기업 홍보실도 그렇게 운영이 되는 것이 이상적이고요.

일부 기업이나 CEO들은 홍보실에 기자가 오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하는데 그건 큰 착각입니다. 위기관리 PR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기자 출신들이 CCO 자리에 앉는 게 일종의 풍토가 돼버린 모양새입니다만, 환경 변화와 필요에 의해 또 다르게 바뀔 수도 있다고 봅니다. 전략PR 쪽이 강화되는 방향으로 가게 되면 PR적 백그라운드가 풍부한 또 다른 소양의 전문가가 각광을 받을 수도 있겠지요.

이 회장은 기자 출신 PR인들의 역할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동료이자 선배로서 다소 서운한 감정도 내비쳤다. PR분야로 넘어왔으니 업계 성장과 종사자들의 권익 신장을 위해 조금만 더 적극적으로 나서 주었으면 하는데 실무에 비해 소극적이라는 것. 그는 “기자 출신 PR인들이 언론계에서 쌓은 풍부한 경험과 지식을 PR 토양에도 활발히 풀었으면 좋겠다”며 “협동하는 마음으로 대외 활동에도 적극 참여해줬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인터뷰②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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