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누구를 위한 ‘뻗치기’인가
도대체 누구를 위한 ‘뻗치기’인가
  • 강미혜 기자 (myqwan@the-pr.co.kr)
  • 승인 2018.12.19 15: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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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펜션 사고에 도 넘는 취재경쟁 반복, “기자 조심” 경고성 글도 떠돌아
고등학생 10명의 사상자를 낸 강릉 펜션 사고 직후 진선미 장관, 김미경 은평구청장, 김부겸 장관(왼쪽)이 강릉아산병원에서 학부모들을 위로하는 모습을 기자들이 취재하고 있다. 뉴시스
고등학생 10명의 사상자를 낸 강릉 펜션 사고 직후 진선미 장관, 김미경 은평구청장, 김부겸 장관(오른쪽)이 강릉아산병원에서 학부모들을 위로하는 모습을 기자들이 취재하고 있다. 뉴시스

“대*고 학생 사고로 연신내 인근에서 뻗치기(취재 대상을 무작정 기다리는 언론계 은어) 하면서 학생증 까보라고 하는 모 카메라 기자, 학생들 페메(페이스북 메신저) 찾아내서 이야기하라고 하는 당신들이 사람입니까? 우리 언론계는 세월호 이후 왜 발전이 없습니까.”

[더피알=강미혜 기자] 미디어업계 종사자들의 대나무숲을 자처하는 한 페이스북 페이지에 19일 올라온 글이다.

언론계에 몸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익명의 글쓴이는 전날 강릉의 한 펜션에서 발생한 서울 대성고 학생들의 사상 사고 관련해 도 넘는 취재 경쟁을 비판하고 있다.

실제 펜션 사고 직후 쏟아지는 언론보도를 접하며 안타까움을 느끼는 동시에 분노하는 여론이 나타나고 있다.

생때같은 아이들이 미처 꿈을 피워보기도 전에 참변을 당했는데, 그 나물에 그 밥 같은 속보경쟁에 열을 올리는 것도 모자라 조금이라도 더 날것의 뉴스를 내보내겠다는 일념 하에 온·오프라인을 망라하고 주변을 들쑤시고 다니는 취재 행각 탓이다.

온라인상에선 “OO일보 OOO 기자입니다. 혹시 (피해 학생들이 소속된 반) 주소록을 얻을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OO일보 OOO 기자라고 합니다. 사망기사를 작성 중인데 OO께 전달되는 마지막 목소리라 생각하시고 말씀 한 번만 부탁드리겠습니다” “OO일보 OOO 기자라고 합니다. 혹시 대성고 다니는 OOO군과 아시는 사이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라는 메시지 캡처본이 떠돌아다닌다.

여기에 더해 “대성고 앞뿐만 아니라 근처 골목들도 조심하세요. (기자들이) 옆에서 갑자기 튀어나와서 막 물어봐요” “기자분들 들어와서 학생분들 사진 보여주고 이 학원 다니냐고 물어보고 다니네요. 조심해주세요” 등의 경고성 글도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오죽했으면 서울시교육청이 나서서 “대성고 사고 관련 과도한 취재는 자제를 부탁드린다”고 공지했을까.

사고 직후부터 언론들은 피해 학생들과 관련한 각종 이야기들, 절절한 사연을 담아 앞다퉈 기사를 내보내고 있다. 가족과 친구들, 주변 지인을 일일이 탐색하며 ‘정보수집’을 할 수밖에 없는 건 불문가지다.

물론 기록하는 사람(記者)이란 직업적 사명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불미스러운 일로 생각할 수 있다. 사회적으로 파급력이 큰 사건·사고 앞에서 낙종(?)하지 않으려는(실상은 데스크에 깨지지 않으려는) 사회부 기자들의 몸부림으로 바라볼 수도 있다. 

문제는 진짜 중요한 지점에서 이런 취재경쟁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펜션 사고로 수능을 친 고3 학생들 10명이 죽거나 다쳤다’는 소식만으로도 충분히 사고의 심각성을 알 수 있다. 구구절절한 ‘묘사’가 없다고 사안의 위중함을 인식 못할 국민은 없다. 생생한 ‘증언’ 없이도 안타까움은 충분히 차고 넘친다.

언론은 여론에 휩쓸리기보다 왜 이런 어이없는 사고가 발생했는지, 도대체 무엇이 잘못됐는지, 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매번 소 잃고 외양간도 못 고치는 일이 왜 반복되는지 국민을 대신해 따져 묻고 시시비비를 가려 실질적으로 개선되기까지 끊임없이 감시하고 비판해야 한다. 그게 진짜 필요한 기사이고 기자의 역할이다.

우리사회는 세월호란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한 교훈을 얻었다. 기레기 논란을 낳은 언론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도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다. 실수가 반복되면 실력이라 했다. 잘못을 반복하는 언론도 결국 자기 수준만 드러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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