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제주까지의 맥주 한잔
서울에서 제주까지의 맥주 한잔
  • 정지원 (jiwon@jnbrand.co.kr)
  • 승인 2018.10.18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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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의 시간과 공간] 오프라인에서만 확인되는 정서와 로열티

‘브랜드의 시간과 공간’은 브랜드의 라이프스타일을 말하는 두 개의 시선을 통해 브랜딩과 마케팅 이면의 의미를 짚어 봅니다. 이번 칼럼은 연트럴파크를 핫하게 달구었던 제주맥주의 공간에 관한 것입니다. 

제주맥주 ‘서울시 제주도 연남동’ 팝업스토어.
제주맥주 ‘서울시 제주도 연남동’ 팝업스토어. 출처: 트위터 @Drawyourmind_

[더피알=정지원] ‘서울시 제주도 연남동’. 제주맥주 팝업스토어의 타이틀인 이 아홉 글자로 게임은 이미 끝났다. 지난 여름의 뜨거움만큼이나 핫했던 제주맥주의 팝업스토어 기억을 꺼내보았다.

연남동에서 열린 이 행사는 3주 정도의 기간 동안 5만5000명의 방문기록을 남겼다. 맥주판매 역시 높았는데 주말 2000잔, 평일 평균 1000잔 정도가 팔렸다. 어마어마한 자본을 투입한 수입맥주들의 이벤트나 페스티벌이 부럽지 않은 성과였다.

팝업스토어 기획 당시 투자자들의 반응은 좋지 않았다고 한다. 단발성 팝업스토어보다는 IPTV 광고를 집행하는 것이 브랜드 노출에 더 효과적이라고 판단했다. 이들의 입을 막은 것은 제주맥주 측의 순수한 동기였다. 단순히 브랜드를 알리는 것보다 제주맥주를 경험케 하는 것이 더 중요하고, 제주라는 공간이 제공하는 여유로운 감성을 확산해 보겠다는 순수한 의지 말이다.

이제 1년밖에 되지 않은 신생브랜드인 제주맥주는 팝업스토어를 통해 ‘공간’으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보여줬다.

곳곳을 물들인 感

서울이라는 공간에 들어온 제주의 이미지를 전달하기에 ‘서울시 제주도 연남동’은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을 만큼 절묘하다. 이들의 목표는 연남동 주변 지역만은 아니었다. 서울 각 지역에서 연남동을 지나가는 버스광고를 통해 ‘서울에서 만나는 제주’라는 카피로 거리를 누비며 서울 속 제주로 향하는 길을 알려줬다.

시내 곳곳을 누비며 서울 속 제주로 가는 길을 알린 버스광고.
시내 곳곳을 누비며 서울 속 제주로 가는 길을 알린 버스광고.

제주맥주의 팝업스토어는 유난히 공간의 코드가 많이 등장한다. 브랜드 자체의 탄생 및 정체성에 제주가 갖는 비중이 매우 크기 때문일 것이다. 연남동 프로젝트는 공식적으로 팝업스토어 이벤트였지만 내부에선 페스티벌로 접근했다고 한다. ‘서울 곳곳을 제주로 물들이자’라는 슬로건은 그저 문구에 그친 것이 아니었다.

서울 속에서 제주를 만나는 흥겨운 축제를 벌이려고 작정한 듯, 곳곳에 제주의 흔적을 남기고 서울이라는 도시에 머물러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팝업스토어에서는 온라인으로는 구매할 수 없는 제주도 아티스트들과 협업한 굿즈들을 통해 제주로 향하게 했고 우체통을 설치해 머나먼 여행지에서 편지를 쓰는 기분을 부여하기도 했다.

이처럼 서울에 있으면서 제주로 향하는 듯한 공간감은 서울 중에서도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공간, 그리고 넓은 잔디밭, 연트럴파크의 여유로움이 살아있는 연남동에서 펼쳐졌다.

팝업경계 무너뜨려

‘서울 곳곳을 제주로 물들이자’라는 슬로건은 적극적인 실행으로 이어졌다. 일단 팝업스토어답게 연남동 한복판에 아주 크고 눈에 띄는 건물을 만들고 전체를 민트색으로 도배를 했다. 여기에서 만족할 수 없었다. 제대로 물들이기 위해선 팝업스토어라는 공간의 경계를 확장하는 아이디어가 필요했다.

그들이 생각한 첫 번째 확장은 연남동 일대 업장들과 협업해 팝업스토어라는 정해진 공간적 한계를 벗어나는 것이었다. 인근 업장에 제주맥주의 민트컬러 배너를 적용하게 하고, 그곳에서도 제주맥주 판매를 함께 한다는 얘기인데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센트럴파크 거리의 고객을 공유하는 일종의 경쟁 매장이 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결국 가가호호 방문해 설득한 끝에 10개 매장이 제주맥주의 민트컬러 배너와 사인물를 걸고 팝업 기간 동안 협력하게 됐다.

행사 기간 동안 연남동 센트럴파크에서 대여한 피크닉 세트. 출처=공식 인스타그램
행사 기간 동안 연남동 센트럴파크에서 대여한 피크닉 세트. 출처=공식 인스타그램

두 번째 공간의 확장은 연트럴파크를 상징하는 잔디였다. 제주맥주는 팝업기간 동안 피크닉 세트를 대여했는데 그 구성이 어찌나 알차고 예쁜지 펼쳐보는 즉시 자동적으로 SNS 인증을 부르게 하는 핫아이템이 됐다. 참고로 피크닉 세트의 구성은 민트 스트라이프 돗자리, 간이의자, 민트색 랜턴, 컵홀더와 얇은 담요 등이다. 행사 기간 내내 너무 많은 사람들의 대여 요청이 쇄도하고 이 구성 그대로 판매를 문의하는 사람들로 들끓었다. 결국 슬로건처럼 연남동 일대를 민트컬러로 물들이게 됐다.

브랜드에 심는 문화

한 브랜드의 활동들 중에서 공간의 역할은 어느 정도 비중일까?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가 관건이겠으나 공간이 톡톡히 기여하는 부분은 바로 브랜드의 ‘문화’를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이다. 제왕적 위상의 온라인 브랜드 아마존이 오프라인 서점(Amazon Books)을 내고 홀푸드마켓(Wholefoods)을 인수하는 이유에도 공간을 통해서만 확인되는 정서와 로열티가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제주맥주 팝업스토어는 맥주와 안주 판매 외에도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새로운 맥주문화를 선보였다. 비교적 한산한 낮 시간을 이용해 ‘비어요가’, ‘낮맥회식’, ‘마크라메(매듭공예)’ 등의 프로그램 예약을 받았는데 오픈과 거의 동시에 전 회차 예약이 마감됐다고 한다. 좋은 맥주를 새롭게 즐길 수 있는 문화를 제안하는 이런 활동들은 이미 제주도에서 활발히 진행하고 있는 프로그램 중 하나였다.

망할 때 망하더라도 좋은 원료로 좋은 맥주를 만들어보자며 시작한 사장, 그리고 같은 마음의 직원들이 만들어온 새로운 맥주 문화가 서울 연남동에서도 통했다. “우리는 유행을 양조하지 않습니다. 우리만의 맥주를 양조합니다.”(We don’t brew trend. We brew ours.)라고 정직한 서체로 팝업스토어 천청에 썼던 순수함에 사람들이 동했다.

잘 뿌리내린 문화는 쉽게 사라지거나 모방되지 않는다. 공간이라는 미디어는 좋은 브랜드의 문화를 보여주기에 점점 더 절실한 선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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