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커피 마시러 은행 간다
나는 커피 마시러 은행 간다
  • 박형재 기자 (news34567@the-pr.co.kr)
  • 승인 2018.10.19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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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면 거래 증가 속 서점, 카페, 편집숍 등으로 진화하는 은행 점포들…직접 방문해 보니
시민들이 29cm 편집숍과 카페를 이용하고 있다.
KEB하나은행이 선보인 컬쳐뱅크 4호점. 방문객들이 29cm 편집숍과 카페를 이용하고 있다.

[더피알=박형재 기자] 지난 17일 오후 KEB하나은행 서울 강남역지점. 고객 대기석에 앉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점포 한편에는 카페 부스가 차려져 있고, 그 옆에 에코백이며 매거진, 과자 등을 파는 편집숍이 있다. 사람들은 커피 마시며 노트북을 보거나 상품을 구경하고, 때론 은행 쪽 쇼파에 앉아 자유롭게 휴식을 취했다.

50대 이정은 씨는 “아침에 은행업무 보러 들렀다가 시설이 괜찮길래 오후에 친구와 같이 와서 이야기하고 있다”며 “눈치보지 않고 편히 쉴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은행과 카페, 편집숍을 섞어 놓은 듯한 이곳은 하나은행 컬처뱅크 4호점이다. 컬처뱅크는 은행 영업점을 지역 특색에 맞는 문화 체험 공간으로 활용한다는 콘셉트로 만들어졌다.

1호 서울 서래마을점에서는 공예품을 전시·판매하고, 2호 광화문점에서는 책을 읽으면서 커피와 맥주(저녁 시간)를 마시는 식이다. 오후 4시면 셔터 문을 닫고 동네 활력을 떨어뜨리는 은행이 아니라, 지역 주민들이 활용 가능한 생활밀착형 공간으로 다가가겠다는 시도다.

이곳은 온라인 편집숍 29cm와 협업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30세대 사이에서 인기 있는 29cm는 유통업계로부터 오프라인 매장 제안을 꾸준히 받아왔으나 ‘지역과 은행이 함께 만드는 문화공간’이란 의외성에 매력을 느껴 첫 오프라인 매장을 이곳에 냈다. ▷관련기사: 이벤트는 거들 뿐… 29CM의 진짜 무기는 OOO

KEB하나은행이 선보인 컬쳐뱅크 4호점. 카페처럼 내부를 꾸몄다. 사진=박형재 기자
컬쳐뱅크 4호점은 카페처럼 내부를 꾸몄다. 사진=박형재 기자
은행 반대편에 마련된 온라인 편집숍 29cm의 첫 오프라인 매장. 사진=박형재 기자
은행 반대편에 마련된 온라인 편집숍 29cm의 첫 오프라인 매장. 사진=박형재 기자

다만 아직까진 공간 활용도가 아쉬웠다. 29cm가 운영하는 공간에는 푸드, 굿즈, 매거진 등이 배치됐으나 차별화된 브랜드 감성이 느껴지진 않았다.

또 하나은행이 문을 닫은 오후 4시 이후에는 카페와 편집숍만 운영되는데, 그러다 보니 은행 쪽 넓은 공간이 다소 낭비되는 경향도 있다. 은행과 편집숍, 커피숍이 ‘따로 또 같이’인 형태다.

20대 박성진 씨는 “은행이 바뀐 건 좋은데 29cm 오프라인 제품들이 온라인 샵에 비해 다양하지 않아 아쉽다. 기대했던 것에는 좀 부족한 느낌”이라고 말했다.

우리은행 롯데월드지점 내부 모습. 한쪽에선 도넛을 먹고, 다른 쪽에선 은행업을 보는 장면이 이색적이다.
우리은행 롯데월드지점 내부 모습. 한쪽에선 도넛을 먹고, 다른 쪽에선 은행업무를 보는 장면이 이색적이다.

은행 오프라인 공간의 변신이 하나은행에만 국한되는 건 아니다. 온라인 금융거래가 활성화되면서 힘을 잃고 있는 점포 활성화를 위해 색다른 고객 경험을 제공하려는 시도가 많아졌다. 

우리은행은 잠실 롯데월드몰 지점에 크리스피크림 도넛 매장과 결합한 ‘베이커리 인 브랜치’와 동부이촌동지점에 커피 프랜차이즈 폴바셋과 제휴한 ‘카페 인 브랜치’를 열었다.

우리은행 잠실점에 가보니 오후 시간이라 그런지 은행업무 보다는 커피와 도넛을 주문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상대적으로 넓은 자리를 차지하는 도넛 매장에 비해 한쪽 벽면에 붙은 은행창구는 3곳에 불과해 매장이 더 돋보였다. 그럼에도 간간히 은행 창구로 향하거나 ATM 기기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나란히 놓여있는 은행 번호표 기계와 도넛 매장 음식물 정리함.
나란히 놓여있는 은행 번호표 기계와 도넛 매장 음식물 정리함.

이곳의 영업시간은 오전 10시30분부터 오후 8시까지다. 고객 편의를 위해 영업시간을 탄력적으로 조정했다. 은행과 도넛 매장이 따로 구분되지 않고 결합된 형태라서 기존 점포와 다른 분위기를 연출했다. 은행 대기시간에 커피나 도넛을 먹으며 기다릴 수 있다.

은행 청원경찰이 은행 쪽 테이블에서 도넛을 먹고 간 손님이 의자를 빼놓고 가자 쓱 밀어넣는 매너(?)를 보인 것도 인상적인 장면. 매장과 은행이 분리된 하나은행과 비교하면 좀 더 인간미가 있으나, 우리은행만의 브랜드 정체성은 엿보이지 않는다.

도넛으로 저녁을 먹던 20대 여성 김윤경 씨는 “은행과 도넛 매장이 같이 있는 걸 지나가다 보긴 봤는데 실제로 방문한 건 처음”이라며 “(은행에) 사람 많아서 대기할 때 먹으면서 기다리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 마포구 홍대거리에 위치한 복합문화공간 ‘KB락스타 청춘마루’
서울 마포구 홍대거리에 위치한 복합문화공간 ‘KB락스타 청춘마루’

KB국민은행은 홍익대학교 지점을 리모델링해 ‘KB락스타 청춘마루’로 재탄생시켰다. 아예 은행 점포에서 ‘은행’을 빼고 건물 전체를 복합문화공간으로 활용하는 사례다.

은행의 흔적을 알 수 있는 것은 ATM 기계가 전부. 대신 건물 인테리어와 소품들을 노란색으로 통일해 브랜드를 알리고 있다. 은행과 매장이 완전히 결합하거나(우리은행), 따로 분리시켜놓은(하나은행) 곳과는 다른 공간 활용법이다. 

다만, 청춘마루는 출입에 조건이 있다. KB스타뱅킹 앱이나 리브(Liiv)앱에 접속한 뒤 바코드를 활성화시켜야 들어갈 수 있는 것.

공간에 매력을 느껴 주기적으로 찾는 고객 입장에선 크게 부담스럽지 않은 장치지만, 첫 경험을 제공하는 데에는 초기 진입 장벽이 될 수 있다. 

청춘마루 계단에서 시민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청춘마루 계단에서 시민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청춘마루에 머무는 동안 번거로웠던 감정은 사라졌다. 앱 다운의 불편을 해소시켜줄 정도의 재미 요소와 은행 브랜드가 적절히 녹아 있었기 때문. 

이곳은 지하 1층~지상 3층으로 되어 있는데, 각 층마다 계단형태의 휴식공간을 마련해 편히 쉬도록 했다. 또한 무료로 휴대폰 충전기와 보드게임을 빌려주고, VR게임방과 세미나실도 이용할 수 있다. 누굴 기다리거나 잠시 머물기 좋아 보였다. 

건물 곳곳에는 청춘에 대한 응원 메시지와 은행을 연상시키는 장치들이 마련돼 국민은행이 청춘을 응원한다는 느낌이 들게 만들었다. 2층 갤러리에는 ‘청춘의 밝기를 묻는다면 지금의 당신을 답할 거야’라는 문구가 있고, 거울에는 ‘오늘 예쁘게 하고 나와. 평소처럼’이라고 적었다. 다소 오글거리지만 힘든 청년들에게는 위안이 될 수 있을 듯했다.

또 지하 1층에는 각종 매거진과 책을 배치했는데 일부러 노란색 표지의 책만 갖다놓아 은연 중 국민은행이 연상되게 했다.

작은 전시회가 열리는 2층에는 청춘을 응원하는 문구들이 적혀 있다.
작은 전시회가 열리는 2층에는 청춘을 응원하는 문구들이 적혀 있다. 

20대 백순심 씨는 “약속을 앞두고 1시간 정도 여유가 나서 인터넷으로 검색해 오게 됐다”며 “시간 보내기 좋아서 앞으로도 종종 이용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20대 박세은 씨는 “최근 청춘마루 무료 강의를 듣고 유익해서 다른 강의를 들으러 방문했다”며 “은행 공간이 청년들을 위해 문화적으로 다가가는 건 좋다고 생각한다. 딱딱한 이미지에서 벗어나 쉽게 친해질 수 있을 것 같다”고 전했다.

전략적으로 배치된 노란 책들은 국민은행을 떠올리게 한다.
전략적으로 배치된 노란 책들은 국민은행 브랜드 색상을 떠올리게 한다.

은행권에서는 이색점포를 확대하는 추세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금융뿐 아니라 여타 소비자를 끌어들일 수 있고 권위적인 이미지 개선에도 좋기 때문이다.

비대면 거래가 갈수록 많아지고 이와 맞물려 은행 점포 수가 빠르게 감소하는 가운데, 은행 공간을 활용해 주민들이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지역사회로 스며드는 노력은 불가피하다. 

실제로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6년부터 올해 6월까지 국민·신한·우리·하나은행에서 판매된 상품의 61%가 비대면 거래로 이뤄졌다. 6월 말 기준 전국 은행 점포는 6768개로 5년 전 대비 884개가 줄었다.

이와 관련, 하나은행 관계자는 “오프라인 은행을 찾는 고객 숫자가 계속 줄어드는 가운데 접점 채널을 유지하고 브랜드 이미지를 좋게 가져가기 위한 고민을 갖고 있다. 은행 공간을 좀 더 지역사회에 환원하고 그 지역에 가장 어울릴만한 콘텐츠를 제공해 은행을 참여형·공유형 문화 플랫폼으로 발전시키는 혁신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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