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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너 일가의 사생활 보도, 위법일까 적법일까
오너 일가의 사생활 보도, 위법일까 적법일까
  • 양재규 eselltree92@hotmail.com
  • 승인 2018.12.28 13: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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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규의 피알Law] 녹취 시대 폭로와 법원의 판단은
기업 오너 및 그 가족은 공인일까? 법원은 그들의 사생활 보도에 어떻게 판단할까?

[더피알=양재규] 자식이 사고를 치면 아버지가 사과를 한다. ‘그 사건’에 관한 것이냐고? 연예인, 정치인 할 것 없이 한둘이 아니다보니 굳이 사건을 특정할 필요도 없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면 자식 문제로 정치인생에 위기를 맞은 정치인 명단을 정리한 기사까지 나오니 말이다. 이쯤 되면 ‘아버지의 사과’는 하나의 사회 현상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자식 잘못 키운 죄로 고개 숙이는 건 기업 오너도 예외는 아니다.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에서부터 TV조선 방정오 전 대표이사 전무에 이르기까지 많은 기업인들이 자녀 혹은 가족 문제로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고 직에서 물러나기도 했다. 갑질 논란이 하나의 사회적 아젠다가 되고 있는 요즘, 논란의 직접적 당사자가 10살짜리 초등학생이라는 사실은 전혀 중요한 고려사항이 아니다.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조선일보 손녀’ 파문에서 우리가 지나친 것

가장 최근에 있었던 조선일보 대표이사 손녀의 막말 보도에 관해 기사 취지에는 십분 공감하지만, 법적 문제는 없는 것인지 의문을 갖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의문은 크게 두 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기업 오너의 가족(딸 혹은 손녀)은 공인인가? 운전기사와의 대화는 사생활 아닌가?

조선일보 대표의 10살 손녀 갑질 녹취록 대화. 미디어오늘 보도영상 화면. 

관련해 이미 일부 언론에서 다루기도 했지만, 기업 오너 일가의 사생활 보도는 언제든지 다른 내용으로 이슈가 될 수 있으므로 보편적인 판단기준이 될 만한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정용진 부회장과 양진호 회장의 차이

기업 오너 및 그 가족은 공인일까? 우선, ‘대기업 오너’에 관해서는 이런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그 위치 정도 되면 당연히 공인이라고들 생각한다. 지난 칼럼에서 이미 다룬 바 있지만, 우리 판례는 대기업이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는 이유로 대기업 오너의 보수나 배당에 관한 사항을 공중의 정당한 관심사로 보고 있다.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오너 보수·배당’에 대한 언론의 참견 시점

혹시 해당 오너나 대표가 언론이나 SNS 등을 통한 소통에 적극적이라거나 대중 앞에 스스로를 자주 노출시키고 있다면 결론은 더욱 명쾌해진다.

법원은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의 약혼식 관련 보도가 위법한 사생활 침해에 해당하는지 문제된 사안에서 당사자 스스로 재혼에 대한 생각을 온라인에 표명함으로써 대중의 관심을 유발했다는 점 등을 근거로 정 부회장이 “이른바 ‘공적 인물’의 지위를 취득하게 되어 그의 재혼을 둘러싼 사생활은 일반인의 지대한 관심을 끌 만한 사항에 해당하게 되었다”고 판단한 바 있다(2011나89080).

대기업 오너는 그렇다 치고, 그러면 그 가족이라든가 대중적 인지도가 그리 높지 않은 중소기업 오너나 대표는 어떻게 될까? 이와 관련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한국미래기술의 양진호 회장이다. 양 회장 사건은 모든 언론에서 실명으로, 얼굴까지 공개하면서 보도했다.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은 직원 대상 엽기적 갑질 폭로를 계기로 온갖 비리 의혹이 불거져 결국 구속됐다. YTN 뉴스 화면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은 직원 대상 엽기적 갑질 폭로를 계기로 온갖 비리 의혹이 불거져 결국 구속됐다. YTN 뉴스 화면

그렇다면 언론은 양 회장을 공인으로 판단한 것인가? 하지만 양 회장이 소유하고 있는 기업 규모나 대중적 인지도를 고려할 때, 그가 공인이면 우리나라 대다수 중소기업 오너나 대표도 다 공인으로 봐야 한다.

사견을 전제로, 양 회장은 공인이 아니다. 동시에 양 회장 사건을 보도한 언론들이 비록 실명으로, 초상까지 공개하면서 보도했지만 해당 보도는 위법하지 않다고 볼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보도의 위법성 판단 시 법원이 당사자의 신분적 요소(사회적 지위, 대중적 인지도 등) 이상으로 사안의 성격(공적 관심 사안인지 여부)을 중요하게 고려하기 때문이다.

공인 보도에 관해 흔히 사람들이 놓치고 있는 것은 공인성 유무가 보도의 위법성 판단에 그렇게까지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양진호 회장 사례처럼 사회적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된 인물이 정치인이나 대중스타, 대기업 오너와 같은 전형적인 공인에 해당되지는 않을지라도 관련 언론보도는 위법하지 않을 수 있다.

보도의 위법성 판단 핵심은 당사자의 공인성이 아니라 사안의 성격이며, 공인에 대한 보도라야 적법하고 공인 아닌 사람에 대한 보도는 위법하다는 도식은 썩 타당하지 않다. 또한 보도의 당사자가 공인이 아닐지라도 문제되고 있는 사안이 공론장에 올릴 만한 가치가 있으면 보도는 적법하다.

방정오 TV조선 대표이사 전무는 ‘10살 딸 폭언’ 논란으로 결국 사퇴했다. 관련 소식을 보도한 KBS 뉴스.
방정오 TV조선 대표이사 전무는 ‘10살 딸 폭언’ 논란으로 결국 사퇴했다. 관련 소식을 보도한 KBS 뉴스.

공익-사익 판단하는 기준은?

그러면 사안이 공론장에 올릴 만한 것인지 여부는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완벽하지는 않지만 사생활 침해가 문제될 경우 참고가 될 만한 기준으로 독일의 ‘인격영역론’이라는 것이 있다. 이 이론은 사람의 인격영역 혹은 생활영역을 내밀영역, 비밀영역, 사사적 영역, 사회적 영역, 공개적 영역으로 구분한다.

이론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아이디어, 즉 포괄적이며 추상적인 인간의 인격영역을 그 특징별로 분류해 각각의 영역에서 보호의 범위 내지 공개 가능성에 차등을 두겠다는 생각은 (개별 영역의 한계가 불분명하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사생활 침해적 언론보도의 위법성 판단에 매우 유용한 접근 방식이 되고 있다. 그래서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에서도 이 이론을 채택하고 있으며 최근 들어 우리 판결 중에서도 인격영역론과 유사하게 보이는 것들이 나타나고 있다.

다섯 가지 인격영역 중에서 공개됐을 때 특히 문제될 수 있는 건 ‘내밀영역’과 ‘비밀영역’이다. 절대적이라고까지 말할 수는 없지만 원칙적으로 해당 사항 공개를 위법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내밀영역은 주로 성(姓)적인 문제나 질병, 개인적 양심에 해당하는 사항이다. 비밀영역은 개인 간 대화나 통신 내용에 관한 것으로 통신비밀보호법으로 보호되고 있다. 언론에서 보도한 내용이 일단 내밀영역 혹은 비밀영역에 해당한다면 보도의 적법성을 인정받기가 상당히 어려워진다.

공개 시 문제될 가능성이 큰 ‘내밀영역’ 내지 ‘비밀영역’과는 달리, ‘사사적 영역’은 비교형량, 다시 말해 공익과 사익을 저울질함으로써 그 위법성을 가리게 된다. 사사적 영역은 공개와 보호의 경계선상에 있는 것이다. 저울질의 결과, 공익이 크면 보도는 적법하게 되고 사익이 더 크면 위법하게 된다. 끝으로, ‘사회적 영역’ 및 ‘공개적 영역’은 공개해도 원칙적으로 무방하다.

이러한 인격영역론에 비춰보면 운전기사와 승용차 안에서 나눈 대화는 사사적(私事的) 영역에 속한다. 개인 간 대화라서 비밀영역에 속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녹음한 주체가 대화의 일방 당사자일 경우 통신비밀보호법은 위법하다고 보지 않는다. 따라서 ‘비밀영역’이 아니다. 대화 장소인 승용차 안이라는 공간은 당사자의 가족이라든가 친구, 친척 등 매우 제한된 범위 내의 사람들만이 접근할 수 있는 영역이며, 그 내용 또한 운전기사의 업무와 관련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내밀영역 혹은 비밀영역이 아니며 그렇다고 해서 사회적, 공개적 영역으로 보기도 어려운 경우 해당 사안은 사사적 영역에 속한다. 이제 남은 것은 공익과 사익 간 저울질이다. 무엇을 보도하고자 했는지, 그것이 어떻게 국민의 알권리 혹은 공론장에 기여할 수 있는지를 증명해보여야 하는 것은 오롯이 그 사건을 보도한 언론의 몫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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