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젤귀’ ‘핵인싸’가 비방용?
‘세젤귀’ ‘핵인싸’가 비방용?
  • 문용필 기자 (eugene97@the-pr.co.kr)
  • 승인 2019.01.04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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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토크] 방심위, 우리말 훼손 무더기 제재, 시대 변화 반영한 잣대 필요해 보여
tvN의 '신서유기5'는 '핵인싸'라는 표현을 써서 방심위의 행정지도 처분을 받았다. 방송화면 캡처
tvN의 '신서유기5'는 '핵인싸'라는 표현을 써서 방심위의 행정지도 처분을 받았다. 방송화면 캡처

[더피알=문용필 기자]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가 지상파와 종편, 케이블TV 예능프로그램 17건에 대해 행정지도 결정을 내렸다. 최근 실시한 방송언어 모니터링 결과 우리말 훼손이 매우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얼마나 심하기에 한 두 개도 아닌 17개 프로그램이 무더기로 행정지도를 받았을까. 내용을 살펴봤다. KBS ‘해피선데이’는 ‘뚁땅해’(속상해)라는 단어를 사용해 리스트에 올랐으며 SBS ‘런닝맨’은 ‘몰빵’이라는 표현이 문제가 됐다. SBS funE ‘스쿨어택’의 경우 ‘[th]ㅏ’ ‘알긔’ 같은 표현을 사용했다.

방심위의 판단 근거는 현행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 51조 3항이다. ‘방송은 바른 언어생활을 해치는 억양, 어조 및 비속어, 은어, 유행어, 조어, 반말 등을 사용하여서는 아니된다’고 적시돼 있다. 이같은 맥락에서 보면 도무지 알아듣기 힘든 표현을 사용한 위 프로그램에 대한 행정지도 처분은 충분히 납득이 가고도 남는다.

하지만 방심위 결정이 좀 지나치다 싶은 대목도 있다. SNS 등 온라인에서 만들어진 신조어나 줄임말을 쓴 경우가 해당된다.

예를 들어 JTBC ‘아는 형님’은 ‘입틀막’(입을 틀어막다) ‘세젤귀’(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사람)라는 표현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방심위의 제재대상이 됐다. tvN 신서유기의 경우에는 ‘핵인싸’(핵+insider) ‘말잇못’(말을 잇지 못하다)라는 표현을 문제 삼았다.

10대 청소년뿐만 아니라 20~30대 들도 흔히 사용하는 신조어들이다. 당장 40대인 본 기자도 가끔 쓴다. 심지어 언론 기사에서도 심심찮게 등장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이미 사회적으로 광범위하게 쓰이는 표현이라는 이야기다. 방송의 공공성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방심위가 매스미디어 중심의 언어순화를 강요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단순히 줄임말을 쓴다고 해서 우리말을 크게 훼손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아나바다’(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기) 같은 말은 10여년 이상 큰 문제없이 사용돼 온 표현이다. ‘황금알’(황당하고 궁금한 알짜 이야기) ‘세바퀴’(세상을 바꾸는 퀴즈)같이 아예 줄임말을 제목에 내건 프로그램은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게다가 프로그램의 성격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정제된 언어를 사용해야 할 뉴스에서 줄임말이나 신조어를 사용한다면 분명 문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번에 행정지도 처분을 받은 프로그램들은 모두 예능이다. 트렌드를 따라가야 하는 장르의 속성상 광범위하게 쓰이는 신조어나 줄임말을 사용하는 것은 어느 정도 용인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이른바 ‘방송 언어’가 그만큼 중요하다면 방심위가 더욱 더 신경써서 모니터링해야 할 대상은 따로 있다. 일부 시사 혹은 토론 프로그램 등에서 여과 없이 터져 나오는 소위 ‘오피니언 리더’들의 막말이다. 줄임말이나 신조어가 국민들의 언어생활에 문제가 될지 몰라도 막말은 국민들의 정신건강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방심위가 좀 더 시대상황에 부합하는 심의활동을 펼쳐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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