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과 합법 사이…‘규제 늪’에 빠진 스타트업
불법과 합법 사이…‘규제 늪’에 빠진 스타트업
  • 이윤주 기자 (skyavenue@the-pr.co.kr)
  • 승인 2018.09.1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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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부재, 애매한 법 조항 등으로 발목

우리나라는 왜 우버, 에어앤비, 넷플릭스 같은 혁신적 기업들이 안 나올까. 작은 시장 규모와 주입식 교육의 폐해, 대기업 중심의 산업구조 등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시작부터 규제의 벽이 너무 높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불법과 합법 사이에 묶여 있는 스타트업계 현황을 점검한다.

① 규제 늪에 빠진 스타트업
현실과 괴리 큰 O2O 비즈니스 
이해관계자의 동상이몽

닷 웨어러블 워치 제품. 닷 홈페이지
스타트업은 시장 진출 초기부터 넘어야 할 산이 첩첩이다. 특히 법적 문제가 발목 잡는 경우가 많다. 

[더피알=이윤주 기자] 국내 스타트업이 규제 걸림돌에 걸려 넘어지거나, 주변 눈치보느라 마음껏 힘을 쓰지 못하는 모습이 자주 목격된다.

기본적으로 새로운 비즈니스를 펼쳐나가려면 법으로 규정된 업종별 사업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그러나 기존에 없던 제품이다 보니 법적 근거가 없어 인증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은 서비스도 사업 모델의 적법성을 판단할 수 없다며 한없이 보류되거나, 이해관계자의 견제에 부딪혀 사업화에 실패하는 사례가 허다하다.

아산나눔재단과 구글 캠퍼스 서울이 지난해 발행한 ‘스타트업코리아’에 따르면, 전 세계 상위 100개 스타트업의 사업모델 중 삼분의 일은 국내 규제를 적용했을 경우 사업 자체가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그 만큼 새로운 도전을 가로막는 각종 규제가 산적해있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의 창업 생태계의 ‘진입 규제’는 조사대상 65개국 중 49위에 불과했으며, 사안별 문제제기가 접수돼 이를 개선하는 데 걸리는 기간은 평균 2년이었다. 아이디어가 도용돼 미투 제품이 나오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이러한 환경을 극복하고 유니콘 기업이 탄생하길 기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없던 제품은 인증도 못한다?

스타트업들이 가장 많이,  부딪히는 규제 걸림돌은 기존에 없던 제품을 출시했으나, 품목이 없어 인증을 받지 못하는 경우다.

닷은 세계 최초로 시각장애인용 점자 스마트워치를 개발했다. 디스플레이 대신 점자로 정보를 표시하며 날씨, 내비게이션 등 다양한 앱과 연동할 수 있다. 출시 이전부터 팝스타 스티브 원더 등 전 세계 시각장애인들의 많은 관심을 모았다.

닷 웨어러블 워치.
닷 웨어러블 워치. 출처: 홈페이지

하지만 국내에서는 새로운 기술을 넣을 항목이 없어 기존 점자시계 항목 군에 포함됐다. 이에 닷은 ‘웨어러블 점자 출력기’ 혹은 ‘시각장애인 의사소통 출력기’라는 품목 등록을 개설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신혁수 닷 부장은 “품목을 개설하기 위해서는 명분이 필요하다. 시각장애인 단체에서 제품이 꼭 필요하다고 요구하는 등 여론이 모여야 한다는 건데, 스타트업인 저희가 해결하기엔 쉽지 않다”고 호소했다.

게다가 한국장애인고용공단, 한국정보화진흥원, 보건복지부 등 부처별로 품목 지정 방식은 각기 다르다. 각 부처마다 품목 등록 제안서를 작성해야 하는 번거로움은 기업의 몫이다.

토도웍스도 닷과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 토도웍스는 수동휠체어에 ‘파워어시스트 키트’를 부착하면 전동휠체어가 되는 신제품을 개발했다. 하지만 현행법상 이 키트를 분류할 항목이 없어 의료기기 품목 인증을 못받았다.

수동휠체어도 아니고 전동휠체어도 아니기 때문에 분류될 수 없었던 것. 두 회사는 보건복지부로부터 인증을 못 받았기 때문에, 장애인들이 보조기기 제품을 구매할 때 받을 수 있는 보조금 지원 역시 받지 못하고 있다.

토도 드라이브 키트. 출처: 홈페이지
토도 드라이브 키트. 출처: 홈페이지

전기자전거를 유통하는 A2B는 한국제품안전협회로부터 고발당했다. 사유는 ‘전기안전용품관리법 위반’이다. 원동기장치자전거를 전기자전거라고 광고해 판매한 게 문제가 됐다. 고발 당시 관련법에 전기자전거와 관련한 명확한 규정이 없어 KC인증 자체가 불가능했으나, 협회 측은 인증 미획득을 문제삼았다. 해당 고발은 지난 6월 기소유예로 판결이 났다.

윤영선 A2B 매니저는 “무조건 고발할 게 아니라 이 부분을 어떤 식으로 조치하라고 지도해줬으면 어땠을까”라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3D프린터 전문쇼핑몰 삼디몰 역시 한국제품안전협회로부터 ‘전기용품안전관리법’(현행 ‘전기용품 및 생활용품 안전관리법’)을 위반했다며 형사 고발을 당했다. 3D프린터가 기존 프린터와 함께 안전확인신고 품목에 포함된다고 걸고 넘어졌기 때문이다.

A2B 전기자전거 제품. A2B 홈페이지
A2B 전기자전거 제품. 출처: 홈페이지

하지만 삼디몰은 최종 무죄 판결을 받았다. 법원은 기존 프린터와 3D프린터는 별개 기기이고, 3D프린터를 안전확인신고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는 이상 안전신고 의무가 없다고 판단했다.

김민규 대표는 “해당 제품은 문제가 계속 생기다보니 없애버렸다. 현재는 다른 제품으로 인증 받고 판매 중”이라며 “한국은 스타트업이 사업하기 힘든 나라인 것 같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법은 하나, 해석은 갖가지

기존에 있던 법 조항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는 부분도 스타트업이 자주 부딪히는 규제 이슈다.

김도현 국민대 경영학과 교수는 “스타트업 규제는 일관성과 안정성 문제가 대표적으로 발생한다. 전자는 부처마다 다르게 해석하는 경우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할지 모르는 것이고, 후자는 예측가능성으로 오늘과 내일이 다른 경우”라고 말했다. 최근 스타트업계에서 이슈가 됐던 풀러스와 차차크리에이션(이하 차차)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제81조에 따르면 ‘사업용 자동차가 아닌 자동차를 유상 운송용으로 제공하거나 임대, 또는 알선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돼있다. 단, 출퇴근 때 승용자동차를 함께 타는 경우는 예외다.

풀러스는 지난해 11월부터 유연근무제 등으로 출퇴근 시간 개념에 변화가 있다는 점을 들어 서비스 제공 시간을 아침, 저녁 시간대에서 24시간으로 확대했다. 이에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 등 4개 유관단체는 즉각 반기를 들었다. 24시간 운행하면 택시와 다를 바 없다는 것. 서울시는 풀러스를 ‘자가용 불법 유상운송 알선’ 혐의로 경찰청에 수사 의뢰했고, 현재 풀러스 대표가 사퇴하는 등 사업 규모가 반토막 났다.

풀러스 서비스 이용 모습. 출처: 홈페이지
풀러스 서비스 이용 모습. 출처: 홈페이지

차차는 국토교통부로부터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위반으로 영업 중지를 요청받았다. 차차는 대리운전과 렌터카가 결합된 방식이다. 운전사는 장기렌탈 계약을 통해 빌린 차량을 운전하다가 승객의 승차 호출을 수락하면 그 순간 렌터카는 업체에 반납되고, 반납된 차는 차량을 호출한 또 다른 승객에게 대여된다. 동시에 운전사는 렌터카 임차인이 아닌 대리운전기사로 바뀌게 된다.

차차측은 대리운전 기사는 다른 사람이 빌린 렌터카를 대신 운전하고 돈을 받는 데 제약이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 국토부는 택시 영업과 유사하다는 점을 문제 삼으면서도, 사업을 중단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 합법적인 영역 내에서 사업을 지속할 수 있게 하겠다고 밝혔다.

차차 모바일 앱 구동 화면. 차차 홈페이지
차차 모바일 앱 구동 화면. 출처: 홈페이지

현재 차차는 자사 블로그를 통해 “나무를 볼 뿐 숲은 보지 못하는 해석론”이라고 국토부의 결정을 비판하며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은 승객의 원활한 운송과 운수사업의 종합적인 발달을 통해 국민의 편익을 도모하기 위함이지 기득권세력의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서울시 청원사이트에 해당 규제의 부당함을 알리는 등 공론화 작업을 진행 중이다.

한편, 애매한 법 조항을 자세히 살피지 않고 무조건 고발을 남발하는 행정 지도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단속을 나와서 법 해석이 애매할 경우 우선 경찰에 넘기는 식으로 고발이 자행되고 있다”며 “스타트업에게 고발은 사업 자체가 위축되는 큰 타격이다. 애매하면 무조건 고발이라는 식의 접근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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