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하나를 보면 지상파 열을 안다
드라마 하나를 보면 지상파 열을 안다
  • 강미혜 기자 (myqwan@the-pr.co.kr)
  • 승인 2018.11.19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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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토크] 공영방송 주말연속극이 그려내는 쌍팔년도 감성, 타깃 맞춤형 전략인가
재벌가 사모님의 강요로 애인과 헤어진 뒤 혼자 속앓이하며 눈물을 흘리는 여자주인공. KBS2 '하나뿐인 내편' 화면 캡처
재벌가 사모님의 강요로 애인과 헤어진 뒤 혼자 속앓이하며 눈물을 흘리는 여자주인공. KBS2 '하나뿐인 내편' 방송 캡처

[더피알=강미혜 기자] 지상파 드라마, 그 중에서도 주말연속극은 안 본지 꽤 되었다. TV 중심의 시청습관이 아니다 보니 자연스레 멀어졌고, 한 번씩 곁눈질로 본 스토리도 90년대 권선징악 스타일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아 놀랐던 기억 탓이다. 한 마디로 지상파 연속극은 ‘자발적으로 보지 않는’ 콘텐츠가 된지 오래다.

그러다 지난 주말, TV 채널을 돌리다가 걸그룹 출신 연기자의 낯익은 얼굴에 혹해 한 드라마를 ‘자발적으로’ 보게 됐다. KBS2 주말드라마 ‘하나뿐인 내편’이다. 그런데 한 회를 다 보기도 전에 당혹스러운 장면들이 연속해서 펼쳐졌다.

허술한 전개는 차치하고라도 일단 남녀주인공의 관계구도가 다분히 일방적이다. 재벌 3세이자 회사 본부장인 남자주인공(왕대륙 역)은 비서로 취직한 여자주인공(김도란 역)과 사귀는 사이다. 그는 “모든 힘든 일은 내가 다 해결할 테니 나만 믿고 따라와”라며 백마탄 왕자님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낸다.

그러나 둘의 연애 사실을 알게 된 본부장의 모친, 즉 재벌가 사모님의 개입으로 달달했던 상황이 급변한다. 자신의 아들과 헤어질 것을 종용하는 사모님과 만난 뒤 여주는 눈물을 머금고 남주에게 이별을 통보한다.

이 과정에서 외로워도 슬퍼도 꿋꿋하게 자기 삶을 살아가던 여주는 쌍팔년도식 신파 분위기를 폴폴 풍긴다. 정말 힘들게 들어간 대기업이건만 반나절 고민 끝에 퇴사를 결정하고, 비밀을 혼자 간직한 채 속앓이를 하며 가족과 주변 사람들을 걱정시킨다. 남주와의 연애를 계기로 자기주관을 상실한 수동적·소극적 캐릭터로 돌변해버린 것이다.

그런 여주를 향해 계모는 “네가 매달려도 모자랄 판에 정신 나갔냐. 돌았냐. 집안 형편을 생각하며 어떻게든 본부장을 잡아야지”라고 다그치며 “큰딸이 살림밑천이라고 했다. 옛날에는 집안 살리려고 홀아비한테도 시집갔었다. 그런데 젊은 데다 저렇게 잘생긴 남자가 뭐 어떻다고 헤어지냐”며 비난의 막말을 쏟아낸다.

여주의 일방적 이별 통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집앞에서 밤샌 남주가 아침에 집안으로 들이닥치는 장면. KBS2 '하나뿐인 내편' 방송 캡처. 

황당한 전개는 이뿐만이 아니다. 여주의 여동생(김미란 역)은 PC방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백수 아저씨’에게 마음이 가는 불편한 진실을 깨닫고 당사자를 향해 “이렇게 잘생겼는데 왜 백수냐. 아저씨가 번듯한 직업만 있었어도 내가 이렇게 괴롭진 않을 거다”며 주사를 부린다.

그러면서 “우리 엄마가 놀고먹는 남자는 만나지 말라 그랬다. 우리 엄마가 착한데 돈 없는 남자가 제일 나쁜 남자라고 그랬다”고 속물근성을 가감 없이 드러내지만, 남자는 오히려 그런 솔직한 모습에 호감을 보인다. 심지어 그는 백수가 아닌 그녀가 남편감으로 열심히 찾아 헤매는 치과의사였다.

한 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이런 스토리라인을 접하면서(심지어 한 회를 봤는데도 이전 39회 내용이 모두 짐작이 갔다) 과연 2018년도 공영방송에서 선보이는 드라마인가 하는 심각한 의문이 들었다.

지금 대다수 서민들은 팍팍한 살림살이로 여유를 잃어가고, 청년들은 극심한 취업난으로 열패감에 싸여 있는데 이 무슨 공감제로 로맨스란 말인가. 극 중 부잣집 사람들이 보이는 우월의식 또한 갑질로 얼룩진 우리사회 일면을 무비판적으로 묘사하는 듯했으며, 남녀성평등이 사회적 화두가 되는 시대 분위기와 동떨어진 곳곳의 연출은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솔직히 전파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미디어 환경이 다매체·다채널로 바뀌면서 지상파는 그 어느 때보다도 어려운 상황을 맞고 있다. 온라인 플랫폼을 최우선하는 10대는 말할 것도 없고 20~30대마저 지루한 지상파 프로그램 대신 다방면에서 대체 콘텐츠를 소비하는 실정이다. 시청자가 떨어져나가면서 지상파 돈줄인 광고도 뚝뚝 떨어지고 있다. 그런데도 지상파는 콘텐츠를 통한 변화를 추구하기보다 기존 문법들을 고스란히 답습하며 시대를 거꾸로 가는 모습이다.

아침드라마나 주중·주말연속극에서만큼은 5060 중장년층 기호에 충실한 ‘막장 요소’를 꿋꿋이 버무려내는 것이 좋게 해석하면 지상파의 타깃 맞춤형 전략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드라마를 보는 핵심 타깃인 부모님 세대가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 시간에 볼 게 없어서 틀어놓지 딱히 재밌어서 보는 건 아니다.”

5060이 7080이 되고 5060 자리를 지금의 3040이 채우게 되는 시점에 지상파가 어떤 타깃 맞춤 전략을 구사할지 자못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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