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과 잘 놀아주던 언니, 놀이판 만들다
동생과 잘 놀아주던 언니, 놀이판 만들다
  • 이윤주 기자 (skyavenue@the-pr.co.kr)
  • 승인 2018.10.19 16:3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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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기업을 찾아서 ⑯] 놀담

“놀담이가 검은색 크레파스를 들고 비를 그리더라. 비는 파랑색으로 그려야 한다는 내 고정관념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아이들은 나의 어떤 모습에도 밝게 웃어주었다”
“아이와 놀아주는 것과 함께 노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놀담 시터의 놀이일기 중

‘못되게 놀았다’ 프로젝트에서 사방치기를 하는 학생들. 놀담 제공

[더피알=이윤주 기자] ‘송파구 오금동 대빵언니’란 별명을 가진 대학생이 있다. 14살 터울의 동생과 어울리다 보니 어느새 동네에서 잘 놀아주는 언니가 돼있었다. 그리고 몇 년 후, 대학생과 아이들이 만나 노는 놀이시터(놀이+베이비시터) 플랫폼 ‘놀담’의 대표가 됐다.

올해 스물다섯인 문미성 대표는 연세대 체육교육학과를 휴학 중이다. 놀담 때문에 복학이 늦어지고 있지만, 놀담이 아니더라도 계속 학교만 다니진 않았을 것 같다고. 

“대학보다 훨씬 배울 게 많고 흥미 있는 사회의 맛을 봐버렸거든요.”

인터뷰하는 문미성 놀담 대표. 사진=이윤주 기자

사회의 맛이요? (웃음)

휴학하고 스물한살에 스타트업에 취직했거든요. 미용실을 모바일로 예약하고 미리 가격을 알고 결제하는 건데, 6개월간 일하면서 한 달 10만 원씩 받는데 회의감이 들더라고요. 열정을 가지고 임하는 사람에게 응당한 월급을 줄 수 없는 아이템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생각했어요. 다음에 입사한 스타트업은 돈은 잘 벌었지만 사업을 위해 외주 작업을 너무 많이 했고요.

어쩌다 보니 스타트업에서 상반된 경험을 줬어요. 의미 있는 일을 하면서 돈을 잘 벌고 싶다고 생각한 게 두 회사를 모두 경험하면서였던 것 같아요.

그 후 놀담이 탄생했군요.

회사를 그만두고 번 돈으로 두 달간 스페인에서 지냈어요. 거기서 차라리 내 회사를 만들자고 결심했어요. 소셜벤처를 육성하는 사관학교에서 6주간 교육받으면서 아이템을 다듬어갔죠.

거기서의 배움에서 두 가지 철학이 기억에 남아요. 첫 번째는 해결하고자 하는 사회문제를 가까운 데서 찾으라는 거였어요. 우리는 대부분 워킹맘 슬하에서 자랐고, 그러다 보니 맞벌이 부모 사이에서 자란 아이의 마음을 잘 알고 있잖아요. 또 대학생으로서 내가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짤막하게 일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고요. 이 모든 게 짬뽕되면서 어린이, 청년들이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워킹맘에도 도움 되는 아이템을 생각한 거죠.

두 번째 철학은 여러 아이디어를 가지고 고객을 많이 만나보라는 거였어요. 저도 다양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갔는데 고객들로부터 “대학생이라면 아이들과 재미있게 놀아주는 게 가장 도움이 될 것 같다”는 피드백을 받았죠. 그래서 대학생 놀이시터라는 개념을 만들었어요.

실제로도 아이들과 노는 걸 엄청나게 좋아하신다고요.

너무 좋아해요. 특히 동생하고 노는 걸 굉장히 좋아해요. 이젠 초등학교 4학년이 돼서 저보다 액체 슬라임을 훨씬 더 좋아하긴 하는데 (웃음) 그 전엔 저밖에 몰랐거든요. 뛰어놀고 꽁냥꽁냥 거리고….

동생 친구 어머니들도 제가 놀이터에서 동생과 있으면 편하게 아이들을 맡기고 업무를 보고 오시곤 했어요. 동생과 어릴 때부터 시간을 많이 하면서 청년과 아이들이 같이 시간을 보내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놀담 시터는 대학생만 가능한가요?

원래 그랬는데 올해 규정을 바꿨어요. 20~39세까지 모두 가능해요. 아이와 가장 잘 노는 사람을 1순위로 두고 그게 누구일까 생각했는데, 반드시 대학생일 필요는 없었던 거죠. 하지만 서비스의 코어(core)는 역시 대학생입니다.

시터는 ‘일반’ ‘우수’ ‘전문’으로 3가지 등급으로 나뉘어요. 전문은 주로 보육교사 출신들이 많이 활동해요. 이분들은 아이들을 좋아하고 굉장히 유능하지만, 직장생활에서는 막상 행사기획, 문서작성 등 실무적인 일에 부담을 많이 느끼셨대요. 여기선 그런 거 없이 직업으로 삼고 또 아르바이트로 할 수도 있는 거죠. 현재 시터 6000명, 회원 수 2만명을 넘겼어요.

아이와 놀아주는 놀이시터. 놀담 제공

아무래도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더 좋다는 생각에 ‘전문’을 택하진 않나요?

실제 이용 비율을 보면 일반, 우수가 제일 많고 전문은 10% 이내에요. 꼭 높은 등급을 선택하시는 건 아니에요. 전문이 프리미엄 서비스를 제공을 의미하는 게 아니니까.

놀담 고객들은 주로 어떤 때 서비스를 찾나요.

페인킬러(painkiller)의 이유가 가장 크죠. 부모님들은 대개 저녁 6시에서 7시 사이에 퇴근하잖아요. 그런데 유치원 종일반은 4시 반에 끝나요. 초등학교는 1~2시에 끝나고요.

우리 시절에는 동네에서 놀아도 큰일 날 염려가 없었는데, 요샌 아이를 혼자 두는 자체가 불가능하다 보니 누군가 돌봐줘야 하는 거예요. 그래서 대부분 학원에 보내요. 초등학교 저학년, 미취학 아동의 95%가 방과 후에 하루 두 개 이상의 학원에 다닌대요. 아니면 학습시터, 영어시터, 원어민시터 등에 맡겨지죠. 찾아가는 학원이 되지 않을까 염려가 돼요.

사실 방과 후 두 시간 정도는 노는 게 맞아요. 그래서 아이들에게 필요한 놀이시간을 돌봄에 넣은 게 놀담이에요. 돌봄 서비스가 절실한 학부모가 신청하되, 학부모 입맛에 맞는 학습이 아닌 순수한 놀이, 아이들을 위한 즐거움을 제공하는 거죠. 저희는 숙제를 봐준다던가 레슨을 해주는 식의 교육을 내세우지 않아요. 그런 걸 할 수 있는 데는 많고도 많아요.

사실 부모가 돌봄에서 가장 신경 쓰는 건 ‘안전’이겠죠. 사고가 워낙 잦잖아요. 놀담은 어떻게 신뢰를 주고 있나요.

시터 등급마다 신원평가와 면접을 반드시 진행해요. 10시간 이상 놀아주면 우수등급으로 승격되는데 그러면 교육을 받고 범죄경력도 조회해요.

이런 과정도 필요하지만 사실 다쳤을 때 어떻게 처리되는지 보다 다치지 않기 위해 어느 정도의 주의가 요구되는지 시터가 분명하게 아는 것이 더 중요해요.

예를 들면 세 살 아이랑 매칭이 됐어요. 이 시기는 구강기라서 어지간한 물건은 입에 넣고 보거든요. 아이 입에 들어갈 정도의 놀잇감은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는 걸 인지하고 있어야 해요. 놀이를 진행하기에 앞서 다칠 염려가 없는지 주변 환경을 스캔하는 등 높은 수준의 주의가 필요하고 저희는 그에 대한 매뉴얼을 제공해요.

학부모로부터 클레임이 들어온 적은 없는지요.

많죠. ‘선생님이 너무 소극적이다’ ‘아이와 맞지 않는다’는 클레임은 많아요. 그런데 클레임 자체보다 그 다음 어떻게 하느냐가 훨씬 더 중요해요. 이 아이에겐 주도적인 선생님을 매칭해야 한다는 데이터가 하나 더 생긴 거잖아요. 사후 관리의 영역으로 들어온 거죠.

시터들이 현장에서 느낀 점이나 학부모님의 피드백도 궁금합니다.

저도 제 동생이랑 시간을 많이 보내서 알지만 아이들이 가끔 골 때리는(?) 영감을 줄 때가 있어요. ‘아, 그렇게 생각하면 되는데 내가 너무 어렵게 생각했다’ ‘이런 자세로 삶을 살아가야 하는데’ 등이요. 이기적이지만 당돌하게요.

학부모 피드백 중 기억에 남는 게, 산책 가자는 아이가 비가 오지 않는데도 우산을 쓰고 싶다고 한 거예요. 보통 어머니 같으면 우산을 두고 가자고 할 텐데 놀이시터는 “그래 한번 그렇게 해보자” 했대요. 내리쬐는 햇볕에 우산 쓰고 비를 피하는 시늉을 하는 걸 보고 ‘이건 놀이시터만이 할 수 있구나’ 싶으셨대요. 무한한 잠재력을 가지고 뭐든지 마음껏 하게 해주는 게 중요하죠.

또 한 가지 사례는 아버지가 없는 가정이었어요. 아이는 초등학교 3학년이고요. 그 어머니는 아이가 아빠나 형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청년과 정기적으로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고 하셔서 저희 선생님 가운데 우수한 분을 매칭해 드렸어요. 놀이 일기를 봤는데 둘이 영화 보고, 사우나 가고 진짜 형·동생처럼 지냈더라고요.

그 가족은 1년 뒤 싱가포르로 떠났는데 어머니께서 아이가 선생님을 많이 좋아하고 든든하게 느꼈다며 피드백 주셨어요. 저희가 기대한 것보다 훨씬 깊이 있는 관계를 맺어가는 분들이 계신 것 같아요.

잘 논다는 건 어떻게 노는 걸까요?

사실 놀이를 돈 주고 사고파는 순간, 잘 논다는 것 자체를 구현하는 건 어렵죠. 그래도 노력으로 할 수 있는 건 있어요. 놀아주고 맞춰주고 돌봐주는 것이 아닌 같이 노는 거예요.

놀담은 만 18개월부터 13세까지 각 연령에 맞는 추천놀이가 있는 놀이 매뉴얼이 있어요. 예를 들면 3~6세 발달 특징 중 하나가 감각이에요. 종이를 반으로 접으면 어떻게 되는지, 어떤 냄새가 나는지, 어떤 소리가 나는지, 무슨 맛인지 등 호기심이 굉장히 강할 때거든요. 애들에겐 그게 놀이인 거예요.

4세부터는 말이 통하고 사회적인 관계를 형성하기 시작해서 한 가지 상황을 가정한 상태에서 흉내 내는 걸 좋아해요. 역할 놀이인 거죠. 7세부터는 또래 친구들이 중요해지고, 정규학습을 받으며 배운 걸 놀이로 승화해보고요.

청년들에게도 잘 노는 게 뭔지 질문을 던지고 생각해볼 기회를 제공하는 캠페인 활동도 하고 있어요. 가령 모여서 우리가 어릴 때 하던 경찰과 도둑,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진지하게 하는 거죠. 옆에는 맥주 케이터링을 시켜놓고요.(웃음) ‘못되게 놀았다’라는 프로젝트예요. 다음주 주말 신촌에서는 청년과 아이들이 딱지를 대결하는 행사도 열어요.

지난 9월 신촌 놀이부흥프로젝트 '놀담일보'. 놀담 제공

정리하자면, 잘 논다는 건 첫 번째로 서비스 안에서 아이와 청년 모두 재밌어야 하고, 두 번째로 아이가 원해서 해야 해요. 태권도장을 보내는 건 부모 입장에서는 놀라고 보내는 거겠지만, 아이 입장에서는 또 다른 숙제처럼 느껴질 수 있거든요.

마지막으로 주도적이어야 해요. 시터가 무언가를 강제하고 지도하는 게 아닌, 아이가 놀이를 이끌어갈 수 있게요.

국내에 놀담같은 플랫폼 사업자가 또 있나요?

수학시터, 체육시터, 영어시터 등 많지만 놀이시터는 없어요. 문재인 정부가 대대적으로 밀고 있는 ‘아이돌보미서비스’가 있어요.

경쟁 상대가 정부가 됐네요.(웃음)

정부가 학부모 입맛에 맞춘다면 우리는 아이를 위해 고민하죠. 부정적으로는 생각하지 않아요. 아이돌봄 사업이 생활에 필요한 필수 서비스가 됐구나 싶죠. 잠재고객을 정부가 열심히 찾아주고 있다고 봐요. 관련 키워드가 일주일에 한 번 키워드 인기검색어 톱100 안에 들어요. 그때마다 놀담에 사람들이 확확 들어와요. 정부 덕을 보고 있죠.(웃음)

지금으로부터 딱 2년 전 이맘때쯤 인터뷰를 하셨더라고요. ‘2년 뒤 바라는 모습은 아이들이 하교하고 손가방, 신발 가방 흔들며 나올 때, 대학생 언니 오빠들이 집에 데려다줘요. 놀이터에 친구들이랑 놀다가 안전하게 집에 데려다줘요’라고요. 지금 평가해본다면.

으허허~ 그걸 보셨네요.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드네요. 솔직히 지금 아이들에게 그 정도의 혜택이 갔는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적어도 학부모에게 대안은 드렸죠. 야근하거나 육아에 치일 때 한 가지 선택지를 더 마련해드렸으니.

아이들에게 혜택을 더 줄 수 있는 서비스가 되도록 더 노력해야겠어요. 2년이 되게 짧구나.(웃음)

놀담의 큰 그림은.

4차 산업혁명이 도래했는지, 도래하고 있는지, 도래할 건진 모르겠으나 어쨌든 많은 인간의 노동력이 (기술로) 대체되겠죠. 여가시간이 계속 늘어나 하루 평균 4시간 일하게 될 것이라 예측하는 분도 있더라고요.

앞으로 이 여가시간을 어떻게 운용할 건지, 무엇을 소비하고 그게 내 삶에 어떤 의미가 있게 될지가 중요해질 거예요. 그리고 그와 관련된 비즈니스가 매우 많아질 거라고 봐요.

요즘 여행 플랫폼도 많이 생기고 야놀자, 여기어때도 다양한 액티비티 사업에 투자하고 있잖아요. 이런 흐름이 당연한데 거기서 놀담이 아이들에 대한 놀이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서비스로 우위를 점하고 싶어요.

대표로서 이야기를 듣다보니 문득 궁금해지네요. 사업 시작 후 동생이랑 잘 못 놀아주지 않나요? 서운해 할 것 같은데…

서운해 하는 걸 1년에 한 번, 동생 생일파티에 제대로 풀어줘요. 그해 가장 잘 노는 시터를 한 명 불러서 물총놀이를 하거든요. 거의 서너 시간 동안 해요.(웃음)

그때 ”우리 언니가 바로 놀담 사장이다“라고 뿜뿜(?)대죠. 동생 반 애들도 다 데리고 오라고 초대장부터 삐까뻔쩍하게 만들어줘요. 아이들도 다 모아놓고 동네 떠나가라 놀아요.

그럼 아주 많이 행복해하던걸요?(웃음)

문미성 놀담 대표. 사진=이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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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사 2018-10-20 01:54:39
첫 사진에 '힉생'들 오타가 너무 우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