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데스킹 안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보도자료 데스킹 안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 문용필 기자 (eugene97@the-pr.co.kr)
  • 승인 2018.10.22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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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최영범 효성그룹 커뮤니케이션실장

[더피알=문용필 기자] 취재 현장을 누비던 기자들이 기업 홍보인으로 변신하는 케이스는 이제 생경한 장면이 아니다. 어찌 보면 언론과 ‘적대적 공생관계’를 이어가는 업무에 그들은 연착륙하고 있을까. 기자가 찾아간 최영범 효성그룹 커뮤니케이션실장(부사장)은 이에 대한 의문을 어느 정도 해소시켜줬다.

최영범 부사장은... 1985년 동아일보 기자로 언론계에 첫 발을 내딛었다. 1991년 SBS에 입사해 방송기자로 변신했으며 정치부장, 보도국장, 논설위원, 보도본부장 등 요직을 거쳤다. 지난 2016년 SBS 경영지원본부장을 끝으로 언론계 생활을 마감했으며 올 1월부터 효성그룹 커뮤니케이션실장(부사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1985년 동아일보 기자로 언론계에 첫 발을 내딛었다. 1991년 SBS에 입사해 방송기자로 변신했으며 정치부장, 보도국장, 논설위원, 보도본부장 등 요직을 거쳤다. 지난 2016년 SBS 경영지원본부장을 끝으로 언론계 생활을 마감했으며 올 1월부터 효성그룹 커뮤니케이션실장(부사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경력 30년이 넘는 베테랑 언론인과 9개월 차 새내기 홍보인. 최 부사장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조합을 몸소 경험하고 있다.

1985년부터 2016년까지 신문과 방송에서 활동한 그는 정치부장과 보도본부장, 논설위원 등 언론인으로 남부럽지 않은 커리어를 쌓았다. 그리고 올해부터 효성의 커뮤니케이션 업무를 총괄하면서 ‘언론인 출신 홍보인’ 대열에 합류했다.

뉴스에서 접해오던 샤프한 이미지와는 달리 실제로 만난 최 부사장은 소탈했다. 한껏 자세를 낮추는가 하면 아직 ‘기자물’이 덜 빠졌음을 간접 고백하기도 했다. 기업에 몸담은 지 1년도 안 되는 탓에 구체적인 계획을 듣기는 힘들었지만 자칫 민감할 수 있는 질문에도 여유롭고 차분하게 응답했다. 30년 기자 내공은 어디 가지 않는 모양이다.

올해 초부터 효성그룹 커뮤니케이션실을 이끌고 있습니다. 홍보인으로 변신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동아일보에서 6년, SBS에서 26년 일했으니 32년 가까이 언론인으로 살았네요. 직업인으로서도, 직장인으로서도 마무리 할 때가 됐다고 생각했어요. SBS 경영지원본부장을 끝으로 언론 생활을 마감하고 제 2의 인생을 고민하던 차에 효성에서 제안을 받았죠. 효성이 사랑받는 기업이 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란 판단에 감사한 마음으로 합류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주로 사회부와 정치부에 몸담았어요. 경제부 기자를 못해봤죠. 그래서 기업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어요.

경제부 경험이 없다면 기업 CCO(최고 커뮤니케이션 책임자)가 되는데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그렇죠. 그런데 커뮤니케이션 중재자라는 측면에서 언론인과 홍보인은 업의 본질이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 3자에게 사실을 전달하고 그 배경이나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그래서 진실을 확인‧확산시키는 기능을 한다는 점에서요.

또 언론인이 취재원과 소통해서 독자나 시청자에게 이를 전달한다면, 홍보인은 언론과 자사 플랫폼을 통해 국민들에게 전달하죠. 다른 듯 같은 일인 것 같습니다. 언론인은 비판에 익숙하고 홍보인은 설명하고 이해시킨다는 차이가 있지만요. 비슷하다고 생각해야 저도 마음이 편하고요.(웃음)

언론인과 홍보인으로서 느끼는 기업 홍보는 어떤 점에서 다른가요.

언론인 생활을 하면서 홍보인들과 접촉할 기회가 제법 있었습니다. 그들 생활이나 업무에 대해서도 좀 안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막상 제가 홍보인이 돼보니 짐작과 일치하는 부분도, 그보다 훨씬 힘든 부분도 있더군요.

서 있는 자리가 달라지면 보이는 풍경도 달라진다고 하잖아요. 언론인 시절에는 홍보인들이 자사 이해관계에만 집착하고 언론 기사 대응에 포커스를 맞춰서 일한다고 생각했는데, 이 자리에서 다른 기업 홍보인들을 만나보니 회사뿐만 아니라 국가 경제, 더 나아가 우리 사회에 대해서도 많은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요즘 워낙 매체가 많고 이슈의 수나 종류도 다양하다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고생하고 있더군요.

최 부사장은 언론인에서 홍보인으로 변신하고 보니 “짐작과 일치하는 부분도, 그보다 훨씬 힘든 부분도 있다”고 소감을 밝혔다.
최 부사장은 언론인에서 홍보인으로 변신하고 보니 “짐작과 일치하는 부분도, 그보다 훨씬 힘든 부분도 있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룹사 CCO로서 특별히 강조하는 업무 포인트가 있을 것 같은데요.

그간 각 기업 커뮤니케이션 조직의 기능이 부정적 기사의 예방‧대응에 치우쳐 있었던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물론 그것도 중요하지만 눈앞의 현안에만 매몰되면 미시적이고 근시안적으로 업무를 하게 돼요. 좀 더 큰 안목을 갖고 효성이라는 기업의 진면목을 제대로 알리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라고 봅니다.

업무에 좀 더 익숙해지면 장기 플랜을 통한 이미지 빌딩(building)에 나서려고 합니다. 각종 정보 유통채널은 다양해지고 유통 속도도 엄청나게 빨라지는데 소비자와 소통하는 기업의 자세도 이에 맞춰져야죠. 우리보다 앞선 국내 기업이나 해외 유수 기업들이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공부하고 있는데 결과물이 도출되면 조금씩 적용해볼 생각입니다.

“언론인 출신 도드라져 보이지만…주류는 정통 홍보인”

부사장님도 그렇지만 최근 대기업 홍보수장들이 대부분 언론인 출신들로 채워지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가 뭘까요.

국내 기업들의 규모와 사업 범위가 커지다보니 커뮤니케이션 대상도 점점 넓어지기 때문에 대응하기 위해 외부 인사들을 합류시키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물론 기업 내부에도 충분한 전문가들이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외부인의 시각으로 문제를 바라보고 해법을 모색할 필요가 늘어나니까요. 생물학에서도 하이브리드(hybrid) 종(種)이 경쟁력 있다고 하는데 조직도 마찬가지라고 봐요. 기업 자체의 홍보 인력에 외부 전문가를 합류시키면 순혈주의 보다는 경쟁력이 생기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제 주관적인 해석지만요.(웃음)

솔직히 언론인 출신들이 홍보수장이 되면서 사내에서 쭉 성장한 정통 홍보인들 사이에선 상대적 박탈감이나 실망감을 토로하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충분히 이해합니다. 저 같아도 그렇게 생각할거에요. 그런데 최근 몇몇 기업에 영입된 언론인 출신들이 도드라져 보이지만 기업 홍보의 주류는 역시 조직 내부에서 성장한 홍보전문가죠. 홍보인 수첩을 보면요, 수백 명의 이름이 올라와 있지만 이 중 언론인 출신은 몇 십 명 정도입니다. 매체 환경이 특수해진 탓에 그간 대처가 힘들었던 부분들을 보완하는 역할로 언론인 출신들이 영입되기는 하지만 메인 스트림은 정통 홍보인이라고 봅니다.

그렇다면 언론인 출신이 어떤 장점을 갖고 있기에 기업들이 영입하는 걸까요.

기자들은 초년병 시절부터 속칭 ‘야마’(기사의 핵심주제를 뜻하는 언론계 은어)를 반복 훈련하잖아요. 핵심을 파악하고 요약하는 훈련이 상대적으로 좀 더 잘 돼 있다고 봐요. 이런 점이 좋은 평가를 받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게다가 기자들은 새로운 사건을 늘 접합니다. 이슈가 터지면 뛰어들고 낯선 인물들을 접촉하는 데 대한 두려움이 덜하죠. 그런 부분들도 장점이 될 수 있고요. 언론 대응 측면에서 봤을 때 뉴스 제작 프로세스에 정통하다는 점도 있겠죠.

단점이 있다면요.

대개 기자들은 주관이 강하고 고집도 센 편입니다. 자칫하면 자신의 제한적인 경험으로 확신을 갖고 섣부른 결론을 내리는 경향이 있지 않을까 해요. 저 역시 마찬가지고요. 그런 부분을 조심하고 있습니다.

기업과 언론은 의사결정 사이클에서도 큰 차이가 있죠. 언론사라면 대부분의 이슈에 대한 기사작성 여부를 오늘 당장 결정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이클이 짧아요. 반면 기업은 일정한 프로세스를 밟아야 하고 여러 리스크를 다 점검해야 합니다. 이런 차이를 잘 극복해야 기업에 오는 언론인들이 잘 안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 덜 빠졌다’는 말 듣지 말라더라”

친정인 SBS나 동아일보 후배들이 효성에 대한 강한 비판 기사를 쓸 수도 있을 텐데요. 막상 그런 일이 닥치면 어떤 심정인가요.

아직까지는 크게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만, 각자 업에 충실하면 원론적으로 크게 서운할 일도, 마음 불편할 일도 없다고 생각해요. 이전 직장의 후배나 동료를 만나면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팩트로 지적하고 비판하는 기사 쓰는 건 기자로서 당연히 할 일이라고요. 효성 관련 기사가 나오면 전후사정과 배경을 충실히 설명하는 건 제 업무죠. 각자 프로들이 자기 업무에 충실하다보면 어느 시점에서 접점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조직 내부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도 언론사 시절과는 다른 점이 클 것 같습니다.

제가 고칠 점이 하나 있어요. 아침마다 팀장들과 홍보임원들과 회의를 하는데...

혹시 발제를 시키시나요?(웃음)

편집회의 하듯 할 때가 있어요. 핵심이 뭐냐고 묻는데 이런 걸 좀 조절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곤 해요. 보도자료를 만들어도 데스킹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아요.(웃음) 실제로 가끔 보기도 했는데 요즘에는 안 그러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매체도 많고 출입기자도 많은데 직접 면대면으로 (전부) 접촉하기는 쉽지 않잖아요. 때문에 회사의 인상을 보도자료를 통해 판단할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보도자료에 대해 잔소리를 많이 하는 편입니다.

아직 언론인 물이 덜 빠졌다고 고백한 최 부사장은 “보도자료를 만들어도 데스킹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고 웃어보였다.  

기자들도 많이 만나시죠. 아무래도 홍보인 입장에서 마주하다보면 기분이 남다르실 것 같아요.

남달라야죠. 달라지려고 많이 노력하고 있고요. 우스갯소리입니다만 저보다 먼저 홍보인으로 변신한 언론 출신 동료들이 해준 조언이 있습니다. 절대 들어서는 안 되는 소리가 있다더군요. 첫째 ‘아직 (기자) 물이 덜빠졌다’라는 말이고요. 두 번째는 ‘왔다는데 코빼기도 못봤다’입니다. 기자들을 자주 만나라는 뜻이죠. 그런데 물리적으로 시간이 많이 모자라네요.

홍보인이 한가하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기자 생활에 비하면 워라밸(Work & Life Balance) 만족도는 높을 것 같은데요.

그간 일을 배우고 인사 다닐 곳이 많아 바쁘기는 했는데요. 초기 적응기를 지나면 기자 시절보다는 워라밸이 좀 더 수월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개인차가 있어요. 특별히 바쁜 출입처나 보직을 계속 맡았던 언론인 출신이라면 워라밸이 괜찮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듣던 것 보다 굉장히 바쁘다고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주로 있던 사회부나 정치부는 이른바 ‘스트레이트 부서’라서 여름휴가 5일을 제대로 가본 적이 없어요. 보직을 맡은 이후에는 주말에도 출근하는 걸로 알고 있었을 정도로요. 그런데 기업은 평일은 바쁘지만 휴일은 쉬잖아요. 새로운 세상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웃음)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이나 각오를 말씀해주세요.

어느 기업이나 잘하는 부분도 있고 개선할 부분이 있죠. 이를 더 좋은 방향으로 발전시키는 데 역할 할 수 있다면 보람을 느낄 겁니다. 그리고 우리사회를 보면 최근에 반(反) 기업 정서가 팽배해 있는데요. 물론 경청할 목소리도 있지만 사실과 부합하지 않거나 너무 한쪽으로 치우친 비판도 있습니다. 이를 불식시키고 대한민국 기업이 국민과 함께 성장하는 풍토를 만드는 데 작은 역할이라도 하고 싶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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