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 콘텐츠를 공간에 심는 법
인간적 콘텐츠를 공간에 심는 법
  • 정지원 (jiwon@jnbrand.co.kr)
  • 승인 2018.11.09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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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의 시공간] 밀레니얼의 또다른 테마 된 ‘친환경’

‘브랜드의 시간과 공간’은 브랜드의 라이프스타일을 말하는 두 개의 시선을 통해 브랜딩과 마케팅 이면의 의미를 짚어 봅니다. 시간에 이어..

친환경은 지구를 구성하는 자연과 사람의 공존 테마이다. 사진은 넷플릭스 셰프의 테이블(Chef's Table) 한 장면.

[더피알=정지원] ‘친환경’이라는 화두는 오래된 이야기다. 친환경이 중요하지 않았던 시대는 없었다. 하지만 우리의 매일매일 활동범위를 제약하는 미세먼지 이슈부터, 한 해 한 해 더 심각해지는 이상기온 현상,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는 이해불가 쓰나미 등을 피부로 체감하는 지금 시점에서 꺼내본 친환경이라는 주제는 사뭇 비장하기까지 하다.

이토록 다급해진 친환경 논의에 있어 중요한 포인트는 ‘보다 근본적인 변화를 실천해낼 수 있는가?’라는 철학과 실행의 문제이다. 더 깊이 고민한 사람들의 생각이 모이는 것, 그리고 효과적으로 실천되는 것 말이다. 다행인 건 전에 없이 윤리적·친환경적 소비에 대한 인식이 높은 세대를 만났다는 점이다.

현재 그리고 가까운 미래 소비의 주체로 거론되는 밀레니얼들이다. 먹는 것, 입는 것, 생활하는 순간순간을 윤리적으로 의식하는 세대가 소비를 주도할 것이라는 점은 친환경을 준비하는 많은 브랜드들에게 그나마 희망을 주는 사실이다. 밀레니얼이 친환경에 관심을 갖는 지금 친환경은 그 어느 때보다 핫한 화두다.

상징적 공간의 이상적 운영

친환경은 공간적 범위가 있다. 공간이라고 지칭하기에도 어색할 정도의 드넓지만 말이다. 바로 지구라는 거대한 공간을 전제로 한 테마가 바로 친환경이다. 친환경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유기농’도 친환경을 대변해주지 못한다. 최근 가짜 유기농으로 문제가 된 미미쿠키 사건이 시사하듯 유기농이라는 키워드는 오히려 친환경에 대한 신뢰에 끝없는 의문을 제기하게 만든다.

그 뿐인가? ‘유기농’ ‘친환경’ ‘웰빙’ ‘로하스’ ‘서스테이너블(sustainable)’로 이어진 친환경 키워드들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지만 여전히 좁다. 친환경적인 상품이나 친환경 라이프스타일 이상의 보다 근본적인 지점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친환경을 말하면서 굳이 ‘공간적’으로 해석하고 싶은 이유는 친환경은 그저 그렇게 포장된 많은 콘셉트들 중 하나가 아니라 지구라는 공간에 있는 모든 존재들이 풀어야 하는 절체절명의 숙제이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친환경은 지구를 구성하는 ‘자연과 사람의 공존’ 테마로 해석해야 옳다. 모든 인간적 콘텐츠들을 품은 지구의 건강을 전제로 한 테마이기에.

최근 필자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중에서 재미있게 보고 있는 시리즈는 셰프의 테이블(Chef’s table)이었다. 최근 시즌5가 시작되면서 많은 팬들의 SNS 타임라인을 뜨겁게 달구기도 했다. 필자가 이 다큐멘터리를 시즌5까지 챙겨보된 계기는 시즌1에 소개됐던 셰프 댄 바버(Dan Barber)의 이야기를 접한 이후부터였다.

이야기가 시작되는 지점은 그의 할머니 때부터 이어진 아름다운 농장에서부터이다. 좋은 유제품을 얻기 위해 직접 소를 키웠고 젖소의 분비물을 분해하기 위해 닭을 길렀다. 주변의 울창한 숲이 농장까지 침범하자 야생열매를 먹는 염소를 키웠고 숲의 경계가 넓어지자 돼지농장을 시작하게 됐다. 이런 연결 관계를 깊이 파고드니 좋은 풀을 얻게 되고 풀이 좋아지니 소의 먹이도 좋아지고 먹이가 좋아지면서 우유도 좋아졌다. 각 과정을 잇는 지속적 발전이 결국은 더 좋은 맛을 개발해낸 것이다.

이 농장이자 레스토랑은 단지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 어떤 재료는 왜 더 맛있는지를 고민하다 보면 결국 그것은 지구, 이웃에 대한 고민임을 알게 된다. 내가 먹을 음식이 먹이와 환경까지 연결돼 있다는 생각이 농장의 지속적인 발전과 관리를 가능하게 만든다. ‘농장’이라는 상징적인 공간의 이상적 운영은 그가 레스토랑에서 선보이는 특별한 음식의 경험으로 이어지고 궁극적으로는 댄 바버 셰프를 말해주는 중요한 콘텐츠이다.

호텔이 품은 사회공헌적 스토어

한 달 전, 도쿄에 출장을 갔다가 트렁크호텔에 묵었다. 이 호텔은 감각적인 외관 디자인과 인테리어로도 주목을 받고 있었지만 진가는 더 내부에 있었다. 폐자재를 이용한 로비라운지의 벽과 테이블, 전국에서 회수한 상처 난 그릇을 분쇄해 세라믹으로 재탄생시킨 찻잔, 샌들공장에서 나온 고무를 재활용해 만든 룸 슬리퍼, 장애 아티스트의 작품으로 장식된 로비, 노상에 방치된 자전거 부품을 이용해 만든 투숙객 전용 자전거 등 호텔을 구성하는 작은 디테일들이 모두 친환경적일 뿐 아니라 사회공헌적이다.

트렁크호텔은 폐자재를 이용한 감각적 인테리어로 유명하다.
트렁크호텔은 폐자재를 이용한 감각적 인테리어로 유명하다.

무엇보다도 필자를 놀라게 했던 것은 호텔 1층, 일반인들도 들어올 수 있는 곳에 위치한 트렁크스토어(Trunk Store)였다. 사회공헌적 편의(Socializing Convenience)를 지향하는 이 곳에선 소금, 설탕, 칫솔, 치약부터 티셔츠, 머그컵, 삼각김밥, 커피원두, 세제, 화장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제품들이 모여 있다. 이들이 트렁크호텔이라는 공간, 그리고 트렁크스토어라는 공간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트렁크호텔이라는 공간의 콘셉트는 ‘사회와의 관계(Socializing)’다. 그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지구와의 관계를 보여줄 수 있는 다양한 친환경 관점의 소품과 장치, 물건, 재료, 그리고 설비를 호텔이라는 공간을 통해 경험하게 해준 것이다. 그리고 트렁크호텔에서 묵는 기간 동안 경험한 친환경과 소셜라이징 콘텐트들이 고스란히 방문객들의 삶 속에서 지속적으로 실천, 확산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트렁크스토어가 존재한다.

공간에서 경험한 친환경은 강렬하며 무엇보다도 구체적이다. 친환경적인 깨달음을 주는 이 공간들은 농장의 정의를 바꾸고 레스토랑의 정의를 바꾸고 호텔, 그리고 스토어의 정의를 바꾼다. 보다 더 구체적으로, 실감나는 방식으로 지구와 공존하는 모습을 하나하나 실천하도록, 그리고 생생한 경험으로 남아 궁극적인 확산이 되도록 도와준다. 먹는 일에 대한 기대, 입는 일에 대한, 생활하는 것에 대한 기대를 바꿔준다. 공간으로 경험된 친환경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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