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감도 높아진 사회, 기업이 ‘불편러’ 돼야
민감도 높아진 사회, 기업이 ‘불편러’ 돼야
  • 박형재 기자 (news34567@the-pr.co.kr)
  • 승인 2018.09.1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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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미디어 시대는 수평적 구조인데 경제권력 여전히 수직적-중앙집권적”…외부 눈높이 맞춘 선제적 변화 필요
기업 안에서 먼저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문화가 만들어져야 더 큰 화를 예방할 수 있다.
기업 안에서 먼저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문화가 만들어져야 더 큰 화를 예방할 수 있다.

[더피알=박형재 기자] 여러 논란을 경험하며 기업들도 이제는 젠더 이슈와 같은 사회적 화두에 민감성을 키워야 한다는 생각을 갖기 시작했다. 하지만 직접적인 위기가 발생한 게 아닌 만큼 아직까지는 영향력을 제한적으로 보고 있다. ‘어떤 위기가 발생할 거라는 걸 알면서도 대비하지 못하는’ 익숙한 잘못이 반복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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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교육컨설팅사 연구원은 “주요 기업들은 연초 미투 열풍이 불자 부랴부랴 성희롱 예방 교육을 강화하고, 미투 관련 사례를 공유하는 등의 움직임을 보였으나 요즘에는 이마저 시들해졌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보수적 기업문화로 알려진 금융권 동향과 관련,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은행 채용비리가 일어난 뒤 남녀 차별 없는 채용, 블라인드 채용을 강화하는 등의 움직임은 있으나 내부에서는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는 의견이 나온다. 아직 옛날 방식을 그대로 고수하는 곳도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과거에 만들어진 틀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다. 기업들은 사회적 화두에 대한 민감성을 더 키우고, 지금까지 당연시했던 인사 기준이나 채용 기준을 재점검해야 한다. 기업 내부에서 봤을 때 문제가 없던 것들도 외부 눈높이에 맞게 조정할 필요가 있다.

오너딸의 이른바 '물벼락 갑질'로 불거진 대한항공 이슈는 사회여론과 만나 '주주행동주의'로까지 나아갔다. 지난 8월 16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진행된 대한항공 5대과제 해결을 위한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 촉구 기자회견 모습. 뉴시스
오너딸의 이른바 '물벼락 갑질'로 불거진 대한항공 이슈는 사회여론과 만나 '주주행동주의'로까지 나아갔다. 지난 8월 16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진행된 대한항공 5대과제 해결을 위한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 촉구 기자회견 모습. 뉴시스

이해관계자들의 행동주의와 공중의 공분도 한발 앞서 주목해야 한다. 기업의 준법 기준은 각종 규제와 법률, 정책 등을 따르는 것이었다. 법 기준에 명시된 기준을 지키는 것으로 충분했다. 그러나 지금 작동하는 ‘윤리’는 법률을 뛰어넘는 포괄적 기준이다.

기업의 윤리적 결정은 고객, 협력업체, 지역사회 및 투자자 등에게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기업 윤리에 대한 사회적 기대가 높아지면서 발생하는 명성 리스크에 체계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이는 기업의 준법 기준과는 다른 차원의 영역이므로 인식변화가 필요하다. 명성 자산은 재무제표에는 없지만 기업에 충분히 영향을 줄 수 있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논란을 피하는 방법은 기본적으로 외부에서 봤을 때 문제될 것 같으면 하지 않는 것이다. 직원들에게 걸그룹 댄스를 추게 하거나, 채용 과정에서 남녀 비율을 정해놓고 남자에게 가산점을 더 주는 행위는 상식적으로 문제가 있다. 이런 것들을 하나씩 없애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시대적 변화에 맞춰 내부 목소리를 듣는 기업들이 생겨나는 것은 바람직해 보인다. 현대백화점은 최근 사내 별동조직인 ‘프로불편러’와 ‘불라인드(불편+블라인드)’ 운영을 시작했다. 우리은행도 익명게시판 ‘우리투게더’를 개편하기로 결정했다. 익명 앱과 커뮤니티를 통해 내부 고발 형태로 기업의 민낯이 드러나는 일이 많아지자 차라리 회사 안에서 리얼한 목소리를 듣고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2013년 남양유업 갑질 논란이 한창일 때 일부 기업들은 모든 계약서에서 ‘갑을’ 문구를 삭제했다. 우리은행, 롯데마트 등은 통상 ‘갑과 을’로 표현했던 문구를 수요자와 공급자 등으로 대체했다. 혹시나 갑을 논란의 불똥이 튈까 의식한 행동이다. 지금도 이 정도 수준의 높은 민감도가 요구된다.

이영환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소셜미디어 시대는 수평적 구조인데 경제권력은 여전히 수직적-중앙집권적으로 움직이니 갈등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면서 “공정함에 대한 요구는 시대적 명제인 만큼 조직이 먼저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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