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제된 기사가 암암리 팔리고 있다
삭제된 기사가 암암리 팔리고 있다
  • 박형재 기자 (news34567@the-pr.co.kr)
  • 승인 2018.08.21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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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브뉴스 이름으로 영업 활동 개시…저작권 침해·명예훼손 가능성 높지만 해외 도메인·비트코인 결제 등으로 제재 어려울 듯
세이브뉴스 홈페이지. 언론사에서 삭제된 기사 목록과 원본 링크를 제공한다.
세이브뉴스 홈페이지. 원문보기를 누르면 삭제된 기사로 연결된다. 

[더피알=박형재 기자] 언론사가 삭제한 기사들만 모아서 파는 사이트가 등장했다. 흥미로운 건 기자들을 상대로 영업한다는 점이다. 악성기사를 빌미로 광고·협찬을 요구하는 언론계 나쁜 관행을 파고들어 돈이 될 만한 소스(source)를 제공하고, 이를 통해 채널 파워를 키우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그러나 비즈니스 모델 자체가 계약 관계를 맺지 않은 ‘남의 기사’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저작권 침해 소지가 크고 명예훼손 가능성도 제기될 수 있다. 

삭제된 기사를 판매하는 곳은 ‘세이브뉴스’라는 이름의 사이트다. 지난 20일 서비스를 개시한 세이브뉴스는 현재 지상파방송과 유력일간지, 인터넷신문 등 여러 매체를 망라해 온라인에 노출됐다가 삭제한 기사 제목과 링크를 제공하고 있다. 

원문보기를 누르면 삭제 전 기사를 볼 수가 있다. 언뜻 해당 언론사 페이지로 이동한 듯하지만 링크주소를 보면 세이브뉴스 내에서 보이는 것이다. 일주일 3건까지는 무료고, 횟수 제한없이 보려면 월 3만원을 내야 한다.

이들은 현재 <세이브뉴스가 언론사에서 삭제된 기사를 보내드립니다>라는 제목과 함께 서비스 안내 메일을 언론사 기자들에게 무작위로 보내고 있다.

세이브뉴스에서 언론사 기자들에게 무작위로 보낸 안내 메일. 지난 일주일간 삭제된 기사를 볼 수 있다며 회원 가입을 유도하고 있다.

세이브뉴스를 두고 언론계는 물론 홍보계에서도 여러 말들이 나오고 있다. 언론사가 기사 수정을 넘어 삭제까지 할 땐 팩트에 어긋나거나 재확인이 필요한 내용, 심각한 오보일 경우가 많은데 이를 무시하고 확대·재생산 행위를 부추긴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한 대기업 홍보인은 “지금도 기업 관련 기사가 포털에서 삭제된 뒤에는 일부 매체에서 어떻게 알았는지 득달같이 달려드는데, 기업의 삭제 기사만 모아서 보여주는 것은 좀 더 손쉽게 그런 악의적인 기사를 쓸 수 있도록 돕는 플랫폼으로 보여 불편하다”고 말했다.

다른 홍보인 역시 “기사에 잘못된 데이터가 사용돼 정정보도를 요청하고 사안이 심각할 경우 기사를 삭제할 수도 있는데 이런 것들이 모두 의심의 대상이 되는 건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언론사 판매와 별도로 세이브뉴스 자체적으로 별도 수익을 얻어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세이브뉴스에서 삭제된 기사 리스트를 회원들에게 공유하기 전 해당 기업과 접촉해 리스트에서 빠지는 것을 댓가로 비용을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모 언론사 편집국장은 “수익모델은 회원들에게 받는 구독료와 기업에 직접 접촉해 협상하는 두 방향이 될 것으로 보인다. 언론사 회원을 상대로는 적당한 소스를 던져주고, 진짜 아픈 기사는 기업과 협상을 통해 명단에서 빼줄 수 있다고 거래하는 것이다. 언론과 기업 사이 틈새시장에서 수익모델을 잡은 것 같다”고 봤다.

기사 원문보기 서비스 연결 도중 링크를 타인과 공유할 경우 계정이 차단될 수 있다는 경고문과, 결제 유도 메시지가 나오고 있다. 결제는 비트코인으로만 진행된다
기사 원문보기 서비스 연결 도중 링크를 타인과 공유할 경우 계정이 차단될 수 있다는 경고문(위)과 결제 유도 메시지가 나오고 있다. 결제는 비트코인으로만 진행된다.

문제는 이런 식의 기사 판매가 저작권 침해 및 명예훼손의 여지가 다분하다는 것이다. 기사 원문보기 서비스의 경우 남의 언론사 상품을 그냥 가져와 자사 홈페이지에서 상업적 이용하는 것으로, 기사 무단 전제에 해당한다.

신창환 한국저작권위원회 법률상담관은 “기사 원문보기를 누르면 해당 언론사 홈페이지처럼 구현한 페이지로 이동하는데, 저작권법으로 보호받는 기사를 허락받지 않고 쓰면 명백한 저작권 침해”라고 지적했다. 실제 몇몇 언론사들은 저작권법 위반 여부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삭제된 기사를 다시 보여주는 것도 본문에 언급된 기업이나 개인이 명예훼손으로 문제 삼을 수 있다.

언론법 전문가인 양재규 변호사는 “만일 언론에서 기사를 삭제한 이유가 오보 때문이라면 허위보도 내용을 제3자가 다시 끄집어내 보도하는 것으로 아주 심각한 명예훼손이나 인격권 침해”라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세이브뉴스 서비스에 대한 제재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일단 도메인 자체가 영국령 인도양 지역(savenews.io)인데다, 계좌 추적이 힘든 비트코인을 통해서만 결제를 받고 있어 한국법에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양 변호사는 “한국 사람이 운영하더라도 다른 나라에 속한 도메인이면 그 사이트 자체에 국내법이 적용될 가능성은 없다. 피해자가 국내에서 발생하면 법적 문제를 제기할 수 있지만, 외국 기업이나 마찬가지라서 분쟁 해결이 쉽지 않을 것이다. 처음부터 사각지대를 노리고 접근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세이브뉴스 측에 이런 내용을 확인하고자 취재 요청 메일을 보냈으나 “기자들만 대상으로 하는 폐쇄적인 서비스를 지향하기 때문에 언론 노출을 위한 인터뷰는 힘들 것 같다”고 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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