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어떤 年생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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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윤주 기자 (skyavenue@the-pr.co.kr)
  • 승인 2018.10.23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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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말인터뷰] 90년생 백말띠 커뮤니티 '구공백말띠'
국회 잔디밭에서 열린 2018 가을 운동회 현장. 구공백말띠 페이스북

[더피알=이윤주 기자] 나이가 같은 사람을 만나면 왠지 모를 동질감이 생긴다. 여기 동질감을 커뮤니티로 승화시킨 동갑내기들이 있다. 60년 주기로 태어난다는 백말띠(1990년생)가 모인 ‘구공백말띠’이다.

이들이 모여서 하는 일은 운동회, 유치원, 수학여행, 환경미화, CA까지 학창 시절 활동들을 고스란히 재연하는 것과 서로의 힘이 되어 주는 것. 

국회 잔디밭에서 구공백말띠 모임을 만든 김건우 씨를 만났다. 지난 추석 연휴 ‘하얀말운동회’가 열렸던 역사적(?) 장소다. 이날 그의 티셔츠에는 ‘1990’이 커다랗게 적혀 있었다.

*기자 역시 90년생이다. 따라서 인터뷰 콘셉트를 반말로 잡았다. 이에 김건우 친구는 “좋아”라고 흔쾌히 승낙했고, 십년지기처럼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인터뷰하는 김건우 대표. 사진=이윤주 기자

말을 놓으니 친근하네. 너는 교실에서 어떤 학생이었어? 왠지 항상 반장만 했을 것 같아. 요새 말로 인싸!

맞아. 반장하고 학생회장도 했었어. 공부를 즐기지는 않았던 것 같아. 시험에서 깎아 먹은 점수를 수행평가로 채우는 애들 있잖아. (너구나) 맞아. 발표나 가산점으로 평균 점수를 유지했던 학생이었지. 까불까불하고. 틀에 갇혀있지 않으려고 노력해왔지.

길거리에 광고 전단지가 붙어 있잖아. 집 가는 길에 심심하니까 한 장씩 떼면서 집에 가곤 했어. 이유없이 그냥 깨끗해지니까. 그랬는데 마침 동사무소에서 그걸 모아오면 무게마다 봉사시간을 주더라고. 나는 집 가면서 하는 소일거리였는데, 봉사시간이 몇백 시간 채워지고 그랬어. (웃음) 삶 속에서 이야깃거리가 늘어나는 걸 즐겼던 것 같아.

평범하진 않았네. (웃음) 구공백말띠를 만들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된 거야?

대학교 입학하고 스스로 세운 목표가 있었어. 졸업 전까진 꿈을 갖지 말자. 전공이었던 국제관계학만 해도 스스로 어울리지 않는단 걸 알고 있었거든. 학과도 급하게 정하다 보니 가장 멋있어 보이는 걸 선택했고. (웃음) 과에 맞춰 섣불리 ‘난 외교관이 될 거야’라고 생각하는 게 이상했어.

흔히 말하는 사회적 알람에 따라 학년별로 해야 하는 것들이 정해져 있잖아. 2학년 때는 봉사활동, 3학년엔 토익, 4학년 때는 인턴…. 로봇 같았어. 이러다가 내가 좋아하지 않는 회사에 이력서를 넣고 덜컥 회사원이 되는 커리큘럼이 공포스럽게 느껴졌거든.

매순간 의미 있고 재밌을만한 것이 뭘까 생각하면서 살았어. 전역을 앞두고도 고민하고 있는데 마침 다음 해가 말띠의 해인 거야. 아까 말했듯, 난 작은 거에 의미 부여하고 이야기를 만드는 걸 내 강점이라고 생각하거든. 이 해를 놓치면 누구보다도 후회할 것 같았어.

그리고 그때 당시 우리가 스물 다섯살이었잖아. “와 우리 이제 반오십이야”이런 말 하면서 공감할 친구도 많을 것 같았고. 다 같이 우리의 해를 의미 있게 시작하면 어떨까 싶어서 구공백말띠라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었지.

지금은 5만3000명이 페이지를 팔로우하잖아. 어떻게 이렇게 많이 모인 거지? 

나도 되게 신기해. 난 이 페이지를 ‘키워야겠다’ 혹은 ‘이렇게 하면 키울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게 아니야. 네 질문에 대한 답은 모르겠다는 거야. 단지 페이지를 만들면서 내가 가진 고민은 친구들도 가지고 있는 고민이고, 내게 추억인 것들은 그들에게도 추억이 될 거라 생각했어. 내가 포토샵을 할 수 있거나 콘텐츠를 가공해서 올릴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한번은 갑자기 피카츄 돈까스가 생각난 거야. 아직도 파나 궁금해서 찾아 갔는데, 조금 더 뚱뚱해진 채로 있는거지. 그걸 찍어서 페이스북에 올렸는데 그 게시물이 대박이 났어. 2만이 넘는 라이크(like)를 받았거든. 그 중에 구공백말띠라는 네이밍을 보고 ‘이거 난데?’ 생각했던 거 같아. 그때부터 게시물을 받는 친구들의 진짜 친구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고 이 마음이 전해진 것 같아.

페이스북에 진짜 소소한 거 많이 올리더라. 버디버디 상태 메시지가 캡처해서 올리거나, 자기 아이디 나누거나. 재밌어서 한참을 봤어. 특히 반말로 말을 걸고 소통하는 게 그렇게 힘이 되더라고. 운동회 하루 전 어떤 아나운서는 기상캐스팅도 해주던데?

운동회 전날 날씨를 알려주는 90년생 이귀주 아나운서. 구공백말띠 페이스북

맞아. 구공백말띠 페이지에 운동회를 한다고 올리면 수많은 직업, 장기를 가진 친구들이 ‘내가 도와줄까 이렇게 연결해서 할 수 있는데’라고 연락이 되게 많이 와. 항상 기적같아. 운동회를 하기 위해 300명이 모이면 300개의 직업이 만나는 거야. 누군가 조금 다치면 간호사가 나타나고, 갑자기 “난 농부야” 그러면서 쌀 300kg을 기부하기도 하고. (웃음)

그 중 어떤 친구가 이귀주 아나운서를 알게 됐는데, 그분도 90년생이라는 거야. 아나운서가 우리에게 도움이 될 방법이 뭐가 있을까 고민 하다가 운동회 전날에 날씨 소식을 전해 달라고 했어. 어릴 때나 지금이나 운동회 바로 전날에는 날씨에 대한 두려움이 있잖아. (웃음) 그걸 받으면 친구들도 안심이 되고 기대도 하지 않겠냔 생각을 했지.

운동회 안내 가정통신문을 각자 우편으로 발송했잖아. 절취선도 있고. 진짜 리얼하더라.

참가자 집으로 보낸 구공백말띠 하얀말 운동회 가정통신문. 구공백말띠 페이스북
참가자 집으로 보낸 구공백말띠 하얀말 운동회 가정통신문. 구공백말띠 페이스북

일단 무언가를 하려고 하면 그 시절을 최대한으로 재연하려고 해. ‘디테일이 우리의 강점이다’가 모토야. (웃음) 가정통신문은 갱지로 만들어야 하는데 요즘은 갱지를 구하기도 어렵더라고.

친구들이 가정통신문을 받으면 그건 참가 티켓이 되는 거야. 거기에 부모님 서명도 받아와야 해. (진짜 받아와?) 응. 다 받아와. 학창시절처럼 자기가 부모님 대신 하는 애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받아오더라고. 부모님들도 되게 좋아하신대. 평소 말도 잘 안 하다가 다 큰 녀석이 오랜만에 “엄마 여기 사인해줘”라고 하면 “옛날에 네가 많이 가져왔었는데”라며 자연스럽게 얘기하게 된다고 하더라고.

운동회도 새로운 걸 하는 건 없거든. 운동장을 데코할 때도 그 시절을 떠올리는 게 목표여서 나무에 만국기를 설치하고, 양호실, 하얀말문방구 등 부스를 세워. 그리고 국민체조, 교가 제창, 애국가 제창, 교장 선생님 훈화 말씀.. (네가 교장이야?) 아니, 난 학생회장이야. 이후 박 터트리기, 6인 7각, 장애물 달리기, 큰 공 굴리기 등을 하지.

국회 잔디밭에서 열린 2018 가을 운동회 현장. 구공백말띠 페이스북

이번에 350명 모집이 2시간 만에 마감됐다며. 내년엔 나도 같이 하고 싶다. 티켓팅에 성공할진 모르겠지만. (웃음) 운동회 말고 또 어떤 활동을 해?

규격화된 건 없어. 다들 회사나 각자의 일이 있다 보니 뭔가를 많이 할 순 없거든.

운동회를 앞두고 처음 오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잖아. 어색하지 않게 미리 만나서 놀고 싶었는데, 그 포맷을 환경미화로 잡았어. 그 친구들이 “난 한 번이라도 건우랑 얘기해봤으니까 (어색하지 않아)”라고 생각하게끔.

입학 시즌이 되면 김영만 선생님(건우가 유치원생때 김영만 선생님과 함께 사진을 찍은 적이 있음. 그 사진을 보여주면서 섭외했다고)이랑 ‘딩동댕 하얀말유치원’에서 다 같이 종이접기를 하고 있어.

김영만 선생님과 함께 하는 '딩동댕 하얀말유치원' 시간. 구공백말띠 페이스북

중학교 시절로 돌아가 보자고 해서 1박 2일 수련회를 기획한 적도 있지. 유스호스텔이란 단어를 찾아야만 성공이라고 생각했어. (웃음. 경주에 많지 않아?) 이곳저곳에 있는데 캠프파이어가 안 되는 곳이 많더라고. 그러다 용인민속촌에 한 군데 있어서 거기로 갔지. (웃음)

또 하얀말 에코 프로젝트라고 해서 지구의날을 맞이해서 의미 있는 일을 해보고 싶었어. 우리의 변하지 않는 가치를 담을 에코백이나 굿즈를 제작해서 펀딩을 했는데, 그때 780만원이 모였어. 그래서 소셜벤처 트리플래닛과 콜라보해서 어린이대공원에 구공백말띠 숲을 만들었어.

국회의원이 등장하는 ‘하얀말 회초리’ 프로젝트도 있던데, 그건 뭐야?

그게 오프라인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터닝포인트가 된 프로젝트야. 친구들이 페이스북 메시지로 고민을 많이 보내거든. 나만의 위로 방식으로 열심히 답장을 보내다가, 이 위로 끝에는 다시 현실이잖아. 다시 공허해질까봐 너무 미안한 거야. 이게 우리나라 청년들의 고민이기도 하고. 

그래서 이 편지들을 ctrl+C, ctrl+V(복사해서 붙여넣기) 했어. A4용지 48페이지가 나오더라. 그걸 각 정당에 보냈어. 당시 새누리당, 민주당, 정의당, 국민의당 대표에 보내고 피드백해 달라고 했지. 그 포맷으로 타이틀을 잡은 게 ‘스물일곱, 하얀말회초리’야. 국회의원을 때리는 회초리.

어느 한 국회의원이 먼저 용기를 내서 나서 주셔서 떨리는 마음으로 라이브 방송을 진행했지. 그 이후에도 다른 정당들도 참여했는데, 계속해서 더 센 카드를 내놓아서 경쟁이 붙기도 했었어. (웃음)

사실 국회의원과 (이런 프로젝트를) 하는 게 조심스러웠어. 페북에선 질서를 유지했던 친구들이 의원을 만나면 과격해질 수도 있잖아? 그런데 국회의원 누가 나오든 질서를 유지해주는 거야. 아, 이 친구들이라면 오프라인에서 만나도 질서를 유지해주겠다는 확신이 들었지.

페이지를 만든 지 다음 달이면 5주년이잖아. 언제까지 해야겠다는 계획이 있는거야?

구공백말띠는 조금 큰 의미 있는 취미 생활이야. 수련회 당시 폐회 선언할 때 내가 했던 말이 있어.

우리는 5년이 지나도, 10년이 지나도 구공백말띠란 건 변하지 않으니, 너희가 건강만 하면 평생 함께할 거라고. 우스갯소리로 60살 되면 광화문에서 다 같이 환갑잔치를 하자고 했어. (웃음) 나이에 따라 맞는 콘텐츠는 계속 나오리라 생각해.

관악산 정상에서 올린 인증샷. 구공백말띠 페이스북

네가 보기엔 구공년생만의 특징은 뭐라고 생각해?

구공백말띠가 잘 되고 다른 띠들도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겠다고 하더라고. 저에게 허락 안 맡아도 된다고, 도와줄 수 있는 건 준다고 했거든. 근데 실제로 구공백말띠만큼 잘 안 뭉쳐지더라고. 구공년생만의 단결력이 있는 것 같아.

어릴 때 90년생 백말띠 여자는 드세다는 풍토가 있었잖아. 그래서 낙태율도 사상 최대고, 남녀 성비도 가장 불균형한 세대라고 하더라고. 여자(사람) 친구들은 조금이라도 적극적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면 ‘역시 백말띠라서 드세’라는 말을 듣고 자라왔고. 그래서 그런지 프로젝트 할 때마다 여자 친구들에겐 억눌려있던 것들이 터지는 느낌을 받았어. 

실제로 참여비율도 보면 6 대 4로 여자가 더 많거든. 뭐든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친구들인 것 같아. 

그렇구나. 맞는 것 같기도 하네. (웃음) 새로운 프로젝트를 생각하고 있는 게 있어?

일단 11월 13일 구공백말띠 다섯 번째 생일이야. 머릿속에서 생각하고 있는 게 있어. (오프 더 레코드) 이건 비밀로 해줘.

뭔가 프로젝트를 할 때마다 ‘20대 마지막’이라는 타이틀이 붙어왔잖아. 이번 연말 카운트다운은 정말 의미 있겠다 싶어서 ‘어쩌다 서른’ 프로젝트도 준비하고 있지.

다음 질문도 그거야. 우리 이제 내일모레면 서른이잖아. 개인적인 느낌도 궁금하다.

기대가 돼. 그럼에도 주변에서 ‘우리 이제 곧 서른이야’ 걱정하는 얘기가 많이 들려서 그런지 덩달아 생각이 많아지기도 하고. 서른엔 나도 경제적인 활동도 해야 하니까, 여러모로 터닝포인트가 될 것 같아.

늘 그랬듯 우리답게 서른을 맞이하고 그 환경에 맞는 무언가를 같이 해나가면 좋지 않을까.

운동회가 끝난 뒤 김건우 대표 등판에 적힌 메시지. 구공백말띠 페이스북

마지막 질문이야. 곳곳에서 살아가고 있을 구공년생 친구들에게 한 마디 해줘.

지나고 나니 우리는 복 받은 세대라는걸 느껴. 생활기록부를 봤더니 1~3학년 때까지는 선생님이 손으로 써주고 4학년 때부터는 인쇄해서 붙이셨더라고.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초등학생 때 한 번에 경험한 거지.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길을 걷고 있는 친구들. 그때 그 시절이 힘이 됐으면 좋겠다. 또 다양한 분야에서 우리 나이대 친구들이 활약하고 두각을 나타내고 있잖아. 서로의 자부심이 돼서 서로를 응원하면서 묵묵하게 나아가자.

그리고 이거 내 선물이야. 

그가 건넨 건 학교 앞 문방구에서 팔았던 각종 불량식품들과 굿즈 스티커 그리고 ‘한 끗 다른 공동체, 구공백말띠’라 적힌 파란 천이었다.

여러모로 울컥했던 동갑내기 인터뷰가 끝난 후, 우리는 하이파이브를 하면서 헤어졌다. 서로의 앞날을 응원하며.

운동장에 앉아 있는 김건우 대표. 사진=이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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