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고소로 억울함 푼다고요?
형사고소로 억울함 푼다고요?
  • 양재규 (eselltree92@hotmail.com)
  • 승인 2018.09.2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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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규의 피알Law] 개인 문제 공적 권위에 호소…센 만큼 역풍 또한 거셀 수도
자료사진. 뉴시스
과연 형사고소는 시시비비를 명백하게 가려줄 것인가? (자료사진) 뉴시스

[더피알=양재규] 진실 공방을 벌이다가 자신의 결백을 입증하겠다며 수사기관에 ‘고소장’을 제출하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보곤 한다. 기업에선 조금 덜 하지만 대중의 눈을 많이 의식하는 정치인이나 연예인의 경우는 빈번하다.

과연 형사고소는 시시비비를 명명백백하게 가려줄 것인가? 오보대응전략으로써 형사고소는 적합할까? 결론에 앞서 일단 두 가지 사례부터 살펴보자.

#재판 1

1970년대 전설적인 미식축구 선수였으며 은퇴 후 영화배우로도 활동한 O.J. 심슨. 1995년 10월 3일, 이혼한 전처와 그녀의 애인을 무참히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심슨에 대한 판결이 선고됐다. 결론은 ‘무죄’였다.

심슨의 재판은 전 과정이 언론에 공개됐고, 그로 인해 사회적으로 이목이 집중됐다. 현장에서 발견된 피 묻은 장갑에서 심슨의 DNA가 발견되는 등 다수의 증거물들이 있었기에 그를 범인으로 생각한 사람들이 많았다. 이에 대해서 흑인이었던 심슨은 자신에 대한 재판이 인종차별의 결과라는 프레임을 내세웠고 여론조사 결과, 흑인의 60%는 심슨이 무죄라고 생각한 반면 백인의 68%는 유죄라고 답했다.

#재판 2

충남도지사였으며 소속 정당의 유력 차기 대선주자이기도 했던 안희정. 2018년 8월 14일, 서울서부지방법원은 안 전 지사의 성폭행 사건에 대한 판결을 선고했다. 결론은 ‘무죄’였다.

안 전 지사의 수행비서로서 업무상 상하관계에 있던 피해자는 JTBC <뉴스룸>에 출연, 안 전 지사의 성폭행 사실을 폭로했고 이로써 이미 사회적 이슈였던 ‘미투운동’은 가히 정점을 찍었다. 안 전 지사 사건을 ‘권력형 성범죄’로 규정했던 여성단체는 무죄 선고에 비판성명을 냈고 정치권에서는 ‘비동의 간음죄’ 신설을 위한 형법 개정 논의에 착수했다.

다소 작위적이지만 현재진행형인 안 전 지사 사건을 과거완료형인 심슨 사건과 비교해 보았다. 시·공간의 거리에도 불구하고 두 사건 모두 당사자가 공인이며, 법원에서 무죄가 선고됐고, 무엇보다 판결 결과에 대해 논란이 많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물론, 안 전 지사에 대한 재판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항소심 혹은 상고심 재판에서 뒤집힐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판결이 타당한지 여부는 논외로 하고 이 사건들에서 무죄가 선고됐다는 사실이 주는 시사점을 세 가지로 정리해 본다.

세게 나가다 세게 맞을 수도

우선, 형사고소를 통해 자신의 결백을 증명해 보이겠다거나 상대방에게 심대한 타격을 주겠다는 전략에는 높은 수준의 위험이 따른다. 문제가 생기면 고소부터 하고 보는 사람들이 있다. 빌려준 돈을 받지 못할 때 ‘사기’로 고소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또 회사나 조직에 부정적인 기사를 쓰는 기자를 ‘명예훼손’ 고소로 응징하려는 사례도 있다.

법적 대응방안에는 형사고소만 있는 것이 아니다. 금전지급청구, 정정보도를 비롯한 각종 보도청구, 기사게재금지청구 등 매우 다양한 민사적 수단이 있을 뿐만 아니라 행정적 조치의 발동을 촉구하는 민원 제기 등도 있다. 이 중에서 형사고소는 가장 센 축에 속한다. 하지만 센 만큼 역풍 또한 거셀 수 있다.

비서 성폭행 혐의를 받는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8월 14일 서울 마포구 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리 1심 선고에 출석하고 있다. 이날 안 전 지사에 무죄 판결이 내려졌고 상대측은 즉각 항소했다. 뉴시스
비서 성폭행 혐의를 받는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8월 14일 서울 마포구 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리 1심 선고에 출석하고 있다. 이날 안 전 지사에 무죄 판결이 내려졌고 상대측은 즉각 항소했다. 뉴시스

고소사건에 대한 수사를 진행한 결과, 상대방이 무혐의가 되면 고소한 쪽이 불리해진다. 결과적으로 면죄부를 선사한 꼴이기 때문이다. 또 고소사실에 허위가 개입돼 있으면 ‘무고죄’로 처벌받을 가능성마저 있다.

많은 PR전문가들이 기업의 위기상황에서 잘못된 대처 관행으로 로펌 혹은 법률전문가에 대한 지나친 의존을 지적한다. 법률전문가 의존과 분쟁상황 시 고소를 선호하는 경향은 일맥상통한다. 둘 다 자신의 문제를 공적 권위에 호소함으로써 해결하고자 한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아주 가끔 고소가 유용한 때도 있기는 하다. 향후 분쟁에 대비해 수사기관의 강제수사권한을 활용한 증거 확보 방편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를 제외하고는 고소는 신중하게 취해야 할 전략임이 분명하다.

형사무죄≠민사승소

다음으로, 고소를 남발하는 것도 문제지만 원했던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때, 다시 말해 ‘무죄’나 ‘무혐의’가 됐을 때 그에 대한 과도한 해석 역시 주의해야 한다.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형사상 무죄의 의미는 협소하다. ‘무죄추정의 원칙’과 더불어 형사재판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원칙 중 하나가 ‘의심스러울 때에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다. 유죄의 심증이 있다 하더라도 유죄를 확신할 만한 정도가 아니면 ‘무죄’를 선고해야 한다. 10명의 범죄자를 처벌하지 못하는 한이 있어도 1명의 억울한 범죄자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되는 바로 그 원칙이다.

형사재판에서의 ‘무죄’란 그런 의미다. 무죄가 나왔다고 해서 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아무런 책임이나 문제가 없다는 뜻은 아니며 완전한 면죄부는 더더욱 아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여배우 스캔들’ 의혹을 제기한 배우 김부선 씨가 지난 14일 오후 경기 성남 분당경찰서로 출석, 발언하고 있다. 김씨는 이재명 캠프 가짜뉴스대책단으로부터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고발된 상태고, 김씨 역시 이 지사를 고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자료사진) 뉴시스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여배우 스캔들’ 의혹을 제기한 배우 김부선 씨가 지난 14일 오후 경기 성남 분당경찰서로 출석, 발언하고 있다. 김씨는 이재명 캠프 가짜뉴스대책단으로부터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고발된 상태고, 김씨 역시 이 지사를 고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자료사진) 뉴시스

O.J. 심슨 사건에는 반전이 있다. 심슨은 전처 살해 혐의에 관해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어디까지나 일부분이었다. 형사재판과는 별도로 피해자의 유족들이 제기한 민사소송에서 심슨은 패소했고 무려 3000만 달러(현재 기준 약 335억원)가 넘는 손해배상을 해야 했다. 거칠게 말하면 형사상으로는 무죄였지만 민사상으로는 유죄가 된 것이다.

민사재판에서는 왜 형사재판과는 다른 결과가 나왔을까? 형사재판이 99대 1의 확률 싸움이라면 민사재판은 51대 49의 확률 싸움이기 때문이다. 승소할 확률이 높은 전력을 사용하고자 한다면 형사고소가 아니라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편이 낫다.

판결에 필요한 눈높이 홍보

마지막으로, 공공 분야에 있어서의 홍보 역시 중요하다. 안 전 지사 관련 1심 판결 선고 이후 많은 언론에서 여성주의적 시각에서 판결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정작 관련 기사 어디에도 법원 전체 혹은 판결을 내린 해당 법원(서울서부지방법원)의 해명이라든가 보충설명은 보이지 않았다. 앞에서 설명한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와 같은 형사재판 고유의 원칙이라든가 형사상 무죄 의미에 관한 충분한 해명 내지 정보 제공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성폭력 사건에서 여성주의적 시각은 필요한 것이며 또 옹호돼야 하겠지만, 여성주의 시각으로 접근하는 것과 구체적인 형사재판 결과가 유죄로 나와야 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미투운동이 반드시 당사자의 형사처벌로만 끝나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판사는 판결로만 말하려고 한다지만 사회적으로 논란이 불가피한 사안에 한해서라도 국민 눈높이에서 정확한 이해를 도모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미 갖춰진 공보기능은 그럴 때 작동돼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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