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진정 사랑하는 브랜드를 찾아서
지구를 진정 사랑하는 브랜드를 찾아서
  • 원충렬 (maynineday@naver.com)
  • 승인 2018.11.07 09: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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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의 시공간] 쌓여가는 에코백과 텀블러, 친환경의 명쾌한 진리는?

‘브랜드의 시간과 공간’은 브랜드의 라이프스타일을 말하는 두 개의 시선을 통해 브랜딩과 마케팅 이면의 의미를 짚어 봅니다. 공간을 보려면..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자는 친환경 바람 속에서 책상 위 텀블러가 쌓여가고 있다. 

[더피알=원충렬] 페이크(fake)가 넘치는 세상이다. 친환경도 다르지 않다. 이제 브랜드가 친환경을 외치지 않는 경우가 이상할 정도로 많아졌다. 그런데도 북극곰과 고릴라의 서식지가 넓어졌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는다.

과연 지구에 착한 소비라는 게 정말 있을까? 아마도 지구의 입장에선 인류가 소비를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가장 친환경적인 행동일 것이다. 그럼에도 많은 기업들이 녹생경영이나 지구사랑을 외치며 자기들의 제품을 소비하라고 홍보한다.

물론 인류가 갑작스레 대규모 생산과 소비 중심의 경제 시스템을 중단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그 시스템 안에서 진실된 차선을 모색하는 기업은 칭찬해야 하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분명 정보의 불균형을 깨거나 시야를 온전하게 넓힐 필요는 있다. 특히 브랜드에 있어서는 소비와 경험의 순간보다는 그 이전이나 이후가 친환경을 평가하기 위해 더 중요한 시간이다.

에코가 이름값 하려면

에코백을 예로 들자. 많은 브랜드와 유통 채널의 친환경 애정 아이템인 에코백. 하지만 영국 환경청의 2011년 조사는 에코백이 정말 에코백인지 의심하게 한다.

조사에 따르면 면 소재 에코백은 131회 이상 사용해야 비로소 1회용 비닐봉지보다 환경보호 효과가 있다. 집에 쌓여있는 여러 에코백들을 떠올리자면, 대부분은 아직 사명을 다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각 기업들은 에코백을 계속 만들고 있다. 사실상 대부분은 그냥 패션아이템일 뿐이지 에코백이란 이름은 과분하다. 실제로 위 조사 당시 영국에서 에코백 사용은 평균 51회 미만이었다.

에코백은 친환경 아이템을 넘어 패션템이 됐다. 하지만 131회 이상을 사용해야 이름값을 한다.

텀블러도 사실 비슷한 운명이다. 종이컵 사용을 줄이기 위해 사용하는 텀블러가 실제 효과를 보자면 몇 십번 이상 종이컵을 대신해야하지만, 실제로는 그것만이 아니다. 캐나다의 한 환경 단체는 생산에서 발생하는 부산물과 이후 사용 시 세척 세제 등까지 감안하면 일부 텀블러의 경우 1000회 이상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역시나 집에 쌓여있는, 여기저기서 선물 받은 텀블러들이 눈에 스친다.

안 쓰거나 오래 쓰거나

사실 이렇게 복잡한 통계가 아니어도 아주 심플한 진리는 있다. 아예 안 쓰거나 오래 쓰면 친환경이다. 이건 아주 명쾌한 진리이건만, 이윤추구를 하는 기업의 생존전략과는 배치된다. 그래서 이를 행하는 기업은 더 신뢰가 간다.

오랜 세월동안 덜 쓰고 오래 쓰는 친환경을 주장해 온 대표주자라면 아웃도어 패션브랜드인 파타고니아를 꼽을 수 있다. 파타고니아의 캠페인에서는 부자(父子)가 대를 이어 같은 옷을 입는 사진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런 비슷한 광경을 혹시 스마트폰에서도 볼 수 있을까? 그게 가능하다면, 그 폰은 아마 페어폰(fairphone)이란 브랜드일 것 같다.

네덜란드 브랜드 페어폰은 '윤리적 스마트폰'이란 수식어를 얻고 있다. 

그린피스에서는 17개 글로벌 IT기업들의 친환경 활동을 평가해 ‘친환경 전자제품 구매 가이드’라는 이름으로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여기서 1위에 오른 브랜드가 네덜란드의 페어폰이다. 평가 결과는 아래와 같다.

“페어폰은 수리와 업그레이드가 쉬운 스마트폰을 디자인하겠다고 약속했으며, 제품 재활용률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자원 소비를 줄이는 분야에서 최고의 점수를 받았습니다. 또한 협력 업체에 관한 정보를 가장 투명하게 공개하는 기업입니다.”

사실 스마트폰 시장은 성능과 가성비의 싸움으로 전개돼왔고, 앞으로도 썩 다르지 않을 것 같다. 다들 세계 최초의 기능과 기술, 디자인에 목숨을 건다. 페어폰은 좀 다르다. 그들이 획득한 ‘세계 최초’란 타이틀은 ‘윤리적 스마트폰’이다.

제품 사이클 전체에서

일단 페어폰은 수리와 교체가 용이하다. 디스플레이, 배터리, 카메라, 등 주요 부품을 쉽게 분해해 교체할 수 있는 모듈 형태로 설계됐기 때문이다. 애초에 주기적으로 교체하거나 고장이 나면 통째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오래 쓰는 것이 목적인 셈이다. 페어폰 홈페이지에는 부품을 교체하거나 직접 고칠 수 있는 수리 방법을 알려준다.

수명을 다 한 부품의 처리도 신경을 쓴다. 매년 버려지는 스마트폰 양은 어마어마하다. 이 중 재활용되는 비중은 매우 낮다. 페어폰에서는 이러한 폐기물을 재구매하고, 재활용이 가능한 시설로 전달하는 과업도 함께 하고 있다.

페어폰은 수리와 교체를 용이하게 만들었다. 사진=페어폰 홈페이지
페어폰은 수리와 교체를 용이하게 만들었다. 사진=페어폰 홈페이지

역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페어폰의 철학은 제품의 원료 채굴시점부터 시작된다. 페어폰에는 이른바 분쟁광물, 즉 주로 아프리카 무장 세력에 의해 비인권적인 노동행위로 채굴한 광물을 사용하지 않는다. 금광석, 텅스텐 등의 수익이 무기제조 등에 재투자되면서 분쟁 상황을 악순환시키는 연결고리를 깨고자 하는 것이다.

결국 페어폰은 스마트폰이라는 제품 사이클 전체를 조망하며 지구나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페어폰의 예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 하나의 브랜드는 단지 소비자의 구매 순간이나 소비 기간에만 우리 삶에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다. 만약 브랜드가 친환경이란 키워드를 쓰고 싶어질 땐, 그 사이클 전체를 제대로 살펴봐야 진정성을 얻을 수 있다.

페어폰이 기능이나 품질에 있어 아직 완벽하진 않은 듯하다. 마찬가지로, 많은 기업과 브랜드의 친환경 노력도 겉핥기에 불과한 경우도 많다. 둘 다 의미는 있고 미리 폄훼할 필요는 없다. 결국 공동체를 위한 인식의 발전에는 기저의 공감대가 쌓여가는 시간도 필요하다. 다만, 누군가는 미리 나아갈 필요가 있다. 앞으로는 친환경에 대한 브랜드의 진정성 없는 그린워싱(green washing)들은 서서히 옥석이 가려지게 될 것이다. 친환경이 아무나 쓸 수 없는 말이 자, 그 자체로 넘보지 못할 경쟁력이 될 시대가 곧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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