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 한잔이 주는 공감각적 경험
맥주 한잔이 주는 공감각적 경험
  • 원충렬 (maynineday@naver.com)
  • 승인 2018.10.23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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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의 시간과 공간] 조용하게 사라지는 팝업스토어들, ‘시간 설계’로 차별화해야

‘브랜드의 시간과 공간’은 브랜드의 라이프스타일을 말하는 두 개의 시선을 통해 브랜딩과 마케팅 이면의 의미를 짚어 봅니다. 지난 여름 연트럴파크를 핫하게 달구었던 제주맥주의 공간에 이은 시간에 관한 것입니다. 

온라인 사이트에서 소비자를 짜증나게 하는 팝업이 오프라인 공간에선 신선하게 다가오는
온라인 사이트에서 소비자를 짜증나게 하는 팝업이 오프라인 공간에선 '스토어' 이름으로 긍정적 이미지로 다가선다.

[더피알=원충렬] 어떤 웹사이트에 들어갈 때, 짧게 떠올라 정보를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팝업이다. 사실 잠깐 잠깐씩 등장하는 팝업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미 질린 상태이다. 그래서 팝업 차단 프로그램이나 설정이 이제는 일상화돼 있기도 하다. 하지만 오프라인으로 시선을 옮기면 팝업이라는 말은 추석 때 스팸이란 단어가 주는 느낌처럼 긍정적인 이미지로 변한다. 많은 기업들이 독특한 방식의 팝업스토어를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팝업스토어는 짧게는 하루, 길어도 몇 달을 넘지 않게 잠깐 여는 매장이다. 처음엔 말 그대로 이동식 매장의 목적일 수 있었겠으나, 그 효과가 주목과 화제에 있다는 걸 발견한 이후로는 기획 자체가 변모했다. 이미 가로수길을 비롯해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 또는 백화점이나 대형쇼핑몰에도 팝업스토어들이 수시로 등장하고 있다. 물론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어딘가는 흥하고, 어딘가는 그냥 조용히 사라지고 있다.

짧지만 강렬하게

조용히 사라지는 팝업스토어의 특징이라면 아마도 ‘보여주기’만의 한계 때문이지 않나 싶다. 어떤 공간적 콘셉트는 분명히 있겠지만 찾아와서 휙 둘러볼 뿐 전시의 나열이 많다. 체험? 물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것도 다소 의례적인 참여형 ‘이벤트’인 경우가 많다. 그런 측면에서 ‘서울시 제주도 연남동’이란 이름으로 제주맥주 팝업스토어가 흥했던 것은 그들이 팝업스토어에 방문한 사람들의 시간을 얼마나 잘 설계했는지로 평가해볼 수 있다.

공간적 특성은 이미 잘 갖춰져 있다. 연남동이란 곳과 제주도라는 테마가 융합되는 재미.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방문해서 경험하게 되는 압축된 시간에 있다. 이 시간이 바로 핵심이다.

'서울시 제주도 연남동'이라는 이름으로 들어산 팝업스토어는 압축된 시간의 특성을 살려 더욱 흥미로운 경험을 제공했다. 출처: 인스타그램_jeongas2
'서울시 제주도 연남동'이라는 이름으로 들어산 팝업스토어는 압축된 시간의 특성을 살려 더욱 흥미로운 경험을 제공했다. 출처: 인스타그램_jeongas2

일상에서 흔히들 말하곤 한다. 제주도로 휙 떠나고 싶다. 날도 좋은데 어디 돗자리 깔고 그냥 누워있음 좋겠다. 어디 잔디에서 뒹굴뒹굴 맥주나 한잔 하고 싶다. 살면서 필요한 리프레시의 순간을 실제로 ‘맥주 한 잔 하기 좋은’ 모습으로 제안하고 경험하게 했다.

시간의 시각화

맥주는 분명 시간적 상징성이 있다. 맥주를 즐기는 그 순간 말이다. 여기에 공감각적인 요소를 더하는 시도를 한다. 말로 되는 건 아니다. 눈에 보여줘야 효과적이다. 하나는 연트럴파크의 ‘잔디’이다. 다른 하나는 그 위에 깔 ‘피크닉 세트’다. 그리고 이 모든 걸 아우르는 컬러 ‘민트’.

눈에 보이거나 인스타그램으로 퍼 나를 수 있는 이런 구체적 요소들이 공감각적 경험을 기대하게 한다. 일종의 해시태그 조합처럼 #맥주 #잔디 #피크닉 #민트 하는 것만으로 기대되는 이미지가 있다. 그리고 이걸 ‘서울에서 제주를 만난다’는 콘셉트로 잘 구현했다.

팝업스토어란 건 사실 기획자에겐 아주 짧은 시간일 수 있다. 때문에 시각적 경험 역시 압축될 수밖에 없다. 그것이 단지 로고나 심벌로 되는 건 아니다. 인상적인 핵심 요소 몇 가지가 어우러지는 조화도 필요하다.

압축 vs 있는 그대로

팝업스토어가 그냥 보여주기식 전시 일변도로 빠지기 쉬운 이유는, 서로 다른 시간의 감각 때문일지도 모른다. 시간은 너무 짧은데 보여줘야 할 건 많기에 경험하는 사람 입장에서 시간 감각을 조율하기 어려운 게 아닐까 싶다. 그런 측면에서 ‘서울시 제주도 연남동’처럼 서울에서 만나는 제주의 시간, 제주도에서 마시는 것 같은 맥주 한 잔의 시간 같는 기획이 매번 쉽게 나올 순 없을 것이다.

결국 시간을 압축해 전달하고 싶은 입장과 그 안에서 온전한 경험을 하고 싶은 욕망은 번번이 충돌할 수 있다. 다만 이제 사람들은 진짜 경험이라는 것에 열광한다. 눈에 보이는 화려함도 좋지만 그 안에서 보낸 시간에 만족하고 싶고, 그 시간 안에 들어와 있음을 자랑하고 싶어한다는 점을 간파해야 한다.

'마을 전체가 하나의 호텔' 사업에 참여하는 일본 주민. 출처: satoyamamarugoto.com

올해 일본의 이시카와현 와지마시 미이지구는 ‘마을 전체가 하나의 호텔’이 되는 농박(農泊) 사업으로 흥하고 있다. 마을의 150년 된 억새지붕의 가옥이 프런트가 되고, 마을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축제와 이벤트를 즐긴다. 사실상 그 마을의 시간 속으로 그대로 들어가는 것이다.

짧게 열었다가 사라지는 팝업스토어와 오랜 시간 원래 그 자리에 있던 마을로 들어가는 농박은 시간상으로는 반대되는 개념일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을 향유하는 방식에 있어 어떤 것에 사람들이 흥미로움을 느낄까? 사람들은 압축된 시간 속에서도 있는 그대로의 진짜를 찾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있는 그대로의 시간을 뚝 잘라 담아 열고 사라지는 팝업스토어, 이래야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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