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다섯 창업가의 깨달음 그리고 변화
스물다섯 창업가의 깨달음 그리고 변화
  • 이윤주 기자 (skyavenue@the-pr.co.kr)
  • 승인 2018.09.28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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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기업을 찾아서 ⑮] 도트윈
20대 청년 사업가인 박재형 도트윈 대표. 사진=이윤주 기자
점자 가죽제품을 판매하는 20대 청년 사업가 박재형 도트윈 대표. 사진=이윤주 기자

[더피알=이윤주 기자] 지금의 20대는 돈보다 가치에 따라 움직이는 가치 지향적 세대라고들 한다. 맞기도 하고 아닌 것도 같은 그 말을 몸소 보여주는 한 청년이 있다. 스물두 살에 회사 대표가 된 그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가죽제품을 판매하는 사회적기업 도트윈을 운영 중이다. 올해 스물다섯이 된 박재형 대표를 성수동 한 작업실에서 만났다.

나무와 가죽, 온통 갈색으로 가득 찬 이 공간은 잘 꾸며진 아지트 느낌을 물씬 풍겼다. 한쪽에는 사진관처럼 스튜디오로 채워졌고, 다른 공간에는 바(bar) 같이 나무 테이블이 길게 뻗어 있었다. 햇볕이 강하게 내리쬐던 여름날 정오, 한산한 스튜디오에서 대화를 나눴다.

20대 특유의 패기보다는 진중함과 섬세함을 지니고 있는 청년 CEO 모습에 가까운 그는 4년 만에 큰 변화를 준비하고 있었다.

공간이 정말 예뻐요. 와인병이 많네요. 다 마신 거예요?

네. 친구들과.(웃음)

사무실에 놓인 빈 와인병들. 사진=이윤주 기자
사무실에 놓인 빈 와인병들. 사진=이윤주 기자

쌍둥이라 들었는데, 형이에요 동생이에요?

제가 형이고요. 동생 재성이는 대표직을 내려놓고 현재 전공에 맞춰 건축의 길을 걷기로 했어요. 다른 공동 창업가도 자기 길을 갔고요. 지금은 제가 독립적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인터뷰로 연락드렸을 때 사회적기업의 브랜드 방향성을 바꾸고 있다고 하셨잖아요.

네. 오늘은 그 얘기를 주로 할 건데, 괜찮으실까요?

좋습니다. 먼저 도트윈에 대한 소개와 어떻게 시작하게 됐는지 들려주세요.

예전부터 지금까지 저의 궁극적인 목표는 디자인을 통한 사회복지 실현이에요. 고등학생이었던 2011년, 가죽제품에 점자를 새기는 모델로 전국소셜벤처 경연대회에서 청소년 부문 대상을 받았어요. 그때 사회적기업, 소셜벤처에 대해 처음 알게 되면서 내가 원하는 일이다라고 깨달았고, 준비하던 미대를 내려놓고 사회복지학과를 선택했죠. 그리고 2015년 도트윈이란 브랜드를 시작하게 됐어요.

도트윈은 점자를 각인해 만든 가죽제품을 파는 브랜드잖아요. 이를 통해 시각장애인들의 메시지를 들려주고 싶다고 하셨는데, 어느 정도 성과를 이뤘는지 스스로 평가한다면.

선물 받은 분들은 지갑과 여권케이스 등에 점자가 새겨져 있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시고, 대체적으로 기분 좋아하거나 신기해하더라고요. 비시각장애인이 시각장애인에게 선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요.

저희는 시각장애인에 대한 변화보다는 구매자 변화에 조금 더 집중하는 편이에요. 구매 전후로 어떻게 생각이 바뀌었는지 말이에요. 그 분들의 생각이 곧 사회 전체의 변화로 이어진다고 보기 때문이에요. “점자가 어떻게 구성되는지 알게 됐다” “이렇게 점자가 잘 구성돼 있는지 몰랐다” “길 가다가도 점자에 집중하게 된다”는 등의 피드백을 듣곤 해요.

그렇게 걸어온 시간이 어느덧 4년차인데, 브랜드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 이유가 뭔지 궁금합니다.

시간이 갈수록 목표에서 모호해지는 부분이 생기더라고요. 오히려 시작했을 때 조금 더 명확하고 강했던 것 같아요. 처음엔 쉬웠어요. 시각장애인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지나고 보니 제가 옳다고 여겼던 것이 아닐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미션 베이스(Mission Base)로 시작했던 일인데 말이죠. 경제적으로 지속가능한가도 중요하지만, 이 브랜드를 통해 미션을 얼마나 수행하고 있느냐가 중요한 문제인데 어떻게 더 성장할 것인가를 고민할 때 그 부분들이 정립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시각장애인 메시지를 일반인에게 전달할 때 다른 점을 강조할 것인지, 같은 점을 강조해야 할 것인지, 힘들다는 점을 강조할 것인지 등 가치 판단에 있어서 혼란이 컸어요. 여성, 남성, 점맹, 저시력 등에 따라서 겪는 바가 너무 달라서 어떤 부분을 이야기해야 할지도 모르겠고요.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가죽제품을 판매하는 도트윈 사무실 전경. 사진=이윤주 기자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가죽제품을 판매하는 도트윈 사무실 전경. 사진=이윤주 기자

지금은 어떻게 정립이 됐나요?

디자인 제품에 사회적 메시지를 담아 대중의 삶에 좀 더 녹였으면 하는 마음이 강했는데, 처음 잡은 게 시각장애인 이슈다 보니 계속 그 방향으로만 브랜딩해왔던 것 같아요. 지금은 시각장애인 이슈에서 벗어나 디자인을 통해 사회적 이슈를 이해하는 브랜드가 되고 싶어요. 특정 장애에 대한 인식을 바꾼다기보다 소수 인권 등 다양한 삶이 인정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작업하고 싶어요.

그래서 디자인 스튜디오로 회사 구조 자체를 바꾸려고요. 디자이너들이 모인 집단, 이른바 에이전시 역할을 한다고 보시면 돼요. 제가 대표라기 보단 개개의 디자이너들이 중요해지는 거죠. 그때그때 들어오는 디자인 프로젝트 업무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업무를 하게 될 거예요.

그럼 도트윈이라는 브랜드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도트윈 제품에는 점자가 새겨져 있다. 

도트윈은 계속 운영 중이지만 축소하고 있어요. 도트윈이란 이름이 아예 없어질 수도 있어요. (주)도트윈스튜디오로 할 수 있는 거고요.

저는 영리와 비영리의 한계를 극복한 이상적 모델이 소셜벤처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상적이라는 말에는 어렵다는 뜻이 내포돼 있더라고요. 4년간 운영해본 결과 그 중간을 찾기가 굉장히 어려웠어요. 영리를 추구하면서 기부를 한다든지 고용을 한다든지 그런 모델을 취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굳이 영리를 추구해 번 수익금으로 이 사업을 해야 하는가, 사회적기업이라는 또 다른 형체를 만들어서 이 일을 해야 할 필요가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도트윈을 기획할 때도 시각장애인들에게 기부하거나 고용하는 게 아닌, 그들의 목소리와 삶을 전해주는 매개체로서 역할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투자자가 그러더라고요. 회사를 운영하려면 대표가 그렇게 깊이 고민하면 안 된다고요.

말씀을 듣다보니 사회적기업을 운영하면서 아쉬웠던 부분이 많았던 것 같아요.

제일 아쉬웠던 부분은 어쨌든 비즈니스를 해야 하다 보니 점점 더 현장의 목소리와 멀어진다는 점이었어요. 직접 시각장애인들과 마주할 기회들이 없어졌어요. 전 경영만 하고, 직접적인 일은 복지관이나 다른 직원들이 하게 되니까요. 회사 관점에서는 그런 구조가 당연한 거지만, 개인적으로는 너무 아쉬움이 남아요. 저는 생생하게 공감하고 거기에 힘이 실릴 때 보람이 있던 사람인데, 계속 현장과 멀어지니 ‘아,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를 수 있구나’라고 많이 느꼈어요.

잃은 것과 얻은 것이 있다면.

잃은 것은 건강 그리고 나이에 맞지 않게 큰 빚이 생긴 거요. 경제적인 빚도 될 수 있지만, 책임감의 빚이요. 투자를 받은 것도 빚이라고 생각해요. 나중에 브랜드를 매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의 가치를 모두 담은 브랜드는 팔기가 되게 어렵거든요. 나의 스토리가 너무 많이 담겼기 때문에요. 전 온전히 자신의 진정성을 담아서 회사를 만드는 게 창업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러면 안 돼요. 정말 현실적으로 나중에 팔릴만한 걸 창업해야 해요.

도트윈을 정리하게 된다면 제 손에서 정리하고 다음 스텝을 밟으면 밟았지 매각하거나 그러고 싶진 않습니다. 워낙 어렸을 적부터의 생각이 다 담겨있는 브랜드다 보니 값어치를 매길 수가 없거든요.

반면 가장 크게 얻은 건 창업 자체에서 얻은 경험들이에요. 돈의 무서움도 배웠어요. 정말 큰 규모의 금액을 운영해보면서 무서움이 없어지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아 이게 함부로 해서 될 게 아니다’고 크게 느꼈죠.

박재형 대표가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 사진=이윤주 기자<br>
박재형 대표가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 사진=이윤주 기자

20대들 중에서 직접 창업전선에 뛰어드는 사람이 많아요. 먼저 길을 걸은 선배로서 앞으로 뒤따라올 후배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

예전엔 몰랐는데 세상을 바꾸기 위해 많은 방법이 있다는 걸 최근에 알았어요. 저는 제 목소리를 담은 회사, 창업만이 세상을 크게 바꾸는 대단한 일을 한다고 생각했어요. 마찬가지로 많은 분들도 창업을 하면 마치 내 일을 하고 내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하지만, 비즈니스를 하면서 느낀 건 회사는 나의 것이 아니란 점이에요. 저 역시 회사가 나의 것이라는 애착이 강해서 내 입맛대로 움직이고 싶어 했기에 삐걱대지 않았나 싶어요.

창업하기 이전 각자의 역할을 고민해보면 그게 꼭 회사 대표가 아닐 수도 있어요. 디자인에 능한 사람이면 디자이너를 하면 되는 거예요. 본인이 가진 역할과 능력을 발휘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좋은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고 있는 거로 생각해요.

제 또래는 창업에 대한 환상이 커요. 우리 세대는 가치 중심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창업을 어떻게 해나갈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는 것 같은데, 그래서 이런 영역이 힘든 것 같아요. 돈이 목적이면 돈이 되는 사업을 하시고, 사회적 가치가 목적이라면 가치를 좇는 일을 했으면 좋겠어요.

4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똑같이 창업할 건가요?

네. 똑같이요. 후회는 없어요. 전 제 성격을 알기 때문에 언젠가 창업을 했을 거예요. 그때 할 수 있었던 최대한의 결정이 이 자리고 다른 방법은 없었겠죠.

지분 투자까지 받아가면서 법인을 운영해본 게 정말 잘했다고 생각하는데, 제 경력과 나이에 비해 과분한 관심을 받았고, 과분한 성장을 함과 동시에 나이에 맞지 않는 옷도 입고 있다는 생각도 많이 했어요. 하지만 그때 하지 않았더라면 도트윈이라는 브랜드는 생각도 못해봤을 거고, 시간이 지날수록 잃을 게 많아져 도전도 못해봤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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